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비야, 스페인 최고 골잡이, 한국 청춘에 고하다
"제 이야기가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힘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주 인천 검암동의 한 축구장. 스페인 축구 스타 다비드 비야(35·뉴욕 시티)는 악수를 건네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유럽 축구계에서도 붙임성 좋기로 소문난 스페인 선수들과 달리 비야는 날카로운 인상이었다. 그는 "한국은 첫 방문인데, 생각했던 것보다 더 쌀쌀한 것 같다"며 "다행히 점심 때 맛있는 불고기를 먹어 얼었던 몸이 좀 녹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올해 미프로축구(MLS) 최우수선수상에 오른 골잡이다운 신중한 표정이었다.비야는 스페인 축구대표팀 역사상 가장 뛰어난 골잡이다. 2008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2008)와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 주전 공격수로 활약하며 두 대회 모두 우승으로 이끌었다. '무적함대(스페인 애칭)'의 황금기는 그의 발에서 나왔다. 유로2008 득점왕(4골)을 올랐고 남아공월드컵에선 '실버슈(득점 2위·5골)'를 차지했다. 스페인 대표팀 역사상 가장 많은 A매치 59골을 터뜨려 스페인의 전설적인 스트라이커 라울 곤잘레스(39·은퇴)를 2위로 밀어내기도 했다. 프로 경력도 화려하다. 발렌시아, 바르셀로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등 스페인 명문팀을 거친 그는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2011년) 1회,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3회(2011·2013·2014년) 등 무려 13개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화려한 이력 뒤엔 피나는 노력이 있다. 스페인 북부 작은 마을 투이야의 광부 아들로 태어난 비야는 넉넉지 않은 유년 시절을 보냈다. 제대로 먹지 못해 몸집도 작았다. 친구들 사이에선 '엘 구아예(el guaye·스페인어로 작은 아이)'로 통했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큰 소리 칠 때가 있었다. 축구경기였다. 또래에 비해 재능이 뛰어났던 비야는 늘 머리 하나는 더 큰 '동네 형'들과 공을 차며 프로 데뷔 꿈을 키웠다.비야는 9세 때 축구 경기 도중 오른쪽 다리가 부러졌다. 부상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4시간 넘는 수술을 받았지만 의사로부터 선수 생활을 이어가기 어려울 것이란 진단을 받았다.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저와 부모님 생각은 의사와 달랐습니다. 오른발을 못 쓰는 대신 아버지와 왼발로 볼을 정확하게 차는 연습을 했죠. 지루하고 고통스런 시간이었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왼발을 단련했습니다."자신을 최고 공격수로 만들어준 무기는 이때 얻었다. 부상에서 회복한뒤 왼발과 오른발을 자유자재로 쓰게 됐다. 한국과 달리 유럽에선 양발잡이 선수를 보기 드물다. 어느 방향에서도 날카로운 슛을 뿌리게 된 비야는 인근 명문 클럽들의 러브콜을 받으며 탄탄대로를 걷기 시작했다. 새로운 별명이 붙은 것도 이때부터다. 꼬마로 불리던 그는 자신의 이름과 비슷한 '마라비야(maravilla·스페인어로 기적)'이란 새 애칭을 얻었다. "키가 작을 수도 있고 돈이 조금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죠. 얼마나 노력하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도전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 같은 꼬마도 해냈잖아요." 비야는 처음으로 엷은 미소를 보였다.2010년 5월 비야는 꿈을 이뤘다. 4000만 유로(약 500억원)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스페인 최고의 팀 바르셀로나에 입단했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번엔 정강이 골절(2011년 12월)로 쓰러졌다. 이듬해 열린 유로 2012에도 참가하지 못했다. 그래도 낙담하지 않았다. "유로 2012 최종 엔트리 구성 일주일을 앞두고 스페인축구협회로부터 대표팀 합류가 가능한 지 연락이 왔어요. 눈 딱 감고 출전하겠다고 할 수도 있었죠. 하지만 저는 편법으로 뽑히고 싶진 않았습니다. '아직 준비가 덜 됐다'고 했죠. 시간이 좀 걸려도 다시 재기할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었거든요." 그 후 재활에 매진해 8개월 뒤 화려하게 부활했다. 비야의 축구 인생에서 가장 아쉬운 순간은 2014 브라질월드컵이다. 어느덧 베테랑이 돼 스페인을 이끌고 우승을 노렸지만, 예상 밖 연패를 당해 16강 진출이 무산됐다. 비야는 호주와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골을 넣은 뒤 유니폼을 움켜 쥐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이 모습이 알제리전에서 아쉬움의 눈물을 삼킨 축구대표팀 골잡이 손흥민(24·토트넘)과 닮아 국내 팬들에게도 알려졌다. "노력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입니다. 아마 손흥민도 저와 같은 심정이었을 거예요." 비야는 이렇게 설명했다.이번에 방한한 이유는 한국의 축구 유망주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자신의 이름과 등번호를 따 만든 축구아카데미 'DV7(David Villa 7) 코리아' 발대식을 가졌다. 그는 한국 유망주들의 세계무대 진출을 돕고 해외 유명 선수를 초청하는 등 축구 꿈나무 육성에 힘쓸 예정이다.비야에게 한국 청춘들에게 전할 한마디를 부탁했다. "저는 불운을 행운으로 바꾸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왔습니다. 그리고 도전을 멈추지 않았죠. 평생을 스페인서 뛰다 MLS의 문을 두드린 이유죠. 여러분도 할 수 있습니다. 코리아 힘내세요!" 그는 활짝 웃었다.인천=피주영 기자
2016.12.16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