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충무로의 기둥, 김혜수가 영화 '국가부도의 날(최국희 감독)'을 들고 관객들을 만난다. 데뷔 32년 차라는 어마어마한 경력이 이미 김혜수가 걸어온 길을 뒷받침하지만, 32년간 수많은 영화인의 그리고 대중의 존경과 사랑을 꾸준히 받는 전무후무한 존재라는 점에서 김혜수와 그의 작품에는 언제나 '신뢰'라는 표현이 뒤따른다. '국가부도의 날'은 김혜수의 대표작을 바꿔놓을 것이라는 호평 아래 그 방점을 찍을 것으로 보인다.
이유 없는 선택은 없고, 사랑하지 않는 작품이 없지만 '국가부도의 날'은 김혜수에게 조금 더 남다른 영화다. 시나리오를 읽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정도로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을 받았고 분노했다. 그 마음을 그대로 연기에 녹여 냈다. 진정성이 넘치니 폭발적인 열연도 터져 나왔다. 30여 년간 봐 온 김혜수지만 '국가부도의 날'의 김혜수는 또 다르다.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는 연기를 김혜수는 해냈다.
배우들의 배우, 연예인들의 연예인으로 불리는 김혜수는 이제 단순히 배우라는 개인적 울타리를 넘어 영화계 전반을 아우르는 영화인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자신들의 영역을 지켜 내기 위해 매 순간 스스로와 싸우는 여배우들에게 김혜수의 존재 자체가 '위안'이다. '국가부도의 날'에서 김혜수는 유아인·조우진·허준호 등 선후배들을 이끌었다. 작품만 보고 해외에서 날아온 뱅상 카셀에게도 의미 있는 현장, 그 작품을 대하는 배우들의 태도를 있는 그대로 보여 주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자랑스러운 김혜수기에 모든 것이 믿음직스럽다.
- 애쓰고 덤빈 영화가 드디어 공개됐다. "흔히 말하는 '영화적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그 반대로 굉장히 현실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다. 내 친구는 펑펑 울었다고 하더라. 나도 눈물을 참기 힘들었다."
- 시나리오에 대해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다'고 표현했다. "진심으로 화났다. 평소처럼 '그래, 읽어 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넘겼는데 '뭐야? 이게 뭐야?' 싶더라. 몰랐던 내용이 많아 검색까지 하면서 시나리오를 읽었다."
- IMF를 겪은 세대다. "어떤 식으로든 직접 겪었다. 친구 집이 갑자기 지방으로 이사 가고, 부랴부랴 이민을 떠나신 분들도 있었다. 나중에 우리 친·인척들 중에서도 피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는 것을 알았고, 펑펑 울었다는 내 친구는 신입으로 막 일을 시작하려는 찰나에 많은 고충을 겪었더라. 솔직히 난 잘 몰랐다. 초등학교 동창이라 굉장히 친한 친구인데도 IMF 당시 얼마나 힘들었고,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100% 사실이라고 할 순 없지만 시나리오를 읽고 여러 복합적 감정이 터진 것 같다."
- 눈물이 터진 이유도 그 때문일까. "슬펐다. 그 슬픔이 '아, 너무 아파. 아, 너무 고통스러워'라는 단편적 느낌이 아니었다. 말로 설명하기 힘들지만 관객분들도 영화를 보면 나와 같은 마음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 주인공다운 캐릭터다. "뻔하고 교과서적인 캐릭터다. 모범적이고 전형적이다. 캐릭터만 두고 볼 땐 재미없다고 생각되기도 했다. 남들이 몸을 뺄 때 옳은 말 다 하고, 고군분투한다는 것이 얼마나 재미없나.(웃음) 말로만 들으면 딱히 흥미롭지 않았다. 시나리오를 읽으니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무언가 찾아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 무엇을 찾아냈나. "틈새에서 느껴지는 다른 요인이 있었다. 지금보다 훨씬 보수적인, 남성 중심적이었던 권력 구조에서 저항하려고 하는데 그 저항이 주가 되지는 않는다. 신념과 원칙 등이 동력이 돼 움직이지만 패턴화돼 있는 것을 피해 갈 수 있는 여지가 보였다. 기승전결을 이미 알고 있지만 그 사이사이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재미가 있었다고 해야 할까? 좀 더 인간적이고, 좀 더 진심을 담을 수 있는 베이스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 대부분 영화에서 남성이 맡는 롤을 김혜수가 쟁취했다. "남자가 해도, 여자가 해도 상관없었지만, 나도 '당시 한국은행에 통화정책팀이건 아니면 다른 팀이건, 고위직에 여성이 있었나' 하는 질문을 던졌다.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하더라. 금융권은 특히 더 보수적이지 않나. 내가 맡은 역할은 연봉은 높으나 공무원 같은 직급의 인물이더라. 나름 어마어마한 팀의 팀장 즉 수장이다. 말단으로 들어가 그 속에서 인정받고 살아남기까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싸우고 또 싸우지 않았을까."
- 여성 상사에게 직원들이 코트를 걸쳐 주고 구두를 준비해 준다. 흡사 전투에 출전하는 느낌이다. "출전이 맞다. 팀원들이 이야기한다. '수도 없이 들었고, 골백번 더 들었습니다.' 그 말을 하기까지 그들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겠나. 팀은 말 그대로 팀이다. 각자의 역할이 있고 서로에 대한 믿음이 팀을 이끈다. 팀워크라고 하지 않나. 실제 연기할 때도 진짜 내 팀원 같은 느낌이라서 참 좋았다." >>인터뷰②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