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생명이 권순찬(48) 감독 경질 후폭풍에 휘청이고 있다. 흥국생명의 '윗선'이 선수 기용에 개입하고, 권순찬 감독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이 사태를 일으켰다는 설이 배구계에 돌고 있다.
흥국생명은 권순찬 감독과 김여일 단장의 동반 사퇴 소식을 지난 2일 알렸다. 구단은 '사퇴'라고 표현했지만, 사실상의 경질이다.
성적 부진으로 결별한 건 아니다. 흥국생명은 정규시즌 반환점인 3라운드를 2위(승점 42)로 통과했다. 개막 15연승을 달린 선두 현대건설(승점 45)을 맹추격하고 있다. 중간 성적표가 예상보다 훨씬 좋다.
권순찬 감독도 우승 도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최근 GS칼텍스에서 이원정을 트레이드 영입한 것도 세터 보강을 위한 권순찬 감독의 의지가 크게 반영됐다. 또한 지난 29일 현대건설을 3-1로 꺾은 뒤에는 "1등을 꼭 하고 싶은 생각"이라고 했다. 평소 신중한 스타일이지만, 이날만큼은 확고한 욕심을 드러냈다. 남자 배구에서 잔뼈가 굵었던 권 감독은 새롭게 내디딘 여자 배구에 안착하는 듯했다.
그런데 흥국생명 지휘봉은 잡은 지 9개월 만에 팀을 떠나게 됐다.
명분이 부족한 사령탑 경질에 대해 임형준 구단주는 "구단이 가고자 하는 방향과 부합하지 않아 부득이하게 권순찬 감독과 헤어지기로 했다"고 밝혔다. 구단 관계자에게 '방향성의 차이'에 관해 묻자 "스타일의 차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더 자세하게는 "선수 기용이나 경기 운영 등에 이견이 조금 있었다"고 덧붙였다.
권순찬 감독도 일간스포츠와 통화에서 "내가 먼저 사퇴 의사를 밝힌 게 아니다. 구단에서 2일 오전 '팀을 떠나라'고 통보했다"고 밝혔다.
이전부터 구단과 권 감독의 결별 조짐이 있었다.
흥국생명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권순찬 감독이 베테랑 중심으로 경기를 운영했다. 그런데 윗선에서 입단 1~2년 차 위주의 젊은 선수를 기용하라고 압박했다"고 귀띔했다. 사령탑 입장에선 팀이 상승세를 타는 와중에 위험 부담을 안고 '리빌딩'에 집중할 이유가 없다. 권순찬 감독도 "구단에서 선수 기용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다. 내가 듣질 않았다"고 전했다. 임 구단주가 '방향성 차이'를 언급한 것을 종합하면 외압은 사실로 보인다.
구단의 이번 결정에 흥국생명 주축 선수들이 동요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갑작스러운 감독 해임에 당황스럽다는 반응이다. 김연경을 비롯한 몇몇 선수는 "경기를 보이콧하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권순찬 감독이 이를 말렸다고 한다.
흥국생명은 당초 2일 선수단 회식을 할 예정이었다. 김연경이 권순찬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고문이 안 오시면 어떡하냐"라고 했다. 흥국생명은 2일 입장문을 발표하며 "권순찬 감독은 고문 형태로 구단에 조언을 해줄 예정"이라고 밝혔다. 권 감독은 "연경이가 밝고 좋은 애여서…"라며 안타까워했다.
흥국생명은 오는 5일 홈 인천삼산월드체육관에서 GS칼텍스와 맞붙는다. 이날 흥국생명이 어떤 경기력을 보일지, 선수들은 어떤 말을 할지 배구계가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