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26일, K리그 더비 역사의 한 페이지에 이 날짜가 뚜렷하게 새겨졌다. 햇수로 14년, 일수로 환산하면 5228일 만에 '연고 이전'의 앙금을 가진 두 팀이 서로 만나 첫 번째 격돌을 펼친 날로 기록됐기 때문이다.
역사의 한 장면을 새로 쓴 이번 부천 연고 이전 더비의 주인공은 K리그2(2부리그) 부천 FC와 제주 유나이티드. 26일 부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2 2020 4라운드 경기에서 첫 맞대결을 펼친 두 팀의 '악연'은 2006년 2월 2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부천을 연고로 하던 SK 축구단이 갑작스럽게 제주로 연고지를 이전하면서 악연의 씨앗이 싹텄고, 팀이 떠난 부천에 남겨진 팬들을 중심으로 2007년 시민구단 부천FC 1995가 창단됐다. K리그3를 거쳐 프로화까지 성공하며 K리그2에 안착한 부천은 제주와 맞대결에 대한 일념으로 1부리그 승격을 꿈꾸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시즌 제주가 자동 강등을 당하며 두 팀의 첫 맞대결은 K리그1이 아닌, K리그2에서 이뤄지게 됐다.
연고지 이전이라는 역사를 바탕으로 맞붙게 된 두 팀의 분위기는 확연히 갈렸고, 축구계의 관심은 이 역대급 '연고 이전 더비'에 쏠렸다. 복수를 꿈꾸는 부천은 제주전 승리를 향해 칼을 갈았고 과거의 그림자를 마주해야 하는 제주는 부담을 떨치기 어려웠다. 그러나 결과는 90분의 공방전 끝에, 후반 추가시간 터진 주민규(30·제주)의 헤더 한 방으로 끝났다. 역사적인 두 팀의 첫 번째 맞대결은 1-0 제주의 승리로 끝났고 부천은 설욕의 기회를 다음 제주 원정으로 미뤄야 했다.
내용이나 결과와 별개로, 창단 이후 처음 서로와 마주한 부천과 제주의 대결 자체가 '연고 이전 더비'의 한 페이지를 새로 쓴 것은 분명하다. 물론 이전에도 '연고 이전 더비'는 벌어진 적이 있다. 마찬가지로 연고지 이전의 역사를 가진 FC 서울과 FC 안양이 2017년 4월 19일 FA컵 32강전에서 13년 만에 첫 맞대결을 치른 적이 있다. 이 경기에선 서울이 2-0으로 안양을 꺾었고, 이후 아직까지 두 번째 대결은 이뤄지지 않았다.
1983년 출범 후 어느덧 38년째를 맞이한 K리그에는 강호들 간의 맞대결에서 시작된 더비, 구단 혹은 서포터스 간의 갈등에서 발생한 더비, 그리고 지리적 요인에 의한 더비 등 여러 종류의 더비가 존재한다. 가장 대표적인 더비라면 외신에도 자주 보도될 정도로 유명한 수원 삼성과 FC 서울 간의 '슈퍼 매치'를 필두로 울산 현대와 포항 스틸러스 간의 '동해안 더비', '현대가 더비' 등 수많은 더비 매치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동해안 더비는 K리그에서 가장 유서 깊은 더비로 손꼽힌다. K리그 출범 원년 멤버인 포항과, 이듬해인 1984년 창단한 울산 간의 맞대결은 인접 지역에 위치한 두 팀의 지역적 라이벌리를 바탕으로 기나긴 경쟁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지난 시즌 마지막 대결까지 총 164번이 치러져 포항이 61승 50무 53패로 근소하게 앞서 있는데 특히 2013시즌과 2019시즌, 같은 날짜인 12월 1일 열린 두 차례 '동해안 더비'에서 포항이 두 번 모두 울산의 우승을 저지하며 두 팀의 라이벌 관계가 더욱 강화됐다.
같은 모기업을 둔 구단 간의 대결 역시 K리그에서 빼놓을 수 없는 더비들이다. 각각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를 모기업으로 하는 울산과 전북 현대의 '현대가 더비'는 최근 두 팀의 우승 경쟁 기류까지 맞물려 매 경기 때마다 이목을 집중시킨다. 포스코를 모기업으로 둔 전남 드래곤즈와 포항의 '제철가 더비'도 있는데, 2018시즌 전남 강등 이후로는 맞대결이 잠시 멈춰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