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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②] 김정난 "'신사의 품격', 분량 중요하지 않다는 것 알게 돼"
'SKY 캐슬'처럼 강렬했고 '닥터 프리즈너'처럼 시원했다.배우 김정난은 JTBC 'SKY 캐슬'에 이어 KBS 2TV '닥터 프리즈너'까지 출연한 작품이 연이어 많은 시청자의 사랑을 받았다. 두 작품 모두 포문을 여는 중요한 역할이었다. 'SKY 캐슬'에서는 비극의 시작을, '닥터 프리즈너'에서는 장현성과의 로맨스를 그리며 존재감을 발산했다.연기력만큼이나 입담엔 거침이 없었다. 정해진 60분이라는 시간이 모자랄 지경이었다. KBS 14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해 첫 번째 전성기를 맞은 일부터, 회의를 느끼고 잠시 연예계를 떠났던 일, 그리고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했던 일까지 지금의 김정난을 만든 인생의 희비곡선을 들어봤다.-적은 분량에서 존재감을 뽐내는 비결이 있나."크게 고생하지 않고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어 좋다. (웃음) 대신 고민은 많이 해야 한다. 신이 적기 때문에 주어지는 압박은 더 클 때도 있다. 한 번을 나오더라도 이 신에서는 내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따먹어야 할 신이라고 생각한다. 최대한 매 신 집중하고 해석하려고 한다. 이미지 트레이닝도 하고 경우의 수도 많이 생각해 놓는다. 사실 실패할 수도 있지만 실패를 무릅쓰고 그냥 해보는 거다. 진심이 통하면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실험을 30년 동안 계속 해왔다. 그게 이번에 운 좋게 통한 것 같다." -분량에 대한 욕심이 줄어든 계기가 있다면."내려놓는다는 게 말이 쉽지, 실제로는 쉽지 않다. '신사의 품격'이 들어왔을 때도 비중이 작았다. 1회에 두 신 나왔다. 그런데 마음에 꽂혔다. 두 신밖에 없는데도 눈 감으면 대사가 아른아른하고 연기하는 내 모습이 자꾸 생각났다. 다른 사람이 그걸 하는 게 상상이 안 되고, '내가 해야 한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캐릭터에 반한 거다. 그렇게 되면 분량은 중요하지 않다. '신사의 품격'이 그런 작품이었다. 그때도 분량이 뒤로 갈수록 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분량이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 거다. 지금은 신이 너무 많아도 부담스럽고 힘들 것 같다는 농담도 한다. (웃음)"-내년이면 데뷔 30주년이다. 오랫동안 활동하는 원동력이 있다면."원동력이라기보다 운명이 이끄는 대로 왔다. 이렇게 싱글로, 연기자로 사는 것도 운명이 이끌지 않았나 싶다. 만일 결혼하고 아이가 있었다면 지금처럼 못했을 것 같다. 연기에 대한 열정이나 스스로에 대한 기대가 변하지 않고 그냥 이게 내 길이라는 소신이 있었던 것 같다."-인생의 가장 큰 터닝포인트가 있었다면."첫 변곡점은 중학교 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일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배우가 안됐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미스코리아에 나가라거나 탤런트가 되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어머니가 그럴 때마다 눈에 쌍심지를 켜고 반대했다. 그런데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나니 희한하게 홀리듯이 이 길로 가게 됐다. 운명처럼 이끌렸다. 연극영화과에 진학한 것도 친구랑 담임선생님이 떠밀듯이 해서 원서를 넣었는데 합격했다. 공채 탤런트 시험도 선배들이 넣길래 넣었는데 KBS에 됐다."-신인 때 '내일은 사랑'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그때 첫 번째 전성기를 맞았지만 어릴 때라서 감사함도 몰랐고 즐길 줄도 몰랐다. 몸이 너무 힘들고 지쳤다. 또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몇 년을 치열하게 살다 보니 드라마가 잘돼도 좋은 게 아니라 힘들었다. 그래서 일을 쉬고 다시 학교에 돌아가서 졸업했다. 국군방송 DJ 같은 걸 하면서 돈을 벌었다. 그렇게 2년을 쉬니 일이 끊어지고 바로 잊히더라. 그때 많은 걸 배웠다. 배우는 대중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 대중이 없으면 존재할 이유가 없다는 것. 그래서 내가 너무 감사할 줄 몰랐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과정을 겪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어떻게 다시 시작했나."밑바닥부터 출발했다. 아침 매거진 방송에 리포터부터 했다. 열심히 했더니 그 프로 MC를 맡게 됐다. 2년 동안 매일같이 새벽 4시에 일어나 6시부터 생방송을 했다. 그랬더니 아침드라마가 들어오고 물꼬가 트였다. 그때부터는 연기에 올인했다. 백지에서 다시 시작하는 거였다. 무조건 열심히, 미친 듯이 했다. 단막극도 닥치는 대로 해서 단막극 전문 배우라고 할 정도였다. 그런 과정이 보약이 됐던 것 같다."이아영 기자 lee.ayoung@jtbc.co.kr사진=케이스타엔터테인먼트
2019.06.04 0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