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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보험·재테크

김주현 금융위원장 은행장들 만나 '내부통제 해결책' 재차 주문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은행장들에게 내부통제의 해결책을 재차 주문했다. 김주현 위원장은 1일 서울 중구 달개비 컨퍼런스하우스에서 5대 은행(KB·신한·하나·우리·NH농협)과 광주은행 등 6개 은행장과 만나 7월부터 시행되는 책무구조도가 주가연계증권(ELS) 사태 등을 방지하는 은행내부통제 문제의 실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도록 준비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당부했다.그는 이날 간담회에서 "이번 ELS 사태는 소비자보호 제도 자체의 보완 필요성 외에 은행들의 영업행태와 소비자보호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함을 보여준 사례"라고 지적했다. 이어 "7월부터 금융권의 내부통제강화를 위해 책무구조도가 시행된다"면서 "책무구조도가 형식적으로 운영되지 않도록 하려면 이번 ELS 사태 상황을 가정해 책무구조도가 있었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났을지 생각해보는 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책무구조도는 금융회사 임원 개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내부통제 대상 업무의 범위와 내용을 금융회사가 스스로 각자의 특성을 고려하여 사전에 정하도록 하는 제도다.그는 "그동안 지속적인 금융사고와 감동 없는 수익 창출로 국민들의 금융권에 대한 신뢰가 크게 저하돼 왔다"면서 "국민은 은행산업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변화에 대한 국민의 갈구를 충족시킬 수 있을 때까지 경쟁촉진을 통한 변화와 혁신 유도정책은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또 김 위원장은 금융권의 변화와 혁신 노력을 지원하기 위해 부수·겸영업무 규제개선 등 금융제도를 과감히 개선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은행들이 신재생 발전에너지 시설 증설을 위한 9조원 규모의 미래에너지펀드 출자, 벤처펀드 출자한도 두배 상향 등을 통해 기업 부문 자금공급을 늘리며 과거 주택담보대출 위주 자산운용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상생금융에 대한 주문도 잊지 않았다. 은행권이 작년에 자체적으로 마련한 2조1000억원 규모 민생금융지원 프로그램과 관련해 지난 2월부터 개인사업자들을 대상으로 1조5000억원 규모의 이자환급 프로그램을 차질 없이 집행했다. 김 위원장은 남은 6000억원 규모의 지원사업도 소상공인과 취약계층에 신속히 집행해달라고 주문했다. 한편 홍콩H지수 ELS 사태와 관련해 은행들의 자율배상안 마련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우리은행을 시작으로 하나은행, KB국민은행, 신한은행 등이 정부의 자율배상안을 수용했다. 지난 29일 하나은행이 처음으로 일부 투자자와 자율배상안 비율에 대한 합의를 마친 뒤 손실액까지 배상했다고 밝힌 바 있다. 김두용 기자 k2young@edaily.co.kr 2024.04.01 17:55
산업

최장수 비오너 CEO 차석용, 20년 대기록도 세울까

국내 매출 1조원 이상 기업 중 대표이사 직함을 가장 오랫동안 유지한 전문경영인은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분석전문 한국CXO연구소는 22일 ‘2022년 매출 1조 클럽 중 대표이사 타이틀을 보유한 전문경영인 재직기간 현황’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대상은 올 반기보고서 기준 대표이사직을 맡고 있는 전문경영인이다. 오너 및 친인척 등 특수 관계에 있는 경영자는 조사에서 제외했다. 지난해 기준 매출 1조원이 넘는 국내 상장사 231곳 중 대표이사 직함을 공식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CEO급 최고경영자는 모두 322명으로 집계됐다. 이중 차석용 부회장은 지난 2005년 1월 1일자로 LG생활건강 대표이사에 부임해 18년간 직위를 유지하고 있다. 2025년 3월 28일이 임기 만료 시점이라 차석용 부회장이 20년 넘게 같은 회사에서 CEO 자리를 지키는 대기록을 세울 수 있을지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어 백우석 OCI 대표이사 회장이 지난 2006년 3월 17일자부터 17년간 CEO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한승구 계룡건설산업 회장도 지난 2008년 1월에 처음 대표이사 명함을 받아 올해까지 15년간 CEO직을 이어오고 있다. 김팔수 서희건설 대표이사는 2009년 3월에 CEO 지휘봉을 잡아 올해로 14년간 대표이사를 유지 중이다. 10년 넘게 대표이사 타이틀을 유지하고 있는 비오너 경영자는 14명(5.2%)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5년 미만의 전문경영인 CEO 비중이 70%를 넘어섰다. 대기업 전문경영인 10명 중 4명꼴로 CEO 경력이 2년 이하로 비교적 짧았다. 3~4년차는 88명(32.8%)으로 30%를 상회했다. 전문경영인 중 대표이사 회장 직함을 공식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이들은 모두 7명으로 조사됐다. 이중 대표이사 경력이 10년이 넘는 전문경영인은 백우석 회장, 한승구 회장 2명이었다. 이외 나머지 5명은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최현만 미래에셋증권 회장, 최정우 포스코홀딩스 회장, 조병용 신한금융지주 회장,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이다. 대표이사 타이틀이 없고 미등기임원이면서 회장 직위를 유지하고 있는 전문경영인은 김기남 삼성전자 회장과 한준호 삼천리 회장 2명이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장은 "회장 자리까지 올라가는 전문경영인은 과거보다 점차 늘고 있다. 젊은 오너 3~4세 경영자들이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오랫동안 경영에 매진해온 전문경영인들을 예우하는 차원에서 회장으로 승진하는 사례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두용 기자 k2young@edaily.co.kr 2022.09.23 06:51
스포츠일반

교사 7단 고려검도관장 정재동 사범 "검도계 발전 위해 노력"

지난 달 30일부터 사흘간 전북 남원에서 우리나라 검도계의 거목인조병용 선생을 기리는 ‘제25회 조병용 선생 추모 남원 오픈 국제검도대회’가 열렸다. 우리나라, 일본, 러시아, 이탈리아 등 9개국에서 약 2,200여명의 선수가 참여해 검객을 가렸다. 금천구 검도회 선수들은 단체 준우승을 이뤄내 국제무대에 금천구를 알리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금천구검도회 참가선수들은 현실업팀, 전 실업팀 경력이 있는 선수들과 초, 중, 고, 대학에서 선수생활이 대부분인 일반팀으로 구성 되어있다. 국가대표급 선수들로 구성한 외국팀들도 출전한 국제대회에서 실업팀이나 학교선수팀이 없는 금천구에서 단체전 준우승이라는 타이틀을 걸게 된 것은 값진 결과이며, 이는 금천구검도회 회장, 고려검도관장인 교사 7단 정재동관장의 노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금천구검도회 정재동회장은 24년간 검도장을 운영하며 금천구 체육 발전을 위해 노력한 주인공이다. 이번 국제검도대회에서 역시 금천구검도회 감독으로 출전하였다. 금천구검도회는 이번 2017년 남원 국제검도대회뿐만 아니라 지난 5월 치뤄진 국무총리기와 6월 치뤄진 생활체육 한마당 축전시, 도 대항에서 역시 금천검도회 소속인 금천검도관장 김준수관장(6단)과 고려검도관 명현재사범(5단)이 주축이 되어 단체전 우승, 준우승을 거둬내어 서울특별시가 종합 준우승을 하는데 큰 역할을 한 바도 있다. 정재동회장은 “오랜 기간 검도장을 운영하며 재능 있는 제자들이타 지역 전문 선수로 가는 모습을 수 없이 많이 봐왔다.”라며 “그럴 때마다 학교와 접촉을 해왔지만, 쉽지 않았다. 앞으로 금천구학교에서도 검도 전문 선수 육성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는 뜻을 전했다. 한편 정회장은 2016년 세종 사이버대학 자산관리학부 소방행정학과 외래교수로 위촉되었다.[이정호기자] 2017.08.14 16:12
경제

주먹들의 나눔사랑 연말 한파 날렸다

20일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광명보육원. 구파발 역에서 버스로 20분 정도 간 뒤 다시 마을 오솔길을 따라 10여 분을 더 걸어 들어가야 하는 외진 곳이다. 인적이 드문 이곳에 사랑의 메어리가 울려퍼졌다. 사랑의 연주자들은 지난 11월 2일 작고한 낙화유수 김태련씨 후배들.검정색 정장 차림의 이들은 이날 오후 이곳에 도착해 어린이들에게 성금과 선물을 전달하고 보호 아동들과 함께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매월 보육원과 양로원을 돌며 사랑의 손길을 전달하고 있는 이들은 이미 경기도 의정부·광주 등을 거쳤다.  김형석(가명·8)군은 "아저씨들이 선물꾸러미를 나눠줘 너무 기분이 좋다. 아저씨들이 매월 와주셨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들이 서울에서 떨어진 광명보육원을 사랑의 손길 장소로 선택한 것은 '큰형님' 김씨의 묘지가 보육원 인근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생전에 불우한 이웃 돕기에 앞장서 온 김씨의 유지를 받들어 후배들은 후원의 손길이 닿지 않는 이곳을 일부러 찾아내 훈훈한 사랑의 선물을 전달했다. 이날 보육원 방문 봉사활동은 '동대문사단' 자회사인 대한연합상사 조병용 대표가 주관했으며, 이 회사 고문이자 자유당 주먹왕 이정재 비서실장 출신 이수학씨와 김용찬·신용민·고창기·홍승문씨와 동대문 사단 마지막 계보를 잇는 김정재·강승일·이정석·이재훈·주규열·김성진·임종수·백금용 등과 미망인 이부자 여사가 참석했다. 조병용 대표는 "공교롭게도 형님 묘지 인근에 보육원이 있다. 이것은 대단한 인연이다. 형님이 그 보육원에 사랑의 손길을 전달하라는 뜻으로 알고 매월 보육원을 방문, 선물을 전달하겠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보육원을 방문한 후 이들은 큰형님 김씨의 49제 행사를 묘지 앞에서 치렀다. 49제 행사에는 전국서 한가닥 했던 원로 및 현역 주먹들이 대거 참석했다. 김두한 후계자 조일환씨를 비롯해 경기도 이천 김상철·의정부 박영길·강원도 김명덕·경기도 평택 신동선·충남 천안 박경래 윤호현·당진 김인수씨 등 200여명이다. 검정색 정장 차림의 후배들 200여명이 일렬로 선 후 치른 49제 행사는 조폭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조병용씨는 추도사를 통해 "큰 형님의 유지를 받들어 남을 도우면서 착하게 살자"고 말했다. 이들은 한 번 형님은 영원한 형님이라며 큰 형님 김씨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드러냈다. 홍승문씨는 "형님이 그렇게 빨리 돌아가실 줄은 몰랐다"면서 "앞으로 형님에 대한 추모사업을 계속 펼치겠다"라고 말했다. 2004년 서울 마포구 상수동 자택을 비롯해 전 재산을 사회복지센터 건립기금으로 내놓고 자신은 셋방 생활을 해온 김씨의 드라마같은 삶은 주먹들에게 협객의 표본이 되고 있다. 정병철 기자 2006.12.21 10:14
경제

‘마지막 야인’ 낙화유수 김태련씨 작고

"형님의 명복을 빕니다"우리 시대 '마지막 야인(野人)' 낙화유수 김태련씨가 2일 오후 1시 향년 75세로 서울 중구 을지로 국립의료원에서 작고했다. 이날 오후부터 김씨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자 왕년에 한가닥 했던 전국의 원로급 주먹들이 대거 조문했다. 조문 행렬은 3일에도 이어졌다. 생존했던 '왕년의 주먹' 가운데 지존이었던 김씨는 50년대 최고의 협객 이정재의 사돈이자 후계자인 유지광 계보의 좌장으로 50~60년대 주먹계를 풍미한 인물이다.  이날 병원에는 김두한 후계자 충남의 조일환씨, 경기도 최창식씨, 대구 경북 조창조씨, 부산 이강환씨 등 한때 전국에서 최고 유명했던 주먹들이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 '주먹계의 거두, 한자리에 모이다' 동영상 보러 가기또 경기도 이천 김상철, 의정부 박영길, 부천 윤철, 평택 신동선, 천안 온양의 박경래 윤호연 등도 빈소를 찾아 큰 형님의 명복을 빌었다. 빈소 입구에는 약 200여개의 조화들이 세워져 있었다.  이들의 조문행렬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원로급 주먹들이 분양소에 나타나면 검은색 정장 차림의 건장한 후배 10여명이 어김없이 동행했다. 조일환씨는 충남 지역 후배 50여명을 이끌고 조문을 해 눈길을 끌었다.  조씨는 김씨와의 추억을 회상하며 눈물을 흘렸다. 조씨는 "태련이 형님은 늘 후배들의 안위를 걱정했다"면서 "본인은 몸이 아파 투석을 하면서도 후배들의 애경사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조창조씨는 "형님(김태련)이 갑자기 그렇게 빨리 돌아가실줄은 몰랐다"면서 "너무나 인자하고 자상하셨던 분이 별세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김씨의 삶은 한편의 드라마 같았다. 1951년 부산 피난 시절 단국대 출신 장윤호를 만나면서 주먹의 세계로 뛰어들었던 김씨는 서울대 상대 시절 좌익 척결을 위해 주먹을 휘두르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김씨는 62년 이정재가 군사혁명 정권에 의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유지광마저 정치깡패 혐의로 구속돼 힘을 상실했을 때 '동대문사단'을 이끌었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김씨는 "한번 협객은 영원한 협객이다. 절대 약자를 괴롭지 마라. 그것은 양아치가 하는 짓이다"라며 후배들에게 협객의 길을 강조했다. 후배 홍승문씨는 "여자와 약한 사람을 괴롭히면 조직에서 제명당했다"면서 "형님은 돈 많고 권력 있는 사람들이 약자를 괴롭히거나, 국가를 전복시키려던 좌익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라고 밝혔다. 김씨가 속했던 동대문사단의 대표 주먹들은 깔끔한 매너로 다른 주먹들과는 차별을 보였던 까닭이기도 하다.김씨는 2004년 서울 마포구 상수동 자택을 비롯해 전 재산을 사회복지센터 건립기금으로 내놓고 자신은 셋집 생활을 했다. 또 소년교도소를 방문, "한때 잘못으로 이곳에 왔다고 좌절하지 말라. 이를 악물고 새 사람이 되어야 한다"며 교화활동 및 봉사활동에 힘을 쏟았다.서울대 상대 재학시절 여학생들이 지어줬다는 '낙화유수(떨어진 꽃잎이 물에 떠내려 간다)'라는 별명답게 김씨는 서울대 졸업의 학력, 수려한 외모와 뛰어난 무술 실력으로 세간의 인기를 한 몸에 누렸다.  김씨는 살아생전 왜곡된 주먹사의 한 단면을 지적했다. 1960년 4·19혁명의 도화선이 됐던 고대생 습격 사건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던 김씨는 "고려대생 습격사건은 조직적·계획적 사건이 아니라당시 시위를 마친 고대생들이 조직원들을 폭행 이를 보복하려다가 일어난 우연한 사건"이라고 회고하기도 했다. 김씨의 후배 조병용씨는 "형님은 낙엽처럼 지는 운명을 예상했는지 최근 회고록을 집필중이었다"라고 전했다. 정병철 기자 2006.11.03 15:14
경제

낭만파 마지막 주먹 낙화유수 김태련씨 별세

&#39인생은 낙화유수(落花流水)떨어지는 꽃, 흐르는 물과 같은 것. 세월의 흐름을 누가 막을 수 있을까…&#39  우리 시대 &#39마지막 야인(野人)&#39 낙화유수 김태련씨가 2일 오후 1시 지병으로 서울 중구 을지로 국립의료원에서 작고했다. 향년 75세. 사망 원인은 뇌출혈이다.  김씨는 3년 전 인기 TV 드라마 에서 &#39동대문파&#39 이정재의 부하로 유지광과 함께 핵심 참모로 등장했던 실존인물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김씨도 세월의 흐름 앞에는 어쩔 수 없었다.   김씨가 사망함에 따라 종로파 김두한, 동대문 사단의 이정재 그리고 명동 사단의 이화룡 등 50~60년대 낭만파 주먹이 모두 사라지게 됐다. 낭만파 주먹은 지금의 조폭들처럼 사시미와 쇠 파이프 등 무기를 갖고 조직적인 결투를 벌인 것이 아니라 김두한·시라소니 처럼 일 대 일로 대결하고, 결과에 승복하는 사나이의 미덕을 지켰던 자들을 일컫는다.   현재 생존해 있는 &#39왕년의 주먹&#39 가운데 지존인 김씨는 50년대 최고의 협객이었던 이정재의 사돈이자 후계자인 유지광 계보의 좌장으로 50~60년대 주먹계를 풍미한 인물이다.   175㎝의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의 학구파 &#39노신사&#39처럼 비치지만 과거의 낙화유수는 그렇지 않았다. 한창 때 체중은 100㎏이었다. 그는 &#39원펀치&#39로 통했다. 체중이 실린 주먹 한방을 맞고 쓰러지지 않은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유도와 태권도 각각 2단이다.   낙화유수란 늘 유유낙락하게 산다고 해서 서울대 상대(52학번) 시절 여학생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그것이 별칭으로 굳어지면서 실명보다 낙화유수란 별칭으로 더 유명했다.   그는 1951년 부산 피난 시절 단국대 출신 장윤호를 만나면서 주먹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62년 이정재가 군사혁명 정권에 의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유지광마저 정치깡패 혐의로 구속돼 힘을 상실했을 때 &#39동대문사단&#39을 이끌었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5·16 직후 재판장에 서기도 했다. 당시 재판관들은 대부분 서울대 출신들이었다. 대학 시절 그와 친했던 당시 혁명재판부 양준모 판사가 재판장에 선 그를 보고 "김태련, 아니 자네가 외교관이 된 줄 알았는데 어떻게 여기에 서 있느냐"며 기가 막혀 했는 일화도 있다. 그는 재판정에서도 당당했다. 서울대 출신이면서 주먹을 쓸 수밖에 없었던 당시 시대적 상황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했다. "우리는 절대 깡패가 아니다. 협객이다. 법을 어긴 건 사실이다. 하지만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시절이었다. 그래도 약한 사람은 절대로 건드리지 않았어. 돈 많고 권력 있는 사람을 향해 주먹을 날렸지."   그가 석방되자 군사정부는 전라북도 군산시장과 전국구 국회의원까지 제안했다. 하지만 그는 거부했다. 쿠데타 정권을 도우며 부귀와 영화를 누리는 것이 협객의 길과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걸어온 길이 사람에 따라 비난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한점 부끄럼 없는 당당한 협객의 길을 걸어왔음을 자부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시 태어나도 협객의 길을 걷겠다"고 덧붙였다.   5년전부터 당뇨 증세가 있어 100kg의 몸무게가 60kg으로까지 줄었든 그는 일주일에 두번씩 투석을 하고 틈 나는 대로 양로원을 돌면서 불우한 노인들을 위해 봉사하며 살았다. 조병용씨는 "큰 형님은 자식들에게는 한푼의 유산도 남기지 않고 여생을 불우한 사람들을 돕는 데 바치기 위해 서울 마포구 상수동 자택을 비롯한 전 재산을 사회복지센터 건립기금으로 내놓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씨의 장례는 천일동우회(구 화랑동지회) 주관으로 치른다. 유족은 부인 이부자씨와 1남2녀. 발인 4일 오전 9시 장지 경기도 장흥 선영. 정병철 기자 2006.11.02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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