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A-Rod와 오티스, '같은 약물 다른 결말'
' 에이로드(A-ROD)' 알렉스 로드리게스(뉴욕 양키스·41)가 은퇴를 발표했다. 그가 바라던 명예로운 마지막은 아니었다. 젊은 선수 위주로 팀을 바꾸려는 양키스는 최근 그에게 출장 기회를 주지 않았다. 심리적으로 벼랑에 몰렸고, 구단주가 직접 은퇴를 제안했다. 등 떠밀린 퇴장이었다. 에이로드는 19세 나이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공·수·주 모든 면에서 만능인 '5툴 플레이어(타격의 정확성·타격의 파워·안정된 수비·정확한 송구·빠른 주루 능력을 고루 갖춘 선수)'였고, 여기에 수려한 외모까지 겸비한 당대 최고의 선수였다. 그는 가장 비싼 몸값의 선수가 됐고, 스스로 그 기록을 깨기도 했다. 그러나 두 번의 금지 약물 파동이 그의 운명을 송두리째 뒤바꿔 놓았다. 신화 속 주인공에서 모두가 경멸하길 주저치 않는 악역이 됐다. 에이로드의 은퇴에서 자연스레 떠오르는 이가 있다. 양키스의 라이벌 팀, 보스턴 레드삭스의 데이빗 오티스다. 오티스 역시 금지 약물 복용으로 물의를 빚었다. 그러나 대우는 에이로드와 천지 차이다. 오티스는 지난해 11월, 2016년을 끝으로 은퇴한다고 밝혔다. 본인은 '은퇴 투어'나 대접을 바라지 않는다고 했지만, 가는 곳마다 '전설'의 마지막을 환대하는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반대로 에이로드의 은퇴는 초라하고 씁쓸한 기운으로 물들어 있다. 은퇴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장에서, 할 말을 마치고 퇴장하는 로드리게스에게 박수를 보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보스턴은 양키스와 견원지간이지만, 과거 양키스의 전설 마리아노 리베라와 데릭 지터의 은퇴를 축하해 준 적이 있다. 에이로드에겐 그런 특별한 자리가 마련되지 않았다. 똑같이 금단의 영역에 손을 댄 둘. 하지만 한 명은 수많은 사람에게 인정받는 영웅, 다른 한 명은 모두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안티 히어로가 됐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두 선수 모두 실력에서는 비할 데가 없는 최고의 선수들이다. 에이로드는 현역 선수 누적 홈런 1위, 오티스는 3위에 올라 있다. 굳이 비교하자면 에이로드가 오티스보다 빼어난 업적을 남겼다. 처음 출발선부터 남달랐다. 에이로드는 만 19세에 메이저리그 땅을 밟았다. 역대 세 번째로 40홈런 40도루를 달성했고, 유격수로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50홈런 고지를 돌파했다. 통산 홈런 순위는 베이브 루스의 뒤를 잇는 역대 4위다. 승리 기여도(WAR) 순위는 타자 중 역대 13위에 올라 있다. 숫자로는 역사에 길이 남을 선수다. 결국, 오티스와 에이로드의 처지를 가른 것은 야구도 기록도 아니었다. 잘못도 같이 했다. 흔히 에이로드는 뻔뻔하고 수치를 모르는 악한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지금껏 그의 행동과 처사에서는 이유 모를 부족함과 어설픔이 묻어 나왔다. 오히려 뻔뻔함이 묻어 나오는 쪽은 오티스였다. 오티스는 최근까지도 "왜 금지 약물이 검출됐는지 지금도 모르겠다"는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에이로드는 두 번째 약물 복용으로 거짓말쟁이가 됐다. 그렇지만 그는 뻔뻔하게 성공하지는 못했다. 모든 걸 잘 하려고 했고, 그럴 능력이 있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는 스스로 무너졌고 자기애에 빠졌다는 비판을 받았다. 성공하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지만, 결국 돈만 많이 번, 그의 말대로 야구선수가 아닌 '노동자'이자 실패자로 낙인 찍혔다. 오티스의 생애는 다른 색채를 띠고 있다. 약물에 대한 변명, 과시적인 홈런 세리머니는 다른 팀 팬들이 오티스를 '뻔뻔한 놈' 으로 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분명 그는 다른 팀 팬들에게 '밉상' 으로 불릴 때가 많다. 그러나 같은 편일 때 그 만큼 든든한 동료도 없다. 팀이 비난받을 때 가장 앞장서는 선수가 오티스였다. 또한 보스턴에서 세 번의 월드시리즈 우승에 모두 관여했다. 세 번째 우승을 차지한 2013년에는 보스턴 마라톤 테러가 있었다. 오티스는 경기에 앞서 격한 표현이 섞인 연설로 상처받은 시민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었다. 그는 클럽하우스의 리더이자 보스턴 시민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프랜차이즈 스타가 됐다. 올해 오티스는 원정 경기를 갈 때마다 상대팀 선수들과 기념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다. 그는 분명 10여 년 전 금지 약물 복용으로 동료 선수들의 등에 칼을 꽂았다. 그러나 그 뒤로 10여 년 동안 보인 꾸준함, 노력과 쌓아온 명성이 지금의 추앙받는 그를 만들었다. 에이로드는 위대한 '운동 선수' 였지만 동료와 어울리지 못하는 외톨이, 두 번이나 거짓말을 한 '밉상'이었다. 오티스 역시 거짓말을 했고 이따금 속 좁은 모습을 보였지만, 뛰어난 친화력과 앞장서는 리더십으로 다른 이들의 존중을 샀다. 개인 기록과 팀 우승, 꾸준함, 실력 등에서 모두 모범적이었다. 그러나 '사람'이 달랐고, 그것이 두 사람의 결정적인 차이였다. 두 선수에 대한 인식 차이는 금지 약물을 바라보는 뒤섞인 시선을 대변한다. 오티스가 미국 야구계에서 '착한 약물, 나쁜 약물'이라는 이중 잣대를 들이민다며 비판하는 이도 적지 않다. 타당한 비판이다. 또 한편으로, 둘의 다른 결말은 스포츠가 단순히 숫자만이 남는 냉철한 세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우는 예시이기도 하다. 둘이 만약 비디오게임 속 캐릭터였다면 에이로드는 오티스보다 환영받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포츠는 꿈이 아닌 현실 세계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기록이나 숫자가 아닌 사람이다. 박기태( 비즈볼프로젝트) 지속적인 스포츠 콘텐트 생산을 목표로 하는 젊은 스포츠 연구자들의 모임. 일간스포츠와는 2014년부터 협력 관계다.
2016.08.17 0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