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덕 신임 한화 감독은 1988년 한화의 전신 빙그레에 연습생(현 육성선수)으로 입단했다. 2004년 은퇴할 때까지 이글스 한 팀에만 몸 담았다. 지도자로서도 10년 가까이 한화 유니폼을 입었다. 두산에서 3년간 성공적인 지도자 생활을 마친 뒤 고향팀으로 금의환향했다. 한 감독의 복귀와 함께 또 다른 이글스 레전드들도 대거 대전으로 돌아왔다. 장종훈 전 롯데 코치가 수석 코치, 송진우 전 KBS N스포츠 해설위원이 투수 코치로 각각 합류했다. 한 감독과 두산에서 호흡을 맞췄던 강인권 배터리 코치와 전형도 작전·주루 코치도 함께 한화로 옮겼다. 강 코치와 전 코치 모두 한화 선수 출신이다.
한 신임 감독의 현역 시절은 화려했다. 통산 120승을 올린 최정상급 선발 투수였다. 통산 평균자책점은 3.54. 총 482경기에서 2080이닝을 던졌고, 완투만 60번(완투승 41회, 완봉승 16회) 해냈다. 굴곡진 길을 걸어왔기에 더 대단한 결과다.
원조 '연습생 신화'의 주인공이다. 동아대 1학년 때 야구를 그만뒀다. 지독한 체벌로 무릎에 관절염이 생겼다. 짐을 싸서 고향 대전으로 내려간 뒤 트럭 운전 보조일을 했다. 8.5톤 트럭을 몰고 박스를 나르며 전국을 돌았다. 리어카도 끌어봤고, 전기 배선공으로도 일했다. 그러나 야구를 향한 그리움을 참지 못했다. 우연히 프로야구 경기를 보다 다시 피가 끓어 올랐고, 야구장 문앞까지 갔다가 돌아오기를 수 차례 반복했다. 결국 1987년 고교(천안북일고) 시절 은사였던 김영덕 감독이 빙그레 사령탑으로 부임하면서 한용덕을 불렀다. 선수가 아닌 '배팅볼 투수'로였다.
김 전 감독은 31일 일간스포츠와 통화에서 "당시 빙그레 매니저였던 김병원이 한용덕의 근황을 전했다. 사회인 야구를 하고 있다고 하더라"며 "그래서 구단에 한용덕을 배팅볼 투수로 써달라고 요청했다"고 떠올렸다. 다행히 실력은 녹슬지 않았다. 이강돈, 이정훈, 강정길 같은 빙그레 강타자들이 한 감독의 배팅볼을 극찬했다. 김 전 감독은 "다들 '공이 그렇게 좋다'고 하기에 눈으로 확인도 하지 않고 선수 등록을 지시했다"고 돌아봤다. 1988년 마침내 정식 선수가 됐다. 그때 어깨 너머로 배운 슬라이더를 앞세워 투수로 '먹고 살기' 시작했다.
1988년과 1989년 연속 2승을 올리는 데 그쳤으나 1990년 첫 해외 스프링캠프를 마치고 돌아온 뒤 기량이 급성장했다. 그 해 13승을 올리며 팀 주축 투수로 자리 잡았다. 1991년엔 17승으로 한 단계 더 올라섰다. 한·일 슈퍼게임에 대표로 출전해 3패 중이던 한국에 첫 승을 안기기도 했다.
시련은 그때 다시 찾아왔다. 한 감독은 1994년 16승을 올리면서 해태 조계현과 다승왕을 다퉜다. 시즌 막바지 쌍방울전에서 8회까지 0-0으로 맞서다 9회 아무 이유 없이 교체됐다. '팀이 나를 안 도와 준다'는 반항심에 2군행을 자청했다. 잠시 야구를 쉬었다. 그 시기에 온 가족이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아내와 아들이 큰 부상을 입었다. 병간호를 하느라 야구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스스로 왼 팔에 이상을 느꼈다. 아직까지 왼 팔을 100%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할 정도다. 그는 그 과정을 거치면서 정신적으로 성숙해졌다. 혈기왕성하던 투수가 좋은 지도자로 변화하는 밑거름이 됐다.
감독 자리도 일사천리로 찾아온 게 아니다. 한 감독은 2012년 8월 중도퇴진한 한대화 전 감독의 대행으로 잠시 한화 지휘봉을 잡았다. 난파 직전이던 팀을 이끌고 승률 5할 이상(14승1무13패)을 해냈다. 그러나 한화는 한용덕 대행이 아닌 김응용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임명했다. 한 감독은 김응용 감독이 물러난 뒤 다시 새 감독 후보로 거론됐다. 이번에도 한화의 선택은 베테랑 김성근 감독이었다. 한 감독은 "이미 그런 경험을 해봤기에 이번에도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때까지 경솔한 행동을 하지 않으려 했다"고 털어 놓았다. 녹록치 않은 인생을 살아오는 동안 단단한 굳은 살이 박힌 덕분이다.
이번에는 진짜다. 한 감독의 은인인 김영덕 전 감독은 "한용덕은 좋은 감독이 될 것이다. 절실함을 아는 지도자"라며 "동료들이 야구를 하고 있을 때 홀로 그라운드를 떠나 있었다. 그 경험에서 얻은 배움이 감독을 할 때도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덕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