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플릿 계약(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 신분에 따라 연봉이 달라지는 계약)으로 메이저리그(MLB)에 도전장을 내민 양현종(33)의 생존 전략 중 하나는 '이닝 소화 능력'이다.
양현종은 지난 20일 미국으로 출국했다. 텍사스는 이틀 전인 18일부터 미국 애리조나주 서프라이즈에서 스프링캠프 투·포수조 훈련을 시작했다. 양현종은 비자 발급이 더디게 진행돼 캠프 시작 날짜를 맞추지 못했지만, 합류 시점이 더 밀리는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 논 로스터 초청 선수 자격인 만큼 제한된 기회 속에서 경쟁력을 입증하는 일만 남았다.
현지 유력 스포츠 매체인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I)는 양현종이 출국하는 날 텍사스 선발진을 평가하며 양현종을 '2티어' 그룹으로 분류했다. 확실한 선발 후보인 1티어(카일 깁슨, 아리하라 고헤이, 마이크 폴티네비치)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래도 3티어가 아닌 2티어에 이름을 올렸다는 건 양현종이 상황에 따라 선발진에 합류할 수 있다는 의미다. SI는 양현종에 대해 '7시즌 연속으로 170이닝 이상을 기록했다. 텍사스는 2021년 이닝(이닝 소화 능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양현종이 새겨들을 만한 부분은 바로 '이닝'이다.
텍사스는 현재 '이닝 이터'가 필요하다. 지난해 선발 투수 소화 이닝이 287⅓이닝으로 아메리칸리그 15개 팀 중 7위. 리그 중위권 수준이었는데 오프시즌 변수가 발생했다. 가장 많은 이닝을 책임진 랜스 린(84이닝)이 트레이드로 팀을 떠났다. 시즌 중반 트레이드로 영입했던 왼손 선발 마이크 마이너스도 캔자스시티로 이적했다. 크리스 우드워드 감독은 캠프 기간 선발 로테이션을 재정비해야 한다. 그런데 변수가 꽤 많다.
1선발 깁슨을 제외하면 안정감이 떨어진다. 1티어로 분류된 일본인 투수 아리하라는 올겨울 텍사스와 계약해 MLB 무대에서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폴티네비치는 잔부상이 많고, 지난해 3⅓이닝 소화가 전부. 갑작스럽게 이닝을 끌어올리는 게 부담스러울 수 있다. 양현종과 함께 2티어로 꼽힌 조던 라일스는 2013년 이후 규정이닝(144이닝)을 넘기지 못했다. 송재우 MBC SPORTS 해설위원은 "텍사스 1, 2선발은 다른 팀의 3, 4선발급 정도"라고 평가했다.
이닝 소화는 양현종의 최대 강점이다. 양현종은 커리어 최악의 부진을 겪은 지난 시즌에도 172⅓이닝을 기록했다. 2015년에는 무려 200⅓이닝을 책임진 이력까지 있다. 잔부상이 적고 기복이 심하지 않아 매년 최소 170이닝 이상을 넘겼다. 2014년 이후 1290⅔이닝을 투구했다.
이 기간 MLB에서 양현종보다 더 많은 이닝을 소화한 건 맥스 슈어져(1338⅓이닝)밖에 없다. MLB와 KBO리그의 직접적인 비교가 어렵지만, 양현종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대목이다. 캠프 기간 갖게 될 '선발' 기회에서 내구성을 증명할 필요가 있다.
양현종의 도전은 쉽지 않다. 21일 MLB 닷컴은 텍사스 개막전 5선발을 예상하며 양현종을 '불펜'으로 규정했다. 깁슨-데인 더닝-폴티네비치-아리하라-콜비 알라드가 선발 로테이션을 책임지고, 양현종은 라일스 등과 함께 불펜에서 시즌을 맞이할 거라는 전망이다.
그러나 기회의 문이 닫힌 건 아니다. SI는 '양현종은 지켜볼 가치가 있는 후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