[승마] 역사속의 명마·기마대 17. 신립이 이끈 조선 마지막 기마대
일간스포츠

입력 2011.07.01 15:02

조총 앞에서 무기력한 돌파 공격, 임진왜란 탄금대 전투서 전멸






임진왜란 탄금대 전투에서 전멸한 신립의 기마대는 규모·역사적인 의미 등에서 조선시대 마지막 기마대로 인정받고 있다. 신립의 기마대 병력 수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최소 500기에서 최대 4000기까지 사서에 따라 다르게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립은 조선 중기의 무장으로 북변에 침입한 나탕개를 격퇴한 후 두만강을 건너가 야인의 소굴을 소탕하고 개선했다. 함경북도병마절도사·우방어사·중추부동지사·한성부 판윤을 지냈다. 신립이 왜군과의 결전 장소를 문경새재가 아닌 탄금대로 정한 것은 나름 이유가 있었다. 조선군에서 도망병이 속출하고 있었고 조선군은 기병이 많은 반면 왜군은 대부분 보병이라 병종 상 우위를 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탄금대 전투시 조건은 기마대에 불리했고 결과는 3회의 돌격 작전 감행 후 전멸이었다. 전투가 있던 4월 28일(양력 6월 초)은 장마철이었으며 이날 탄금대에 소나기가 쏟아졌다. 수적으로도 열세였지만 기후마저 도와주지 않았다. 길은 진창이고 좁았기에 기마대의 강점인 기동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군사들도 오합지졸이었다. 또 왜군은 기마대의 천적이라고 할 수 있는 화약무기(조총)로 무장하고 있었다. 역사적으로 기마대는 화약무기가 발달하면서 중요성이 떨어졌고 결국 대규모 정규전에서는 사라졌다. 기마대의 최대 장점인 돌파 공격을 감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신립의 기마대는 구성과 전술적으로도 패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 중기 기마대의 전투방법은 적의 100보 앞에서 동개궁을 이용해 일제 사격을 하고 50보 전방에서 돌파 공격을 시도하는 방법인데 조총의 유효 사거리는 100보다.

또 기마대의 최고 강점인 돌파공격력이 미약했다. 신립의 전기인 '도순변사신공전'에서 탄금대 전투를 설명할 때 중기병의 돌격을 의미하는 '치돌(馳突)'대신 궁기병의 돌격 사격을 의미하는 '치사(馳射)'란 표현을 썼다. 또 배수진을 사용한 것은 궁기병의 최대 장점인 히트&런 작전 또는 적의 측방이나 후방에 대한 기습 공격을 할 수 없게 했다.

신립의 기병이 사용한 말은 몽고원시말 또는 몽골계인 칼미크 말일 가능성이 높다. 원나라의 영향을 받은 고려후반부터는 몽고의 서부 에서 생산된 칼미크 계열이 도입돼 주류를 이루었을 가능성이 높다.

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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