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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철의 이라크전 관전기] 손흥민, 후배 실수에도 여유로운 미소…벤투호는 단단했다

“자철이 형, 사진 찍는데 안 내려와요?”축구대표팀의 한 후배가 관중석의 날 보더니 농담을 건넸다. 17일 카타르 도하의 타니 빈 자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년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한국이 이라크를 3-0으로 완파한 뒤였다. 무관중 경기였지만, 대한축구협회가 카타르 프로축구 알 코르에서 뛰고 있는 날 초대해줘 멋진 승리를 볼 수 있었다.난 2019년 1월 태극마크를 반납했다(A매치 76경기 19골). 그해 6월 서울에서 열린 한국-이란전을 바이에른 뮌헨(독일) 아시아 디렉터를 데려가 지켜본 뒤 오랜만에 대표팀 경기를 관전했다.손흥민(29·토트넘)이 2011년 A매치 데뷔골을 신고한 이 경기장에서 후반 29분 A매치 30번째 골을 넣었다. 돌이켜보니 10년 전 그 골의 어시스트를 내가 했더라.흥민이가 페널티킥을 차기 전 ‘작은’ 정우영(22·프라이부르크)이 골문으로 먼저 쇄도해 공을 다시 차게 됐다. 후배의 실수에도 흥민이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서로 이해하고 실수한 선수를 보듬는 이런 사소한 모습. ‘벤투호’가 단단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정우영은 페널티킥 미스를 대비해 대시했을 거다. 막내 선수이다 보니 자신의 실수가 팀에 해를 끼쳤다는 자책감에 흔들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다행히 정우영은 후반 34분 흥민이처럼 도하에서 A매치 데뷔골을 넣었다.전술적으로 핵심 포인트는 ‘포백 라인 컨트롤이 90분 내내 기가 막히게 이뤄졌다’는 거다. 미드필더 ‘큰’ 정우영(32·알 사드)이 밑에서 컨트롤해줬고, 황인범(25·카잔)과 이재성(29·마인츠)이 공격을 전개하며 패스를 찔러줬다. 조규성(23·김천)은 최전방에서 성실하게 움직여 찬스를 만들어주며 100% 아니 300% 역할을 해줬다.황인범은 이젠 대표팀에서 대체 불가능한 선수가 됐다. 나와 기성용(32·서울) 등이 ‘89(년생) 라인’이라 불렸는데, ‘96(년생) 라인’ 황인범-김민재(페네르바체)-황희찬(울버햄튼)은 황금세대다. 서로 애지중지하더라. 겉멋이 들지 않았고 프로페셔널 하다.지난 9월 최종예선 1차전 후 파울루 벤투(포르투갈) 대표팀 감독을 교체하자는 목소리가 일부 있었다. 거스 히딩크 감독님 때는 안 그랬나. 기다려 주지 못하고, 결과를 빨리 내주기를 세상은 원하고 있다. 예전에 이청용(33·울산)이 “2014년과 2018년처럼 월드컵 직전에 감독을 교체한다면 실망할 것 같다”고 힘줘 말한 적이 있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내가 본 벤투는 한 마디로 ‘뚝심 있는 감독’이다. 처음에는 방황하는 시간들 있었지만, 오랜 시간을 함께하며 주축 선수들을 가려내고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서로를 위해 한 발 더 뛰려는 모습을 보며 우리 대표팀이 ‘원팀’이 된 걸 느꼈다. 특히 주장 흥민이는 지금처럼만 한다면 아주 좋은 성과를 낼 거다.아시아 최종예선 조 1·2위가 월드컵 본선에 직행한다. 이란(승점 16)에 이어 한국(4승 2무·승점 14)은 조 2위다. 3위 아랍에미리트(승점 6)와 격차를 8점으로 벌렸다. 우리나라는 이르면 내년 1월 7차전에서 10회 연속 본선행을 확정할 수 있다. 레바논과 원정에서 이기고, 아랍에미리트가 시리아에 비기거나 지면 조 2위를 확보한다. 2014년과 2018년 월드컵 본선행은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결정됐다. 이번처럼 최종예선에서 순항한 대표팀이 없었던 것 같다. 놀라울 따름이다.이라크전 막바지에 3-0이 되자 예전 생각이 났다. 선수들이 누구보다 기쁘겠지만, 한편으로는 ‘다시 비행기를 타고 돌아가 소속팀에서 경기해야지’란 생각이 들었을 거다. 독일에서 뛸 때 나도 했던 걱정이다. 소속팀과 대표팀을 오가며 경기를 이어가는 게 쉽지 않다. 최선을 다한 후배들에게 박수를 보내주셨으면 좋겠다.구자철 전 축구대표팀 주장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2021.11.18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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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철 이라크전 관전기]손흥민 미소에 벤투호 단단함 보였다

“자철이 형, 우리 사진 찍는데 안 내려와요?”축구대표팀의 한 후배가 관중석의 날 보더니 농담을 건넸다. 17일 카타르 도하의 타니 빈 자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년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한국이 이라크를 3-0으로 완파한 뒤였다. 무관중 경기였지만, 대한축구협회가 카타르 프로축구 알 코르에서 뛰고 있는 날 초대해줘 멋진 승리를 볼 수 있었다.난 2019년 1월 태극마크를 반납했다(A매치 76경기 19골). 그해 6월 서울에서 열린 한국-이란전을 바이에른 뮌헨(독일) 아시아 디렉터를 데려가 지켜본 뒤 오랜만에 대표팀 경기를 관전했다.손흥민(29·토트넘)이 2011년 A매치 데뷔골을 신고한 이 경기장에서 후반 29분 A매치 30번째 골을 넣었다. 돌이켜보니 10년 전 그 골의 어시스트를 내가 했더라.흥민이가 페널티킥을 차기 전 ‘작은’ 정우영(22·프라이부르크)이 골문으로 먼저 쇄도해 공을 다시 차게 됐다. 후배의 실수에도 흥민이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서로 이해하고 실수한 선수를 보듬는 이런 사소한 모습. ‘벤투호’가 단단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정우영은 페널티킥 미스를 대비해 대시했을 거다. 막내 선수이다 보니 자신의 실수가 팀에 해를 끼쳤다는 자책감에 흔들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다행히 정우영은 후반 34분 흥민이처럼 도하에서 A매치 데뷔골을 넣었다.전술적으로 핵심 포인트는 ‘포백 라인 컨트롤이 90분 내내 기가 막히게 이뤄졌다’는 거다. 미드필더 ‘큰’ 정우영(32·알 사드)이 밑에서 컨트롤해줬고, 황인범(25·카잔)과 이재성(29·마인츠)이 공격을 전개하며 패스를 찔러줬다. 조규성(23·김천)은 최전방에서 성실하게 움직여 찬스를 만들어주며 100% 아니 300% 역할을 해줬다.황인범은 이젠 대표팀에서 대체 불가능한 선수가 됐다. 나와 기성용(32·서울) 등이 ‘89(년생) 라인’이라 불렸는데, ‘96(년생) 라인’ 황인범-김민재(페네르바체)-황희찬(울버햄튼)은 황금세대다. 서로 애지중지하더라. 겉멋이 들지 않았고 프로페셔널 하다.지난 9월 최종예선 1차전 후 파울루 벤투(포르투갈) 대표팀 감독을 교체하자는 목소리가 일부 있었다. 거스 히딩크 감독님 때는 안 그랬나. 기다려 주지 못하고, 결과를 빨리 내주기를 세상은 원하고 있다. 예전에 이청용(33·울산)이 “2014년과 2018년처럼 월드컵 직전에 감독을 교체한다면 실망할 것 같다”고 힘줘 말한 적이 있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내가 본 벤투는 한 마디로 ‘뚝심 있는 감독’이다. 처음에는 방황하는 시간들 있었지만, 오랜 시간을 함께하며 주축 선수들을 가려내고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서로를 위해 한 발 더 뛰려는 모습을 보며 우리 대표팀이 ‘원팀’이 된 걸 느꼈다. 특히 주장 흥민이는 지금처럼만 한다면 아주 좋은 성과를 낼 거다.아시아 최종예선 조 1·2위가 월드컵 본선에 직행한다. 이란(승점 16)에 이어 한국(4승 2무·승점 14)은 조 2위다. 3위 아랍에미리트(승점 6)와 격차를 8점으로 벌렸다. 우리나라는 이르면 내년 1월 7차전에서 10회 연속 본선행을 확정할 수 있다. 레바논과 원정에서 이기고, 아랍에미리트가 시리아에 비기거나 지면 조 2위를 확보한다. 2014년과 2018년 월드컵 본선행은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결정됐다. 이번처럼 최종예선에서 순항한 대표팀이 없었던 것 같다. 놀라울 따름이다.이라크전 막바지에 3-0이 되자 예전 생각이 났다. 선수들이 누구보다 기쁘겠지만, 한편으로는 ‘다시 비행기를 타고 돌아가 소속팀에서 경기해야지’란 생각이 들었을 거다. 독일에서 뛸 때 나도 했던 걱정이다. 소속팀과 대표팀을 오가며 경기를 이어가는 게 쉽지 않다. 최선을 다한 후배들에게 박수를 보내주셨으면 좋겠다.구자철 전 축구대표팀 주장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2021.11.17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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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첫 1면 at IS]⑥이명주와 신진호, '황선대원군'의 두 충신

'스타'의 시작은 언론이다. 신문의 1면은 그 시대를 상징하는 스타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장소다. 1면의 첫 등장. 스타로 향하는 과정이 시작됐음을 세상에 알리는 메시지다. 'Messi's first day at MARCA' 82년 된 스페인 유력지 '마르카'가 최근 게재한 기사다. 지난 20년 동안 지면에 실린 기사를 분석한 뒤, 세계 최고의 스타가 된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를 마르카가 '처음으로' 소개한 날을 기념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51년의 역사를 가진 스포츠지 일간스포츠도 특별기획을 준비했다. 한국에서 등장한 '메시의 사례'를 소개한다. 2010년부터 2020년까지, 10년 동안 '생애 첫 1면'을 장식한 축구 스타 이야기다. 〈편집자 주〉 2013년 K리그1(1부리그)에는 한 명의 '왕'이 등장했다. 이름은 황선대원군. 그가 선보인 K리판 '쇄국정책'은 K리그 팬들을 뜨겁게 열광시켰다. 조선 말 쇄국정책을 펼쳤던 흥선대원군의 이름을 따온 황선대원군. 황선홍 포항 스틸러스 감독을 지칭하는 별명이다. 황 감독의 쇄국정책에는 안타까운 사연이 숨겨져 있다. 구단의 사정이 좋지 않아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 구단은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려면 국내 선수를 내보내라 했고, 황 감독은 자신의 제자들을 팔 수 없어 외국인 선수를 포기했다. 황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이 시작된 계기다. 2013시즌 K리그1에는 역대급 외국인 선수들이 즐비했다. FC 서울에는 '데몰리션'이라 불리는 데얀과 몰리나가 있었고, 전북 현대에는 최고의 날개 레오나르도가 존재했다. 울산 현대의 하피냐, 수원 삼성의 산토스 등 쟁쟁한 선수들이 최전방을 책임질 때, 포항은 유일하게 단 한 명의 외국인 선수도 없었다. 외국인 선수 0명으로 시작한 2013시즌.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외국인 선수들이 사라지자 외국인 선수에 의존하는 성향을 완전히 버리게 됐고, 국내 선수들의 경쟁력이 높아짐과 동시에 끈끈한 조화가 이루어지면서 포항은 최강의 팀으로 거듭났다. 국내 선수들이 만들어낸 환상적인 호흡. '스틸타카'로 발전하기에 이른다. '스틸타카'는 세계 축구를 평정했던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바르셀로나의 '티키타카'의 포항 버전이다. 포항이 시도한 짧은 패스에 의한 공격축구는 그동안 K리그에서 보지 못한, 신선하고도 강렬한 존재감을 과시했다. 2013시즌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포항은 강렬했다. 시즌 초 쇄국정책으로 7경기 연속 무패 행진(4승3무)을 달렸다. K리그1에서는 3승1무로 단독 1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에서는 1승2무를 기록했다. 외국인 공격수가 없지만 7경기에서 12골을 폭발시킨 포항이었다. 이런 놀라운 장면을 연출했던 시기, 2013년 4월 5일 일간스포츠가 황선대원군을 만났고, 이 만남은 1면으로 역사에 기록됐다. 가장 궁금한 점. 외국인 선수 한 명도 없이 잘나가는 비결이다. 이에 황 감독은 포항의 '든든한 허리'를 꼽았다. 그러면서 두 명의 미드필더 이름을 거론했다. '명신 듀오'라 불린 이명주와 신진호. 황선대원군을 보필한 두 '충신'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모시는 왕과 함께 1면에 얼굴을 올렸다. 외국인 없는 포항을 최강으로 만든 공이 컸다. 황 감독은 "기성용과 구자철에 비해 화려함이 떨어진다. 그러나 내실이 튼튼하다"고 자긍심을 드러냈다. 신진호에 대해서는 "골키퍼를 빼고 다 뛸 수 있다. 머리가 좋아 어디에 세워도 금방 적응한다"고, 이명주에 대해서는 "패스 축구는 자칫 속도가 느려지면 지루할 수 있다. 시야가 좋은 명주가 중앙에서 템포 조절을 한다. 긴 패스도 정확해 빠른 축구도 가능하다"며 두 충신을 극찬했다. 처음부터 충신은 아니었다. 황 감독은 "팀에 처음 왔을 때 두 선수 모두 쓸데없는 동작이 많았다. 대학시절 자신들 중심으로 팀이 돌아갔기 때문이다. 이 습관을 버리는데 꼬박 1년이 걸렸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시즌 초반 상승세. 황 감독은 안주하지 않았다. 그는 "아직 초반일 뿐이다. 축구를 잘 한다는 칭찬에 취해 모든 것을 다 얻었다 생각하는 순간 죽음"이라며 결연한 의지를 드러냈다. 허투루 내뱉은 말이 아니었다. 황 감독의 의지는 시즌 끝까지 이어졌고, 큰 결실을 일궈냈다. 그 중심에는 여전히 충신들이 있었다. 아쉽게도 신진호는 2013시즌을 다 채우지 못한 채 그해 여름 카타르 SC로 임대를 떠났다. 이명주는 끝까지 황선대원군에 충성했고,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포항의 '에이스'는 단연 이명주였다. 그는 7골4도움을 기록했고, 경기 MVP를 6회, 베스트 11에 8회 선정됐다. 신진호가 떠난 자리에는 다른 충신들이 줄을 섰다. 황진성·김승대·고무열·박성호·조찬호 등이 맹활약을 펼치자, 황선대원군의 권력은 더욱 공고해졌다. 절대권력을 자랑한 황선대원군은 결국 2013시즌 K리그1 우승컵을 손에 쥐었다. 포항은 최종전에서 울산 현대에 1-0으로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포항의 6년 만의 우승 그리고 포항의 마지막 우승이었다. K리그 역사에서 쇄국정책을 볼 수 있는 마지막 시즌이기도 했다. 최용재 기자 choi.yongjae@joins.com 관련기사 ①손흥민, '함부르크의 신'이라 불린 사나이 ②이승우, 최연소 A매치 데뷔 기록은 못 깼지만… ③이강인, 한국 역대 최고의 '왼발' 등장 ④이재성, 최강희와 슈틸리케의 '신데렐라' ⑤황의조, '인맥왕'에서 '갓의조'로 2020.03.3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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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첫 1면 at IS]④이재성, 최강희와 슈틸리케의 '신데렐라'

'스타'의 시작은 언론이다. 신문의 1면은 그 시대를 상징하는 스타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장소다. 1면의 첫 등장. 스타로 향하는 과정이 시작됐음을 세상에 알리는 메시지다. 'Messi's first day at MARCA' 82년 된 스페인 유력지 '마르카'가 최근 게재한 기사다. 지난 20년 동안 지면에 실린 기사를 분석한 뒤, 세계 최고의 스타가 된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를 마르카가 '처음으로' 소개한 날을 기념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51년의 역사를 가진 스포츠지 일간스포츠도 특별기획을 준비했다. 한국에서 등장한 '메시의 사례'를 소개한다. 2010년부터 2020년까지, 10년 동안 '생애 첫 1면'을 장식한 축구 스타 이야기다. 〈편집자 주〉 2014년 K리그1(1부리그) 전북 현대에 입단한 이재성. 그가 일간스포츠 1면에 등장할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재성은 '최강'이라 불리는 전북에서,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즐비한 전북에서 '신인'으로서 주전 자리를 꿰찼다. 놀라운 일이다. 이재성의 가치와 경쟁력은 이때 이미 입증된 것이나 다름없다. 당시 최강희 전북 감독의 절대신뢰 속에서 이재성은 데뷔와 함께 '신데렐라'로 급부상했다. 2014년 전북의 K리그1 우승에 일조한 이재성은 2015년 전북의 2연패 달성에 큰 역할을 했다. 그해 이재성은 영플레이어상을 수상했다. 이후 신인티를 완벽히 벗은 이재성은 명실공히 전북의 '에이스'로 도약했다. 이 역시 최 감독의 절대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현상이었다. 이재성은 2017년 에이스로 전북의 우승을 이끌었고, MVP까지 거머쥐었다. 앞선 4번의 전북 우승 당시 MVP는 '살아있는 전설' 이동국이었다. 이동국이 아닌 전북의 두 번째 MVP가 이재성이었다. 전북의 무게중심이 이재성으로 옮겨간 것이다. 또 이재성은 전북의 마지막 MVP다. 이재성은 2018년 여름 독일 2부리그 홀슈타인 킬로 이적했다. 이재성이 떠나자 전북에 MVP는 등장하지 못했다. 2018년과 2019년 전북이 우승을 했지만 MVP는 경남 FC의 말컹(2018년) 울산 현대의 김보경(2019년)에게 돌아갔다. 이재성은 K리그를 넘어 2016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우승컵도 들어올리며 아시아 무대마저 지배했다. 대표팀에서도 이재성은 '신데렐라'였다. 그는 U-23 대표팀으로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며 환호했다. 그리고 A대표팀에 이름을 올리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2015년 3월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이재성을 A대표팀에 포함시켰다. 2015년 3월 27일 우즈베키스탄과 친선전에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공격포인트는 없었지만 활발한 움직임으로 강렬한 모습을 남겼다. 4일 뒤 뉴질랜드와 친선전에서 A매치 데뷔골을 쏘아올렸고, 이 골은 결승골이 됐다. 한국이 1-0으로 승리했다. A매치 단 두 경기 만에 이재성은 슈틸리케 감독의 '신데렐라'로 급부상했다. 전북을 넘어 A대표팀에서도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낸 이재성. 2015년 4월 2일 일간스포츠가 이재성을 만나 단독인터뷰를 진행했다. 이재성은 "A대표팀은 막연한 꿈이라 생각했다. 현실로 다가오니 신기하고 시롭다. 꿈을 꾸고 있는 느낌이다. 행복하면서 얼떨떨하다"며 A매치 데뷔 소감을 밝혔다. 이재성은 청소년 때 한 번도 태극마크를 달지 못했다. 어릴 때 주목을 받지 못했다는 뜻이다. 이를 반전시킬 수 있었던 계기, 이재성은 최강희 감독의 이름을 꺼냈다. 이재성은 "부족했다. 발전하려고 늘 노력했다. 전북에 입단한 것이 계기였다. 기회를 준 전북과 최강희 감독께 감사하다"고 털어놨다. 이재성이 빠른 시일 내 A대표팀으로 갈 것이라 예상한 또 한 명의 스승이 있었다. 바로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은사였던 이광종 감독. 이재성은 "(이광종 감독님께서) 너는 조금만 더 하면 A대표팀에서 뛸 수 있다고 했다. 그런 말씀을 해주시니 국가대표가 코앞에 다가왔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마음을 표현했다. 첫 A매치에서 '친구'인 손흥민(토트넘)을 대표팀에서 처음으로 만났고, 처음으로 경기도 함께 뛰었다. 이재성은 "중등연맹 선발로 뽑혀 (손)흥민이를 한 번 본 적이 있다. 같이 뛰는 날이 올 줄은...아니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몰랐다. 또래가 딱 둘이라 흥민이가 많이 챙겨줬다. 덕분에 빨리 적응했다. 우즈베키스탄과 데뷔전에서도 흥민이가 많이 맞춰줬다. 친구랑 같이 뛰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슈틸리케의 '신데렐라'는 이후 A대표팀의 핵심 멤버로 나아갔다. 감독이 바뀌어도 이재성의 가치는 바뀌지 않았다. 자신을 뽑아준 슈틸리케 감독이 물러난 뒤에도 꾸준히 A대표팀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던 이유다. 2018 러시아월드컵도 경험하며 한 단계 더 성장했다. A대표팀에서 49경기에 출전했고 8골을 터뜨렸다. 지금 우리는 A대표팀에 이재성이 포함되지 않으면 어색한 시대에 살고 있다. 최용재 기자 choi.yongjae@joins.com 관련기사 ①손흥민, '함부르크의 신'이라 불린 사나이 ②이승우, 최연소 A매치 데뷔 기록은 못 깼지만… ③이강인, 한국 역대 최고의 '왼발' 등장 2020.03.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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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보스토리]전북현대 최강희 감독, 13년간 211승 K리그 최다승 경신

오늘까지만 행복하겠다.내가 세운 기록이지만 나 혼자 잘해서 된 건 아니다, 구단이 믿어줬고, 지금 선수들, 또 전북을 거쳐 간 선수들이 다 함께 만든 기록이다."최강희 감독(59).전북 현대 지휘봉을 처음으로 잡은 2005년 여름, 그해 8월 24일 포항 스틸러스 원정경기서 0:2 패배로 사령탑 데뷔전 쓸쓸하게 시작.이어진 성남 일화전 1:5 패배, 그 다음 인천 유나이티드에도 1:5패배. 부임한 뒤 3연패 빠져.데뷔 첫 승 경기는 2005년 9월 25일 FC 서울 전 2:1 승리.그 감격적인 첫 승으로부터 4596일이 지난 2018년 4월 25일 강원FC 전 2:0 승리로 지도자 생활 211번째 승리, K리그 역대 감독 최다승 기록 세워.통산 416경기 만에 211승(107무 98패)을 달성.만 59세 13일 만에 211승 고지 돌파.종전 기록 보유자인 김정남(75)감독이 만 65세 9개월 29일 만에 세운 210승을 크게 앞 당겨.역대 최연소·최단기간·최다승 기록을 모두 갈아 치워.전북 단일팀에서 이뤄낸 성적.선수들 영입을 위해 서울에 가서 이야기를 하면 "전북에 왜 가요?" 그러던 시절이 있었다. 2009년, 2011년 리그에서 우승하면서 리그에서 우승할 수 있는 팀이다는 학신이 생겼다. 비로소 선수들이 그때부터 전북에 오려고 했다.""이제 '전북 왜 가나?'를 듣는 수모는 더이상 없다."최감독은 전북은 그의 '일터'가 아니라 '내팀' '내 자식' 이 됐다. "욕 먹어도 내가 여기 앉아서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날 보고 또 내가 데려 온 선수들, 힘들 때마다 나를 지지해준 팬들을 두고 나만 도망가 버리면 안 된다고 생각 했다."이동국은 최감독이 211승 기록을 쓴 다음 "이제 내가 감독님께 드릴 수 있는 승리는 다 드린 것 같다. 앞으로 감독님의 250승, 300승은 이재성(26)이나 김민재(22)등 다른 후배들이 돕길 바란다"고. 그래서 최 감독은 "51세까지 뛰면서 300승 도와줄 거 아니면 그러 소리 하지 말라"고 일침. 이동국의 말은 곧 최감독을 향한 '신뢰' 그 자체. '봉동이장'이 지키고 있는 전북은 앞으로도 더욱 강해질 것이란 '믿음' 말이다.전북이 이렇게 올라온 만큼 K리그를 선도하는 구단으로 계속 이어나가는 소원이 있다. 내가 좋은 팀을 만들어서 미래에 누군가에게 넘겨줄 거고, 그 사람이 전북이라는 브랜드를 계속 지켜 나갈 수 있도록 만드는게 나의 또다른 꿈이다.""나는 전북을 지키면 안되는 겁니까?"양광삼 기자yang.gwangsam@jtbc.co.kr/2018.05.05/ 2018.05.0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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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셜] 전북, '도움왕' 손준호 영입…"내가 정말 오고 싶었던 팀"

"내가 정말 오고 싶었던 팀이다."2017시즌 K리그 클래식 '도움왕' 손준호(25)가 전북 현대 모터스 축구단(단장 백승권) 유니폼을 입었다. 전북은 7일 "포항 스틸러스에서 손준호를 영입, 이재성과 함께 K리그 최강의 미드필드진을 완성하며 중원의 견고함을 갖췄다"고 밝혔다. 지난 시즌 K리그 클래식에서 14도움을 기록하며 도움왕을 차지한 손준호는 2014년 프로 입단 이후 통산 99경기에 출전해 14골 20도움을 기록한 K리그 최고의 미드필더다. 특히 데뷔 첫해 25경기에 출전하며 강력한 인상을 남겨 그해 인천아시안게임에 선발돼 이재성과 함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전북은 ‘도움왕’ 손준호와 ‘K리그 MVP’ 이재성의 환상적인 미드필더 라인을 구축함으로써 2018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와 K리그 우승을 위한 조직력을 갖추게 됐다. 손준호는 “내가 정말 오고 싶었던 팀이었다. 최강희 감독님께도 전화통화로 전북입단을 희망한다고 했다"며 "입단 과정에서 제 의사와 관계없이 모 구단 입단설이 나돌면서 물의를 빚은데 대해 팬들께 정말 죄송하다. 그라운드에서 진면목을 보여 드리겠다”고 입단 소감을 밝혔다. 최강희 감독은 “모든 공격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손준호의 영입으로 더욱 강한 중원을 구축할 수 있게 됐다”며 “동계훈련을 통해 손준호가 갖고 있는 강점을 최대한으로 끌어 올리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손준호의 계약 기간은 4년이며, 세부사항은 상호 협의에 의해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김희선 기자 kim.heeseon@joins.com 2018.01.07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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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연속' FW MVP 조나탄? '9년 만에' MF MVP 탈환 이재성?

K리그는 '35번째 MVP'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일간스포츠 올 시즌 우승팀과 순위가 모두 정해졌지만 K리그는 끝나지 않았다. 마지막 '수상' 전쟁이 남아 있다. 20일 오후 2시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그랜드힐튼 호텔에서 'KEB하나은행 K리그 2017 대상 시상식'이 열린다. 시상식의 꽃은 'MVP'다. 1983년에 출범한 K리그는 지난 시즌까지 총 34명의 MVP를 배출했다. MVP는 그해 K리그의 '아이콘'이었다. MVP들은 K리그 슈퍼스타로 위용을 누렸다. 34년 동안 MVP는 어떤 선수가 수상했고, 어떤 활약을 했는지 K리그 MVP에 대한 모든 것을 알아본다. 공격수 16회 수상MVP를 가장 많이 품은 포지션은 공격수였다.1983년부터 초반 5년까지는 미드필더가 MVP를 독식했다. 초대 MVP 박성화를 비롯해 박창선·한문배·이흥실·정해원까지 모두 포지션은 미드필더였다. 1988년 박경훈이 수비수로서 처음 MVP 영광을 품었다. 공격수로는 1989년 노수진이 가장 먼저 MVP에 등극했다. 2000년 후반기엔 공격수 전성시대였다. 2009년 이동국이 MVP를 수상한 뒤 2016년 정조국까지 8년 연속 공격수들이 다른 포지션에 MVP를 양보하지 않았다. 공격수가 총 16번 MVP에 올랐고, 미드필더는 13번 수상했다. 수비수는 4명이다. 골키퍼로서는 2008년 이운재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MVP를 차지했다. 우승팀 MVP 배출 30번K리그 우승팀에서 K리그 MVP가 탄생한다는 것은 공식이었다. 34시즌 동안 30번 우승팀에서 MVP가 등장했다.1983년을 시작으로 16시즌이 지난 1998년까지 MVP는 100% 우승팀에서 나왔다. 1999년에 이 공식이 깨졌다. 주인공은 '테리우스' 안정환. 그해 대우 로얄즈는 수원 삼성에 밀려 준우승에 그쳤지만 화려한 외모와 폭발적인 골결정력으로 K리그를 지배했던 안정환에게 MVP가 돌아갔다. 안정환은 K리그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안정환이 최초로 공식을 깬 뒤 3번의 예외가 더 나왔다. 2010년에 준우승팀 제주 유나이티드 공격수 김은중이 MVP를 수상했다. 2013년에도 우승팀은 포항 스틸러스였지만 MVP는 준우승팀 울산 현대 김신욱의 품에 안겼다. 2016년에는 우승팀과 준우승팀이 아닌 팀에서 최초의 MVP가 탄생했다. 광주 FC는 리그 8위에 그쳤다. 하지만 MVP는 득점왕 정조국을 외면하지 않았다. 성남 일화, 7회로 최다 배출가장 많은 MVP를 배출한 팀은 어디일까.역시나 K리그에서 가장 많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성남 일화(현 성남 FC)다. 성남은 K리그 7회 우승으로 최다 우승 클럽으로 기록돼 있다. 우승한 횟수만큼 MVP도 7번 탄생시켰다. 1993년 이상윤을 시작으로 1994년 고정운, 1995년 신태용이 MVP를 수상했다. 2001년 신태용이 K리그 사상 첫 2회 MVP를 거머쥐었다. 이어 2002년 김대의, 2003년 김도훈이 MVP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2006년 성남의 마지막 우승 MVP는 김두현이었다. 최다 배출 성남 일화의 마지막 MVP 김두현.연합뉴스성남에 이어 부산 아이파크가 5번, 서울과 포항 그리고 전북 현대가 각각 4번의 MVP를 배출했다. 전북은 4번의 MVP를 모두 이동국이 차지했다. 이동국은 K리그 개인 최다 MVP 수상자다. 외인 MVP 3번외인들이 K리그 MVP를 수상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였다.수많은 외국인 선수들이 K리그에 도전했지만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이는 단 3명에 불과했다. 최초의 외인 MVP는 2004년 수원을 우승으로 이끈 나드손(브라질)이었다. 이어 2007년 포항 스틸러스를 정상에 올려놓은 따바레즈(브라질)가 수상했다. 브라질이 아닌 유럽 선수 최초로 MVP에 오른 이는 2012년 FC 서울의 전설적 공격수인 데얀(몬테네그로)이었다. 득점왕 MVP는 4번유독 K리그 득점왕은 MVP와 크게 연이 닿지 않았다. K리그 득점왕이 MVP에 오른 경우는 4차례에 그쳤다.'폭격기' 김도훈이 2003년에 최초로 득점왕과 MVP를 동시에 석권했다. '라이언킹' 이동국이 2009년 두 번째로 득점왕 MVP에 등극했다. 2012년 데얀에 이어 2016년 정조국이 선배들의 역사를 계승했다. 미드필더 이재성 VS 공격수 조나탄올 시즌 MVP는 '이파전'이다.전북을 우승으로 이끈 미드필더 이재성과 득점왕 수원의 조나탄이다. 두 선수의 대결은 미드필더와 공격수의 자존심 대결이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이재성이 8년 연속 이어진 공격수 MVP의 흐름을 끊을 것인가. 아니면 조나탄이 9년 연속 공격수 MVP로 등극할 것인가. K리그팬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리그 우승만큼이나 치열하다.두 선수 모두 MVP를 향한 강한 열망을 드러냈다. 이재성은 "MVP를 수상하게 된다면 가문의 영광이다. 받고 싶다"고 의지를 다졌다. 조나탄은 "MVP 생각만 해도 기쁘다. 솔직히 말하면 MVP 욕심도 있다. 다른 후보도 훌륭하지만 나 역시 최선을 다했다"며 열망을 숨기지 않았다. 최용재 기자 2017.11.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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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성 인터뷰]K리그는 '이재성 시대'에 살고 있다

"현재 K리그 최고의 선수는 이재성이다."최근 일간스포츠와 인터뷰에서 'K리그에 복귀하니 가장 눈에 띄는 선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FC 서울 이명주(27)가 내놓은 답변이다.이명주는 2014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알 아인으로 떠나기 전 K리그 No.1 선수였다. 3년 만에 돌아온 뒤 K리그를 바라보자 그의 눈에는 전북 현대 미드필더 이재성(25)이 최고의 선수로 성장해 있었다.그는 "(이)재성이를 보면 모든 것을 갖춘 선수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기도 좋고 센스도 있는데 열심히 뛰기까지 한다. 게다가 수비력도 좋다"며 "전북에서도, 대표팀에서도 좋은 경기력을 보여 주고 있다"고 극찬했다. 이재성을 최고로 꼽는 이는 이명주뿐이 아니다. 올해 초 K리그 르네상스를 이끈 트로이카 릴레이 인터뷰 중 '트로이카 후배 한 명을 꼽는다면'이라는 질문에 안정환(41·MBC 해설위원)도 이재성을 선택했다. 이동국(38·전북) 역시 이재성 이름을 불렀다.이외에도 많은 축구전문가들이 현존하는 K리그 최고의 선수로 이재성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K리그에 '이재성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이런 평가에 이재성은 고개를 저었다. 지난 23일 FC 서울과 K리그 클래식(1부리그) 23라운드를 마친 뒤 일간스포츠와 인터뷰를 가진 이재성은 "아직 많이 부족하다. 스스로 만족할 수 없다. 나의 장점을 더 살려야 한다. 그런 평가는 더 열심히 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스스로를 낮췄다.이재성 스스로는 부정(?)하고 있지만 그가 K리그 최고의 선수라 불릴 만한 이유가 있다. ◇ '닥치고 주전'이다이재성은 2014년 전북에 입단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재성이 입단할 당시에도 전북은 K리그 최강의 팀이었다.파릇한 신입생이 정상의 팀으로 오면 뛸 자리가 없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기라성 같은 선배들의 백업 요원 역할도 영광적인 시기다.그런데 이재성은 달랐다. 데뷔 첫해부터, 최강 전북이라는 팀에서 '닥치고 주전'이었다. 이재성은 전북에 완벽히 녹아들었고, 전북은 그해 우승을 차지했다. 프로 1년 차가 우승팀에서 주전으로 뛰었다는 것 자체로도 이재성의 경쟁력을 가늠할 수 있다.올해 이재성은 전북 4년 차다. 전북 선수들 대부분이 대표급 선수들이라 전북 내부에서는 치열한 주전 경쟁이 펼쳐진다. '전설' 이동국 역시 출전 기회를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이재성은 여전히 '닥치고 주전'이다. 전북에서 가장 많은 경기와 시간을 뛰는 선수가 바로 이재성이다.그는 전북의 '에이스'가 됐다. 이재성이 올 시즌 기록하고 있는 공격포인트는 4골 4도움. 언제나 그랬듯 그는 화려한 공격포인트를 올리는 선수가 아니다. 빠른 공격과 밀집 공간 돌파, 중원 조율과 연계 그리고 수비 차단과 역습 등 이재성은 전북의 공격과 수비에서 핵심적 역할을 해내고 있다.공격포인트 숫자로 그를 평가할 수 없는 이유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가장 많이 뛰며 팀 승리에 공헌한다.그는 전북의 '심장'이다.이재성 심장에도 '전북의 자긍심'이 가득 차 있다. 그는 "전북 선수라는 책임감을 가지고 경기에 임하고 있다. 체력적으로 힘들지만 이겨 낼 것"이라며 "모범적으로 더 열심히 해야 한다. 전북 동료들에게 더 인정받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마지막으로 이재성의 가치를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기복이 없다'는 점이다."이재성은 매 경기 풀타임 출전하고 있어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 것이다. 본인이 내색하지 않으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헌신해 주고 있다. 항상 고마운 선수다. 일정 수준 이상의 경기력을 갖춘 선수들은 그 경기력을 항상 유지해야 더 좋은 선수로 갈 수 있다. 이재성이 그런 선수다."최강희(58) 전북 감독이 바라본 이재성의 모습이다. ◇ K리그 무대는 좁다"K리그 무대는 좁다."이재성에게 늘 따라붙는 말이다. 그에게 더 넓은 무대가 거부할 수 없는 운명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재성은 항상 꿈의 무대 '유럽 진출'을 바라고 있다. 유럽으로 갈 수 있는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과거 몇몇 유럽 클럽의 제의를 받았고, 현재도 오퍼는 끊이지 않고 있다. K리그 최고 선수를 향한 유럽의 관심은 뜨겁다.전북 한 관계자는 "유럽에서 이재성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보인다. 제의도 들어온다. 이재성에게 적합한 팀을 찾는 중"이라며 "조건이 맞고 이재성이 원한다면 유럽으로 보내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이재성은 K리거 출신으로 유럽 땅을 밟아 성공한 기성용(28·스완지 시티)과 이청용(29·크리스탈 팰리스)의 계보를 이을 수 있는 적임자다. 그동안 K리그에서 정상을 찍지 못한 채 어설프게 유럽으로 건너가 실패한 사례를 너무나 많이 봤다. 이재성은 K리그에서 경쟁력을 쌓으며 이런 시행착오를 피했다. K리그에서 확실한 검증을 받았다. 그렇기에 최고의 자리에서 당당히 유럽으로 뻗어 나갈 수 있는 시간이 찾아오는 것이다.유럽에서 이재성의 성공은 곧 K리그 위상을 높이는 일이다.이재성은 "많은 선수들이 유럽에 진출해서 K리그와 한국 축구의 위상을 높이고자 한다. 나 역시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유럽에 도전하고 싶다"며 "유럽 진출 꿈을 꾼다. 그리고 항상 준비하고 있다"고 의지를 드러냈다.대표팀에서도 할 일이 많다.이재성은 이변이 없는 한 신태용(47) 신임 대표팀 감독의 선택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감독의 성향과 철학과 상관없이 이재성은 모든 감독들이 좋아하는 선수이기 때문이다. 빼어난 실력에 투지까지 갖췄다. 전임 울리 슈틸리케(63) 감독도 K리거를 전체적으로 외면하면서도 이재성은 꼭 선발했다. 위기의 대표팀에 이재성이 큰 힘을 더해야 할 때다.이재성은 태극마크를 기다리고 있다.그는 "대표팀 명단이 발표되기 전까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나는 발표 때까지 대표팀에 갈 수 있는 준비를 할 것이다. 항상 최고의 상태로 경기에 나갈 수 있는 모습을 유지해야 한다"며 "대표팀이 중요한 시기에 있다. 많은 준비를 해서 대표팀에 꼭 도움이 되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최용재 기자 choi.yongjae@joins.com 2017.07.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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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은, 무릎 연골 수술 딛고 홍명보와 재회

성남 일화의 중앙 수비수 임종은(22 ·192cm)은 겉보기엔 아이돌그룹처럼 매끈하게 생겼지만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2007년 한국에서 열린 17세 이하(U-17) 월드컵에서 주전 수비수로 활약한 그는 2009년 울산 현대에 입단하자마자 19경기에 출전해 대형 수비수 탄생을 예고했다. 하지만 그는 그해 11월 왼쪽 무릎 연골 이식 수술을 기점으로 완전히 잊혀졌다. 재활이 더뎌 2년간 커리어가 공란으로 남았다. 곽태휘, 이재성, 강민수 등 호화 센터백을 보유한 울산은 임종은의 미래가 어둡다고 판단해 올초 성남으로 이적시켰다. 임종은의 이적료는 비슷한 시기에 경남FC에서 성남으로 이적한 윤빛가람의 1/10 수준에 불과했다. 절치부심한 임종은은 사샤와 황재원의 부상 공백으로 인해 찾아온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홍콩 구정컵을 통해 주전으로 발돋움했다. 상주전 절묘한 크로스로 데뷔 후 첫 공격포인트, 강원전 코피 투혼, 제주전 헤딩 동점골 등으로 이름 석 자를 알렸다. K-리그 12경기에 나서 주간 베스트11에 두 차례 선정됐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16강행도 이끌었다. U-17 월드컵 당시 스승인 박경훈 제주 감독은 "종은이 키가 195cm까지 큰 것 같다. 높이 만큼이나 전진 패스도 정말 좋아졌다. 김호곤 울산 감독님이 종은이를 왜 성남에 보내셨는지 의아하다"고 극찬했다. 신태용 성남 감독은 "종은이는 200%로 잘해주고 있다. 뽀뽀해주고 싶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임종은은 여세를 몰아 22일 발표된 시리아전에 나설 올림픽대표팀 19명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2009년 U-20 월드컵 이후 근 2년 만에 홍명보 올림픽대표팀 감독과 재회하게 됐다. 임종은의 런던행은 희망적이다. 재활 중인 주전 센터백 홍정호(제주)가 복귀하더라도 중앙 수비 대체 자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음달 1일 파주NFC에 소집되는 임종은은 "또 다른 시작이자 마지막 기회다"고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박린 기자rpark7@joongang.co.kr 2012.05.23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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