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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가 남다른 박건우, 개막 초반부터 펄펄

"우리 셋 중에 가장 잘하는 선수다." 허경민과 정수빈이 지난해 12월, 원소속구단 두산과 FA(자유계약선수) 계약을 마치고 가진 일간스포츠와 인터뷰에서 '입단 동기' 박건우(31)를 향해 남긴 말이다. 허경민은 "나와 수빈이가 한 발 먼저 FA 계약을 했기 때문에 (박)건우가 더 독하게 야구를 할 것"이라고 했다. 정수빈도 "건우가 가장 좋은 계약 할 것이다. 꼭 두산에 남길 바란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세 선수는 1990년생 동갑내기 친구다. 2008년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열린 제23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대표팀에 발탁되며 인연을 맺었고, 2009 2차 신인 드래프트에서 나란히 두산에 지명된 뒤 12년 동안 동고동락했다. 먼저 FA 자격을 얻은 허경민(7년 최대 85억원)과 정수빈(6년 최대 56억원)은 대형 계약을 따내며 과거 공적과 미래 가치를 인정받은 상황. 박건우에게는 큰 자극제가 될만하다. 박건우는 지난주까지 출전한 7경기 모두 안타를 때려냈다. 타율 0.393(28타수 11안타) 2홈런 6타점을 기록했다. OPS(출루율+장타율)는 1.128. 모두 두산 야수 중 1위 기록이다. 펄펄 날고 있다. 중요한 순간마다 좋은 타격을 했다. 지난 4일 열린 KIA와의 홈 개막전에서는 1-1 동점이었던 8회 말 1사 1·2루에서 상대 투수 장현식을 상대로 역전 우월 스리런 홈런을 때려냈다. 두산은 이 경기에서 4-1로 승리했다. 6일 열린 잠실 삼성전에서는 1-0으로 박빙 승부가 이어지던 4회 말 삼성 선발 백정현으로부터 솔로 홈런을 치며 점수 차를 벌렸다. 박건우는 지난해 주로 1번 타자(432타석)에 포진됐다. 올해는 3번 타자로 나서고 있다. 김태형 두산 감독은 1차 스프링캠프 초반부터 "박건우를 3번이나 5번 타자로 쓰겠다"라고 예고했다. 오재일(삼성)과 최주환(SSG)이 FA 이적하며 생긴 중심 타선의 공격력 저하를 막기 위해서다. 두산 4번 타자 김재환은 지난주까지 부진했다. 박건우가 장타력과 클러치 능력을 두루 선보이며 중심 타선 타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올해는 팀 공격을 이끌어가야 하는 위치에 있다. 그런 박건우에게 두산을 향한 의구심은 '더 잘해야 한다'는 동기 부여로 작용했다. 그는 "시범경기를 치르며 이적한 선수들의 공백을 실감했다. '이전보다 전력이 약해졌다'는 평가도 잘 안다. 자존심은 상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더 열심히 해서 (두산이) 5강 안에 들어가는 게 목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심 타선에 나서는 예년보다 타점을 더 많이 생산하겠다는 목표를 전하기도 했다. 안희수 기자 2021.04.1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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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20년 동행' 정수빈·허경민 "혼자가 아니기에"

"우리가 신년 특집이요? 설마 1면은 아니죠?" (정수빈)"1면 맞아요? 우리, 성공했네요." (허경민) 정수빈(31)과 허경민(31·이상 두산)은 인터뷰하는 동안 '우리', '함께'라는 단어를 자주 썼다. 둘은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주시하고, 미래를 그리는 모든 순간에 '동행'했다. "서로에 대해 너무 좋은 얘기만 하면 재미없지 않겠느냐"며 낯간지러운 대화를 경계한 두 선수. 팀의 미래에 관해 얘기를 나눌 때는 "함께 가는 친구가 있어 다행"이라며 웃었다. 둘의 표정이 어쩐지 비슷했다. 정수빈과 허경민은 고교 졸업반인 2008년 운명처럼 만났다.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열린 제23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대표팀에 발탁되면서 인연이 시작됐다. 두산에서 함께 뛰고 있는 박건우도 마찬가지. 18세 소년들은 그 대회에서 미국을 꺾고 우승하며 기쁨을 만끽했고, 2주 뒤 열린 신인 드래프트에선 나란히 두산의 2차 지명을 받았다. 출발선이 같았던 건 아니다. 정수빈이 비교적 빨리 1군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허경민은 2군에서 인고의 세월을 보냈다. 처한 상황은 달랐지만, 서로를 응원하고 격려하며 함께 그라운드에 서는 날을 머릿속에 그렸다. 2015년을 기점으로 꿈은 현실이 됐다. 정수빈은 외야, 허경민은 내야에서 두산의 왕조 시대를 활짝 열었다. '대박'도 함께했다. 두 선수는 2020시즌이 끝난 뒤 나란히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었다. 다른 구단의 영입 구애가 있었던 것도 비슷했다. 고심 끝에 선택한 건 2009년 프로 기회를 열어준 친정팀 두산이었다. 허경민은 최대 7년, 총액 85억원에 계약했다. 정수빈은 6년 총액 56억원에 도장을 찍었다. 일간스포츠는 2021 스토브리그 주인공이 된 허경민과 정수빈을 만났다. ▶목표는 장기 계약 성공 사례 -FA 계약 직후 '허경민이 귀찮을 정도로 연락을 많이 했다'고 언급했는데.정수빈(이하 정)="기분 좋은 귀찮음이었다. 계약을 고민하고 있을 때 경민이와 계속 연락했다. 집 앞에서 밥을 먹고 있으면 같이 먹자고 연락하더라. 그래서 함께 먹고 그랬다." 허경민(이하 허)="한 번은 혼자 밥 먹고 있는데 수빈이가 오더라. 서로 약속이 돼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이 정도면 너랑 나랑 떨어질 수 없다'고 얘길 했다(웃음)." -둘 다 KBO리그 역사에 남을 장기 계약에 사인했는데.정="6년 이상 장기 계약이 거의 없지 않았나. 그런데 경민이가 두산과 계약(최대 7년)하면서 '구단에서 이 정도로 해줄 수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장기 계약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만 했다. 다른 것보다 경민이랑 함께 야구를 했고, (박)건우랑 셋이서 두산의 원클럽맨으로 남았으면 했다." 허="(동반 FA 잔류로) 함께 하는 건 정말 좋은데 책임감도 생긴다. 우리가 잘하지 않으면 이런 계약이 또 나오기 쉽지 않을 거다. 젊었을 때 FA가 된 선수들이 장기 계약을 따내는 게 어려울 수 있다. 나 혼자라고 생각하면 부담이 클텐데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어서 다행이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고민도 많았을 텐데.정="한화 구단의 오퍼가 있었다. 한화에 가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은 생각도 컸다. 두산은 잘하는 선수들이 워낙 많아서 (나는) 주로 밑에서 받쳐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역할만 했다. 이번 기회에 직접 끌고 가는 역할도 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하면 '야구 커리어도 더 높아지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했다. 그 상황에서 경민이와 많이 대화했고, 결국 생각이 바뀌었다. 두산에서도 좋은 조건을 제시해주셨다." 허="구단이 장기 계약을 제안한 건 그만큼 우리에 대한 믿음이 크다는 뜻으로 판단했다. 수빈이가 말한 '도전'도 충분히 이해됐다. 그 생각이 강하다면 팀을 옮기는 게 괜찮다. 하지만 두산도 선수들이 젊어지는 추세라서 그 도전을 여기(두산)에서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네가 받은 두산 팬들의 사랑은 얼마의 가치가 있을까'라는 얘기도 했다." -어깨가 무거운 계약인데.정="경민이나 나나 본보기가 되고 싶다. 우리는 홈런을 많이 치는 타자가 아니다. 나 같은 경우엔 남들이 봤을 때 (개인) 성적이 특출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홈런이 많거나 타율이 높지 않다는 평가를 인정한다. 하지만 수비를 비롯해서 정말 열심히 했다. 자신의 강점을 보여주면 좋은 결과가 있다는 걸 보여준 거 같다." -FA 계약 이후 달라진 게 있다면,정="마음이 안정됐다. 앞으로 걱정 없이 맘 편하게 야구할 수 있는 환경이 됐다. 심리적인 안정이 크다." 허="특별히 달라진 건 없다. 매 시즌 '조금 더 하자'라는 생각으로 준비했다. 조금 더 잘하고 싶고, 조금 더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 FA 계약은 야구 선수를 마쳤을 때 돌아보면 행복하겠지만, 지금은 치열하게 야구 해야 한다." ▶'에드먼턴 키즈' 비긴스-2008년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이전엔 서로에 대해 잘 몰랐나.허경민="전혀 몰랐다. 대표팀에 소집된 후 인연이 시작됐다. 건우는 딱 봐도 서울 출신었다. 수빈이는 '저런 애가 어떻게 대표팀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머리카락이 짧았다. 유신고에 저런 선수가 있었나 싶었다. 체구는 작은데 정말 잘하더라." 정="난 당시 전국체전 대회를 뛰느라 대표팀 합류가 늦었다. 1차 소집과 2차 소집을 모두 못 갔다. 다른 선수들은 이미 안면을 튼 상태에서 운동하는데 나만 지각 합류했다. 하필 그때 삭발을 하고 있었다. 다들 '얘는 누구지'라고 생각했을 거다. 그때 팀(유신고)이 약체여서 전국대회 나가더라도 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콜드게임도 자주 당했다." -안치홍은 당시 "허경민과 김상수가 라이벌이었다"고 얘기했는데.허="겸손이 아니고 그 친구들은 나보다 기량이 한 단계 위였다. 내가 수비를 잘했다면, 다른 친구들은 공격과 수비에서 월등한 기량을 갖췄다. 평가는 감사하지만, (실력이) 정말 달랐다. 치홍이는 2루수, 상수는 외야수까지 봤다. 야구 센스나 감각이 달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함께했다는 게) 자랑스럽다." -스토리가 많은 대회였는데.(정수빈은 이 대회에서 올스타에 선정됐다) 정="준결승에서 내야 안타를 치고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하다가 손가락이 골절됐다. 다친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다음 경기가 결승전이었다. 이런 경기를 뛰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아서 참고 뛰었다. 결승전까지 다 뛰고 우승까지 했는데 선수들이 우승 세리머니를 할 때 나는 병원에 가서 치료받은 뒤 혼자 방에 있었다(웃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우승의 의미가 있다면.허="그때가 청소년대표팀의 마지막 국제대회 우승 아닌가. 장난으로 '우리가 마지막 우승이 됐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는데 당시 이야기가 나오면 기분이 좋다. 대표팀에 뽑힌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고 자부심을 느꼈다. 잘하는 선수들 틈에서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정="우승하고 프로에 갔다. 대부분 (그 대회를 뛴 선수들이) 잘됐다. 되돌아보면 추억도 정말 많고 벌써 10년이 넘었다는 게 감회가 새롭다. 사실 난 대표팀에 뽑힐 수 없는 조건이었다. 팀이 하위권이어서 운 좋게 뽑혔는데 '흙 속의 진주'였다(웃음)." -대회 우승 후 프로 지명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지 않았나.허="당시 2차 지명을 기다리는 입장이었다. '어떤 팀에 갈까', '대학을 가야 하나'는 생각이 정말 많았던 시기다. 그때 지명받고 서로 축하한다고 개인 SNS(소셜미디어)에 글을 남기고 그랬다." 정="드래프트에 큰 관심이 없었다. 안 뽑혀도 무조건 신고선수(육성선수)로 갈 생각이었다. 운동하고 있는데 2차에 뽑혔다는 얘길 누가 해줬다. 당시에는 '2차 뒷순위에 뽑혀서는 프로에 가더라도 출전 기회를 잡기 어렵다. 차라리 대학을 가라'는 얘기가 많았다. 난 대학 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프로에 가기만 하면 잘할 자신 있었다. 대학에 가면 4년, 군대 2년, 프로 자리 잡는 데 2~3년 걸린다. '야구 좀 하려고 하면 서른 살이 되지 않을까', '못하더라도 프로에서 해보자'고 생각했다." -에드먼턴 대회처럼 큰 경기를 뛴 경험이 프로 무대에서도 영향을 미쳤을까. 정="아무래도 큰 대회 경험이 중요하다. 그런 경험이 쌓이다 보면 (긴장을) 즐길 수 있다. 중요한 경기에서 긴장하고 부담을 느끼는 선수가 있다. 성격에 따라 그걸 즐길 수도 있는 것 같다. 출전 기회를 많지 얻지 못했던 선수들이 오히려 큰 경기에서 잘할 수 있다. 워낙 기대치가 높은 선수들은 잘해야 본전이기 때문에 거기서 오는 부담이 있다." ▶경쟁자, 그리고 동반자 -두산 입단 첫 시즌을 떠올려 본다면.정="나는 입단 첫해부터 1군에 안착했다. 운이 좋았다. 당시 김경문 감독님이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던 것 같다. 마침 기회도 왔다. 주축 선수이셨던 이종욱 선배가 다치신 게 팀의 불행이었지만, 그 상황에서 출전 기회가 많아져 나를 알릴 수 있었다. 타이밍 덕분이었다." 허="나는 1년 차 때 2군에 있었다. 수빈이가 너무 멋있었다. 스무 살 선수가 1군에서 그토록 잘할 수 있다는 게 놀랐다. 더 잘해주길 응원했다. 또래 선수가 1군에서 잘하는 모습은 나에게도 힘이 됐다. 만약 수빈이가 못했다면 '프로의 벽이 그렇게 높은가'라고 생각하며 위축됐을 것 같다." -팀 내 입지가 달라지면 서로 멀어지기도 한다. 정="항상 경민이와 건우에게 '너희는 무조건 나보다 더 잘 된다'고 말했다. 두 친구의 실력이 나보다 월등하다는 것을 잘 알았다. 내가 먼저 1군에 자리 잡았지만, 결국 두 선수가 더 잘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친구 하나가 먼저 앞서가면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내 말이 건방지게 들렸을 수도 있다. 그래도 그때 나는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고 해줬다. 결국 내 말대로 두 친구가 더 잘하지 않나." 허="수빈이가 진짜 그런 말을 해줬다. 격려도 많이 받았다. 무엇보다 매 순간 세 친구가 함께 있었다는 자체가 가장 큰 힘이 됐다. 나는 군 복무 중 휴가를 나왔을 때도 수빈이네 집에서 잤다. (서로 다른 위치에 있었어도) 항상 교감했다." -둘 다 경찰야구단에서 복무했다.(허경민은 2010~11년, 정수빈은 2017~18년)허="수빈이는 까마득한 아래 기수다. 보이지도 않는다. 난 스물한 살 때 막내로 가서 고생 좀 했다. 수빈이는 들어보니까 좀 편안하게 한 것 같다. (전 두산 동료인) 민병헌 형도 내 후임으로 들어왔다. 내가 '교육'을 좀 하면 병헌이 형이 '우린 나가서도 본다'며 핀잔을 줬다. 물론 군 복무를 함께하며 더 친해졌다. 그 시간을 겪으면서 단단해질 수 있었다. 2군 생활을 겪어보지 않은 선수들은 잘 모른다. 늦게 핀 꽃이 오랫동안 지지 않는다." -두 선수의 야구 인생 전환점은 2015년 포스트시즌이 아닐까.(정수빈은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최우수선수에 선정됐다. 허경민은 안타 23개를 때려 단일 포스트시즌 최다 안타 신기록을 세웠다)정="그해 두산이 14년 만에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다. 이후 가을의 강팀으로 거듭났다. 개인적으로도 MVP를 수상했기 때문에 의미가 크다." 허="2015년 포스트시즌은 '두산이 가을 야구에서 잘한다'는 이미지를 야구팬에 심어준 계기가 됐다. 수빈이도 MVP를 수상했다. 그 경력은 은퇴 뒤에도 정말 큰 영광으로 남을 것 같다. 지난 얘기지만, 난 조금 아쉽다. 데일리 MVP에도 선정되지 못했다. 수상하고 싶으면 강하게 어필할 필요도 있다는 걸 느꼈다(웃음)." 정="솔직히 경민이가 포스트시즌에서 A급 활약을 했다. 시리즈 MVP도 경민이로 굳어지는 듯 보였다. 그런데 내가 5차전 7회 말에 3점 홈런을 치면서 (MVP 투표 표심이) 바뀐 것 같다. 'A+'급이 나와버린 거다(웃음)." 허="수빈이는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왼 검지 부상을 당했다. 스토리도 있었다. 평생 남는 (수상) 기록이다. 그때는 '팀이 우승하면 만족한다'고 했지만 돌이켜 보면 진짜 아쉽다. 이제 현역 은퇴까지 단일 포스트시즌 최다 안타 신기록 재경신을 목표로 삼아야 할 것 같다(웃음)." -두산은 왜 강팀인가. 정="모든 선수가 백업부터 시작한다. 주전을 맡은 선배를 보고, 배우고, 그 선배처럼 되기 위해 노력한다. 나이가 들어 주전을 맡았던 선배가 은퇴하면 자연스럽게 그 길을 따라가던 선수가 자리를 물려받는다. 그런 문화가 있다. 경민이는 손시헌 선배, 나는 이종욱 선배를 롤모델로 삼았다. 이제 우리가 (후배들을) 끌고 가야 할 위치다. 후배들이 나와 경민이를 보며 따라와 줄 것이다. 자리도 넘볼 것이다. 이런 선순환이 이어진다면 두산은 더 강해지고, 앞으로도 계속 강팀으로 남을 것이다." 허="2015년 우승할 때, 젊은 선수였던 나와 수빈이가 조금은 (선배들을) 서포트를 했기 때문에 두산이 강팀이 됐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선배들 역할을 우리가 해야 한다. 두산도 (다음 시대를 이끌어갈) 젊은 야수들이 나와야 한다. 우리가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나 혼자라면 힘들 것이다. 그러나 수빈이와 건우가 있기 때문에 큰 힘이 될 것 같다. 안 그래도 요즘 팀의 미래를 위해 얘기를 많이 나눈다." ▶진정한 프랜차이즈 스타의 길-힘든 순간마다 서로에게 힘이 됐을 것 같다.정="건우까지 세 친구가 모두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모여서 밥 먹고, 얘기하고, 가끔 맥주도 한 잔 마신다." 허="그 자리에서 했던 얘기가 있다. '너희가 있어서 외롭지 않다'고. 같이 못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웃음)." 정="맞다. 솔직히 같이 못 하고 있어야 공감대가 형성된다. 잘하는 애는 그냥 웃고만 있을 것이다." 허="두 명이 못하고 한 명이 잘할 때면, 그 한명이 다른 친구의 눈치를 보기도 한다. 잘하든 못하든 서로 위로하지만, 그것보다 같이 못 하고 있을 때 위안을 받은 기억이 더 남는다. 확실한 건 세 친구가 같이 있을 때는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 같다." -서로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정="경민이가 동기 중 가장 리더십이 있다. 실제로 후배들을 가장 잘 이끈다. 조금 더 잘 해줬으면 좋겠다. 나는 내 할 일을 하면서 솔선수범하는 모습으로 후배들에게 귀감을 주려고 한다. 경민이를 열심히 돕겠다." 허="수빈이가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웃음). 앞으로 6년 동안 이전보다 더 서로를 의지하게 될 것 같다. 지칠 때 일으켜주고, 힘들 때 토닥이며 힘이 돼줄 것이다. 6~7년 뒤 '마무리도 잘한 선수'라는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러기 위에서는 일단 수빈이도 좋은 짝을 만났으면 좋겠다. (나처럼) 내조를 받으면서 야구를 하면 더 잘할 것이다. 함께 가족 여행도 가고 싶다. 그런데 둘(정수빈·박건우) 다 짝이 없다(웃음)." -이전과 다른 이미지를 만들고 싶진 않나.정="'잠실 아이돌'이라는 별명이 있다. 여전히 어색하다. 그러나 은퇴한 뒤에도 들으면 영광일 것 같다. 김원형 SK 감독님도 영원한 '어린 왕자'로 통하지 않나. 내가 하던 야구를 은퇴할 때까지 계속 보여주고 싶다." 허="나는 별명보다는 내 이름으로 불리고 싶다. 더 나이가 들면 할 수 없는 것들을 해내는 데 집중하겠다. 신체 능력은 당연히 떨어지게 마련이다. 야구를 가장 잘할 수 있는 나이와 위치에 있는 만큼 더 좋은 타구를 생산해서 더 좋은 기록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 -프랜차이즈 스타가 갖춰야 할 덕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허="프랜차이즈 선수는 한 팀의 이미지다. 은퇴하실 때까지 잡음 없이 훌륭한 기록을 남기신 박용택 선배가 LG의 이미지다. 한 팀에서만 뛰었다고 프랜차이스 스타라는 수식어가 붙을 순 없다. '팬들에게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싶다." 정="같은 생각이다. 박용택 선배처럼 기억에 남는 선수가 돼야 한다. '본인들의 역할을 잘해내며 두산에 헌신한 선수였다'고 인정받는 게 프랜차이스 스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후배들도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이끄는 역할도 해야 한다." 배중현·안희수 기자 2021.01.01 0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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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호 관리+공격력 유지, 키플레이어는 오재원

두산이 유격수 김재호(35)의 체력 관리와 공격력 향상을 위해 2루수 오재원(35)을 활용하는 전략을 세웠다. 주전 유격수 김재호는 최근 경기력이 떨어졌다. 11일 사직 롯데전에서는 실책 2개를 저질렀고, 이는 모두 실점으로 연결됐다. 지난달 17일 잠실 삼성전에 이어 두 번째로 한 경기에서 실책 2개를 범했다. KBO 리그에서 가장 안정감 있는 유격수로 인정받는 김재호의 컨디션이 떨어져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5월 셋째 주 두산 주전 1루수 오재일(34)이 옆구리 부상, 3루수 허경민(30)은 손가락 부상으로 이탈했다. 김재호도 어깨 통증이 있지만, 참고 뛰었다. 통증과 피로가 쌓인 탓에 공격과 수비 모두에서 제 실력이 나오지 않았다. 김태형(53) 두산 감독은 그동안 김재호가 보여준 책임감에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그러나 언제까지 선수의 투지에 의지할 수는 없었다. 김태형 감독은 대안을 만들었다. 주전급 멀티 내야수던 류지혁(26)은 지난달 KIA로 이적한 상황이었다. 류지혁을 대신했던 3년 차 내야수 권민석(21)은 타격 성적이 좋지 못했다. 결국 김태형 감독은 포지션 전환을 시도했다. 김재호가 잠시 휴식기를 가졌던 7월 초, 3루수 허경민을 유격수로 활용했다. 허경민은 12일까지 유격수로서 40이닝을 뛰며 무난한 수비를 했다. 허경민은 광주일고 시절인 2008년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대표팀에 뽑혀 유격수로 뛴 선수다. 그러나 프로 입단 후 대부분을 핫코너에 섰다. 허경민은 최근 세 시즌(2017~2019년) 동안 유격수로 5이닝밖에 소화하지 않았다. 조금 불안정해 보이지만 이번 개편은 두산 내야진의 '플랜B'에 해당한다. 이런 이동이 가능한 건 오재원이 있기 때문이다. 오재원은 주전 2루수 자리를 최주환(32)에게 내준 상황. 주로 교체 선수로 출전하고 있지만, 타격감이 괜찮다. 오재원은 12일 기준으로 99타석에 홈런 5개, 타점 23개를 기록 중이다. 김태형 감독은 그를 외야수로 활용하려는 구상도 했다. 그는 "오재원의 타격감이 좋은데도 경기에 나가지 못하고 있다. 그를 어떻게든 활용해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김태형 감독은 허경민의 유격수 수비가 다른 백업 선수들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있다. 유격수가 안정되면 최주환을 3루수로, 오재원을 2루수로 쓸 수 있다. 김재호가 유격수를 맡는 것과 비교하면 내야 수비력은 떨어지지만, 오재원을 활용하면서 얻는 점도 분명히 있다. 올 시즌 뒤 FA(프리에이전트) 자격을 얻는 허경민으로서도 3루수는 물론 유격수도 맡을 수 있는 '옵션'을 손에 쥔다. 팀과 개인에게 좋은 대안이 마련된 것이다. '화수분 야구'로 표현되는 두산의 선수층은 예년보다 얇아졌다. 그러나 내부 순환을 통해 공백을 메울 여력은 아직 된다. 안희수 기자 An.heesoo@joongang.co.kr 2020.07.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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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스토리] '아픈 손가락'에서 '난세영웅'으로…이건욱이 7년 만에 날아오른다

난세의 영웅. 위기 상황이 발생했을 때 비로소 진가를 드러내는 인물을 뜻한다. SK 7년차 투수 이건욱(25)이 그랬다. 이건욱은 SK의 '아픈 손가락'이었다. 동산고 시절 전국구 에이스로 이름을 날리면서 '초 고교급 투수'로 통했고,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한일전에서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와 맞대결한 적도 있는 특급 유망주였다. 2014년 신인 1차 지명(계약금 2억원)을 받고 SK에 입단하자 팀의 기대도 온통 그에게 쏠렸다. 그러나 데뷔 후 잦은 부상으로 실력을 보여 주지 못한 게 문제였다. 입단 직후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토미존 서저리)을 받았고, 2015년 겨울에는 미국 교육리그에서 발가락 골절상을 입어 다시 재활에 오랜 시간을 매진했다. 지난 2년간은 사회복무요원으로 병역 의무를 해결하면서 새로운 출발을 향한 의지만 곱씹어야 했다. 그런 이건욱에게 올 시즌은 새 희망에 부풀 만했다. 입단 후 처음으로 스프링캠프에서 중도귀국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스케줄을 소화했다. 이건욱은 "이전에는 늘 캠프에서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에 오버페이스를 하곤 했다. 올해는 '꼭 모든 걸 다 보여주지 않아도 되니 끝까지 해보자'는 생각을 했다"며 "무엇보다 최대한 안 다치는 데 신경을 많이 썼다"고 했다. 캠프 룸메이트였던 선배 문승원의 조언은 그런 그에게 깨달음을 안겼다. 지난 2월 미국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서 만난 문승원은 "건욱이를 보면 예전의 나처럼 캠프에서 쫓기는 느낌이더라. 훈련도 너무 많이 하려 하는 모습이 보여서 오히려 훈련을 줄이라는 얘기를 많이 했다"며 "예를 들면 장시간 비행을 하고 미국에 도착했을 때는 몸이 지쳐 있는 상태이니 다음날 최대한 쉬는 게 좋다. 하지만 건욱이는 의욕이 넘쳐서 다음날 바로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려고 하기에 내가 말렸다"고 했다. 휴식일에 방에서 시간을 보낼 때도 마찬가지다. 문승원은 "쉬는 날인데 방에서 자꾸 뭘(운동을) 더 하려고 하는 게 건욱이다. 그래서 불 끄게 하고 최대한 일찍 자게 했다"며 "늘 조기 귀국하던 건욱이가 끝까지 캠프를 할 수 있게 된 건 나랑 방을 쓴 덕분인 것 같다. 그 부분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짐짓 농담했다. 실제로 지금 이건욱은 아픈 데가 없다. 크고 작은 부상으로 지긋지긋한 고생을 해왔던 탓에 그 사실만으로도 자신감이 붙는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마침내 마운드에서도 빛났다. 그는 지난달 28일 잠실 두산전에 외국인 투수 닉 킹엄의 대체 선발로 마운드에 올라 5⅓이닝 3피안타 1실점 호투를 펼쳤다. 5회 2사까지 단 한 명의 타자도 출루시키지 않았을 정도로 위력적인 피칭이었다. 10연패를 간신히 끊은 뒤에도 다시 연패가 이어져 고생하던 SK는 이건욱의 호투와 함께 반등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기대를 뛰어넘고도 남을 역투였다. 무엇보다 데뷔 첫 선발 등판에서 입단 7년 만에 감격적인 프로 첫 승리를 따냈다. 동료들은 승리구를 챙겨 날짜와 장소, 의미를 적어넣은 뒤 선물로 건넸고, 염경엽 SK 감독은 "첫 선발 등판에서 얻어낸 데뷔 첫 승을 축하한다. 이 승리로 건욱이가 자신감을 더 갖게 됐으면 좋겠다"고 덕담했다. 이건욱 스스로에게도 감격적인 순간이다. 그는 "아웃 카운트 하나하나에만 집중하면서 공을 던졌더니, 끝나고 나서 힘이 다 빠지는 것 같았다"며 "프로 첫 승리를 하는 순간을 오랫동안 꿈꿨는데, 막상 현실이 되니 힘들고 아무 생각도 안 들더라"고 웃어 보였다. 고난의 세월이었다. 이겨내야 하는 이건욱과 기다려야 하는 SK 모두에게 힘든 시간이었다. 이건욱은 "그동안 뭘 좀 해보려고만 하면 다치고 아파서 많이 힘들었다. 입단 7년 차인데 실제로 야구를 한 건 2년 밖에 안 되는 것 같다"며 "다른 팀이었다면 이미 포기한 선수였을지도 모르는데, 그런 나를 믿고 기다려 준 SK 팀에 감사한다. 이제 구단에 밥값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털어 놓았다. 물론 앞으로 갈길이 멀다. 킹엄이 복귀하게 되면 이건욱에게 다음 선발 기회가 또 언제 올 지 모르는 일이다. 다음 등판에서 또 이처럼 좋은 피칭을 할 수 있을지도 아직 알 수 없다. 그래도 이건욱은 그저 '아픈 데 없는' 몸 상태를 유지하면서 꾸준히,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마음뿐이다. 그 과정에서 팀의 반등에 힘을 보탤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 그는 "한 경기 이겼다고 또 무리하다 보면 다시 다칠 수 있으니 늘 하던 대로 하겠다"며 "안 다쳐야 계속 경기에 나설 수 있다. 무조건 아프지 않고 오래오래 마운드에 서고 싶다"고 했다. '부상 없는 야구인생'은 모든 프로 선수의 희망이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이건욱이기에 더 큰 간절함이 배어 있다. 배영은 기자 2020.06.01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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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인터뷰] FA 앞둔 두산 허경민 "FA가 아닌 팀이 먼저다"

FA(프리에이전트)는 모두가 실행할 수 있지만, 누구나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대박'에 가깝다. 꾸준하게 선수 생활을 해왔다는 과정과 결과에 대한 일종의 훈장이기도 하다. FA를 앞둔 시즌은 누구나 긴장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허경민(30·두산)은 다르다. 그는 "FA라고 해서 뭘 더 준비하고 그런 건 전혀 없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허경민에게 2020시즌은 어느 해보다 중요하다. 큰 부상 없이 한 시즌을 치른다면 FA 자격 요건을 충족한다. 자유계약으로 잔류 혹은 이적을 선택할 수 있다. 국가대표 출신으로 리그에 흔하지 않은 전문 3루수 자원이라는 걸 고려하면 가치가 낮지 않다. 2019시즌 통합우승을 이끈 주역 중 한 명으로 두산의 화수분 야구를 대표하는 선수다. 허경민은 "알차게 (비시즌을) 잘 보냈다. 시즌이 일찍 끝나서 집에서 쉬다가 12월부터는 이전과 똑같이 스프링캠프 준비를 잘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솔직히 FA라고 해서 뭘 더 준비하고 그런 건 전혀 없다. 올해 엄청난 성적을 거둬서 무조건 대박을 내야겠다는 생각보다 몇 년간 해왔던 걸 해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마음먹고 있다. 시즌 들어가서도 그런 생각으로 경기 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나둘 2008년 캐나다 에드먼턴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우승 멤버들이 FA 계약을 하고 있다. 지난해 김상수가 원소속팀 삼성과 계약 기간 3년, 최대 총액 18억원에 사인했다. 이어 올 시즌에는 안치홍이 KIA를 떠나 롯데와 2+2년 계약에 합의해 팀을 옮겼다. 청소년 대표로 함께 활약했던 허경민은 "제 친구들이 FA로 좋은 계약을 하고 있는데 그 바통이 나한테 왔다고 생각한다. 좋은 친구들이 좋은 계약을 해 박수 쳐주고 싶다"며 "충분히 능력 있는 선수라서 부럽거나 시샘하는 마음은 전혀 없다. 그 친구들이 쌓은 명성에 누가 되지 않도록 나 역시 시즌 잘 치르겠다"고 했다. 개인보다 팀이 먼저다. FA라서 성적에 욕심을 낼 수 있지만, 최대한 자제하려고 한다. 자칫 오버페이스로 연결될 수 있다. 그는 "(FA 선수들이 많이 나오는) 올해가 두산이 우승할 수 있는 찬스라는 기사를 접했다. 한편으로는 FA가 많다고 해서 무조건 우승하는 게 아니라 FA가 아닌 팀을 보고 해야 개인적인 성적도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며 "FA여서 나만 생각하고 싶지 않다. 우리 팀에서 그런 생각으로 시즌을 뛰는 선수가 있다면 (직접) 뭐라고 할 수 없지만, 목표를 잘 상의하겠다. 개인이 아닌 팀이 잘돼야 그 선수의 가치가 올라가는 거다"고 강조했다. FA만큼 욕심이 나는 건 오는 7월 24일 개막하는 도쿄올림픽 출전이다. 지난해 열린 프리미어12에서 태극마크를 달아 도쿄올림픽 출전권 획득에 힘을 보탰다. 올해 정규시즌 동안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대표팀 승선 여부가 판가름난다. 허경민은 "솔직한 마음으로 한 번 더 (대표팀에) 가고 싶다. 국가대표는 욕도 많이 먹는 자리라 부담도 많이 되는데 작년 프리미어12 대회를 다녀오고 나서 '언제 또 이런 기회가 다시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뽑히면 영광스러울 거다. 그렇게 되면 좋은 시나리오대로 가는 거라고 생각한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올림픽에 출전한다면 개인 성적이 나쁘지 않다는 의미고 이는 곧 FA 대형 계약으로 연결될 수 있다. 그가 꿈꾸는 최상의 결과다. 잠실=배중현 기자 bae.junghyune@joongang.co.kr 2020.01.15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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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식의 야구노트] ‘올드 보이’ 추신수는 계속 달린다

2000년 8월 제19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현 18세 야구월드컵)가 열린 캐나다 에드먼턴. 숙소 화장실에서 추신수(당시 18세, 부산고)가 혼자 울고 있었다. 부산고 스승이자 대표팀 고(故) 조성옥 감독이 문을 열고 걱정스럽게 물었다. “신수야, 마이 아프나? 그라믄 이제 안 던져도 된다.” 소년은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아입니더. 괜찮습니더. 결승에서도 던지겠심미더.” 추신수는 미국과 결승전에 선발 등판해 4와 3분의 1이닝 동안 5피안타 2실점으로 호투, 한국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대회 최우수선수(MVP)에 뽑힌 그는 이듬해 메이저리그(MLB)에 진출했다. 추신수는 기자에게 “당시 예선전부터 너무 많이 던졌다. 팔을 들 수 없었고, 통증도 심해서 눈물을 흘렸다. 이건 처음 털어놓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추신수는 운동장을 수십 바퀴 돌다가 구토하던, 그런데도 멈추지 않고 계속 뛰던, 그런 시절을 보냈다. 아픈 걸 정신력으로 극복하는 건 이제 구식이다. 1982년생, 이제 37세인 텍사스 레인저스 추신수는 ‘구시대의 막차’쯤 될 것이다. 미국 팬들은 추(Choo)라는 그의 성(姓)에서 증기기관차 기적 소리를 떠올리며 ‘추추 트레인’이라고 부른다.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한 뒤, 19년째 미 대륙을 누비는 추신수는 23일(한국시각) 열린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원정경기에서 1회 초 결승 솔로홈런(비거리 140.5m)을 터뜨렸다. 시즌 23호. 올 시즌 MLB 통산 1500안타, 1500경기 출전, 200홈런 등 의미 있는 기록을 세운 그는 한 시즌 최다 홈런(2010·15·17년 22개)마저 경신했다. 추신수는 3월 29일 정규시즌 개막전 라인업에서 제외됐다. 상대가 왼손 투수라는 이유였지만, 앞으로 추신수를 주전으로 쓰지 않을 수 있다는 메시지였다. 하지만 변함없이 뛰어난 기량(4월 타율 0.344)을 보여주자, 크리스 우드워드 텍사스 감독은 “내 판단이 틀렸다”고 사과했다. 텍사스가 포스트시즌에서 멀어진 지난달, 우드워드 감독은 “젊은 선수에게 출전 기회를 줘야 한다”며 추신수의 타석을 줄일 거라고 예고했다. 그런데 추신수는 계속 달리고 있다. 다른 선수들의 줄부상 때문이다. 추신수는 규정타석을 채운 텍사스 타자 중 출루율 1위(0.368), 장타율 2위(0.452), 홈런 3위(23개), 타율 3위(0.266), 도루 4위(13개)다. ‘구시대의 막차’는 멈추지 않아도 ‘새 시대의 첫차’는 이미 출발했다. MLB 전체 홈런 1위(50개) 피트 알론소(24·뉴욕 메츠), 내셔널리그 MVP 후보 코디 벨린저(24·LA 다저스), 크리스티안 옐리치(28·밀워키) 등 새로운 스타들이 MLB를 지배하고 있다. 45홈런으로 아메리칸리그 MVP 세 번째 수상이 유력한 마이크 트라우트(28·LA 에인절스)는 베테랑 느낌이다. 송재우 해설위원은 “4~5년 전부터 MLB에 특출한 선수들이 쏟아지고 있다. 타자 전성기가 28세에서 26세 정도로 낮아지는 추세”라며 “39세 넬슨 크루즈(미네소타·40홈런)와 추신수를 제외하면 주요 지표에 30대 중·후반 선수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MLB의 1990년대생들은 이전 세대보다 뛰어난 체격과 재능을 갖췄다. 어릴 때부터 과학적 훈련법을 통해 힘과 기술을 키웠다. 추추트레인이 고속열차 같은 선수들과 동시대를 달리는 비결은 구시대의 성실성과 근성이다. 추신수는 팀의 최고참이 된 지금도 가장 먼저 출근(홈 경기 경우 낮 12시)해 훈련과 분석을 시작한다. 스프링 캠프에서는 20년 가까이 새벽 5시에 출근했다. 출전 기회가 줄어들 거란 말을 들어도 추신수는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 감독이 다른 선수를 쓰고 싶어도 추신수만큼 준비된 선수가 없었다. 그런 이유로 추신수는 올해 팀에서 가장 많은 146경기를 뛰었다. 추신수의 2019년은 그렇게 흘러왔다. 김식 야구팀장 seek@joongang.co.kr 2019.09.25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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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식의 클래식] 기장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를 바라보며

지난 8일 제29회 WBSC 기장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가 막을 내렸다. 한국 대표팀은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호주와의 3,4위전에서 극적인 홈런 한 방으로 유종의 미를 거뒀다.그동안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는 야구 스타가 탄생하는 등용문에 가까웠다. 한국은 미국 뉴악에서 열린 1회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는데 당시 멤버가 선동열(고려대) 조계현(군산상고) 김건우(선린상고) 등이다. 1994년 14회 대회 우승을 달성했을 때는 이승엽(경북고) 박정진(세광고) 김선우(휘문고) 등 투타 멤버가 탄탄했다. 대부분의 선수가 프로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2000년 19회 대회 우승 때도 마찬가지다. 당시 캐나다 애드먼튼에서 열린 대회에서 이대호(경남고) 김태균(북일고) 정근우(부산고) 이동현(경기고) 등이 주축을 이뤘다. 2006년에는 김광현(안산공고) 양현종(광주동성고) 이용찬(장충고) 김선빈(화순고)이 중심이 돼 우승을 손에 넣었다. 한국의 마지막 우승으로 남아 있는 2008년 23회 대회에서는 허경민(광주제일고) 안치홍(서울고) 정수빈(유신고) 박건우(서울고) 김상수(경북고) 등이 팀을 이끌었다.하지만 24회 대회부터 한국은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이후 프로야구를 이끌어갈 대형 스타의 명맥이 끊긴 느낌이다. 2년 전 대회를 통해 강백호(서울고)라는 대형 선수가 발굴됐지만, 복수의 선수가 눈길을 끌었던 이전과 달랐다. 대회 성적과 스타 발굴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쳤다.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는 선수가 이름을 어필할 수 있는 좋은 무대다. 1981년 선동열은 압도적인 모습을 바탕으로 미국의 관심을 받았다. 1994년 김선우도 대회에서의 활약이 미국 진출(보스턴 계약)의 디딤돌이 됐다. 2000년 추신수 역시 대표팀을 우승으로 이끌면서 시애틀과 계약해 미국으로 넘어갔다. 국제대회를 통해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선수가 좀 더 큰 무대로 가는 건 선순환에 가깝다. 물론 해외가 아니더라도 프로야구 유니폼을 입고 좀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도 좋은 현상이다. 최근 끝난 기장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는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대표팀의 성적은 3등으로 앞서 우승을 차지했던 것과 다르다. 하지만 팀 성적과 별개로 기대를 걸어볼 자원이 눈에 꽤 들어왔다. 우선 투수 쪽에선 소형준(유신고)과 최준용(경남고) 장재영(덕수고)이다. 특히 소형준은 공의 회전력도 좋고 공도 빠르더라. 오랜만에 실전 경기에서 시속 147~8km를 찍는 투수를 봤다. 연습 때 아무리 시속 150km를 던져도 실전에서 나오지 않으면 큰 의미가 없다. 체격을 비롯해 모든 면에서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투수다. 소형준과 최준용은 이미 KT와 롯데의 1차 지명을 받았다.타자 쪽에서는 이주형(경남고)과 박주홍(장충고)의 활약이 좋았다. 여기에 키(163cm)는 작아도 빠른 주력을 바탕으로 야구 센스를 유감없이 보여준 김지찬(라온고)도 괜찮았다. 김지찬은 휴스턴의 간판타자 호세 알투베를 연상케 했다. 키가 168cm인 알투베는 아마추어나 마이너리그에 있을 때 체격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몸집을 키워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5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을 때려낼 정도로 파워도 장착했다. 김지찬도 프로에서 담금질을 잘해 알투베 같은 선수로 발전하는 모습을 기대해본다.비록 우승은 놓쳤다. 그렇다고 프로야구를 이끌어날 재목이 없었던 건 아니다. 투타에서 최선을 다한 선수들이 과거 선배들의 뒤를 잇는 큰 선수로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인식 전 국가대표 감독정리=배중현 기자 2019.09.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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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인터뷰] 헐크의 4번 타자에서 투수로…김정후 "내 야구인생은 이제 5회"

두산 투수 김정후(30·개명전 김경근)의 야구인생은 버라이어티 그 자체다. 양현종(KIA) 김광현(SK) 이용찬(두산) 등과 함께 2006년 제22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우승 멤버(당시 포수)지만, 경동고 졸업 후 프로 지명을 받지 못했다. 단국대 졸업 후엔 또 한 번 드래프트에서 미끄러졌다. 가까스로 상무야구단에 들어갔고, 2013년 드래프트에서SK 유니폼을 입었다. 기대가 컸던 선수는 아니다. 지명 순위가 마지막인 10라운드(전체 87순위)였다.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다. 이만수 전 SK 감독은 2013년 시범경기 때 새 얼굴을 발탁하기 위해 한동민·이명기(현 KIA) 김도현(현 두산) 등 경험이 많지 않은 선수 위주로 무한경쟁 시스템을 이어갔다. 당시 김경근이라는 이름으로 시범경기 4번 타자로 그라운드를 밟기도 했다. 이 감독은 빠른 배트 스피드와 타석에서의 적극성에 높은 점수를 줬다. 그해 정규시즌에도 5경기를 뛰었다. 하지만 4타수 무안타 기록을 남기고 1군에서 자취를 감췄다.부상을 이유로 SK를 떠난 김정후는 이름까지 개명하면서 새출발에 대한 의지를 다졌다. 이후 투수로 전향해 일본 사회인야구와 독립리그를 거쳤다. 그리고 테스트를 거쳐 두산 유니폼을 입었다. 교육리그에선 주눅 들지 않고 과감하게 공을 던지면서 코칭스태프 눈도장을 찍었다. 김태형 두산 감독은 21일 시범경기 잠실 한화전이 한파로 취소된 뒤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보는 것보다 공이 (포수 미트에) 더 빠르게 들어온다"고 기대감을 내비쳤다.아직 '투수' 김정후는 미완성이다. 시범경기 2경기에 출전해 평균자책점 9.00을 기록했다. 22일에는 2군으로 이동했다. 막연하게 기회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 그는 "어디에 있더라도 감사한 마음이다.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타자가 아닌 투수로 뛰고 있는데."SK 소속이었던 2014년 2군 스프링캠프 때 왼 어깨를 다쳤다. 중견수와 2루수, 우익수 사이에 떨어지는 바가지 안타가 나오는 상황이었다. 우익수로 슬라이딩 캐치를 하다 어깨가 그라운드에 찍혔다. 극상근 손상에 연골까지 다쳤고, 탈골까지 됐다. 많은 시간을 재활군에서 보낼 수밖에 없었다. 쉽게 낫지 않더라. 타격하면 통증이 계속 왔다. 그래서 타자를 그만뒀다." -SK에서 방출된 건 언제인가."2014년 겨울이다. 그해 1년 내내 재활을 하다가 견디지 못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어깨 상태도 좋지 않았다. 운영팀장 면담에서 '나가서 재활하고 싶다'고 했다." -투수 경험은 있었나."아니다. SK를 나오고 야구를 그만둔 상태로 1년 동안 집에만 있었다. 그러던 중에 고등학교 때 투수코치였던 곽채진 감독(언북중)을 만났는데, '왼 어깨를 다쳤다고 해서 야구가 끝난 것은 아니다. 오른팔은 멀쩡하니까 공을 던져보라'고 하시더라. 그때 구속이 147km까지 나왔다. 이후 일본에 가서 사회인야구부터 독립리그까지 해보라고 에이전트까지 소개해주셨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2016년 3월쯤 일본으로 건너갔고, 사회인야구를 했다. 그리고 점점 자신감을 얻게 됐다." -자신감을 찾은 계기가 있었나."사회인야구팀에 있을 때 외국인 선수가 개인 사정으로 그만둬 공백이 생겼다.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정식경기 선발로 등판했다. 팀에서는 '5이닝만 던지라'고 주문했는데, 9이닝 19탈삼진 완봉승을 거뒀다. 점수가 1-0이었는데, 1점도 내가 친 홈런이었다.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해 11월 일본에서 전국적으로 치러진 독립리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지명(니가타 알비렉스)을 받았다." -독립리그에선 기대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사회인야구에서 1년 정도 투수를 하니까 팔꿈치에 뼛조각이 생기더라. 시즌 개막이 3월이었는데, 재활이 그때까지 다 되지 않았다. 즉시 전력감으로 뽑는 외국인 투수였는데, 공을 못 던진 것이다. 팀에서 '이렇게 되면 우린 못 쓴다'고 해서 귀국했다. 그게 2017년 5월쯤이다. 이후 넥센, LG 그리고 두산에서 테스트를 받았다. 그리고 두산에서 잘 봐주셔서 지난해 계약을 했고, 교육리그를 소화했다." -신인 드래프트 10라운드 지명받았고, 많은 우여곡절도 경험했다. 견딜 수 있었던 원동력은."첫 번째는 부모님이다. SK를 나와 1년을 쉬면서 집에서 폐인 같은 생활을 했다. 개인방송 BJ까지 해봤다. 부모님이 고생하시는데, 용돈이라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여자친구도 힘들 때 날 잘 붙잡아 줬다." -기약 없는 2군 생활을 보낼 수 있다."어디에 있더라도 감사한 마음이다. 일본 독립리그에서 3각 김밥 하나에 물 1.5L를 먹어가면서 야구를 해봤다. 세금 빼면 월급 150만원 정도를 받았는데, 월세 내고 밥 먹고 하면 남는 게 없었다. 한국에 돌아오니까 너무 좋아 살이 찌더라. 감사함을 느낀다. 열심히 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개명을 한 이유가 있나."대학교 때부터 이름이 조금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높은 곳에서 떨어진다고 하더라. SK에서 시범경기 4번 타자도 치고 그랬는데, 실제 비슷한 일이 벌어진 것 같았다. 부모님이 새로운 이름을 알아봐 주셨고, SK에서 방출된 후인 2014년 말에 개명했다." -'타자 김경근'에 대한 미련은 없나."그것 때문에 투수 전환을 늦게 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어깨가 좋으니까 투수하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게 타자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자존심에 타자를 버리기 쉽지 않았다. 지금은 왜 투수를 늦게 했나 후회도 된다." -구속은 어느 정도 나오나."20일 경기(잠실 한화전)에선 149km까지 찍혔다. 지난해에는 151km까지 던져봤다. 변화구로는 슬라이커, 포크볼, 컷패스트볼을 던지는데 주무기는 직구다." -SK 시절 내야 땅볼을 치면 1루까지 전력 질주를 했는데."맞다.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야구를 했다. 내가 이만큼 간절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야구였다. 투수랑 싸워야 하는데, 내 자신과 겨루고 있더라. 전력질주는 양준혁 선배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소중하고 행복했다." -투구폼이 다이나믹한데."오승환 선배 동영상을 정말 많이 봤다. 계속 보니까 따라 하는 것보다 그 선수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더라. 대학교(단국대) 선배다.(웃음)" -김정후의 야구 인생은 지금 몇 회인가."한 5회쯤이 아닐까. 새로 시작하는 클리닝 타임. 투수 나이는 이제 한 살, 처음이다." 잠실=배중현 기자 bae.junghyune@joins.com 2018.03.2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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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투수풍년…'베이징 키즈'가 몰려온다

'베이징 키즈'가 몰려온다.한국 야구에 또 한 번의 황금기를 열어젖힐 유망주들이 프로 입성을 기다리고 있다. 11일 오후 2시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리는 2018 KBO 신인 2차 지명회의가 그 무대다.KBO 리그는 한동안 스타플레이어 기근에 시달렸다. 류현진(LA 다저스)과 오승환(세인트루이스)을 비롯한 특급 선수들이 줄줄이 메이저리그로 떠난 뒤에는 더 심해졌다. 리그 지형을 뒤흔들 만한 새 얼굴조차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신인왕은 대부분 '중고 신인'들의 차지였다. 야구계는 이에 대해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 이후 수많은 체육 인재들이 다 야구가 아닌 축구로 몰렸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올해와 내년은 다르다. 10개 구단이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다. 이미 1순위, 2순위, 3순위까지 리스트업도 끝냈다. 2008 베이징올림픽 전승 금메달과 2009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우승을 목격하고 야구를 시작한 이른바 '베이징 키즈'들이 신인 드래프트에 쏟아지기 때문이다.이들의 위용은 이미 세계 무대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올해 고교 졸업 예정 선수들이 주축이 된 청소년 야구 국가대표팀이 2018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결승에 진출했다.10일(한국시간) 열린 준결승에서 일본을 꺾고 결승에서 세계 최강국 미국과 다시 맞붙게 됐다. 이 대표팀에 참가한 선수 대부분은 11일 오전 캐나다에서 결승전을 마친 뒤 전화나 인터넷을 통해 자신들의 지명 결과를 전해 듣게 된다. [사진=한국 국가대표팀이 10일 2018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준결승에서 일본을 꺾은 뒤 사진을 찍고 있다. / 대한야구협회 제공] 특히 투수 쪽이 풍년이다. 프로 각 구단 스카우트들이 "21세기 최고의 드래프트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입을 모을 정도다. 실체 없는 기대감이 아니다. 올해 고교를 졸업하는 투수 가운데 시속 150㎞대 강속구를 뿌리는 인재가 전국에 10명이 넘는다. 다른 투수들도 이전 3학년 투수들보다 평균 4~5㎞ 정도 구속이 늘었다는 게 중론이다. 서울권 고교와 오른손 정통파 투수 가운데 특급 유망주들이 많이 몰려 있다.이미 2018 신인 1차 지명을 통해 이 같은 분위기가 드러났다. 휘문고 안우진(넥센)과 배명고 곽빈(두산), 유신고 김민(kt), 마산고 김시훈(NC), 선린인터넷고 김영준(LG), 동산고 김정우(SK), 북일고 성시헌(한화)까지 총 7명의 오른손 투수들이 일찌감치 연고 구단 미래의 에이스로 낙점됐다. 모두 프로 수준의 경기 운영 능력을 갖춘 즉시 전력감으로 평가받고 있다. 왼손 투수는 한양대 최채흥(삼성)뿐. 그 외에는 동성고 한준수(KIA)가 포수, 경남고 한동희(롯데)가 내야수였다.1차 지명을 받을 수 있는 선수의 숫자는 매년 10명으로 한정돼 있다. 올해와 같은 '초대박' 드래프트 시장에서는 1차 지명을 받을 만한 실력을 갖추고도 2차 지명에 나온 선수들이 수두룩하다. 당장 덕수고 양창섭과 경기고 박신지, 장충고 성동현은 서울 3순위 지명권을 갖고 있던 LG가 마지막까지 1차 지명 후보에 놓고 고민했던 투수들이다. '왼손 파이어볼러'인 세광고 김유신은 7월 열린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2회전에서 5이닝 동안 아웃 카운트 14개를 삼진으로 잡아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무엇보다도 아예 1차 지명을 받을 수 없던 선수 가운데 '최대어'가 숨어 있다. 서울고 강백호다. 중학교 3학년 때 부천중에서 이수중으로 전학해 1차 지명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러나 일본의 '괴물' 오타니 쇼헤이를 연상시킬 만큼 투타에서 모두 특급 재능을 과시하고 있다. 마운드 위에서는 시속 150㎞ 안팎의 돌직구를 뿌리고, 타석에서는 나무 배트로 고교 3년간 공식 경기에서 두 자릿수 홈런을 쳤다. 용마고 오른손 투수 이승헌도 고교 진학 이후 1년을 유급한 경력 탓에 연고 구단 NC 1차 지명 대상자에서 제외됐다. 195㎝의 큰 키로 역시 시속 150㎞를 넘나드는 빠른공을 던진다.최근 초대 국가대표 전임 사령탑으로 부임한 선동열 감독까지 이미 프로도 아닌 고교 야구 선수들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다. 취임 기자회견에서 "고교 졸업을 앞둔 투수 가운데 좋은 선수들이 꽤 있다고 들었다. 야구 경기를 유심히 지켜보면서 후보를 찾을 생각"이라며 "그 선수들이 프로에 와서 잘 성장해 줬으면 좋겠다"고 바랐다.선 감독은 2020 도쿄올림픽에서 최상의 전력을 구축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올해 고교를 졸업하는 투수들이 프로 입단 3년 차가 되는 해다. 류현진과 김광현(SK)은 입단 2~3년 차부터 국가대표 원투펀치로 활약했다. 올해 졸업 예정자들에게도 그 못지않은 기대를 걸고 있다는 의미다.과연 이들은 프로에서 어떤 유니폼을 입고, 어떤 활약을 하게 될까. 그 윤곽이 마침내 드러난다.배영은 기자 2017.09.11 05:30
야구

'베이징 키즈', 세계 대회서도 명불허전

지난 2000년 8월 13일(한국시간) 캐나다 에드먼턴. 한국과 미국이 맞붙은 제19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결승전.한국이 연장 13회 접전 끝에 우승을 확정하는 순간, 마무리 투수로 등판했던 부산고 추신수가 승리의 함성을 내질렀다. 그러자 1루에 있던 천안북일고 김태균, 2루를 지키던 부산고 정근우, 3루에 버티고 있던 경남고 이대호도 힘차게 마운드로 달려왔다. 한국 프로야구의 태동과 함께 태어난 1982년생 '출범둥이'들이 세계 야구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순간이었다.1982년에 태어난 동기생들은 프로에 온 뒤에도 함께 역사를 썼다. 텍사스 추신수, 세인트루이스 오승환, 시애틀 이대호(현 롯데)까지 메이저리거만 세 명을 배출했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뛴 선수도 세 명이다. 한신 마무리 투수였던 오승환, 오릭스와 소프트뱅크를 거친 이대호, 지바 롯데에서 일본시리즈 우승을 경험한 김태균(현 한화)이다. 정근우 역시 국내 리그를 대표하는 내야수로 맹활약했다. SK에서 FA(프리에이전트) 자격을 얻은 뒤 한화와 4년 70억원에 계약했다. 올 시즌이 끝나면 두 번째 FA가 된다.무엇보다 이들은 한국 야구가 국제 대회에서 맹활약한 2000년대 후반 성인 국가대표팀에서도 따로 또 같이 모여 영광의 발자취를 남겼다. 청소년 대회부터 성인 대회까지, 한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가장 화려한 순간을 함께했다. 실력과 이름값은 물론이고 금전적으로도 가장 풍족했던, 진정한 '황금 세대'였다. 17년이 지난 제28회 대회에서도 한국 야구 역사에 새 장을 열 '슈퍼 베이비'들이 맹활약하고 있다. 올해 고교 졸업 예정자들이 주축을 이룬 한국 청소년 대표팀이 10일(한국시간) 캐나다 선더베이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슈퍼라운드 일본과 3차전에서 6-4로 이겼다. 슈퍼라운드 성적이 4승1패로 결승에 진출해 11일 세계 최강국 미국과 마지막 무대에서 만난다. 미국은 예선에서 한국에 1패를 안긴 유일한 국가다.역대 청소년 대표팀 가운데서도 최상의 전력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은 선수들이다. 투타를 겸업하면서 '한국의 오타니 쇼헤이'로 불리는 서울고 강백호를 비롯해 이미 프로에 1차 지명을 받은 배명고 곽빈과 선린인터넷고 김영준, 2차 지명을 기다리고 있는 덕수고 양창섭, 경북고 배지환, 성남고 하준영, 장충고 최준우 등이 고르게 활약했다.한국은 2000년을 포함해 역대 다섯 차례 이 대회에서 우승했다. 허경민 정수빈 박건우(이상 두산), 오지환(LG), 안치홍(KIA) 등이 활약한 2008년 대회가 마지막 우승이었다. 내년 시즌 프로 입단을 앞둔 '베이징 키즈'들이 그 후 10년 만에 최고의 성과를 보여 주고 있다. 한국 야구의 새로운 르네상스가 임박했다. 배영은 기자 2017.09.11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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