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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도 바둑처럼…수 읽는 골잡이 김대원

“형님들 앞에서 아우 실력 좀 보여줘야죠.” 한국 올림픽 축구대표팀(23세 이하) 공격수 김대원(23·대구FC)의 각오는 당찼다. 인터뷰를 쑥스러워하던 전과는 달라진 모습이었다. 그는 최근 전화 인터뷰에서 “올 시즌 K리그1(1부) 풀타임 주전 2년 차다. 자신감이 붙었다.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태극마크를 달고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국제경기가 어렵자 대한축구협회는 김학범(60) 감독의 올림픽팀과 파울루벤투(51·포르투갈) 감독의 대표팀(A팀) 간 두 차례 평가전을 마련했다. 9일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1차전 결과는 2-2 무승부였다. 1차전은 김대원에게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는 올 1월 태국에서 열린 올림픽 최종예선 겸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에서 주전으로 활약했다. 호주와 준결승전에서 결승골을 넣는 등 우승에 일조했다. 하지만 이번 평가전에서 그는 벤치로 밀렸다. 그의 자리인 왼쪽 공격수로는 송민규(21·포항 스틸러스)가 선발 출전했다. 올림픽팀에 처음 합류한 송민규는 후반 6분 데뷔골을 터뜨렸다. 김대원은 후반 14분에야 송민규와 교체 투입됐다. 30여분간 그라운드를 누볐지만, 공격 포인트는 없었다. 김대원은 12일 같은 장소에서 평가전 2차전에서 실력 발휘를 벼르고 있다. 이번 올림픽팀 소집 전부터 치열한 경쟁이 예상됐다. 김대원은 자신의 강점을 제대로 발휘하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 김대원의 전매 특허는 폭발적인 스피드다. 대구 팬들은 작은 키(1m71㎝)에도 상대를 여유 있게 따돌리는 그를 수퍼 스타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에 빗대 ‘대구 메시’로 부른다. 그는 대구 역습 축구의 중심이다. 김대원이 측면을 휘젓고, 세징야, 데얀, 에드가 등 외국인 선수가 중앙에서 득점 기회를 만든다. 그는 올 시즌 대구가 2년 만에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 복귀하는 데 힘을 보탰다. 그는 올 시즌 리그에서 3골·4도움(24경기)을 기록 중이다. 김대원은 “작은 키를 약점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키 큰 선수가 할 수 없는 빠른 플레이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대원이 빠르기만 한 건 아니다. 바둑에서 수를 읽듯 상대 움직임을 읽고 대처한다. 실제로 김대원은 어린 시절 프로기사를 꿈꿨다. 6세 때 바둑을 시작해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바둑 아카데미를 다녔다. 아마 3단(한국기원)이다. 요즘도 두는 인터넷 바둑에선 5단으로 통한다. 아마추어 초고수급 실력이다. 보인고(서울) 재학 중이던 김대원을 직접 스카우트한 조광래 대구 대표이사는 “앞을 내다보고 플레이한다. 축구 지능이 좋다”고 평가했다. 김대원은 “수비수와 맞붙기 직전, 찰나의 순간에 상대 움직임을 보며 한두 가지 시나리오를 떠올린다. 바둑으로 따지면 수를 읽는 건데, 순간적으로 길이 보일 때가 있다”고 말했다. 평가전인 만큼 2차전 선발은 1차전과 다를 가능성이 크다. 김대원에게 기회가 주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는 “내가 잘할 수 있는 걸 총동원해 골을 넣겠다. 경쟁은 두렵지 않다”고 각오를 밝혔다. 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 2020.10.12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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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K리그가 열렸습니다

최근 한국에서 가장 아팠던 도시. 대구광역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한국을 뒤덮었고, 그 중심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이 대구다. 대구는 한국에서 가장 많은 확진자를 기록했다. 코로나19의 상처가 깊었다. 여기에 대구를 바라보는 부정적 시선에 또 한 번 상처를 받아야 했다. 대구 연고의 사람들을 무조건 꺼리는 '대구 기피증'도 생겼다. 다른 지역의 차가운 시선이 대구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대구를 대표하는 프로축구 K리그 구단 대구 FC의 상처도 그만큼 컸다. 대구 역시 코로나19와 싸워야 했고, 부정적 시선과 싸워야 했다. 대구라는 이유로 K리그 전체에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의식도 강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해지자 대구는 한국프로축구연맹(축구연맹)에 먼저 K리그1(1부리그) 1라운드 연기 요청을 했다. 당초 2월 29일 대구는 홈 구장인 대구 DGB대구은행파크에서 강원 FC와 개막전을 치를 예정이었다. 축구연맹은 이를 받아들여 2월 21일 대구의 개막전 연기를 결정했다. 이를 위한 K리그 대표자 회의가 열렸다. 조광래 대구 대표이사는 참석하지 못했다. 긴급 이사회에도 조 대표는 자리를 하지 못했다. 중요한 사안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대구의 수장으로 왜 참석하고 싶지 않았겠는가. 조 대표는 대구에서 올라온 자신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괜한 오해를 미리 차단한 것이다. 이후 코로나19 사태는 더욱 심각해졌고, 결국 K리그 전체가 무기한 연기됐다. 대구 구단의 리그 준비도 고난의 연속이었다. 선수단은 클럽하우스 밖으로 절대 나가지 못했을 뿐 아니라 연습경기를 꺼리는 분위기로 인해 제대로 된 연습경기 한 번 치르지 못했다. 사실상 고립된 상황에서 대구는 2020시즌을 준비해야 했다. 이후 대구도 조금씩 안정을 찾기 시작했고, 한국은 코로나19 방역 모범국가로 세계적으로 위상을 떨쳤다. 그러자 K리그 개막 희망이 싹트기 시작했고, 지난 4월 24일 K리그는 이사회를 열고 5월 8일 개막을 확정지었다. 경기 일정과 대진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대구는 개막전 원정 경기에 배정되는 것을 제외하고 그 어떤 배려도 받지 못했다. 대구 스스로 홈에서 잘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확신이 반영된 현상이다. 대구가 특별지역으로 배려를 받을 필요도 없었고, 또 대구로 인해 다른 팀들이 피해보는 것도 싫었다. 대구는 시즌을 시작했다. 지난 9일 인천 유나이티드 원정에서 0-0 무승부를 기록했다. 그리고 16일. 올 시즌 첫 홈 경기를 치렀다. 장소는 '대팍(DGB대구은행파크)', 상대는 포항 스틸러스였다. '대팍'은 지난 시즌 K리그의 얼굴이었다. K리그에 새로운 문화를 심은 뜨거운 장소다. 지난해 개장한 대팍은 흥행 돌풍을 일으키며 K리그의 새로운 트렌드가 됐다. 평균 1만734명을 기록하며 FC 서울, 전북 현대에 이은 흥행 3위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전년대비 무려 305.1% 상승했다. 성적도 구단 역대 최고인 5위를 기록했다. 2020시즌 가장 기대받는 구단과 구장은 그래서 대구와 대팍이었다. 무관중 경기. 평균 1만 관중은 없었지만 대구 팬들의 마음은 함께 했다. 대팍에는 대구 팬들이 직접 소원, 응원 메시지 등을 쓴 깃발 1만개가 관중석을 아름답게 채웠다. 경기가 없는 날 팬들이 직접 경기장을 찾아 꽂은 것이기에 더 큰 의미를 담았다. 이런 진심을 받은 대구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 뛰었고, 치열함 끝에 포항과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조 대표는 리그 개막 전 본지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주변에서 많은 응원을 받고 있다. 힘을 내야지. 힘을 내서 이겨내야지. 대구 시민, 대구 선수, 대구 직원 모두 힘을 함쳐, 똘똘 뭉쳐서 극복해 내겠다. 선수들과 직원들에게도 이렇게 항상 말하고 있다. 대구가 하루빨리 안정되기를 바란다." 조 대표의 바람대로 됐다. 대구의 홈 경기 개최는 곧 대구라는 도시가 상처를 딛고 일어났다는 상징적인 메시지다. 또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순간이다. 이제 대구도 다른 도시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일상을 되찾았다. 2020시즌 초반부터 대구는 다시 한 번 K리그에 깊은 울림을 줬다. 최용재 기자 choi.yongjae@joins.com 2020.05.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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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훈의 축구·공·감] 텅 빈 관중석을 다시 함성으로 채우려면

“요즘 서울에 코로나 때문에 난리가 났다 쿠데. 마, 대구는 인자 숨 좀 쉬는데.” 두 달 만에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12일 대구에서 만난 조광래(66) 대구FC 대표이사는 마주 앉자마자 서울 분위기부터 물었다. 구단 프런트도 “이태원 클럽에서 퍼진 바이러스 때문에 대구 사람들이 요즘 서울 걱정을 많이 한다”며 거들었다. 두 달 전만 해도 상황은 정반대였다. 3월 중순 조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대구에 내려가서 인터뷰 좀 하고 싶다”고 말하자, 수화기 너머로 새어 나오던 그의 한숨 소리가 똑똑히 기억난다. 당시 그는 “여긴 당분간 오지 않는 게 좋겠다. 언젠가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그때 보자”며 전화를 끊었다. 대구FC는 K리그 팀 가운데 가장 힘든 봄을 보낸 팀이다. 올 초 대구-경북 지역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급속히 확산하면서, 선수단은 자의 반 타의 반 클럽하우스에 갇힌 채 사실상의 자가격리 생활을 했다. 프런트도 마찬가지다. 다른 지역 출장을 최소화하는 등 두문불출했다. 조 대표는 “1월에 중국 쿤밍에서 진행한 전지훈련을 조기 종료하고 돌아온 이후로는 줄곧 대구에만 머물렀다. ‘혹시나’하는 마음에 K리그 개막 전까지 단 한 번도 서울에 다녀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5월의 대구는 달랐다. 가는 곳마다 사람과 자동차로 넘쳐났고, 활기가 가득했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시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마스크를 쓰(거나 걸치)고 있었다. 택시기사 신태용 씨는 “코로나를 극복한 건 대구시민들이 정부 방역 지침을 철저히 따랐기 때문이다. 한때 우울한 분위기로 가득하던 때도 있었지만, 이젠 비로소 도시가 제대로 돌아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둘러본 장소 중 적막감이 감도는 곳은 대구 홈구장인 DGB대구은행파크 뿐이었다. 16일 열리는 포항 스틸러스와 올 시즌 홈 개막전을 앞두고 그라운드 주변 정돈 작업이 한창이었다. 매끈하게 잘 관리된 푸른 빛의 그라운드가 보기만 해도 반가웠지만, 경기 당일에도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K리그는 당분간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무관중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대구는 지난해 19차례 홈 경기에서 평균 관중 1만734명을 기록했다. 초대권이나 할인권 없이, ‘제값 내고 들어온’ 관중만으로 쌓아 올린 수치다. 대구 선수단은 홈 관중석(1만2000석)의 89.5%가 들어찬 가운데 홈팬이 쏟아내는 함성과 진동을 고스란히 느끼며 뛰었다. 축구계 안팎에서 ‘K리그 속 유럽축구’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이처럼 뜨거운 분위기를 아는 대구 선수와 팬에게 ‘무관중’ 경기는 아쉽기만 하다. 서울 이태원 클럽 발 코로나19 확산 소식을 접한 조 대표는 “아직은 때가 아닌갑네”라며 고개를 저었다. 내심 프로스포츠에 대한 정부의 관중석 단계적 개방 지침에 기대를 걸었는데, 바이러스 재확산으로 관련 논의가 중단됐기 때문이다. ‘만원 관중 앞에서 신바람 축구를 보여주겠다’던 대구 관계자의 바람은 또다시 기약 없는 기다림이 되고 마는 모양새다. 코로나19 사태는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바꿔놓았다. 또 사태가 길어지면서 ‘협력’, ‘배려’, ‘인내’ 등의 키워드에 점점 무감각해지는 분위기도 있다. 하지만 지난 몇 달간의 대구가, 또 최근 며칠간의 서울이 분명하게 보여줬다. K리그의 텅 빈 관중석을 다시 채울 마법의 키워드가 뭔지 말이다. 송지훈 축구팀장 milkyman@joongang.co.kr 2020.05.14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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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첫 1면 at IS]①손흥민, '함부르크의 신'이라 불린 사나이

'스타'의 시작은 언론이다. 신문의 1면은 그 시대를 상징하는 스타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장소다. 1면의 첫 등장. 스타로 향하는 과정이 시작됐음을 세상에 알리는 메시지다. 'Messi's first day at MARCA' 82년 된 스페인 유력지 '마르카'가 최근 게재한 기사다. 지난 20년 동안 지면에 실린 기사를 분석한 뒤, 세계 최고의 스타가 된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를 마르카가 '처음으로' 소개한 날을 기념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51년의 역사를 가진 스포츠지 일간스포츠도 특별기획을 준비했다. 한국에서 등장한 '메시의 사례'를 소개한다. 2010년부터 2020년까지, 10년 동안 '생애 첫 1면'을 장식한 축구 스타 이야기다.〈편집자 주〉 2010년 겨울. 당시 한국 축구의 1면은 박지성이 도배하던 시대였다. 잉글랜드 최고의 명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은 한국 축구 팬들의 자긍심이었다. 그리고 유럽에서 활약하는 이들이 간혹 1면에 모습을 드러냈다. 프랑스 AS 모나코의 박주영, 잉글랜드 볼턴의 이청용 그리고 스코틀랜드 셀틱의 기성용까지 한국 축구의 중심으로 자리를 잡았다. 또 당시에는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이 열려 연일 금메달 소식이 전해졌다. 때문에 축구에 대한 관심과 이슈가 크지 않았다. 그런데 이때 18세 소년의 소식이 일간스포츠 1면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정확히 2010년 11월 22일 월요일 자 1면. "해트트릭 못해 화난다"라는 헤드라인의 기사가 실렸다. 누가? 박지성? 박주영? 아니었다. 해트트릭을 놓쳐서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이는 손흥민이었다. 부제로 '함부르크 18세 손흥민 2골, 조광래 감독 앞에서 득점쇼'라고 붙었다. 당시 박지성이 도움을 기록했고, 이청용이 골을 넣었지만 1면에서 밀어낸 손흥민의 기세. 한국 축구의 새로운 스타 탄생을 알리는 기사였다. 전문에서 언급했듯 손흥민이 스타로 향하는 과정이 시작됐음을 세상에 알리는 메시지다. 2008년 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 유소년 팀에 입단한 손흥민은 2010년 6월 1군에 합류했고, 10월 1군 데뷔전을 치렀다. 2골을 넣은 경기는 11월 21일 독일 하노버 AWD 아레나에서 열린 독일 분데스리가 13라운드 하노버와 원정 경기였다. 손흥민은 선발 풀타임을 소화하면서 전반 40분, 후반 9분 연속골을 터뜨렸다. 팀은 2-3으로 패했지만 손흥민의 멀티골 활약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4경기 출전해 3골을 넣은 흐름이 매서웠다. 세계적 공격수였던 팀 동료 뤼트 판 니스텔로이에 이어 팀 내 득점 순위 2위. 분데스리가 데뷔 4경기 만에 1면을 장식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기사에서는 "1992년 태어난 손흥민은 박지성보다 열 한 살이나 어리다. 한국에 있었다면 수능을 봐야 하는 나이다. 그 어린 나이에 독일 분데스리가를 호령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한국 축구 전설들의 18세 때와 비교하는 박스 기사도 실었다. 차범근·황선홍·박지성·이천수·박주영 등 스타들과 18세 시절을 비교했고, 결론은 손흥민의 승리. "18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는 활약이다. 역대 한국 축구의 18세 선수 가운데 국제 무대에서 가장 눈부신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해도 절대 과장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 헤딩골을 설명하면서 "아버지 손웅정 씨에게 어릴 때부터 배워온 기술이 빛을 발했다"며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 감독의 이야기도 꺼냈다. 함부르크 팬들의 반응도 소개했다. "아직 18세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손흥민은 함부르크의 신이다" 등 팬들은 손흥민에 대한 찬사를 멈추지 않았다. 경기 후 손흥민의 인터뷰를 들어보자. 손흥민은 화가 나 있었다. "다 잡은 기회를 놓쳤다. 데뷔골을 넣은 퀼른과 경기 때처럼 기쁘지 않다. 내가 2골을 넣었지만 승점을 얻지 못했다. 해트트릭을 했어야 했다. 정말 화가난다." 1면 헤드라인에 사용한 멘트다. 손흥민은 후반 34분 회심의 슈팅이 골포스트를 맞았다. 해트트릭 기회를 놓쳤고, 팀도 졌다. 팀을 우선 생각하는 그의 마음.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전문가들의 평가도 소개됐다. 김호 전 수원 삼성 감독은 "18세 어린 나이에 큰 무대에서 주눅들지 않고 2골을 뽑아낸 건 대단한 일이다. 불과 1년 만에 팀에서 자리를 꿰차면서 자기가 가진 것을 꺼내 보일 수 있다는 건 쉽지 않다"고 높게 평가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이광종 청소년대표팀 감독 등은 "(손)흥민이의 남다른 강점은 발목이다. 단단하고 유연한 발목을 이용한 슛은 임팩트가 강하고 정확하다. 2골 대단하다"며 청소년대표팀 애제자에게 애정을 드러냈다. 2골을 넣은 경기장에는 조광래 A대표팀 감독이 있었다. 조 감독은 2011 카타르 아시안컵을 앞두고 손흥민을 점검하기 위해 독일로 갔다. 조 감독은 "손흥민은 2014 브라질월드컵 때 대표팀의 주전이 될 선수다. 외국에서 계속 뛰면서 경험을 쌓으면 최고의 선수도 될 수 있다. 대표팀에서 관심을 보이면 구단에서도 더 배려하게 된다"고 말한 뒤 독일로 건너갔다. 조 감독이 보는 앞에서 손흥민은 2골을 폭발시켰다. 사실상 대표팀 발탁을 확정지은 2골이었다. 실제로 조 감독은 손흥민을 최초로 A대표팀에 발탁했고, 아시안컵에 함께 갔다. 손흥민은 C조 3차전 인도전에서 1골을 넣으며 팀의 4-1 승리에 공헌했는데, 이 골이 손흥민의 A매치 데뷔골이다. 대표팀 에이스의 출발점이었다. 최용재 기자 choi.yongjae@joins.com 2020.03.2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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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래 대표 인터뷰]"대구 시민·대구 선수·대구 직원 모두 힘을 합쳐 극복하겠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한국을 뒤덮은 가운데 가장 큰 피해를 보고있는 지역은 대구광역시다. 신천지교회 사태로 인해 기하급수적으로 코로나19 확진자들이 늘어났고, 25일 오전 9시 기준으로 전체 확진자 893명 중 대구가 499명으로 가장 많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이제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대구시는 시민들에게 외출 자제, 이동 자제 등을 요청하며 확산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구의 파장은 대구를 연고로하는 프로스포츠 구단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국 프로축구 K리그 개막을 앞둔 상황에서 K리그1(1부리그) 인기팀 대구 FC가 직격탄을 맞았다. 대구는 오는 29일 강원 FC와 홈 개막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개막전이 연기됐다. 이어 대구 지역 코로나19 확진자 확산으로 인해 역사상 처음으로 K리그 일정 전체가 잠정 연기됐다. K리그 모든 클럽과 팬들이 아쉬운 상황. 대구는 특히 그렇다. 지난 시즌 K리그 최고 흥행팀으로 우뚝 선 대구였기 때문이다. 지난해 개장한 대구의 홈구장인 DGB 대구은행파크는 흥행 돌풍을 일으키며 K리그의 새로운 트렌드가 됐다. 평균 1만734명을 기록하며 FC 서울, 전북 현대에 이은 흥행 3위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전년대비 무려 305.1% 상승했다. 이런 흐름을 2020시즌에도 이어가고자 대구는 엄청난 노력을 쏟아부었다. 더욱 기대감이 높아진 대구의 첫 경기였다. 홈 개막전에 많은 공을 들였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역습으로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지금 대구의 상황은 어떨까. 어떻게 이를 극복할 준비를 하고 있을까. 25일 조광래 대구 대표이사와 어렵게 연락이 닿았다. 조 대표는 "대구는 코로나19로 인해 정신이 없다. 워낙 전화가 많이 오고, 나 역시 전화 받기도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축구인 조광래. 그렇지만 그에게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당황스럽고 혼란스럽다. 조 대표는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나 뿐만 아니라 모두가 처음이다. 대구의 상황에 걱정이 많다. 대구시가 시민들에게 이동을 자제하라고 요청을 한 상황이다. 그래서 대구 직원, 선수단 모두 일체 움직이지 않고 있다. 나 역시 움직이지 못한다. 밖에 나가지도 못해 계속 사무실에 있다. 이런 일은 정말 처음이다. 언제 끝날 지 모르니 걱정이 앞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의 대표자 회의 그리고 긴급 이사회 때도 조 대표는 참석하지 못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것이다. 자신으로 인해 괜한 오해를 사는 것도 미리 차단했다. 조 대표는 "연맹에서 회의할 때도 서울로 올라가지 못한다고 양해를 구했다. 혹시나 대구에서 올라온 나 때문에 오해가 생길 수도 있고, 나로 인해 불편한 느낌을 가지는 이도 있을 것 같아서였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대구의 홈 개막전 연기와 K리그 전체 일정 연기를 오히려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그는 "홈 개막전 연기는 대구가 연맹에 공식적으로 공문을 보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축구 경기를 할 수 있겠나. K리그 전체 일정 연기도 마찬가지다. 지금 상황에서는 전체적으로 다 미루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축구 경기도 상황이 안정이 되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엄청난 공을 들인 홈 개막전의 연기. 조 대표는 아쉽지 않다. 홈 개막전은 다시 준비하면 된다. 그 전에 대구의 상황이 빨리 안정되기를 바랄 뿐이다. 조 대표는 "홈 개막전 준비는 많이 했다. 하지만 아쉬움 이전에 걱정이 앞선다. 솔직이 지금은 아쉬움도 없다. 대구 시민들이 고통 받고 있는 상황을 생각하면 빨리 안정을 찾는 것이 최우선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구의 홈 경기를 하지 않는 게 맞다고 판단을 했다"고 설명했다. 더 큰 사태를 막기 위해 대구 선수 관리를 철저히 하고 있다. 코칭스태프, 대구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조 대표는 "다른 지역도 아니고 대구에서 확진자들이 많이 나오고 있어 걱정이 많다. 선수들은 클럽하우스에 있다. 밖으로 절대 나가지 못한다. 이 안에서 훈련 등 모든 것을 소화하고 있다. 매일 열체크, 몸상태 등을 철저히 하고 있다. 클럽하우스 입구에는 열화상 카메라를 구입해서 설치해 놨다. 마스크도 충분히 구매해 놓은 상태다. 이곳으로 들어오는 손님들도 모두 체크하고 있다. 대구 클럽하우스나 사무실 등에 방문하려는 이들에게는 최대한 진정국면에 접어들 때까지 자제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조 대표는 희망을 제시했다. 많은 이들이 대구시와 대구 구단을 응원하고 있다. 조 대표는 "주변에서 많은 응원을 받고 있다. 힘을 내야지. 힘을 내서 이겨내야지. 대구 시민, 대구 선수, 대구 직원 모두 힘을 함쳐, 똘똘 뭉쳐서 극복해 내겠다. 선수들과 직원들에게도 이렇게 항상 말하고 있다. 대구가 하루빨리 안정되기를 바란다"고 간절함을 표현했다. 최용재 기자 choi.yongjae@joins.com 2020.02.26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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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판 다이크 꿈꾸는 정태욱 "환호받는 태클이 골보다 더 짜릿하다"

"홈 팬들이 제 플레이를 보며 열광할 수 있게 막고 태클하고, 기회가 오면 골까지 넣겠습니다. '달구벌 판 다이크'로 불리는 날이 오도록 할 거예요."프로축구 대구 FC 수비수 정태욱(22)은 오랜만에 웃었다. 정태욱은 지난 8일 대구 포레스트 아레나(DGB대구은행파크)에서 열린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F조 5차전 멜버른 빅토리(호주)와 홈경기에서 팀 승리를 확정하는 쐐기골을 박았다. 1-0으로 앞서던 후반 8분 강윤구의 코너킥을 194cm의 정태욱이 훌쩍 날아올라 헤딩슛으로 연결했다. 멜버른 골키퍼가 가까스로 막아 낸 볼이 재차 그의 앞에 떨어지자 오른발슛으로 침착하게 골 망을 갈랐다. 프로 1호 골. 기세가 오른 대구는 김대원(후반 35분) 정선호(후반 38분)가 추가골을 터뜨리며 4-0 대승을 거뒀다. 경기 전까지 조 3위였던 대구는 이날 승리로 승점 9점을 기록하며 2위로 올라섰다. 대구는 오는 22일 광저우 에버그란데(중국·승점 7)와 조별리그 최종 6차전에서 비기기만 해도 각 조 1·2위가 진출하는 16강에 오른다. 같은 조 1위 산프레체 히로시마(일본·승점 12)는 16강을 조기 예약했다. 이튿날인 9일 대구 삼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정태욱은 "평소 훈련에서 자주 연습했던 약속된 플레이였다. 경기 전 안드레 감독님이 (강)윤구 형에게 코너킥 상황에서 내 머리를 겨냥하라고 하셨는데, 운 좋게도 실제로 골을 넣을 수 있어서 기분 좋았다"라면서 "마침 어머니께서 경기를 보러 오셨는데, 어버이날을 맞아 좋은 선물해 드릴 수 있어서 뿌듯했다. 윤구 형과 감독님에게 감사하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연령대별 대표팀을 거치며 한국 축구를 이끌어 갈 차세대 중앙수비수로 꼽히던 정태욱은 프로 데뷔 시즌인 작년까지만 해도 '미운 오리'였다. 제주 유스 출신인 그는 구단의 대대적 홍보 속에 제주 유나이티드 유니폼을 입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그라운드에 서는 날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의 2018년 기록은 리그 5경기 출전이 전부였다. 그마저 대부분 교체 투입이었다. 제공권은 좋지만 발이 느려 팀 전술에 맞지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 정태욱은 "기대를 많이 했던 만큼 실망도 컸다"면서도 "몸이 안 좋은 게 아니기 때문에 차라리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시간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정태욱은 하루에도 두세 차례 웨이트트레이닝장으로 향해 근육량을 늘렸다. 저녁 시간에는 서귀포 시내를 뛰며 지구력을 키웠다. 스피드를 더 끌어올리기 위해 작은 보폭으로 뛰며 속도를 끌어올리는 연습을 했다. 꾸준한 노력 덕분에 2018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축구대표팀에 승선해 금메달도 목에 걸었다. 대구에서 그는 백조로 거듭났다. 조광래 대구 대표는 늘 준비된 자세로 기다리던 정태욱의 가능성을 알아봤다. 조 대표는 "아시안게임 대표팀 스승인 김학범 감독에게 정태욱에 대해 물어봤더니 '정말 좋은 선수다. 스피드도 갖춘 선수라서 잘 성장하면 팀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라면서 "김 감독의 얘기를 듣고 딱 우리팀에 필요한 선수라는 생각이 들어서 곧바로 영입을 추진했다"고 말했다. 대구는 올해 1월 정우재를 내주는 트레이드를 통해 정태욱을 데려왔다.AFC 챔피언스리그와 정규 리그 그리고 FA컵까지 병행하는 대구에서 기회는 빨리 찾아왔다. 지난달 17일 수원 FC와 FA컵 32강전에서 첫 출전 기회를 얻은 정태욱은 이후부터 주전 수비수 자리를 꿰찼다. 리그 경기만 벌써 네 차례 뛰었다. 정태욱은 "작년에 경기를 거의 못 뛰어서 대구에선 기회가 오면 반드시 잡겠다고 다짐했다"라면서 "감독님께서 기회를 주신 첫 경기에서 실수 없이 뛴 덕분이다. 제주에서 보낸 1년이 큰 도움이 됐다"라고 말하며 웃었다. 정태욱은 평소에는 상대 공격수를 막는 게 임무다. 하지만 세트피스나 팀이 뒤지는 상황에서는 공격수 같은 역할을 한다. 장신에서 나오는 가공할 제공권이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또래보다 키(166cm)가 컸던 안양초 6학년 때부터 헤딩 연습을 꾸준히 해 온 그는 헤딩 하나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당당한 체격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았다. 스키선수 출신 아버지 정연호(54)씨는 184cm, 아이스하키 선수 출신 어머니 황청윤(50)씨는 172cm다.대구에서도 헤딩 능력을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정태욱은 훈련이 끝난 뒤에도 코칭스태프의 도움을 받아 크로스 상황에서 헤딩골을 넣는 연습을 4세트(세트당 8회) 마친 뒤에야 샤워장으로 향한다. 올 시즌만 해도 수원 FC와 FA컵 그리고 지난달 23일 산프레체 히로시마(일본)와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4차전 등 두 차례나 최전방에 섰다. 멜버른을 상대로는 프로 데뷔골까지 넣으며 '수트라이커(수비수+스트라이커)'의 면모를 과시했다. 정태욱은 "올 시즌 타점이 더 높아지고 정확해졌다"라면서 "수비수라서 그런지 골을 넣으면 무척 짜릿하다. 나도 모르는 킬러 본능이 잠재돼 있는 것 같다"라고 말하며 웃었다. 정태욱의 롤모델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최고 수비수로 꼽히는 버질 판 다이크(리버풀)다. 193cm에 92kg인 판 다이크와 체격은 물론이고 골 감각까지 닮았다. 그는 매일 판 다이크의 경기 영상을 보며 공부한다고 했다. 정태욱은 "아직은 멀었다. 하지만 영상을 보며 많이 배우고 있다"라면서 "득점력은 물론이고 탄탄한 수비력까지 빼놓지 않고 눈에 담으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나도 대구의 판 다이크로 불리는 날이 오길 바란다"고 덧붙였다.정태욱은 팀의 간판스타 김대원·정승원과 1997년생 동갑내기다. 그는 "시즌 초반 승원이와 대원이가 맹활약하는 모습을 보고 부러웠다"면서도 "동시에 큰 자극이 됐다. 서로 힘이 되는 친구들"이라고 말했다. 그라운드 밖 정태욱은 평범한 20대다. 쉴 때는 극장을 찾아 어벤져스 시리즈를 보고, PC방에서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를 즐긴다. 탕수육은 최고의 힐링 푸드. 그는 이광수와 박보영의 광팬이기도 하다. 두 배우가 나온 영화와 프로그램은 모두 챙겨 보는 편이다. 꿈은 태극마크를 다는 것. 정태욱은 "팀에서 꾸준히 좋은 활약을 하다 보면 언젠가 (손)흥민이 형과 함께 뛰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날카로운 태클'과 '멋진 골' 중 어느 쪽이 떠 짜릿하냐고 물었다. 답은 간단했다."수비수는 태클이죠. 아무리 멋진 골도 완벽한 태클에 비할 순 없어요. 팬들이 제 태클을 보고 환호해 주실 때 살아 있다는 걸 느끼거든요. 그렇다고 골을 포기하는 건 아니고요.(웃음)" 대구=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 2019.05.1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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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전 ‘슛돌이’ 이강인, 발렌시아 1군 되어 날았다

“어릴 때부터 축구 실력이 어른 못지않았다. 마치 성인 축구선수를 축소해 놓은 것 같았다.” 프로축구 전남 드래곤즈 유상철(47) 감독은 2007년 TV 예능프로그램인 ‘날아라 슛돌이’에 감독으로 출연할 당시 ‘축구 천재’ 이강인(17·발렌시아)을 만났던 장면을 이렇게 회상했다. 당시 유 감독은 만 6세였던 이강인과 아크 부근에서 골대 맞히기 내기를 했다. 유 감독은 두 번 중 한 번만 성공시킨 데 비해 꼬마 이강인은 왼발킥으로 두번 모두 크로스바를 맞히면서 유 감독에게 굴욕을 안겼다. 유 감독은 “강인이는 왼발 킥, 드리블 등 내가 가르치는 걸 스펀지처럼 쏙쏙 빨아들였다”고 말했다. 당시 해설을 맡았던 한준희 위원은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처럼 또래들 5명을 제치면서 ‘메시 놀이’를 했다. 원래 ‘날아라 슛돌이’는 1대50으로 질 정도로 약체팀이었는데, 이강인이 가세한 뒤엔 반대로 50대1로 이기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그로부터 꼭 11년이 흘렀다. 이강인은 그의 이름처럼 ‘강인’하게 잘 자랐다. 이강인은 24일 스페인 프로축구 명문 발렌시아CF에서 1군 데뷔전을 치렀다. 스위스에서 열린 로잔 스포르(스위스 1부리그팀)와 프리시즌 경기에 전반 23분 교체 출전했다. 정규 시즌 경기는 아니었지만 이강인은 전반 34분 상대 선수 2명을 따돌린 뒤 빨랫줄 같은 왼발슛을 날리기도 했다. 비록 공은 왼쪽 골대를 살짝 비껴갔지만 이강인의 잠재력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발렌시아는 이날 0-0으로 비겼다. 경기가 끝난 뒤 발렌시아 구단은 홈페이지에 “이강인은 구단 역사상 최초로 1군에 오른 아시아 선수다. 1군 데뷔전이 아니라고 느껴질 만큼 환상적인 플레이를 선보였다”고 소개했다. 스페인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인터뷰에 응한 이강인은 유창한 스페인어로 “발렌시아 1군에 데뷔하는 게 꿈이었다. 이제 그 꿈을 이루게 돼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2001년 인천에서 태어난 이강인은 태권도 사범이자 축구광인 아버지 이운성씨 밑에서 자랐다. 2011년 발렌시아에 입단한 이강인은 어린 나이에도 텃세와 인종차별을 극복하며 쑥쑥 자랐다. 가족들도 스페인으로 건너가 다른 직업을 구해 뒷바라지 했다. 이강인은 2013년 12월 블루 BBVA 국제대회에선 득점왕(4골)에 올랐다. 그의 활약을 지켜본 스페인 대표 출신 공격수 로베르토 솔다도는 소셜미디어에 ‘10번 선수 누구냐. 정말 끝내준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자 대표팀 동료였던 산티아고 카니자레스는 ‘아들에게 들었다. 이강인이란 선수래’라는 답변을 남겼다. 한준희 해설위원은 “한국 축구엔 과거 조광래·윤정환·고종수 등 어시스트에 능한 찬스 메이커가 있었다. 공격형 미드필더 이강인은 스페인 대표 출신 사비처럼 경기 전체를 조율하는 능력뿐만 아니라 이니에스타처럼 뛰어난 발재간까지 지녔다. 아직 어린 선수지만 스타일은 ‘사비에스타(사비+이니에스타)’ 같다”고 평가했다. 유럽에서 활동 중인 한 축구 에이전트는 “스페인 학부모들은 국제대회에 출전한 12세 이하 한국 선수들을 보면 ‘메시 같다’ 며 깜짝 놀란다. 하지만 한국 선수들은 대부분 거기서 더이상 발전이 없다. 중·고교를 거치며 기량이 정체되는 경우가 많다”며 “이강인은 스페인 유스시스템 알레빈(10~11세)에서 공을 차면서 기존의 한국 선수들과는 다른 돌연변이로 성장했다. 스피드는 다소 떨어지지만, 기술만 놓고 보면 스페인 선수를 연상시킨다”고 말했다. 이강인은 지난 5월 19세 이하(U-19) 한국 대표팀 소속으로 프랑스 툴롱컵에 출전, 2골을 터트렸다. 키가 1m73cm인 그는 서너살 많은 선수들을 상대하면서도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왼발 터닝슛과 왼발 프리킥으로 득점을 올렸다. U-19 대표팀 관계자는 “막내인 강인이는 어린이처럼 형들과 장난을 많이 친다. 그러나 경기장 안에 들어가면 눈빛이 완전히 달라진다. 책임감이 강하고, 집중력도 대단하다”고 전했다. 이강인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한 스페인 축구협회는 3년 전부터 스페인으로 귀화를 추진한 사실도 최근 알려졌다. 그러나 이강인 본인은 귀화 의사가 전혀 없다고 밝혔다. 일부 축구 팬들은 다음 달 18일 개막하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이강인이 대표선수로 뽑히지 않은 데 대해 불만을 터트리기도 했다. 이강인은 이미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 잉글랜드 맨체스터 시티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 그러자 발렌시아는 ‘이강인 지키기’에 나섰다. 지난 21일 이강인과 2022년까지 재계약하면서 8000만 유로(약 1058억원)의 바이아웃 조항을 내걸었다. 바이아웃은 계약이 남은 선수를 데려갈 때 지불해야 하는 최소한의 이적료를 말한다. 즉, 이강인을 스카우트하려면 1000억원 이상을 발렌시아 구단에 지불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만큼 발렌시아가 이강인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 것이다. 이강인은 발렌시아 1군팀 소속으로 스위스 프리시즌에 참가 중이다. 마르셀리노 가르시아 토랄 감독이 에인트호번(네덜란드), 에버턴(잉글랜드) 등과 경기에 이강인을 또 다시 투입할 수도 있다. 엠블럼에 박쥐가 새겨진 ‘박쥐군단’ 발렌시아는 다비드 비야, 다비드 실바 등을 배출한 명문 구단이다. 지난 시즌 스페인 리그 4위에 올랐다. 이강인이 2018~19시즌 1군에 깜짝 발탁된다면 중앙 미드필더 파레호, 조프리 콘도그비아의 백업 역할을 맡을 수도 있다. 손흥민(26·토트넘)도 18세 때 독일 함부르크 1군에서 데뷔골을 터트리면서 월드클래스로 성장했다. ■ 슛돌이가 이렇게 잘 자랐습니다 「 2001 인천에서 태권도 사범의 아들로 태어나 2007 ‘날아라 슛돌이’ 출연해 축구 천재로 주목 2011 스페인 발렌시아 유스팀 입단 2015 스페인축구협회서 귀화 추진(2018년 본인 거절) 2018 5월 U-19 축구대표로 툴롱컵 2골 2018 7월21일 발렌시아와 2022년까지 재계약 (바이아웃 1058억원) 2018 7월25일 아시아인 최초 발렌시아 1군 경기 출전 」 온라인 일간스포츠 2018.07.26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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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붐-배철수 단독인터뷰]"라디오계의 '차붐'이고 싶어요, 추천곡 My Way"

'두 거장'이 만났다.한 명은 한국 축구의 위대한 '전설' 차범근(65)이다. 또 다른 한 명은 한국 음악의 '선구자' 배철수(65)다.1970년대와 80년대 한국의 불모지였던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해 최고의 외국인 선수라는 찬사를 받았던 '발의 거장' 차붐, 락밴드 송골매 기타리스트로 한국 음악계에 획기적인 파란을 주도했던 '손의 거장' 배철수.동갑내기인 두 거장은 지난 달 17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첫 만남을 가졌다. 축구장은 축구 경기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락콘서트가 열리는 장소이기도 하다. 둘 모두에게 의미가 깊은 무대였다.서로 다른 분야의 전설들이 왜 마주했을까.'축구'라는 공통분모가 이들의 만남을 성사시켰다. 배철수는 이미 알려진 대로 '축구광'이다. 축구에 대한 해박한 지식도 자랑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차붐의 열렬한 팬이다.차붐에게도 배철수는 동경의 대상이다. 특히 국내 최장수 팝 전문 라디오 프로그램인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배철수는 차붐에 대한 숱한 이야기를 털어놨다. 차붐을 위해 배철수가 차붐의 편에 서서 대신 분개하고 싸워줬다. 차붐은 이에 대한 고마움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감사함을 표현할 수 있는 자리를 기다려왔고 이번에 성사된 것이다.두 거장은 오다가다 마주친 적은 있지만 직접 대화를 나눈 것은 처음이다.차붐이 "생일이 어떻게 되세요?"라고 묻자 배철수는 "제가 3달 느립니다"라고 답했다. 차붐은 5월 22일, 배철수는 8월 18일생이다.차붐이 "동안이세요"라고 하니 배철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생각해요. 제가 군대를 갔다 와서 데뷔를 했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은 바로 데뷔한 줄 알아요. 저를 그냥 3개월 동생으로 해주세요. 하하"라고 호탕하게 웃었다.둘의 통성명이 끝나자 인터뷰 질문지는 따로 필요 없었다. 두 거장은 인터뷰라는 것을 잊은 듯 그동안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오랜 동갑내기 친구를 만난 느낌이었다. 축구 이야기로 시작해 인생 이야기로 그리고 서로를 향한 존경심까지 표현했다. 마지막에는 사회의 존경받는 어른으로서 고통 받는 지금의 청춘들에게 조언도 던졌다.3시간 가까이 나눈 두 거장의 뜨거웠던 대화를 소개한다. ◇우정의 시작 "차 감독님은 나를 당연히 모르셨을 것이다. 나만의 짝사랑이었다."배철수가 차붐을 향해 고백한 말이다.둘의 첫 만남은 고등학교 시절로 올라간다. 경희고에서 음악을 하던 배철수는 경신고 축구부 슈퍼스타 차붐의 경기를 보고 빠져버렸다. 배철수(이하 배) : 저는 감독님을 고 1때부터 알았어요. 제가 경희고를 나왔거든요. 저희 학교도 축구를 잘했단 말이죠. 경신고랑 결승에서 만날 때도 있었어요.차범근(이하 차) : 맞아요. 그때 경희고도 정말 잘했지요.배 : 경신고랑 축구 경기를 하는데 모두가 '저기 빠른 애는 누구야?'라고 깜짝 놀랐죠. 애들이 쟤는 청소년 대표라고 말해 주더군요. 그 빠른 애가 차 감독님이었습니다.차 : 그때는 제가 빨랐었죠. 하하.배 :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했을 때 한국에서 TV로 많이 봤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한국 축구를 보다 분데스리가를 보니 너무 스피디했어요. 그래서 방송국에서 필름을 빨리 돌린다고 했어요. 그걸 또 믿었죠. 하하.차 : 배철수 씨도 대학가요제 상도 타시고, 늘 관심이 있었어요. 아내가 음대를 나와 더 관심이 많았어요. 음악은 어떤 분야에도 다 연결이 돼 있는 것 같아요. 독일 진출 초반에는 여유가 없어 음악을 잘 듣진 못했지만 적응한 뒤에는 많이 들었죠. 아침에 일어나면 항상 음악을 들었어요. 음악은 사람을 차분하게 만들어줍니다. 긴장해 있는 선수들은 빠른 음악을 들으면 안 됐어요. 클래식을 좋아하고 대중가요도 자주 들었습니다.송골매 음악을 좋아했냐는 질문에 차붐은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자 배철수는 "왜 그런 곤란한 질문을 하고 그래요"라며 질문을 막아 나섰다.◇축구라는 공통분모 "축구는 잘 못하지만 애호가로서 오래 봐왔습니다. 보는 축구는 내가 전문가 수준입니다. 하하."축구라는 주제로 나눈 대화에서도 배철수가 차붐과 당당히(?) 맞설 수 있었던 이유다. 해박한 축구 지식에 차붐도 놀라는 눈치였다. 자연스럽게 두 축구 전문가의 심도 깊은 의견이 오갔다. 차 : 축구를 잘 하신다고 들었어요. 연예인 축구단에서도 활약을 했지요?배 : 축구를 너무 좋아했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 축구부에 들어갔어요. 거기서 잘 했으면 축구 선수가 됐을 텐데 그러지 못했죠. 고교 때부터 시간만 나면 축구를 했어요. 대학에서도 군대에서도 체육대회를 하면 무조건 축구를 했죠. 차붐처럼 빠른 것은 아니었지만 날렵했어요. 제가 공을 몰고 가면 상대가 못 쫓아오고 그랬어요. 연예인 축구단도 했는데 꽤 열심히 했어요. 80년대 중반 최백호, 이문세, 주병진 등과 함께 앵무새 축구단에서 활동했죠. 연예계 최강 팀이었어요. 2002년에는 월드컵 성공을 기원하면서 전국을 돌면서 경기를 했고, 포항축구전용구장에서 시합도 해봤어요. 하지만 지금은 은퇴했습니다.차 : 배철수 씨를 보면 요한 크루이프가 생각나네요. 하하. 크루이프가 날렵한 스타일이에요. 저도 축구는 이제 안 해요. 축구를 하면 자꾸 다쳐서 못 해요.배 : 저는 데니스 베르캄프를 좋아했어요. 아스널 때 전성기였죠. 그래서 아스널도 좋아해요.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현장에서 두 번 봤는데 한 번은 아스널과 퀸즈 파크 레인저스 경기였어요. 당시 박주영 선수가 아스널에 있을 때죠. 경기에는 나오지 않았어요. 또 한 번은 맨체스터 시티와 퀸즈 파크 레인저스 경기였어요. 프리미어리그를 보면 3골 넣었는데 악착같이 더 해서 5골을 넣더라고요. 그만 좀 넣지, 이건 너무 심하지 않나 생각이 들었어요. 하하.차 : 브라질월드컵에서 독일은 브라질에 7골을 넣었잖아요. 그렇게 하는 것이 축구죠.배 : 한국 축구 특히 K리그가 인기가 없어요. 우리 애가 K리그 한 번 보고 싶다고 해서 몇 년 전에 경기장을 한 번 갔어요. 그런데 왜 이렇게 수비만 할까요. 양팀 통틀어 유효슈팅이 각팀 당 1개씩 하고 0-0으로 끝났어요. 애 보기가 창피했죠. 애도 집에 가면서 정말 재미없다고 말하더군요.차 : 분명 문제가 있죠. 골키퍼가 공을 잡으면 빨리 던져서 경기를 시작해야 합니다. 골키퍼 코치들을 만나면 다 이런 이야기를 해요. 그런데 경기에서는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이기는 데만 너무 신경을 쓰다 보니. 물론 승리가 중요하죠. 그러나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것이 있어요. 빠른 경기, 깨끗한 경기가 필요해요. 세계 축구 흐름에 따라가야 합니다. 한국 대표팀도 그렇게 바뀌고 있어요. K리그 팀들도 그렇게 가야만 합니다.배 : 요즘 선수들은 차 감독님 현역 시절처럼 열심히 뛰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차두리도 열심히 뛰어서 팬들이 다 좋아하는 거잖아요.차 : 선수 수준이 높건 낮건 최선을 다해 뛴다면 감동이 옵니다. 월드컵을 봐야 감동이 오는 게 아니죠. 어떤 경기라도 최선을 다하는 게 보이면 팬들은 운동장으로 오게 돼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선수는 죽어라 열심히 뛰어야 합니다. 그 다음이 감독의 전술이죠.배 : 저는 스포츠의 교육적 문제를 방송에서 얘기를 많이 했어요. 요즘 학교에서 국영수 하느라 예체능을 없앤다고 해요. 이게 무슨 짓이냐고 화를 냈어요. 제 생각에는 국영수보다 예체능이 더 중요합니다.차 : 한국은 생활 체육을 많이 시켜야 합니다. 독일은 직장이고 학교고 다 체육이 생활화 돼 있어요. 한국은 엘리트만 체육을 하죠. 선진 사회, 좋은 사회는 공정하고 깨끗한 사회입니다. 이런 삶 속에는 스포츠가 있어요. 스포츠는 룰이 있어요. 페어플레이가 녹아 있죠. 스포츠가 생활화 돼 있으면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방해를 하지 않으려 합니다. 상대를 배려하게 됩니다. 또 스포츠를 통해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걸 배우게 되죠.◇1998 프랑스월드컵의 상처 배철수는 조심스럽게 1998 프랑스월드컵 이야기를 꺼냈다.배철수가 방송에서 격분했던 내용이다. 차붐이 감독 지휘봉을 잡았던 프랑스월드컵은 가장 큰 아픔 중 하나다. 대회 도중 경질됐다. 차붐은 배철수를 향해 20년 전 아픔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놨다. J-PHOTO DB배 : 1998년 프랑스월드컵은 제가 방송에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부끄러운 사건이었습니다. 정말 미개한 국가도 아니고. 대회 중간에 감독을 경질하다니요.차 :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배 : 저 혼자 격분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었고. 정말 너무 부끄럽더라고요.시간이 지났으니 조심스럽게 물어보겠습니다. 그때 경질 통보를 받았을 때 어떠셨나요.차 : 중압감이 있었죠. 프랑스로 가기 전부터 기류들이 있었어요. 월드컵 전에 호주랑 경기를 했는데 0-2로 졌어요. 최종엔트리를 구상하기 위한 실험 무대였죠. 그런데 어느 한 신문 기자가 경질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어요. 한 달 뒤에 홈에서 일본을 이겨서 분위기를 반전시키는가 했는데 중국과 평가전에서 (황)선홍이가 다쳤어요. 선홍이는 우리의 에이스였죠.배 : 아 그 중국 수비수... J-PHOTO DB차 : 선홍이를 놓고 갈 수 없었어요. 상황을 봐야 하니까. 경과를 보니 사실 뛸 수 없었던 상태였어요. 이런 상황에서 선홍이가 뛸 수 있는데 안 뛰는 것처럼 보도가 나왔어요. 진통제를 맞으면 뛸 수 있다는 인터뷰도 나오고. 상황이 와전됐고, 첫 경기 멕시코전에 지니까 바로 해임설이 돌았어요. 다음 경기 네덜란드전에서 지니까 바로 그렇게 됐어요.배 : 솔직히 네덜란드는 실력차가 많이 나는 팀이었죠.차 : 이전 대표팀 감독 제의를 2번 거절하고 더 이상 거절하지 못해 승낙한 거였어요. 열심히 해서 본선까지 올려놨는데 안타깝기는 했죠. 하지만 한편으로는 많은 괴롭힘을 받았고 막상 그렇게 되니 약간은 후련했어요. 그 무거운 책임을 안 져도 되니까. 나 스스로 사퇴는 못하겠다고 했어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다고 했어요. 나를 그만두게 하려면 당신들이 해임을 시키라고 했죠. 더욱 화가 난 건 나 이후에 조광래를 그렇게 경질시킨 겁니다. 나 하나로 만족하지 못하고 또 그런 사례를 만든 거죠. 외국인 감독에게는 관대한 경우가 많았어요.배 : 외국인 감독 중에서도 거스 히딩크 감독만 성과를 낸 것 아닌가요.차 : 히딩크 감독도 월드컵 전에 계속 지니까 나보고 계속 해임해야 한다는 인터뷰를 해달라고 요청이 왔어요. 난 그렇게 못한다고 했어요. 때에 따라서는 처방이 될 수는 있지만 모든 것을 다 해임으로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배 : 2006 독일월드컵에서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었어요. 차두리를 독일월드컵에 안 데려 간 것이죠. 독일 현지에서 뛰고 있는 선수를 뽑지 않다니. 제가 차두리 스타일을 좋아해요. 제 축구 스타일이 차두리와 비슷합니다. 하하.차 : 방송에서 (차)두리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고 들었어요. 부모 마음은 어쩔 수가 없나봐요. 제 아들 변호를 배철수 씨가 많이 해주니 정말 감사하더라고요. 두리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요.차두리 이야기를 할 즈음 차두리가 인터뷰 장소에 모습을 드러냈다. 차두리 역시 배철수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전하기 위해 방문했다. 차두리는 "예전에 뵌 적이 있지만 뜻 깊은 자리라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라고 정중히 악수를 건넸다. ◇서로를 향한 존경 차붐은 분데스리가에서 98골을 넣으며 최고의 외국인 선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더욱 대단한 기록이 분데스리가에서 뛰며 퇴장을 단 한 번도 당하지 않았다. 옐로카드 1장이 전부다.배철수는 1990년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시작한 뒤 무려 28년을 이어오고 있다. 100% 출장 기록이다. 지각 한 번 없었다. 한국 팝 음악 최장수 프로그램이다.찬사가 아깝지 않은 두 전설의 행보다. 배 : 분데스리가에서 오래 선수 생활을 했는데 퇴장은 없고 경고 한 장을 받았다는 사실에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이것만 봐도 차범근이 얼마나 깨끗한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차 : 나 정말 페어한 사람이야. 하하. 상대를 해코지 하는 건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배철수 씨도 라디오를 오랫동안 하셨어요.배 : 다른 재능이 많았다면 이것저것 했을 텐데 재능이 이것(라디오 DJ)밖에 없어서 이거라도 잘 하자는 마음이었어요. 직장생활이죠. 28년째입니다. 8년 정도 했을 때 10년 까지만 하고 외국에 나가서 살다오려고 했어요. 20년 때도 그만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지금까지 왔어요. 지각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제 자신한테 놀라운 것은 28년 동안 아파서 못 나온 적도 없다는 거죠.차 : (허리를 굽혀 악수를 청하면서) 저의 10년 경고 한 장과 비교도 안 될 정도입니다.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네요. 철저한 자기 관리가 없다면 그렇게 못 합니다.배 : 따로 몸관리 하는 것은 없습니다. 저는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방송 때문에 자제하는 건 아닌데 군대에서 전역한 후 마시지 않게 됐습니다. 제 몸에는 알코올을 분해하는 요소가 없는 것 같습니다.차 : 저도 술을 잘 먹지 않습니다. 선수 시절에는 운동 때문에 못 먹었고, 지금은 와인 한 두 잔 정도 즐깁니다.배 : 저는 원래 인터뷰를 잘 하지 않습니다. 할 이야기도 별로 없고요. 라디오에서 말을 할 수 있는 시간이 2시간이나 있는데 굳이 다른 매체에 가서 인터뷰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차 감독님과 함께 하는 인터뷰라 응하게 됐어요. 워낙 차 감독님을 좋아했습니다. 축구인으로서 행보도 좋아했어요. 정말 나이스한 분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늘 제가 짝사랑 하고 있었죠. 전 '라디오계의 차범근'이고 싶어요.◇차붐을 위한 음악 마이 웨이 팝 전문가 배철수가 차붐에게 추천해줄 곡이 있을까. 배철수는 "음악은 내가 좋아하는 음익이 최고입니다. 누가 추천해 주는 것이 아니라 우선 내가 좋아해야 합니다"라고 고개를 저었다.그렇다면 차붐의 현역시절 하이라이트 영상을 만든다면. 어떤 배경 음악이 가장 잘 어울리까. 배철수는 고민 없이 한 곡을 선택했다. 배 : 차붐 정도면 프랑크 시나트라의 마이 웨이를 깔아야죠. 이 음악은 아무에게나 어울리지 않습니다. 이곳저곳 왔다 갔다 한 사람은 안 됩니다. 진짜 외길만 간 분들에게만 마이 웨이가 어울립니다.차 : 배철수 씨도 마이 웨이가 어울립니다.배 : 저는 아닙니다. 평범한 학생이었는데 가요제를 나갔더니 갑자기 상을 주더군요. 또 방송에 불려 다니다보니 노래가 히트가 됐어요. 내가 원하지 않는 삶을 80년 대 내내 살았던 것 같아요. 음악적 재능이 없는데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차 : 재능이 없는데 상도 받나요?배 : 대학가요제 때 신선한 노래가 나와서 반응이 있었던 겁니다. 제가 재능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닙니다. 90년부터 라디오 방송을 하게 됐는데 너무나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그때 마지막 앨범을 내고 음악을 끝냈어요. 이후로는 방송만 했어요.차 : 저도 선수생활이 90년대 끝났어요. 그게 그거 아닌가요. 하하.◇청춘들에게 고하다 차붐과 배철수는 축구와 음악이라는 분야의 거장이다. 그리고 분야를 떠나 사회적으로 존경 받는 어른이다. 그들이 청춘이었던 시절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최고의 인물이 됐다. 그들에게 지금 최악의 환경에서 고통 받고 있는 청춘들에게 조언을 부탁했다.두 거장은 "청춘들에게 미안하다"라는 말부터 꺼냈다. 차 : 요즘 젊은 사람들이 굉장히 힘들어 합니다. 나이 든 사람으로서 미안하고 부끄러울 때가 많아요. 배철수 씨를 보고 청춘들이 무언가 느꼈으면 좋겠어요. 28년 방송을 하셨어요. 한 분야에서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젊은 사람들에게 조명이 될 만한 일이죠. 어떤 방법으로든지 우리 젊은이들에게 좋은 영향과 자극, 또 도전이 될 수 있는 삶을 사신 것 같습니다.배 : 감독님과 저는 동갑입니다. 어떨 땐 나이 먹은 것이 부끄러울 때가 있어요. 젊은이들이 존경할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나이가 들면서 현명해지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아요. 차 감독님이 그런 분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칼럼 쓰신 것도 봤는데 정말 생각이 바르고 상식적인 분이었어요.차 : 나이가 들어가는 사람들이 욕심을 많이 버려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요. 젊은 사람들이 보고 따라갈 만한 어른들이 많이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배철수 씨와 같은 훌륭하신 분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실제로 젊은 사람들과 소통을 많이 하시니까 젊은이들이 많이 따라올 것입니다.배 : 저 역시 젊은 사람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많이 듭니다. 지금 사회 시스템은 기성세대가 다 만든 겁니다. 하루아침에 바꿀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전 젊은 친구들을 만나면 이렇게 얘기를 해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면 대가가 올 것이다. 대가가 나오지 않으면 네 잘못이 아니다. 그렇게 만들어주지 못한 사회와 국가와 어른들 잘못이니 네가 괴로워할 이유가 없다'고. 사회와 국가가 바람직한 쪽으로 변해가야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최용재·김연지·피주영 기자 2018.02.05 10:00
축구

[조광래 대표 인터뷰] ‘강원과 비교?’…“대구는 틀리지 않았다. 다를 뿐”

"요즘 왜 그렇게 나에게 강원에 대해 묻는지 모르겠다."조광래(62) 대구 FC 대표이사가 최근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강원 FC다. 2016시즌 K리그 챌린지(2부리그)에서 클래식(1부리그)으로 승격한 두 팀이 정반대 행보를 걷고 있기 때문이다. 강원은 폭풍 영입을 하고 있다. 이근호(31)를 시작으로 MVP 정조국(32)까지 품었다. 반면 대구는 조용하다. 임대 신분이었던 세징야(27·브라질)를 완전 이적시킨 것과 함께 김현성(23), 김선민(25), 한희훈(26)을 새롭게 영입했다. '빅네임'은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조 대표에게 질문이 쏟아지는 것이다. '강원은 저렇게 돈을 쓰는데 대구는왜 투자를 하지 않느냐'는 질문이 핵심이다. 28일 본지와 인터뷰를 한 조 대표는 이 질문에 여유롭게 웃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강원과 대구의 철학과 방향이 다를뿐이다. 조 대표는 화려함이 아닌 내실 다지기를 선택했다.조 대표는 "강원 내부 사정을 정확히 모른다. 재정적인 힘이 갖춰졌을 때 빅네임 선수를 영입하는 것도 구단을 운영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강원이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며 "대구 역시 재정적으로 풍부하다면 좋은 선수들을 영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조 대표는 냉정하게 대구의 현실을 파악했다."대구의 목표는 정확하다. 1부리그 잔류다. 지금 전력으로 조직력을 더 갖춘다면 1부에 잔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클래식에 맞는 수준 높은 훈련을 하면서 내실을 더 다질 것이다. 조직력이 좋으면 팀은 강해진다. 레스터 시티도 비싼 선수들을 가지고 우승을 한 것이 아니다."조 대표 역시 비싼 선수 영입 유혹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그는 "클래식을 위해 욕심을 부렸다면 더 많은 선수를 영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이유는 내년 한 시즌이 아니라 앞으로 몇 십 년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축구전용구장을 짓고 있다. 클럽하우스도 만들고 있다. 올해 유소년축구센터가 완공돼 운영하고 있다. 대구가 오랫동안 체계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많은 돈이 들어간다. 당장 선수 영입 욕심을 부리기보다 프로팀으로서 완벽한 모습을 갖추는 것이 먼저다."조 대표는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는 강팀을 만들기 위한 기초 투자를 먼저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구는 2018년 개장을 목표로 최근 대구시민운동장을 1만2000석 규모의 축구전용구장으로 리모델링 하고 있다. 클럽하우스도 함께 만들고 있다. 그래서 경기력적인 목표도 외부 선수 영입이 아닌 내부 선수 성장에 초점을 맞췄다."클래식에서 1년만 버틴다면 선수들의 경험이 성장 동력이 될 것이다. 대구 선수단 대부분 연령층이 어리다. 시간이 갈수록 힘을 얻고 강해질 수 있는 선수들이다. 다음 시즌을 앞두고 더 이상의 선수 영입은 없을 것으로 본다."그러면서 조 대표는 유소년 육성과 투자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유소년이 곧 팀의 미래라는 게 그의 철학이다.이제 그가 주목하는 것은 선수에 대한 대우다. 대구는 2016시즌 챌린지에서 기업 구단인 부산아이파크 다음으로 많은 선수 연봉을 썼다. 부산이 35억원을 썼고, 대구가 33억원을 기록했다. 3위 강원(23억원)과는 10억 이상 높은 금액을 지불했다. 챌린지에서 최고 대우를 해줬고 이제 클래식에 걸맞게 연봉과 수당을 올려줄 계획이다. "방법의 차이다. 좋은 선수를 영입해서 꾸려 나가는 방법이 있다. 그리고 외부 영입을 줄이고 내실을 다지는 방법도 있다. 나는 큰 그림을 그리고 싶다. 멀리 보고 싶다." 강원과 비교가 아닌 대구 자체의 정체성을 봐달라는 조 대표의 마지막 당부였다. 대구는 틀리지 않았다. 강원과 다를 뿐이다. 최용재 기자 choi.yongjae@joins.com 2016.12.29 06:00
축구

[인터뷰]손현준 대구 FC 감독 “조광래 대표님 간섭과 관계 설정 우려요?”

"유비에게는 관우, 장비, 제갈공명이 있었죠. 제게는 조광래 대표님이 그런 분입니다."손현준(44) 대구 FC 감독은 감독보다 더 유명한 '대표님'을 모시고 있다. 대구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구단 행정의 중심을 맡고 있는 조광래(62) 대표다. 조 대표는 한국 축구계에서 굵직한 지도자로 꼽힌다. FC 서울 등 명문 프로팀을 이끈 그는 2010년 7월부터 2011년 12월까지 한국 축구대표팀 사령탑에 올랐다. 팬들은 '감독 조광래'의 재기 발랄한 지략과 전술에 열광했다. 선수를 보는 안목도 상당했다. '육성의 마법사'라는 별칭이 있을 만큼 될성부른 자원을 발굴하고 키워내는 데 능력이 있었다. 열악한 재정 여건 속에서도 '가격 대비 성능이 좋은' 선수를 두루 기용할 수 있었던 것도 조 대표 덕이었다. 대구는 2017시즌부터 K리그 클래식(1부리그) 무대를 밟는다. 이 역시 조 대표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2016시즌 K리그 챌린지(2부리그) 2위(18승13무8패·승점70점)로 마친 대구는 1위 안산 무궁화 축구단이 연고지 이전 문제로 승격 자격이 박탈되면서 1부리그로 향하는 행운의 직행 열차를 탔다. 그러나 대구는 앞서 시즌 중반 성적 문제로 전임 감독이 중도 사퇴하는 등 곡절이 있었다. 위기의 순간 조 대표는 코치였던 손현준을 신뢰했다. 손 코치에 감독대행의 임무를 맡겼다. 그러자 그는 선수단을 이끌고 막판 스퍼트를 발휘하며 4년 만에 승격의 꿈을 이뤘다. 챌린지는 '올해의 감독상'을 손 감독대행에 안겼다. 구단 역시 지난 22일 그를 정식 감독으로 임명하고 그간 노고를 인정했다. 유명한 감독 출신 대표와 함께 있다 보니 오해를 사기도 한다. 조 대표는 손 감독 취임식에서 "나는 대표직을 수행하면서 기술고문의 일도 해야 한다"고 밝혔다. 행정업무는 물론이고 지금껏 자신이 그라운드에서 쌓아온 현장 경험을 살리는 '매니저'가 되겠다는 뜻이다. 언뜻 보면 손 감독과 조 대표의 역할이 겹칠 수 있다. "더 유명한 조광래 감독이 손현준 감독을 뒷전으로 미루고 실질적인 감독 역할을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배경이다. 이에 손 감독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주변에서 조 대표님과 관계를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감독인 나와 대표님의 목표는 똑같다. 팀을 위해서 일한다. 서로 돕는 관계이지 간섭하는 관계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대구는 우승을 향해 가는 조직이다. 프런트와 감독, 대표, 선수단이 서로 개별적이지 않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함께 돕는 관계"라고 잘라말했다. 조 대표를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는 관계'로 생각하면 된다는 것이다. 손 감독은 또 "유비와 관우, 장비는 서로 약점을 잘 보완했다. 또 그들의 곁에는 지략가인 제갈공명이 있었지 않은가.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던 비결"이라며 "조 대표팀은 내 은사다. 대구가 클래식의 강팀이 되고 내가 더 큰 감독이 될 수 있도록 곁에서 지원해 주는 분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힘줘 말했다.조 대표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 그는 "손 감독과 함께 훈련 프로그램을 만들고 적극적으로 움직이려고 한다. 그러나 최종 판단은 감독의 몫으로 둔다"고 강조했다. 서지영 기자 2016.12.0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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