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세계 랭킹 1위다웠다. 여자 골프 세계 1위 고진영(25)이 시즌 최종전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2년 연속 상금왕까지 달성했다.
21일(한국시각) 미국 플로리다주 네이플스의 티뷰론 골프클럽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시즌 최종전 CME 그룹 투어 챔피언십 최종 4라운드. 선두 김세영(27)에 1타 차 2위로 출발한 고진영은 버디 7개, 보기 1개로 6타를 줄여 최종합계 18언더파로 역전 우승했다. 2위는 최종합계 13언더파를 기록한 김세영과 한나 그린(호주)이 차지했다.
고진영의 이 대회 출전부터 드라마틱했다. 지난해 4승을 거두며 LPGA 투어를 평정한 그는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국내에 머물면서 투어 복귀를 미뤘다. 샷 감각 유지를 위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 이따금 출전했지만 우승하지는 못했다. KLPGA 투어 6개 대회에 나섰던 고진영은 톱10 네 번을 기록했다. 지난 10월 KLPGA 투어 시즌 마지막 메이저 대회인 KB금융 스타챔피언십에서 준우승한 게 최고 성적이었다.
그러다 지난달 미국으로 건너가 꼭 1년 만에 LPGA 투어에 복귀했다. 펠리컨 위민스 챔피언십에서 공동 34위에 올랐을 때만 해도 컨디션 회복을 위해서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고진영은 무섭게 경기력을 끌어올렸다. 이달 초 발런티어스 오브 아메리카 클래식에서 5위에 올랐고, 지난 14일 끝난 시즌 마지막 메이저 대회 US여자오픈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US여자오픈에서 준우승하면서 극적으로 최종전인 CME 그룹 투어 챔피언십 출전 자격을 손에 쥐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출전권을 받은 고진영은 이번 대회 내내 세계 랭킹 1위다운 클래스를 뽐냈다. 2라운드 선두, 3라운드 2위를 기록하는 등 세계 랭킹 2위 김세영과 엎치락뒤치락했다. 그리고 끝내 우승컵까지 거머쥐면서 마지막에 활짝 웃었다.
김세영에 1타 뒤진 채 최종 라운드를 맞은 고진영은 첫 홀부터 버디를 잡아 동타를 이뤘다. 이어 6번 홀(파5)에서 버디를 추가해 5번 홀 보기, 6번 홀 버디를 주고받은 김세영을 제치고 단독 선두로 나섰다. 9번 홀(파4)에서 3퍼팅 보기를 하면서 다시 공동 선두를 내줬을 뿐, 후반 9홀 경기는 내내 고진영이 압도했다.
11번 홀(파4)에서 그린을 놓치고도 3m 파 세이브를 한 고진영은 12번 홀부터 14번 홀까지 3개 홀 연속 버디를 잡아냈다. 사실상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고진영은 16번 홀(파3)에 이어 마지막 18번 홀(파4)에서 버디를 넣었다. LPGA 투어 통산 7승째. 우승 상금은 110만 달러(12억1000만원)였다.
시즌 18개 대회 중 4개 대회에만 출전하고도 총 166만7925달러(약 18억3000만원)를 벌어들인 고진영은 2년 연속 상금왕에 등극했다. 지난 2012년과 2013년 상금왕 2연패에 성공한 박인비 이후 7년 만에 2년 연속 상금왕을 차지한 주인공이 됐다. 고진영은 "미국 내에 집을 마련할 예정이다. 미국 은행 통장 잔고가 얼마 없는데, 이번에 받은 상금을 집을 사는 데 보태면 될 것 같다"며 웃었다.
최종전 우승으로 한 해의 성적을 포인트로 환산한 CME 글로브 레이스 우승 트로피도 고진영의 차지가 됐다. 고진영은 “LPGA 투어에 복귀할 때까지만 해도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에 나간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주에 말도 안 되게 상위권으로 마무리하면서 여기에 나왔다. 그렇게 나와 우승까지 했다는 건, 내가 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신기하다”고 말했다.
준우승을 차지한 김세영은 올해의 선수 점수 12점을 보태면서 박인비(112점)를 제치고 생애 첫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다. 데뷔 뒤 처음으로 메이저 대회인 KPMG 위민스 PGA챔피언십에서 우승하는 등 시즌 2승을 거둔 그는 2015년 LPGA 투어 데뷔 뒤 처음으로 시즌 최고 활약을 펼친 선수에게 주는 올해의 선수상을 거머쥐었다. 한국 선수 중에선 2013년 박인비, 2017년 박성현과 유소연, 2019년 고진영에 이어 다섯 번째다.
김세영은 “너무 원한 것 중 하나가 롤렉스 올해의 선수상이다. 이렇게 받게 돼 너무 기쁘다. 비록 이번 주에 우승은 못 했지만, 내가 올해 이루고 싶었던 걸 충분히 이뤄서 기쁘다”고 말했다.
시즌 내 최저타수를 기록한 선수에게 주는 베어트로피는 ‘재미 동포’ 대니엘 강(28)이 차지했다. LPGA 투어는 베어트로피 수상 기준을 ‘공식 대회 라운드 70% 이상 출전’으로 규정하고 있다. 올 시즌 열린 대회는 18개였고, 수상을 위한 규정 라운드는 48라운드 이상이었다.
49라운드를 소화한 대니엘 강은 시즌 평균 70.082타로 4위에 올랐지만, 규정에 따라 생애 첫 베어트로피를 수상하는 행운을 잡았다. 김세영(68.636타), 브룩 헨더슨(69.703타), 박인비(70.067타)는 대니얼 강보다 좋은 성적을 내고도 규정 라운드를 채우지 못해 수상이 불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