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허재혁의 B트레이닝] 투수에겐 치명적인, 회전근개 부상의 모든 것
'로켓맨' 로저 클레멘스는 현역 시절 대기록을 남겼다. 24년 동안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며 354승, 4672탈삼진을 기록했다. 무엇보다 한 번 받기도 힘든 사이영상을 7회나 수상했다. 비록 경기력 향상을 위한 스테로이드 복용 의혹으로 명예의 전당에 못 들어갔지만, 신인 시절 치명적인 어깨 수술을 받고도 20년 넘게 빅리그에서 활약한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클레멘스는 1984년 21살의 나이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하지만 이듬해 팔을 들어 올리지 못할 정도의 극심한 통증으로 어깨 수술을 받았다. 원인은 바로 회전근개라는 어깨 힘줄 파열이었다. 지금처럼 스포츠 의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35년 전에는 투수에게 어깨 수술을 일종의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클레멘스는 어깨 수술 후에도 20년 넘게 메이저리그에서 장수했다. 그의 커리어를 위험에 몰고 갔던 회전근개 파열은 무엇일까.어깨는 우리 신체 중 유일하게 360도 회전이 되는 관절로 가장 운동 범위가 넓다. 하지만 불안정성 또한 매우 높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툭 떨어지는 티 위에 올려진 골프공처럼 말이다. 이렇게 불안정한 관절을 힘줄, 인대, 근육 등이 아슬아슬하게 잡아주고 있다. 회전근개라고 불리는 네 개의 근육들은 어깨 관절의 안정성을 유지하고 회전 동작을 담당한다. 이 중 하나 또는 그 이상이 파열되는 것을 '회전근개 파열'이라고 한다.회전근개 파열은 야구나 테니스 등 팔을 반복적으로 머리 위로 올리는 오버헤드 종목에서 흔히 발생한다. 손상의 크기에 따라 1단계 소파열, 2단계 중파열, 3단계 대파열, 4단계 광범위 파열로 구분한다. 대체로 회전근개 파열은 초기에 부분 파열로 시작돼 점점 손상이 진행되므로 어깨 통증이 있고, 팔을 들어 올리는 것이 불편하다면 반드시 정밀검사를 받아봐야 한다. 치료하지 않으면 수술을 받아야 할 정도로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투수가 겪을 수 있는 가장 치명적인 부상을 뽑으라면 단연 회전근개 파열이다. 미국 스포츠 의학의 대가 제임스 앤드류 박사 연구에 의하면 회전근개 완전 파열로 수술받은 12명의 프로 투수 중 단 1명 만이 어깨 기능 저하 없이 필드로 복귀했다. 또 다른 연구에 의하면 회전근개 부분 파열로 수술받은 82명의 프로 투수 대부분이 필드로 복귀했지만, 수술 전의 경기력을 되찾은 선수는 50% 미만이었다고 한다. 왜 많은 투수가 회전근개 파열 수술 후 경기력이 떨어지는 걸까. 스테판 그리즐로 시카고 컵스 팀 닥터는 "수술 후 어깨 관절의 유연성은 평균적으로 10~15% 떨어진다. 이는 일반인에게는 아무런 지장이 없지만, 공을 던져야 하는 투수에게는 매우 치명적이다. 유연성 저하로 인해 구속도 떨어지고 제구력 또한 나빠지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회전근개 부상 예방을 위해 다음 세 가지를 권유했다. 첫 번째는 올바른 투구폼으로 공을 던지는 것, 두 번째는 꾸준히 어깨 보강 운동을 하는 것 그리고 세 번째는 어깨 통증이나 피로감이 있다면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었다. 이 세 가지 중에 가장 중요한 건 휴식이다.회전근개 파열은 과사용으로 발생하는 투수의 대표적인 부상이다. 그래서 투구 수 제한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많이 던질수록 회전근개 파열의 위험성 또한 높아지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 피칭 가이드라인을 살펴보면 15세 투수의 경우 1일 최대 투구 수는 95개이다. 31~45개를 던지면 1일 휴식, 46~60개를 던지면 2일 휴식, 61~75개를 던지면 3일 휴식, 76개 이상을 던지면 4일 휴식을 권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선 이와 같은 피칭 가이드라인이 지켜지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투구 수에 따른 휴식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투수의 부상 확률은 치솟을 수밖에 없다. 회전근개 파열은 투수의 커리어를 끝낼 정도로 치명적이다. 과거 지도자들의 비체계적인 훈련 방법과 투수 운영법으로 얼마나 많은 유망주가 부상으로 사라지지 않았는가. 정말 안타까운 현실이다.부상이 온 후 재활과 수술로 대처하기보다는 예방하는 것이 최고의 치료 방법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도자들의 정상적이고 올바른 훈련 방법 그리고 투수 운영법이 최우선으로 자리 잡아야 할 것이다. 이제는 수술 후 재활하는 유망주보다 1군 마운드 위에서 삼진 잡고 포효하는 유망주를 보고 싶다. 허재혁 시카고 컵스 마이너리그 트레이너정리=배중현 기자
2019.09.24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