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FC와 전남 드래곤즈의 K리그 클래식(1부리그) 5라운드가 열린 9일 대구 스타디움. 경기에 앞서 만난 조광래(63) 대구 사장은 알 듯 말 듯 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글쎄…. 지금 우리팀이 11위(3무1패)다. 결과를 보면 아쉬운데 경기 내용을 보면 '또 못 이길 것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팀이 개막 초부터 하위권에 머물고 있지만 조급한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더 지켜보겠다"던 짧은 말과 눈빛 속에 묵직한 자신감이 실려 있는 듯했다.
오랜 시간 한국 축구계를 지켜 온 '거목'의 눈은 정확했다. 대구가 리그 최하위 전남과 '벼랑 끝 승부'에서 2017시즌 첫 승전고를 울렸다. 전반 35분 신창무(25), 40분 레오(31)의 득점을 묶어 2-1로 승리한 대구는 승점 3점을 추가하고 단번에 리그 7위로 도약했다. 2013년 11월 17일 제주 유나이티드전 이후 1240일 만에 클래식에서 거둔 승리였다. 반면 전남은 후반 35분 허용준(24)이 만회골을 터뜨렸으나 끝내 5연패 나락으로 떨어지며 12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대구로서는 단순한 승점 3점 그 이상의 의미를 얻어 냈다. 대구는 다음 주말부터 포항 스틸러스·제주 유나이트·FC 서울·울산 현대· 전북 현대 등 리그 상위권에 포진한 5개 팀과 '죽음의 연전'을 앞두고 있다. 4라운드에서도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넘어갈 경우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남을 상대로 시원하게 승리를 거두면서 선수단 전반에 자신감을 꽉꽉 채웠다. 상위권 도약 가능성도 함께 열었다. 최근 K리그는 무승부가 늘었다. 8일 열린 K리그 클래식 4경기에서도 중상위권 팀들이 모두 승점 1점만을 획득했다. 대구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승점 3점을 더하며 6위 울산과 승점 차를 1점으로 좁혔다.
이날 경기 전 만난 손현준(45) 대구 감독은 "전남은 지금 수비와 조직력이 전반적으로 불안한 편이다. 미드필더진 앞선도 자주 뚫리고 있다"며 "우리팀은 신창무가 경고 누적 징계가 풀려 돌아왔다. 여기에 레오와 세징야(28) 등 외국인 선수들이 전남의 틈을 파고들어 준다면 좋은 결과가 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계획이 맞아떨어졌다. 선제골을 터뜨린 신창무는 전반 36분 박스 안쪽에서 레오가 흘려 준 골을 받아 왼발로 밀어 넣었다. 5분 뒤에는 신창무에게 크로스를 올렸던 레오가 정우재(25)의 패스를 받아 두 번째 골을 만들었다.
대구는 전반에만 볼 점유율에서 64%를 차지하며 전남(36%)을 압도했다. 총 6개의 슛을 쏴 5개의 유효슈팅을 기록했다. 3차례 슛을 시도해 단 1번만 유효슈팅을 성공시킨 전남과 완벽하게 대비됐다. 특유의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공격과 특유의 아기자기한 패스 플레이, 공간을 만들어 내는 세징야 등 외국인 선수의 활약도 계속됐다.
지난해까지 챌린지(2부리그)에서 뛰었던 대구는 올 시즌 1부리그로 올라와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대부분이 경기력의 차이보다는 경험과 노련미 부족에서 오는 문제였다. 손 감독은 "언제까지 경험이 부족하다는 탓만 할 수 없다. 그 기간을 줄여야 한다"고 했다. 대구는 지난해 상위 스플릿에 진출한 전남을 꺾고 그 '경험의 벽'을 넘어서고 있다.
5연패 수렁에 빠진 전남은 가시밭길을 걷게 됐다. '승점 0점'은 선수단 전반에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인천 유나이티드와 울산 등과 쉽지 않은 대결을 앞두고 있기에 대구전 패배가 더 뼈아팠다. "심란하다. 이 고비만 넘기면 된다"던 노상래(47) 전남 감독의 주름이 더욱 깊어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