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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od와 오티스, '같은 약물 다른 결말'

' 에이로드(A-ROD)' 알렉스 로드리게스(뉴욕 양키스·41)가 은퇴를 발표했다. 그가 바라던 명예로운 마지막은 아니었다. 젊은 선수 위주로 팀을 바꾸려는 양키스는 최근 그에게 출장 기회를 주지 않았다. 심리적으로 벼랑에 몰렸고, 구단주가 직접 은퇴를 제안했다. 등 떠밀린 퇴장이었다. 에이로드는 19세 나이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공·수·주 모든 면에서 만능인 '5툴 플레이어(타격의 정확성·타격의 파워·안정된 수비·정확한 송구·빠른 주루 능력을 고루 갖춘 선수)'였고, 여기에 수려한 외모까지 겸비한 당대 최고의 선수였다. 그는 가장 비싼 몸값의 선수가 됐고, 스스로 그 기록을 깨기도 했다. 그러나 두 번의 금지 약물 파동이 그의 운명을 송두리째 뒤바꿔 놓았다. 신화 속 주인공에서 모두가 경멸하길 주저치 않는 악역이 됐다. 에이로드의 은퇴에서 자연스레 떠오르는 이가 있다. 양키스의 라이벌 팀, 보스턴 레드삭스의 데이빗 오티스다. 오티스 역시 금지 약물 복용으로 물의를 빚었다. 그러나 대우는 에이로드와 천지 차이다. 오티스는 지난해 11월, 2016년을 끝으로 은퇴한다고 밝혔다. 본인은 '은퇴 투어'나 대접을 바라지 않는다고 했지만, 가는 곳마다 '전설'의 마지막을 환대하는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반대로 에이로드의 은퇴는 초라하고 씁쓸한 기운으로 물들어 있다. 은퇴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장에서, 할 말을 마치고 퇴장하는 로드리게스에게 박수를 보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보스턴은 양키스와 견원지간이지만, 과거 양키스의 전설 마리아노 리베라와 데릭 지터의 은퇴를 축하해 준 적이 있다. 에이로드에겐 그런 특별한 자리가 마련되지 않았다. 똑같이 금단의 영역에 손을 댄 둘. 하지만 한 명은 수많은 사람에게 인정받는 영웅, 다른 한 명은 모두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안티 히어로가 됐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두 선수 모두 실력에서는 비할 데가 없는 최고의 선수들이다. 에이로드는 현역 선수 누적 홈런 1위, 오티스는 3위에 올라 있다. 굳이 비교하자면 에이로드가 오티스보다 빼어난 업적을 남겼다. 처음 출발선부터 남달랐다. 에이로드는 만 19세에 메이저리그 땅을 밟았다. 역대 세 번째로 40홈런 40도루를 달성했고, 유격수로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50홈런 고지를 돌파했다. 통산 홈런 순위는 베이브 루스의 뒤를 잇는 역대 4위다. 승리 기여도(WAR) 순위는 타자 중 역대 13위에 올라 있다. 숫자로는 역사에 길이 남을 선수다. 결국, 오티스와 에이로드의 처지를 가른 것은 야구도 기록도 아니었다. 잘못도 같이 했다. 흔히 에이로드는 뻔뻔하고 수치를 모르는 악한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지금껏 그의 행동과 처사에서는 이유 모를 부족함과 어설픔이 묻어 나왔다. 오히려 뻔뻔함이 묻어 나오는 쪽은 오티스였다. 오티스는 최근까지도 "왜 금지 약물이 검출됐는지 지금도 모르겠다"는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에이로드는 두 번째 약물 복용으로 거짓말쟁이가 됐다. 그렇지만 그는 뻔뻔하게 성공하지는 못했다. 모든 걸 잘 하려고 했고, 그럴 능력이 있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는 스스로 무너졌고 자기애에 빠졌다는 비판을 받았다. 성공하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지만, 결국 돈만 많이 번, 그의 말대로 야구선수가 아닌 '노동자'이자 실패자로 낙인 찍혔다. 오티스의 생애는 다른 색채를 띠고 있다. 약물에 대한 변명, 과시적인 홈런 세리머니는 다른 팀 팬들이 오티스를 '뻔뻔한 놈' 으로 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분명 그는 다른 팀 팬들에게 '밉상' 으로 불릴 때가 많다. 그러나 같은 편일 때 그 만큼 든든한 동료도 없다. 팀이 비난받을 때 가장 앞장서는 선수가 오티스였다. 또한 보스턴에서 세 번의 월드시리즈 우승에 모두 관여했다. 세 번째 우승을 차지한 2013년에는 보스턴 마라톤 테러가 있었다. 오티스는 경기에 앞서 격한 표현이 섞인 연설로 상처받은 시민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었다. 그는 클럽하우스의 리더이자 보스턴 시민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프랜차이즈 스타가 됐다. 올해 오티스는 원정 경기를 갈 때마다 상대팀 선수들과 기념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다. 그는 분명 10여 년 전 금지 약물 복용으로 동료 선수들의 등에 칼을 꽂았다. 그러나 그 뒤로 10여 년 동안 보인 꾸준함, 노력과 쌓아온 명성이 지금의 추앙받는 그를 만들었다. 에이로드는 위대한 '운동 선수' 였지만 동료와 어울리지 못하는 외톨이, 두 번이나 거짓말을 한 '밉상'이었다. 오티스 역시 거짓말을 했고 이따금 속 좁은 모습을 보였지만, 뛰어난 친화력과 앞장서는 리더십으로 다른 이들의 존중을 샀다. 개인 기록과 팀 우승, 꾸준함, 실력 등에서 모두 모범적이었다. 그러나 '사람'이 달랐고, 그것이 두 사람의 결정적인 차이였다. 두 선수에 대한 인식 차이는 금지 약물을 바라보는 뒤섞인 시선을 대변한다. 오티스가 미국 야구계에서 '착한 약물, 나쁜 약물'이라는 이중 잣대를 들이민다며 비판하는 이도 적지 않다. 타당한 비판이다. 또 한편으로, 둘의 다른 결말은 스포츠가 단순히 숫자만이 남는 냉철한 세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우는 예시이기도 하다. 둘이 만약 비디오게임 속 캐릭터였다면 에이로드는 오티스보다 환영받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포츠는 꿈이 아닌 현실 세계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기록이나 숫자가 아닌 사람이다. 박기태( 비즈볼프로젝트) 지속적인 스포츠 콘텐트 생산을 목표로 하는 젊은 스포츠 연구자들의 모임. 일간스포츠와는 2014년부터 협력 관계다. 2016.08.1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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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의 전화위복, 데본 트래비스의 등장

때는 2013년 겨울. 텍사스 레인저스의 프런트는 분주했다. 가능성을 보여준 메이저리그 최고의 유망주 쥬릭슨 프로파의 자리를 만들어야 하는 임무가 있었다.텍사스의 해답은 5년간 6700만 달러 계약이 남아 있던 주전 2루수 이안 킨슬러의 트레이드였다. 매년 3.0 이상의 WAR(승리기여도)이 가능한 킨슬러의 가치는 상당했다.토론토 블루제이스가 가장 먼저 미끼를 물었다. 아메리칸리그를 대표하는 거포인 호세 바티스타 혹은 에드윈 엔카나시온을 줄 수 있다는 조선을 제시했다. 텍사스는 이 제안을 수락했지만, 킨슬러가 트레이드 거부권을 행사해 딜은 무산된다. 텍사스는 다른 트레이드 상대를 찾았고, 결국 킨슬러는 디트로이트의 1루수 프린스 필더와 유니폼을 바꿔입게 된다. 지난 3년간(14-16) 타자 WAR 순위 (팬그래프 기준)1. 마이크 트라웃 : 23.72. 조쉬 도날드슨 : 21.53. 호세 알투베 : 15.44. 앤서니 리조 : 15.35. 폴 골드슈미트 : 14.96. 버스터 포지 : 14.87. 매니 마차도 : 14.68. 이안 킨슬러 : 13.79. 브라이스 하퍼 : 13.710. 애드리언 벨트레 : 13.5 디트로이트로 건너간 킨슬러는 오히려 예전보다 더 맹활약을 펼친다. 3년 간 WAR은 13.7로 메이저리그 전체 타자 중 8위였다. 킨슬러 영입에 실패한 토론토는 2014년 마땅한 주전 2루수 없이, 가와사키 무네노리, 스티브 톨레슨, 라이언 고인스 등으로 자리를 메꾸는 데 급급해야했다.하지만 반전이 일어났다. 디트로이트 팜에서 무럭무럭 크고 있던 2루수 데본 트래비스의 앞길이 막혀버린 것. 디트로이트는 당시 팀내 1위 유망주였던 트래비스의 쓰임새를 찾기 위해 중견수로도 기용해보지만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결국 시즌이 끝난 뒤 토론토 중견수 앤서니 고즈와 맞트레이드시킨다. 마이너리그 통산 0.317의 타율을 기록한 타자이지만, 키가 작고(174cm), 드래프트 지명 순서가 늦으며(13라운드 424번), 나이(14년 24살의 나이로 더블 A소속)가 많았다. 그의 성공 가능성을 높지 않다고 봤다.하지만 토론토로 건너온 트래비스는 곧 두각을 나타낸다. 2015년 스프링캠프에서 안타 23개를 치며 0.357의 타율을 기록한다. 팀내에서 가장 많은 안타와 높은 타율이었다. 이에 팀은 화답한다. 트리플A 출장 경험조차 없던 그를 메이저리그 주전으로 낙점하고 뉴욕 양키스와의 개막전 9번 타자로 출전시킨 것이다. 그는 이 경기에서 2타수 1안타 2볼넷을 얻어내며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룬다.이후에도 순항은 이어졌다. 4월을 0.325/0.393/0.625로 마감하며 이달의 아메리칸리그 신인상을 수상했다. 언론에서는 그를 가장 유력한 신인왕 후보로 꼽기 시작했다. 주루 과정에서 입은 어깨 부상으로 62경기만에 시즌을 마감한 것은 옥의 티. 신인상 역시 여름에 데뷔한 카를로스 코레아에게 돌아가고 말았다. 트래비스의 부상 이후 그의 자리를 대신했던 라이언 고인스는 플레이오프에서 0.139/0.162/0.250의 빈타를 기록하며 팀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기에 더욱 아쉬움이 컸다.지난해 받은 어깨 수술의 재활로 올해 다소 늦게 시즌을 시작했지만, 그의 활약은 여전하다. 지난 2년 간 그는 0.305/0.352/0.498의 비율 스탯과 함께 WAR 4.7을 기록했다. 한시즌에 해당되는 600타석으로 환산하면 5.8승이다. 현재 양대 리그의 MVP경쟁을 벌이고 있는 호세 알투베와 다니엘 머피, 그의 앞길을 가로막은 이안 킨슬러보다 높은 수치다. 지난 2년간 400타석 이상 뛴 2루수 46명 중 단연 최고다. 야구에 만약이 없다지만, 그가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온전한 한시즌을 건강하게 보낸다면 어느 정도의 선수일지 추정을 해볼 수 있는 수치다. 데본 트래비스의 타구 분포도(by 팬그래프) 상대 투수 유형도 가리지 않는다. 위 그림에서 볼 수 있듯 필드 전역으로 타구를 보낸다. 직구,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등 모든 공들을 평균 이상의 능력으로 공략하고 있다. 기복이 있는 삼진 많은 거포형 타자들이 즐비한 토론토 타선에는 누구보다 꼭 필요한 유형의 선수다.토론토는 5월 24일까지 22승 25패로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최하위로 처져 있었다. 이후 69경기에선 43승 26패로 치고 올라가며 직수 우승 경쟁에 뛰어들었다. 비밀의 열쇠는 5월 25일이라는 날짜다. 데본 트래비스가 부상자 명단에서 돌아온 날이다. 지난해 토론토는 20년만의 월드시리즈 정상에 설 기회를 목전에서 놓쳤다. 올해는 건강한 트래비스가 있다. 임선규(비즈볼프로젝트) 지속적인 스포츠 콘텐트 생산을 목표로 하는 젊은 스포츠 연구자들의 모임. 일간스포츠와는 2014년부터 협력 관계다. 2016.08.1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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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그에서 박병호를 만나다

미국 시간으로 8월 5일 금요일 오후, 퇴근을 서둘렀다.야구 관련 일을 하는 사람이라 시즌 중에는 주중도 주말도 없긴 하다. 하지만 이번 주말엔 박병호의 경기를 보러가기로 했기 때문이다.메이저리그에서 안타깝게도 1할대 타율과 30%가 넘는 삼진율로 고전하다 트리플A로 강등됐다. 그가 소속된 로체스터 레드윙스는 지난 주말, 펜실베니아 주의 리하이밸리에서 원정 경기를 치렀다. 필라델피아 필리스 산하 트리플A의 홈구장이 있는 리하이밸리는 BIS(Baseball Info Solutions)라는 야구통계회사가 있는 곳과도 가깝다.BIS는 수비를 평가하는 새로운 통계인 DRS(Defensive Runs Saved)를 고안한 회사다. 세이버메트릭스의 대부 빌 제임스가 고문으로 있다. 2년 전 여름엔 필자가 인턴생활을 하기도 했다.리하이밸리는 철강산업이 발전한 도시다. 구단 애칭인 아이언피그스는 철강업에 쓰이는 피그아이언(선철)에서 따왔다. 팀 이름을 직역하면 '철돼지가' 된다. 때문에 돼지와 관련된 물건이 눈에 많이 띈다. 아무리 미국 사람들이 기름진 음식을 좋아한다지만, ‘베이컨튀김’은 너무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이너리그지만 아이언피그스는 관중이 많게는 만 명 가까이 들어오는 인기구단이다. 야구장도 굉장히 예쁘다.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2012년 마이너리그 구단 가치를 평가한 적이 있다. 가장 가치가 높았던 구단은 새크라멘토 리버 캐츠(오클랜드 산하). 그 다음이 아이언피그스였다. 현재 이 팀에 소속된 유망주로는 J.P. 크로포드가 있다. 메이저리그 공식사이트의 유망주 순위 3위에 올라있는 유격수다. 첫 날 경기에서 박병호는 4타수 2안타를 기록했다. 첫 타석 중전안타에 이어 2-2로 팽팽하게 맞선 8회초에는 상대투수의 시속 95마일 직구를 밀어쳐 우월 솔로 홈런을 날렸다. 타구는 굉장히 잘 맞았다. 마치 레이저처럼 쭉 날아갔다. 박병호의 홈런에 힘입어 원정 팀 레드윙스는 3-2로 신승을 거뒀다.박병호는 메이저리그에서 시즌을 시작한 선수다. 트리플A에서 홈런 개수는 많지 않다. 그러나 타석당 홈런수는 인터내셔널 리그에서 누구에 못지 않는다. 인터내셔널리그에서 홈런 10개 이상을 기록한 타자들은 박병호의 두 배에 가까운, 혹은 그 이상으로 많은 타석에 들어섰음을 알 수 있다. 마이너리그 전체를 통틀어서도 박병호처럼 높은 빈도로 홈런을 때려내는 선수는 없다. 둘째날 경기에서 박병호는 4타수 무안타에 그쳤다. 상대 투수 애덤 모건이 워낙 잘 던졌다. 8⅔이닝 동안 3피안타 2실점이었고, 삼진은 무려 11개를 잡아냈다. 삼진도 두 개나 당했다. 트리플A 타석당 삼진률은 26.1%까지 높아졌다. 인터내셔널리그에서 30위 안에 드는 수치다. 박병호는 한국에서도 삼진을 많이 당하는 선수였다. 컨택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빅리그에서의 성공은 쉽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틀 동안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박병호의 홈런도, 삼진도 아니었다. 그의 성실성이었다. 대기 타석에서 상대 투수의 타이밍을 재는 건 어느 타자나 하는 일이다. 하지만 두 경기에서의 박병호처럼 대기 타석에서 일구일구 모든 투구에 스윙 연습을 하는 타자는 미국에서 본 적이 없다. 그런 노력이 있었기에 그는 한국 최고의 타자로 거듭날 수 있었을 것이다. 팬 서비스도 기억에 남았다. 둘째날 경기는 비로 30분 가량 시작이 지연됐다. 박병호는 경기를 기다리는 어린이들에게 친절하게 사인을 해줬다. 그 옆에 있던 필자도 박병호의 사인을 받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비구름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언제 비가 왔냐는 듯한 맑은 날씨에서 경기는 시작됐다. 비바람은 언젠가 그친다. 마이너리그에서 보내는 시간은 지금 박병호에게 나쁜 날씨와 같은 것이다. 그 경험이 쓴 약이 돼 빅리그에서 홈런을 펑펑 터뜨리는 맑은 날이 다시 오길 기원해본다. 홍기훈(비즈볼프로젝트)MIT와 조지아텍 대학원을 거쳐 스포츠통계업체 트랙맨베이스볼 분석 및 운영 파트에서 일하고 있다. 2016.08.1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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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티모어의 도박, 카드는 딜란 번디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1위 경쟁 중인 볼티모어 오리올스.경쟁자인 보스턴 레드삭스와 토론토 블루제이스는 트레이드 마감시한 전에 전력을 보강하면서 후반기 더욱 치열한 싸움을 예고했다. 하지만 볼티모어는 이렇다 할 보강을 하지 못했다. 김현수와 함께 좌익수 플래툰으로 활용할 외야수 스티브 피어스와 선발 투수 웨이드 마일리 정도가 전부다. 피어스는 건강이 문제고, 마일리는 FA 실패작인 요바노 가야르도보다 크게 나은 수준이 아니다. 좋은 선수를 끌어모을 만큼의 유망주 자원이 많지 않은 탓이 크다.현재 볼티모어의 가장 큰 약점은 선발투수진. 선발투수 평균자책점이 10위 아래다. 포스트시즌을 목표로 하는 팀의 성적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크리스 틸먼, 케빈 가우스먼을 제외하고 가야르도, 우발도 히메네스, 타일러 윌슨, 마이크 라이트 등이 전부 평균 이하의 성적이다. 보강이 절실한 상황이지만, 볼티모어는 내부에서 대안을 찾기로 했다. 바로 왕년의 탑 유망주였던 딜란 번디의 선발 복귀이다.근래의 드래프트 중에서 가장 퀄리티가 좋았다고 평가 받는 2011년에 전체 4번으로 지명된 투수가 번디다. 고졸 선수로 메이저리그 계약을 제시받았을 정도로 대형 유망주였다. 최근 10년 동안 19세 나이에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4번째 선수이며, 2013년엔 베이스볼아메리카로부터 전체 2위 유망주(1위 쥬릭슨 프로파, 텍사스 레인저스)로 지명되며 그 가치가 정점에 올랐다. 하지만 이후 잦은 부상이 문제였다. 2016년 발표된 유망주 순위에서 번디의 이름은 찾을 수 없었다.올해 비교적 건강한 몸으로 돌아온 번디는 메이저리그에서 선발이 아닌 불펜으로 시즌을 시작했다. 4년 만에 빅리그에 돌아온 그는 불펜투수로서 22경기 38이닝 32삼진 12볼넷 3.08ERA을 기록하며 나름 성공적인 활약을 했다. 특히나 시간이 지날수록 구속이 점점 빨라졌다는 게 긍정적이다. 마지막 6차례 14⅓이닝 19삼진 4볼넷 1실점으로 달라진 몸 상태를 확인시켰다. [번디의 월별 포심 패스트볼 평균 구속 변화]4월 : 시속 94.3 마일 (151.8 km)5월 : 시속 94.9 마일 (152.8 km)6월 : 시속 96.0 마일 (154.5 km)7월 : 시속 96.6 마일 (155.5 km) 선발투수들이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자 볼티모어는 결국 번디의 선발 복귀를 택했다. 시즌 시작 전, 오랜만에 복귀한 그를 무리시키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셈이다. 부상으로 지난 3년 동안 겨우 63⅓이닝을 던진 투수에겐 부담. 어쨌든 볼티모어는 번디의 능력을 믿어보기로 했다.번디는 이번 시즌 선발투수로서 첫 경기였던 7월 17일 템파베이 전에서 3⅓이닝 4실점으로 부진했다. 포심 패스트볼의 제구가 되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이날 던진 43개의 포심 패스트볼 중에서 32개의 공이 높은 코스였다. 이 중 3개가 홈런으로 연결됐다. 불펜 38이닝 동안 피홈런은 겨우 3개였다.이 날의 부진에도 번디에게 긍정적이었던 부분은 패스트볼의 구속이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는 것. 번디는 선발투수로서도 시속 96마일 이상의 패스트볼을 쉽게 던졌다. 긴 이닝은 아니었지만 시즌 중 불펜에서 선발로 보직을 변경할 때 구속 감소가 흔한 일임을 생각한다면 나쁘지 않았다. 불펜 번디의 패스트볼 평균 구속 : 시속 95.35 마일선발 번디의 패스트볼 평균 구속 : 시속 95.54 마일 번디는 이날 이후 패스트볼의 비중을 낮추는 변화를 줬다. 짧은 이닝을 던지고 적은 수의 타자를 상대하는 불펜에서는 많은 구종을 던질 이유가 없었기에 가장 자신 있는 패스트볼을 주로 던졌다. 하지만 두 번째 선발 경기부터는 체인지업의 비중을 크게 늘리고 그만큼 패스트볼의 비중을 낮췄다. 그리고 타자들의 헛스윙을 유도할 수 있었다. 번디의 체인지업은 헛스윙률 23.8%짜리 공이다. 선발 전환 후 번디의 구종 변화포심 패스트볼 : 64.1% → 58.8%커브 : 19.1% → 17.4%체인지업 : 16.7% → 23.7% 약간의 변화를 준 이후, 번디는 선발 4경기에서 23⅔이닝 29삼진 3볼넷 평균자책점 1.90으로 반등했다. 번디가 선발투수로서 성공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 만으로 볼티모어에겐 큰 의미가 된다. 특히나 최근 텍사스의 강타선을 상대로 보여준 7이닝 1피안타 1볼넷 7삼진 활약은 볼티모어가 그토록 기대했던 에이스의 피칭이었다.또 하나 주목할 점은 커브다. 유망주 시절 포심 패스트볼과 더불어 번디의 최고 무기가 될 것으로 보였던 커브는 2016시즌에 들어서야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시즌 중반이 훌쩍 지난 이 시점까지 커브를 던져 허용한 장타는 가장 최근 경기에서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강타자 호세 어브레유에게 허용한 2루타 단 한 개이다. 번디는 대부분의 커브를 큰 낙차를 이용해 좌타자 기준 몸쪽 낮은 곳으로 정확히 떨어뜨리고 있는데, 이는 장타를 억제하는데 매우 큰 힘이 되고 있다.선발 투수로 좋은 활약을 하기 위해선 충분한 구위와 여러 타자들을 상대할 수 있을 만한 평균 이상의 변화구를 2개 이상 보유해야 한다. 번디는 이 조건들을 갖췄다. 긴 시간동안 괴롭혔던 부상에서 자유로워질 수만 있다면, 유망주 시절에 극찬 받았던 피칭을 기대해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물론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많다. 건강 문제는 늘 주의해야 한다. 또 8월 2일 등판에서 처음으로 7이닝을 이상을 던진 번디는 7회에 구속이 급격히 떨어졌다. 오랜만에 긴 이닝을 던진 번디에게 경기 후반 체력적인 부담은 분명 더 크게 다가올 것이다.지구 1위 다툼이 한창인 구단이 3년 동안 60이닝을 조금 넘게 던진 23세 투수에게 선발 로테이션의 한 자리를 맡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볼티모어의 도전은 그래서 아직은 도박에 가깝다. 하지만 '올인'은 하지 않는다. 볼티모어는 번디의 투구수를 약 90개로 제한하고 있다. 선발 전환 후 번디가 던진 공의 개수는 각각 70개, 87개, 89개, 88개, 92개였다. 볼티모어가 번디를 무리시키지 않음을 보여준다. 봉상훈(비즈볼프로젝트) : 지속적인 스포츠 콘텐트 생산을 목표로 하는 젊은 스포츠 연구자들의 모임. 일간스포츠와는 2014년부터 협력 관계다. 2016.08.15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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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들의 무덤? 콜로라도 선발진을 주목하라

오랫동안 내셔널리그 서부지구는 LA 다저스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양강구도였다. 올해도 별반 다르지 않다. 샌프란시스코가 후반기 첫 20경기에서 6승 14패로 부진을 겪었지만, 여전히 지구 1위를 사수하고 있다. 다저스도 클레이튼 커쇼를 비롯한 주축 투수들이 부상 중임에도 두꺼운 선수층을 자랑하며 샌프란시스코를 뒤쫓고 있다.오히려 오프시즌 잭 그레인키와 셸비 밀러 등을 영입하며 야심차게 시즌을 준비했던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가 47승 66패로 지구 최하위에 쳐져 있다. 대신 3위 자리에는 낯선 팀이 올라 있다. 로키 산맥의 후예 콜로라도 로키스다.콜로라도는 시즌의 3분의 2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55승 59패로 승률 5할에 근접한 승률을 올렸다. 4연패에 빠지기 전까진 딱 5할 승률이었다. 와일드카드가 1장 더 늘어난 덕분에 포스트시즌 진출도 도전 범위 안에 있다.해발 1600m에 위치하는 홈 구장 쿠어스필드는 '투수들의 무덤'으로 악명높다. 희박한 공기 탓에 타구가 멀리 뻗어나간다. 변화구의 각도도 예리함이 떨어진다. 제구에도 애를 먹는다. 일부 투수는 쿠어스필드에서 던지는 것을 거부하기도 했다.그럼에도 20년이 살짝 지난 현재까지 콜로라도에서 살아남은 투수는 몇몇 있었다. 2002년 15승을 거두며 콜로라도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 신인왕인 제이슨 제닝스는 강력한 싱커가 일품인 투수였다. 2008시즌 200이닝과 16승을 거둔 애런 쿡도 제닝스와 유사한 타입의 투수였다. 그 해 그가 기록한 55.9%의 땅볼 유도율은 당대를 풍미했던 싱커볼러인 브렌든 웹(64.4%)과 데릭 로(60.3%)에 이은 3위의 기록이었다. 2007시즌 기적의 '록토버' 열풍을 이끌었던 제프 프랜시스는 공은 빠르지 않았지만 타자들의 타이밍을 빼앗는 체인지업이 뛰어난 선발투수였다.하지만 이들은 부상으로 인해 꾸준한 활약을 이어가는데 실패했다.'콜로라도의 에이스' 하면 빼놓을 수 없는 투수가 우발도 히메네스다. 최근의 히메네스는 93마일의 패스트볼도 던지기 힘들어하지만, 콜로라도 시절만 하더라도 100마일짜리 패스트볼을 심심찮게 던지는 투수였다. 콜로라도 역사상 200이닝 이상·평균자책점 4점대 이하 기록은 딱 네 번 나왔다. 그 중 2번을 히메네스가 해냈다. 19승 8패 214삼진 평균자책점 2.88을 기록한 2010시즌은 콜로라도 투수가 다시 거두기 어려운 기록이다. 19승은 콜로라도 단일시즌 최다승, 200이닝-200삼진은 2000년 이후 콜로라도 투수들 가운데 유일한 기록이다.그러나 영원할 것만 같았던 히메네스의 강속구도 2011시즌을 기점으로 급격히 하락했다.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2010년 96.1마일에서 이해 93.5마일로 떨어졌다. 히메네스는 패스트볼의 경쟁력을 잃자 급격한 부진에 빠졌고, 결국 시즌 도중 클리블랜드로 트레이드되며 짧은 쿠어스필드 생활을 마쳤다.히메네스의 빈자리는 생각보다 컸다. 콜로라도 마운드는 지난해까지 4시즌 연속 지구 최하위에 그쳤다. 전임 짐 트레이시 감독은 2012시즌 도중 ‘4인 75구 로테이션’이라는 괴상한 작전을 쓰기도 했다. 그만큼 1경기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선발투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2010시즌 83승 79패를 마지막으로 지구 하위권을 전전했던 콜로라도가 올시즌 반등에 성공한 이유는 마운드에 있다. 팀 득점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리그 1위. 콜로라도의 팀 평균자책점은 4.78로 여전히 리그 13위에 그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와는 다르게 선발투수들이 '이기는 야구'를 하면서 좋은 성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벌써 지난해 선발승(41승) 기록을 넘어섰다.2013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3순위에 지명된 존 그레이는 미래의 에이스로 성장할 재목으로 꼽힌다. 대학시절부터 100마일이 넘는 패스트볼을 던진 강속구파다. 지난해 메이저리그에 올라와서는 다소 고전했지만 올시즌 평균 구속이 다소 회복(지난해 94.4마일 → 올해 95.2마일)하며 호투하고 있다. 콜로라도 선발투수 가운데 유일하게 이닝당 1개 이상의 탈삼진을 잡아내고 있으며 홈/원정 편차도 가장 작다.지난해 8승을 거두며 어느 정도 기대감을 드러냈던 채드 베티스는 그레이처럼 폭발적인 구위를 갖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미래의 2~3선발로서는 충분한 평가를 받고 있는 선수다. 콜로라도 투수 가운데 가장 많은 선발 등판과 퀄리티스타트를 만들어냈다. 조금 더 분발하면 2010시즌 히메네스 이후 처음으로 200이닝을 돌파하는 콜로라도 선발투수가 될 수 있다.토미존 수술에서 돌아온 타일러 챗우드는 홈과 원정의 편차는 큰 편이다. 하지만 원정에서 만큼은 지구 내 경쟁팀 에이스인 클레이튼 커쇼와 매디슨 범가너가 부럽지 않다(6승 평균자책점 1.30). 시즌 중반 메이저리그에 합류한 늦깎이 신인 타일러 앤더슨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콜로라도 프런트의 제2의 히메네스, 그레이 찾기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프랜차이즈 유격수 트로이 툴로위츠키를 토론토에 주며 2명의 강속구 투수(제프 호프먼, 미겔 카스트로)를 받았다. 이들은 트리플A에서 메이저리그 데뷔를 앞두고 있다. 또 지난 6월 드래프트에서 101마일 패스트볼을 던질 수 있는 고교 우완 라일리 핀트를 480만 달러 계약금으로 계약에 성공했다.결국 관건은 쿠어스필드에서 롱런을 할 수 있느냐다. 팀내 역사상 최고의 에이스인 히메네스도 풀타임 시즌으로 계산하면 채 4시즌을 버티지 못했다. 오히려 올시즌이 계약 마지막 해인 팀내 최다승(85승) 투수 호르헤 데라로사가 부침은 있었지만 9시즌 째 로키산맥을 지키고 있다. 콜로라도는 히메네스의 폭발력과 데라로사의 꾸준함을 겸비한 투수를 찾을 수 있을까. 새로운 에이스를 찾는 날, LA 다저스와 샌프란시스코의 양강구도를 깨트리는 날이 더욱 가까워질 것이다. 반승주(비즈볼프로젝트)지속적인 스포츠 콘텐트 생산을 목표로 하는 젊은 스포츠 연구자들의 모임. 일간스포츠와는 2014년부터 협력 관계다. 2016.08.1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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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 트레이드 마감, 키워드로 풀었다

8월 1일(이하 미국시간)은 트레이드 마감 시한이다. 이 기간 뒤에도 웨이버를 통한 트레이드는 가능하다. 하지만 올스타 브레이크를 막 지난 트레이드 데드라인은 각 팀들의 올시즌 중간 목표를 확인할 수 있는 때다. 일단 종료된 2016년 이적시장을 키워드로 정리해 본다.(ㄱ) 간보기시카고 화이트삭스가 에이스 투수 크리스 세일을 팔 수 있다라는 소식이 나오자 메이저리그가 웅성웅성했다. 세일은 올시즌도 다승 선두를 달리는 아메리칸리그 최고 투수다. 여기에 저렴한 장기계약으로 2019년까지 팀에 보유권이 있는 선수다. 올시즌 대권에 도전하는 텍사스, 보스턴, LA 다저스 뿐만 아니라, 뉴욕 양키스와 같이 내년 이후를 바라보는 팀들까지 세일 시장에 뛰어들었다.하지만 결국 ‘간보기’에 불과했다. 트레이드 마감시한 전날 별다른 소문 없이 세일은 팀에 잔류하게 되었다. 과거 필라델피아가 콜 하멜스를 팔아치우는데 3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올해의 간보기는 기나긴 트레이드 줄다리기의 시작일지 모른다.(ㄴ) 나들이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7월 29일 마이애미와 샌디에이고는 4대4 대형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샌디에이고 선발투수 앤드류 캐쉬너와 콜린 레아가 마이애미로 건너가고, 마이애미 유망주들이 샌디에이고로 건너가는 트레이드였다.하지만 콜린 레아는 마이애미 데뷔 경기에서 팔꿈치 부상으로 조기 강판당했다. 그리고 하루 뒤인 8월 1일, 트레이드에 포함됐던 유망주 루이스 카스티요와 맞트레이드 되어 원소속팀 샌디에이고로 돌아가게 되었다. 레아의 3일 간의 마이애미 나들이는 비극으로 끝난셈이다. 야후 스포츠의 대표 칼럼니스트 제프 파산은 "마이애미가 영수증을 잘 보관한 모양"이라고 촌평했다.(ㄷ) 다걸기텍사스는 이번 이적시장을 가장 바쁘게 보낸 팀이다. 조나단 루크로이, 카를로스 벨트란, 제레미 제프리스를 보강하며 팀의 약점을 알차게 보강했다. 루크로이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포수 반열에 꼽힌다. 올시즌 .299/.359/.482의 타격 성적에 WAR(대체선수대비승리기여)은 2.8로 메이저리그 전체 3위다. 텍사스는 올시즌 브라이언 할라데이, 브렛 니콜라스, 로빈슨 치리노스, 바비 윌슨 등 포수 4명을 기용했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다. 네 선수가 합작한 성적은 .231/.285/.419와 WAR 1.0에 불과했다.이밖에 조쉬 해밀턴과 추신수의 부상, 델라이노 데쉴즈의 부상으로 텅비었던 외야 자리에 카를로스 벨트란을 영입했고, 밀워키 브루어스의 마무리 투수 제레미 제프리스를 데려와 강점인 불펜진을 더더욱 강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ㄹ) 리툴링 (re-tooling)피츠버그는 지구 선두 시카고 컵스에 10.5게임, 와일드카드 2위인 마이애미 말린스에 4경기 뒤져 있다. 5할 승률이 간당간당하다. 와일드카드는 충분히 도전할 만 하지만, 이번에는 쉬어가는 선택을 했다. 스몰 마켓 팀인 피츠버그는 ‘모험’ 실패하는 부담을 짊어지기에는 호주머니가 얇다.그렇다고 다른 셀러 팀들처럼 주축 선수를 무턱대고 팔아 유망주를 채우는 움직임을 보이지도 않았다. 피츠버그는 ‘전면적인 리빌딩’이 아닌 ‘잠시 쉬어가는 리툴링’을 택했다. 지속적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이 가능한 팀을 만들겠다라는 닐 헌팅턴 단장의 청사진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마무리 마크 멜란슨을 보내고 평균 구속이 95마일을 상회하는 메이저리그 2년차 불펜 투수 펠리페 리베로를 받아왔다. 별다른 육성기간 없이 즉시 셋업맨으로 활용할 수 있다. 미래의 마무리라는 기대도 받는다. 양키스에서 데려온 이반 노바, 토론토에서 받아온 드류 허치슨 역시 당장 선발 로테이션에 투입할 만한 자원이다.(ㅁ) 마감시한매년 이적 시장의 마감시한은 7월 31일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이보다 하루 늦은 8월 1일이다. 7월 31일이 주말과 겹쳤기 때문이다. 롭 맨프레드 MLB 사무국 총재는 구단 관계자 및 기자들의 즐거운 주말을 위해, 마감시한을 하루 연장해줬다.(ㅂ) 불펜시즌초 켄 자일스와 크레익 킴브렐의 이적은 불펜 투수 값어치가 크게 올랐다는 신호였다. 트레이드 데드라인을 앞두고 신호는 더 커졌다. 아롤디스 채프먼과 앤드류 밀러는 양키스에 클린트 프래이저, 글레이버 토레스라는 전미 30위권 유망주를 남겨주고 떠났다. 밀워키의 셋업맨 윌 스미스의 트레이드 상대인 필 빅포드 역시 올시즌 퓨처스리그에 출전한 특급 투수 유망주다. 심지어 40살의 노장 페르난도 로드니의 '판매 가격'도 싱글A에서 1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중인 크리스 패독이었다.(ㅅ) 샐러리 덤프(Salary Dump)2015년을 앞두고 3년 3900만 달러 재계약을 한 프란시스코 리리아노. 계약 첫 해 빼어난 피칭을 했지만, 올시즌은 대부진이다. 9이닝당 볼넷은 3.38에서 5.46으로 상승했고, 9이닝당 피홈런 역시 0.72개에서 1.50개로 2배 이상 올랐다. 평균자책점은 5점대다. WAR은 아예 마이너스 값이다.피츠버그는 리리아노에 유망주 해롤드 라미레스, 리즈 맥과이어를 얹어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보냈다. 리리아노의 남은 연봉 1500만 달러를 두 유망주를 미끼로 떠넘긴 셈이다. 재정에 여유가 있는 토론토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은 장사다. 빅마켓 팀에게 1500만 달러 정도는 큰 부담이 아니다. 3년 전 리리아노의 부활을 이끌었던 포수 러셀 마틴의 존재는 왠지 모르게 든든하다.(ㅇ) 연어친정팀으로 돌아간 ‘연어’같은 선수가 많다. 스티븐 피어스는 지난해 볼티모어의 개막전 4번 타자 겸 1루수였다. 하지만 잦은 부상으로 시즌을 망치며 방출되었었다. 올시즌 탬파베이와 계약한 그는 1루수, 좌익수, 2루수 자리를 두루 메꾸며 .309/.388/.520이라는 커리어 최고의 활약을 보여줬다. 1일 트레이드로 다시 볼티모어로 되돌아 왔다. 코너 외야수 자리를 맡아줄 것으로 보인다. 올시즌 부진하던 존 니스와 안토니오 바스타도 역시 맞트레이드로 친정팀으로 돌아가 부활을 꿈꾸게 되었다.(ㅈ) 짝수해 징크스샌프란시스코의 짝수해 징크스는 유명하다. 2010년, 2012년, 2014년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2016년에도 좋은 성적이다. 기분 좋은 징크스를 이어나가고 싶어서일까. 샌프란시스코는 트레이드 데드라인에서 과감한 움직임을 보였다.팀내 최고 유망주인 필 빅포드를 내주고 밀워키에서 불펜 투수 윌 스미스를 데려왔다. 주전 3루수 맷 더피와 지난해 600만 달러를 주고 계약한 18세 유망주를 묶어 최근 9경기 60.1이닝에서 2.39의 평균자책점을 기록 중인 탬파베 좌완 선발투수 맷 무어를 데려왔다. 적잖은 대가를 치뤘지만, 두 선수 모두 FA까지 시간이 제법 남아 있다. 나쁘지 않은 영입이다. (ㅊ) 친정 사랑LA 다저스 단장 파르한 자이디는 전에 몸담았던 오클랜드 출신 선수를 유달리 선호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조쉬 레딕, 리치 힐, 제시 차베즈 등은 모두 지난 2년간 오클랜드를 거쳐간 선수들이다. 단순한 우연일까. 이전 직장의 인맥과 정보를 활용한 필연일까.(ㅋ) 캐쉬맨 단장19년째 양키스를 이끌고 있는 브라이언 캐쉬맨 단장. 양키스가 언제나 최고 팀이었던 덕에 트레이드 데드라인을 앞두고는 늘 좋은 선수를 ‘사오는’ 입장에 있었다. 하지만 올시즌은 다르다. 양키스는 볼티모어와 토론토, 보스턴에 크게 뒤진채 지구 4위에 머물러 있다.처음 경험하게 된 ‘셀러(Seller)’ 입장. 하지만 캐쉬먼 단장의 수완은 괜찮았다. 아롤디스 채프먼, 앤드류 밀러, 카를로스 벨트란 세 선수를 내보내고 유망주를 잔뜩 얻어오는 데 성공했다. MLB닷컴이 발표하는 팀내 유망주 1위(클린트 프래이져), 2위(글레이버 토레스), 7위(저스티스 쉐필드), 11위(딜런 테이트)는 모두 지난 1주일 동안 이적해 온 새 얼굴들이다. 이제 양키스는 메이저리그에서 손꼽히는 탄탄한 유망주 층을 구축한 팀이다.(ㅌ) 퇴짜텍사스 유니폼을 입게 된 조나단 루크로이. 불과 반나절 전만 해도 행선지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로 결정되는 듯 했다. 하지만 루크로이는 트레이드 거부권을 행사해 클리블랜드에게 ‘퇴짜’를 놓았다. 그는 월드시리즈 반지를 꿈꾼다. 그래서 아메리칸리그 중부지구 1위 클리블랜드 대신 서부지구 1위 텍사스를 선택했다. 선택이 옳았는지 틀렸는지는 두 달 뒤에 결과가 나온다.(ㅍ) 포스트시즌의 사나이텍사스로 옮긴 카를로스 벨트란은, 대표적인 ‘포스트시즌의 사나이’다. 명예의 전당 입성을 바라보는 베테랑 선수로 정규시즌 성적 역시 출중하다. 그러나 가을에는 아예 다른 선수가 되곤 했다. 포스트시즌 통산 52경기에 출장했고 0.332/0.441/0.674를 찍었다. 홈런도 무려 16개. 텍사스는 1961년 창단 이래 단 한번의 우승도 경험하지 못했다. ‘가을 DNA’를 지닌 벨트란이 텍사스를 첫 우승으로 인도할 수 있을까.(ㅎ) 호황올시즌 이적 시장은 매우 바빴다. 6월 1일 ~ 8월 1일 두 달 동안 48건의 트레이드가 발생했다. 지난 20년 동안 가장 많은 숫자였다. 이 시기 최저는 23건, 최다는 43건이었다. 임선규(비즈볼프로젝트)지속적인 스포츠 콘텐트 생산을 목표로 하는 젊은 스포츠 연구자들의 모임. 일간스포츠와는 2014년부터 협력 관계다. 2016.08.0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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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는 지금 '멀티 포지션' 붐

KBO리그 넥센의 유격수 강정호는 2014년 겨울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와 계약을 했다. 미국 현지에선 의아심을 가진 이들이 많았다.피츠버그에는 그해 12홈런을 때려내며 준수하게 활약한 27세 유격수 조디 머서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정호의 2015년 출장 기회는 제한적일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강정호는 그해 유격수와 3루수 자리에서 115경기를 뛰며 두 포지션에서 모두 합격점을 받았다.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입증해냈다.같은 팀의 조쉬 해리슨은 2루수, 3루수, 외야수로도 뛰었고, 션 로드리게스는 여기에 더해 1루수와 유격수로까지 출장했다. 여러 포지션을 맡을 수 있는 다재다능한 선수들이 있었기에 피츠버그는 25인 로스터를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었다.2016년 시즌 초반 피츠버그는 자유계약선수(FA)로 페드로 알바레스와 닐 워커가 팀을 떠났고, 강정호도 부상으로 출장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었던 건 이런 '유틸리티 플레이어' 덕이었다. 올시즌 내셔널리그 우승을 노리는 시카고 컵스에는 젊고 재능있는 선수들이 넘쳐난다. 중심타선에는 작년 신인왕 크리스 브라이언트가 있다. 브라이언트는 3루수로 주로 출장하지만 외야에서도 준수한 수비를 자랑한다. 작년 3루수로 136경기, 외야수로 10경기 선발출장한 브라이언트는 올시즌은 3루수로 62경기, 외야수로 22경기에 선발출장했다.외야수 플레잉 타임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 덕에 주 포지션이 3루인 하비에르 바에스의 출장 기회가 늘어났다. 바에스는 올시즌 0.800이 넘는 OPS(출루율+장타율), WAR(대체선수대비승리기여) 1.9승으로 팀 호조에 기여하고 있다.올시즌은 부상 중이지만 포수와 좌익수를 보는 카일 슈워버, 역시 외야 수비가 가능한 신인 포수 윌슨 콘트레라스, 탬파베이 시절 '슈퍼 유틸리티'의 대명사로 불렸던 벤 조브리스트 등 여러 포지션을 뛸 수 있는 선수가 컵스에는 즐비하다. 조 매든 감독은 재능덩어리들을 골고루 출장시킬 수 있는 유동성을 누리고 있다.이처럼 최근 메이저리그에는 여러 포지션을 훌륭히 소화해낼 수 있는 멀티포지션 선수가 늘어나고 있다. 팬그래프닷컴은 WAR을 포지션 별로 나눠서 제공하고 있다. 올시즌 브라이언트가 3루수로 뛰었을 때 WAR 총합은 2.6, 좌익수로 뛰었을 때는 1.9다. 이 리스트를 이용해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한 경기라도 뛴 포지션의 개수를 모두 더해보았다.2005년에는 한 경기라도 포수를 본 선수 101명, 1루수 142명 등이 총 1154개의 포지션을 소화했다. 2014년에는 1249개로 집계를 시작한 2002년 이후 역대 최고였다. 지난해에도 1275개로 2년 연속 기록을 경신했다.각 팀 선수들이 평균적으로 몇 포지션을 소화했는지도 계산 가능하다. '깜짝 출전' 경우를 제외하기 위해 WAR이 0 이상인 포지션만을 대상으로 했다. 2015년과 2016년 현재 기록을 합산하면 컵스가 2위, 피츠버그가 3위였다. 1위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이 팀의 스티븐 피스카티는 1루와 외야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맷 카펜터는 1루, 2루, 3루를 모두 소화할 수 있다.예전에도 '유틸리티맨'으로 불리는 선수들이 있었다. 대수비 요원이나, 주전 선수의 휴식을 보장하기 위한 비주전 선수들이 해당됐다. 지금 메이저리그에선 팀의 중심타자들도 여러 포지션을 소화하고 있다는 게 차이다. 피츠버그의 해리슨은 '유틸리티'에서 이제 팀의 핵심 선수가 됐다. LA 다저스의 저스틴 터너도 해리슨과 비견되는 선수다.올해 볼티모어는 주전 유격수 J.J. 하디의 장기 결장이라는 악재를 만났다. 하지만 팀 간판타자 매니 마차도가 유격수 자리에서 골드글러브급 수비를 뽐내면서 1.8의 WAR를 쌓았다. 원래 포지션인 3루수로도 2.7의 WAR을 기록했다. 마차도 '멀티 활약'은 올시즌 오리올스가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1위 경쟁을 하고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이다. 강력한 MVP 후보로도 꼽히고 있다.긴 시즌을 치르다보면 부상 선수가 생기기 마련이다. 25명으로 제한된 로스터로는 빈 자리를 모두 메우기 쉽지 않다. 이럴 때 운영의 묘를 살릴 수 있게 하는 게 멀티포지션 선수의 역할이다. 이들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가치를 팀에 제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홍기훈(비즈볼프로젝트)MIT와 조지아텍 대학원을 거쳐 스포츠통계업체 트랙맨베이스볼 분석 및 운영 파트에서 일하고 있다. 2016.08.0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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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열의 '각도', 김병현의 '업슛'

몇 년 전 선동렬 전 KIA 감독이 박찬호에게 했던 발언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팔꿈치 각도를 좁혀야 공이 좋아진다"고 조언을 한 것이다. 선동렬은 현역 시절 '국보'로 불린 대투수다. 프로야구에서 단연 역대 최고 투수로 꼽힌다. 하지만 박찬호는 메이저리그에서 통산 124승이라는 대단한 기록을 세운 베테랑 투수였다. 선동렬의 말이 '다소 과하다'고 여긴 이들도 있었다.선동렬의 그 말 뒤에는 어떤 뜻이 숨어있었을까. 투수가 빠른 공을 던질 때에는 공에 백스핀이 걸리게 된다. 테니스나 탁구를 할 때 라켓으로 공의 아랫부분을 때리는 경우를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백스핀을 받은 공은 덜 가라앉게 되고 타자들은 공이 마치 떠오르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속도가 같아면 공의 회전방향이 수직에 가까울수록 수직무브먼트에 영향을 더 크게 미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똑같은 손모양으로 백스핀을 주더라도, 팔의 각도가 내려가면 공의 회전방향이 수직에서 멀어질 수 밖에 없다.그래서 "팔꿈치를 벌리고 던지면 공에 힘이 떨어질 뿐 아니라 종으로 움직여야 할 공에 횡으로 휘는 각도가 들어간다"고 얘기한 선동렬의 발언은 타당하다. 선동렬은 수학이나 물리를 전공하진 않았더라도, 평생을 야구를 해온 감이 있었던 것이다. 피치f/x 데이터를 이용해 메이저리그 투수들이 던진 빠른공의 수직, 수평무브먼트를 찾아봤다. 대상은 2016시즌 직구 계열(포심, 투심, 싱커 등) 공을 최소 300개 이상 던진 투수들이다. 수평무브먼트에 비해 수직무브먼트의 비율이 높은 투수를 찾으면 과 같다. 이 비율이 높은 투수의 공은 좋은 수직무브먼트로 타자의 헛스윙을 이끌어낸다. 대체로 헛스윙률이 높은 투수들이다. [표-1] 2016년 메이저리그 수직무브먼트/수평무브먼트 비율 상위 5명 투수 하지만 수평무브먼트의 비율이 높다고 무조건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다. 수직무브먼트는 헛스윙률과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다. 반면 수평무브먼트는 땅볼유도와 관련이 있다. 수평무브먼트가 좋은 투수는 더 많은 땅볼을 이끌어낸다. 는 빠른공을 던질 때 수직무브먼트에 비해 수평무브먼트가 높은 투수들이다. 이 리스트에서 1위에 올라있는 브래드 지글러는 올시즌 63.8%의 땅볼비율(GB%)를 기록하고 있다. 잭 듀크와 코리 기어린의 GB%는 각각 58.3%다, 그리고 조 스미스는 53.1%다. [표-2] 2016년 메이저리그 수평무브먼트/수직무브먼트 비율 상위 5명 투수 두 리스트에서 뭔가 감이 온다면 메이저리그에 관심이 아주 많은 사람일 것이다. 첫번째 리스트는 정통파 오버핸드투수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두번째 리스트는 사이드암이나 잠수함투수들이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그 이유는 위에서 언급한 백스핀의 회전축 때문이다. 투수가 공을 놓는 지점과 무브먼트는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과 를 보면, 공을 낮은 쪽에서 놓는 투수는 수직무브먼트도 낮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 사이드암이나 잠수함 투수의 장점도 여기에서 나온다. 생소한 투구폼 외에도 낮은 릴리스포인트에서 빠른공을 싱커성으로 던질 수 있는 강점이 생긴다. 그렇다면 잠수함 투수가 변화구를 던지면 어떻게 될가. 물구나무 서서 공에 탑스핀을 거는 것을 상상해보자. 공은 마치 백스핀이 걸린 것처럼 움직일 것이고, 타자 앞에서 마치 오버핸드 투수의 빠른 공처럼 떠오르게 된다. 김병현의 '업슛'에 메이저리그 타자들의 방망이가 공 아래 허공을 시원하게 갈랐던 장면. 그 비밀이 바로 여기에 있다. 홍기훈(비즈볼프로젝트) MIT와 조지아텍 대학원을 거쳐 스포츠통계업체 트랙맨베이스볼 분석 및 운영 파트에서 일하고 있다. 2016.07.2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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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 불펜 투자 열풍, 반짝 하고 소멸하나?

지난 겨울, 메이저리그 스토브리그의 화두는 ‘불펜’이었다.진앙지는 2015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캔자스시티였다. 뚜렷한 강점이 없는 선발진과 압도적인 최강 불펜진을 양 손에 쥔 팀이 우승을 했다. 30개 구단 프런트오피스는 ‘강력한 불펜이 승리의 열쇠’라는 아이디어에 한층 주목하게 됐다.비슷한 생각을 하는 구단이 많아지면, '앞서가겠다'는 동기가 생긴다. 과감한 투자를 하는 팀들이 나왔다. 보스턴과 휴스턴이 대표적이었다. 보스턴은 특급 마무리 투수 크레이그 킴브렐을 데려오면서, 샌디에이고에 4명의 유망주를 내줬다. 휴스턴은 한술 더 떴다. A급 마무리 투수로 부상한 켄 자일스를 포함, 2명의 선수를 데려왔다. 그러나 반대급부로 필라델피아에 무려 5명의 선수를 내줬다. 뉴욕 양키스 역시 신시내티에 4명의 유망주를 내주며 시속 170km 광속구를 던지는 아롤디스 채프먼을 데려왔다. 그러나 보스턴, 휴스턴이 내준 선수들에 비해선 ‘급’이 많이 떨어졌다.6개월이 지난 지금, 세 팀 중 유일한 승자는 양키스처럼 보인다. 휴스턴이 데려온 자일스는 개막하기도 전에 마무리 보직에서 강등됐다. 4월에는 평균자책점 9.00을 기록하는 대형 참사를 냈다. 반면 필라델피아로 넘어간 우완 투수 빈센트 벨라스케스는 16탈삼진 완봉승을 거두며 휴스턴의 속을 더욱 쓰리게 했다.보스턴 역시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킴브렐은 평균자책점 3.55를 기록해 ‘특급’ 명성에 미치지 못했고, 설상가상으로 무릎 수술을 받아 3~6주 결장이 불가피해졌다. 반면 넘어간 유망주 중 2명은 샌디에이고 내부 유망주 순위 1위, 3위에 올랐다. 보스턴은 특급 마무리 투수 크레이그 킴브렐을 데려오면서, 샌디에이고에 4명의 유망주를 내줬다. 반면 양키스가 내준 유망주 4명은 별다른 성장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채프먼은 한 달 결장했지만, 복귀 후 싱싱하게 쾌투하고 있다. 7월 24일 현재, 양키스는 내년 FA를 앞두고 있는 채프먼을 다른 팀에 넘기고 유망주를 받아오려 하고 있다. '야구판 창조경제'가 따로 없다.사정이 이렇게 되니, 불펜 투수에 대한 고평가 기조는 6개월 만에 벽에 부딪힌 모양새다. 보스턴이 애리조나로부터 마무리 브래드 지글러를 데려오긴 했지만, 현재 수장인 데이브 돔브로스키 사장의 ‘과감한 베팅’ 성향이 한몫했다는 평이 나온다. 마이애미는 샌디에이고로부터 마무리 페르난도 로드니를 데려왔는데, 대가로 생각보다 좋은 유망주를 넘겼다는 평가들이 나왔다. 결국 불펜 투자에 대한 시장의 선호도는 ‘호감’에서 ‘비호감’으로 다시 바뀐 것이다.이전까지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불펜 투수에 대한 대형 투자를 선호하지 않았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첫째, 선발 투수에 비해 불펜 투수의 기여도가 떨어진다는 이유다. 간단하게 이닝 수만 비교하면 된다. 이 점은 최근 강력한 불펜진을 갖춘 캔자스시티의 우승, 연이은 투고타저, 투수들의 구속 상승 등으로 어느 정도 상쇄돼는 듯 했다.둘째, 불펜 투수들의 연도별 성적을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즉, 상품 가치의 변동성이 너무 높다. 이는 불펜 투수라는 상품의 고유한 특성과도 같다. 1년에 선발 투수 이닝의 절반도 소화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선발 투수와 달리 불펜 투수의 성적에는 상당한 양의 운과 상황 변수가 영향을 미친다.올 시즌 각 구단 불펜 투수 기여도를 보면 이런 변동성, 불안정성이 아직도 걷히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불펜 투수의 ‘공과’를 측정하는 지표로는 WPA(Wins Probability Added·추가한 승리확률)가 있다. 투수의 WPA는 등판 전후로 팀의 승리확률 변화량을 계산해 누적한 값이다. 위기 상황을 극복해내거나, 별다른 위기를 자초하지 않는다면 양의 값이 더해진다. 즉, 불펜진의 WPA가 음수인 팀은 투수들이 계속 ‘방화’를 저질렀다는 뜻이 된다. 대표적인 팀이 지난해 -1.49로 전체 25위에 오른 LA 다저스다. 반면 막강 불펜을 자랑했던 세인트루이스는 8.79로 전체 3위에 올랐다. 그만큼 불펜진이 ‘위기 탈출 전문가’였다는 뜻이다.두 팀은 지난 겨울 불펜진에 별다른 큰 보강을 하지 않았다. 다저스는 1년 400만 달러에 조 블랜튼을 데려왔다. 세인트루이스는 2년 최대 1100만 달러에 오승환을, 2년 750만 달러에 조나단 브록스턴을 데려왔다. 그런데 올해 다저스와 세인트루이스의 불펜 WPA는 현재 1.93, -1.01로 각각 9위와 24위에 올라있다. 1년만에 처지가 뒤바뀐 것이다.다저스는 블랜튼이 마당쇠 역할을 제대로 해주고 있다. 또 애덤 리베라토레, J.P. 하웰 등이 작년보다 나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팀 불펜 평균자책점은 3.91에서 2.97로 1점 가까이 줄어들었다. 반면 세인트루이스는 철벽 마무리 트레버 로젠탈, 중간 계투 세스 마네스가 심각하게 무너졌다. 오승환이 좋은 피칭을 하고 있지만, 기보유했던 에이스 카드가 악재로 돌변한 여파가 너무 크다. 단순히 평균자책점을 봐도 2.82에서 3.58로 0.76이나 상승했다. 다저스는 블랜튼이 마당쇠 역할을 제대로 해주고 있다 다저스와 세인트루이스의 사례처럼, 불펜 투수들의 성적은 선발 투수나 주전 야수들에 비해 앞날을 예상하기가 너무 어렵다. 휴스턴의 경우, 데려온 자일스는 기대에 못 미쳤지만, 기존 자원인 윌 해리스와 루크 그레거슨 등이 작년보다 더 안정감있는 활약을 하고 있다. 그 결과 WPA 순위가 지난해 17위에서 올해 2위로 껑충 뛰어올랐다.유망주 또는 1000만 달러 이상의 투자를 한 팀 중에서 이렇게 불펜의 WPA 순위가 5계단 이상 오른 팀은 휴스턴, 오클랜드, 디트로이트, 토론토, 시애틀, 보스턴 뿐이다. 그나마 ‘거액 투자’ 중에서 어느 정도 제 몫을 해낸 이는 디트로이트의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 시애틀의 스티븐 시셱이 거의 전부다.이렇게 불펜 투수라는 상품의 변동성이 여전한 상황에서, ‘특급 마무리’에 큰 투자를 하는 전략이 쉽게 대세가 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더구나 메이저리그는 올해 홈런 숫자가 급증하며 게임의 지형도가 바뀌는 중이다. 불펜 투수에 대한 고평가는 투고타저 양상과 함께 찾아왔다. 다시 타고투저 방향으로 균형이 맞춰진다면, 계산 역시 달라질 수도 있다.지난 수 년간 FA 불펜 투수에 대한 다년·고액 계약이 유행인 KBO리그에서 시사점을 줄 수 있다.박기태(비즈볼프로젝트)지속적인 스포츠 콘텐트 생산을 목표로 하는 젊은 스포츠 연구자들의 모임. 일간스포츠와는 2014년부터 협력 관계다. 2016.07.27 07:00
야구

투고타저 메이저리그에서 홈런은 왜 늘어났을까?

2016년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의 진짜 주인공은 지안카를로 스탠튼(27·마이애미)이었다.스탠튼은 올스타전 메인 경기에는 나서지 않았다. 그러나 하루 전 열린 홈런 더비에서 타구 61개를 담장 밖으로 날리며 우승을 차지했다. 홈런 더비 규칙이 바뀌긴 했지만, 61개는 2005년 바비 아브레우의 41개를 넘는 신기록이다.특별 행사인 홈런 더비에서만 숫자가 늘어난 게 아니다. 올해 메이저리그의 홈런 생산 속도는 사상 최고인 2000년에 이어 역대 2위 수준으로 올라섰다. 9이닝 경기에서 나오는 홈런 숫자는 2014년 0.86개, 2015년 1.01개, 2016년 1.16개로 3년 연속 급증세다. 1.10개를 넘어선 건 2006년(1.11개) 이후 10년 만의 일이다.홈런이 늘어나니 득점도 늘어났다. 마크 맥과이어, 새미 소사가 군림했던 1990년대 말~2000년대 초반 ‘스테로이드 시대’에는 경기당 득점이 5점을 돌파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7년 4.80점, 2009년 4.61점으로 떨어지더니 지난해는 4.24점이었다. 올해는 4.51점으로 올라섰다. 아직 '타고투저'로 불릴 정도는 아니지만, 오랫동안 이어진 투고타저 해소 실마리가 보인다. 메이저리그 커미셔너사무국은 저득점 환경이 야구 인기를 떨어뜨린다고 걱정해왔다.그러나 급증한 홈런을 의심하는 이들도 있다. 지난 6월 주간지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의 톰 버두치는 이런 의심을 정리한 기사를 냈다. 과거 득점이 크게 증가했을 때는 항상 눈에 띄는 이유가 있었는데, 올해는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공인구의 반발력에 손을 댄 것이 아니냐는 '음모론'이다.과거와는 달리 득점이 늘어날 뚜렷한 잘 보이지 않는다. 스트라이크 존 넓이는 바뀌지 않았다. 마운드 높이에 손을 댄 것도 아니다. ‘공식적으로’ 공인구 성분을 바꾼 적도 없다. 그렇다면 ‘비공식적으로’ 공인구 반발력을 올리지 않았는가, 의심할 수도 있다.사실을 확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공인구 반발계수 측정이다. 그러나 롭 만프레드 메이저리그 커미셔너는 어떠한 검증 계획도 없음을 밝혔다. 대신 "반발력을 손댄 사실이 없다"는 말만 남겼다.그렇다면 간접적인 방법을 쓸 수 있다. 타격 결과와 타구의 질을 살펴보는 것이다. 공인구 반발력이 늘어났다면 타구의 속도와 비거리도 향상됐을 것이다. 과거에는 이런 정보를 구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는 지난해부터 스탯캐스트(Statcast) 시스템이 측정한 데이터를 공개하고 있다. 2015년과 2016년의 타구 정보 비교 (자료 출처: 베이스볼 서번트) 결과적으로, 음모론은 음모론에 그친 것으로 보인다. 스탯캐스트는 지난해 11만2천여 개, 올해 전반기 6만1천여 개 타구의 속도와 비거리를 측정했다. 작년과 올해 타구의 질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타구 평균 속도는 지난해 시속 142.4km, 올해는 143.6km였다. 평균 비거리는 63.4m에서 65.8m로 변했고, 평균 발사각도는 각각 10.5도, 11.3도였다. 플라이볼과 라인드라이브 타구로 범위를 좁히면 더 의미가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라인드라이브는 발사각도 10~25도, 플라이볼은 25~50도 사이 타구로 분류된다. 땅볼과 팝업(발사각도 50도 이상)은 반발력 추산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플라이볼 평균 속도는 올해 시속 1.4km 증가했고, 라인드라이브는 시속 0.5km 늘어났다. 평균 비거리는 각각 1.9m 증가, 0.8m 감소였다. 즉, 거의 변하지 않았다. 공인구 반발력이 정말 올라갔다면, 같은 각도의 타구는 더 멀리, 더 빠르게 날아갔어야 한다. 홈런 타구만 추려도 결과는 비슷했다. 크게 포물선을 그리는 홈런의 속도는 작년보다 시속 0.6km, 평균 비거리는 1.8m 늘어났다. 라인드라이브 홈런은 속도가 시속 0.8km 늘어났지만, 비거리는 121.3m에서 120.7m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메이저리그 홈런이 전년 대비 15% 가량 늘어난 건 이 정도 변화로는 설명할 수 없다. 음모론을 반박할 근거는 하나 더 있다. 홈런을 제외한 안타 개수는 올해 오히려 줄어들었다. 공인구 반발력이 올라서 타자들이 친 공이 대포알 같이 날아갔다면, 안타 개수도 늘어났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메이저리그에서 득점과 홈런은 늘어났을까. 득점은 홈런의 증가 자체로 설명할 수 있다. 홈런은 최소 1득점을 보장하는 공격 방법이다. 남은 홈런의 증가 이유는 타자들의 접근 방식이 달라진 데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메이저리그에선 최근 수 년 동안 수비시프트가 크게 늘어났다. 안타가 될 타구가 아웃이 되는 일이 빈번해졌다. 여기에 투수들의 구속은 점점 빨라지면서 탈삼진이 늘어나고 있다. 여기에서 메이저리그 타자들이 삼진을 감수하더라도 홈런을 노리는 쪽으로 전략을 선회했다는 가설을 세울 수 있다. 어차피 짧은 스윙으로 안타를 만들어낼 확률은 전보다 떨어져 있다. 삼진이 전체적으로 늘었으니, 삼진의 '기회비용'도 줄어든 셈이다. 더 강한 스윙으로 '한 방'을 노리는 게 더 '경제적'이다. 버두치의 기사에서도 비슷한 설명을 하는 현직 타격 코치의 말이 나온다. 실제로 메이저리그 현역 타자들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까. 확실하게 밝혀진 건 없다. 하지만 올해 타자들의 헛스윙 비율은 2002년 측정이 시작된 뒤로 최고치를 찍고 있다. 삼진 비율은 메이저리그 사상 최고 수준이다. 삼진은 이제 타자의 세금처럼 당연한 것이 됐다. 야구는 늘 똑같아 보이지만, 투수와 타자의 전략에 따라 늘 변해왔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생기고, 기울어진 저울은 평형상태에 가까워지기를 반복해왔다. 투수들이 새로운 구종으로 리그 평균자책점을 끌어내리면 타자들은 공략법을 찾아내 다시 끌어올렸다. 타자들이 낮은 코스 공을 집중적으로 노리면, 투수들은 높은 코스로 스트라이크를 던졌다. 야구는 늘 그래왔다. '삼진을 감수하고 홈런을 노리는 전략'이 실제 존재한다면, 리그 평균 득점 상승이라는 효과를 실현한 셈이다. 커미셔너사무국이 공인구 반발력에 손을 댔다는 음모론보다는, 공갈포가 늘어나서 홈런이 늘어났다는 가설이 논리적으로 더 정교해 보인다. 박기태(비즈볼프로젝트) 지속적인 스포츠 콘텐트 생산을 목표로 하는 젊은 스포츠 연구자들의 모임. 일간스포츠와는 2014년부터 협력 관계다. 2016.07.2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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