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5위 롯데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하는 공정자산(자산총계) 대기업 순위에서 5대 그룹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룹 시가총액에서 이미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시총이 미래 기업의 가치 총합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에서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17일 재계에 따르면 롯데그룹의 시총 순위가 코로나 팬데믹 시대를 기점으로 급속히 떨어지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2019년 말 롯데그룹의 시총 순위는 삼성, SK, 현대차, LG에 이어 5위를 유지했다. 2018년 롯데그룹의 시총은 28조5000억원에 달했다. 2019년에 그 규모가 줄어들었지만 시총 합계 20조6700억원대로 포스코와 함께 5, 6위 자리를 다퉜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 이후 유통과 쇼핑, 호텔 등의 사업이 흔들리며 롯데그룹의 시총은 계속 감소하고 있다. 다른 기업들은 신사업 등을 통해 미래 가치를 인정받으며 투자자들의 선택을 받은 반면 롯데는 미래 준비 부족 등의 이유로 외면받았다. 그 결과 2020년 10대 그룹 중 시총이 감소한 곳은 롯데그룹이 유일했다.
2020년 2월 롯데의 시총은 18조5600억원대로 쪼그라들며 포스코, 한화, 신세계, GS, 현대중공업에 밀리며 그룹 시총 순위 10위까지 떨어졌다. 2022년 1월 기준 롯데그룹 시총은 19조2600억원대로 다소 회복했지만 순위는 12위까지 미끄러졌다.
그 사이 IT 기업의 양대산맥인 카카오와 네이버는 미래 성장성을 인정받으며 급속도로 시총 규모를 키웠다. 카카오가 87조원대로 5위, 네이버가 54조원대로 6위로 순위를 대폭 끌어올렸다.
롯데의 인기는 코스피 시총 순위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화학 분야를 대표하는 롯데케미칼이 7조4000억원대로 그룹의 상장 10개 기업 중 시총 규모가 가장 크다. 하지만 시총 52위에 불과하다. 다음으로 시총 규모가 큰 계열사는 지주사인 롯데지주로 2조9800억원으로 104위에 머물러있다. 롯데를 대표했던 상장사인 롯데쇼핑은 2조4000억원대로 줄어들어 123위로 처졌다. 롯데쇼핑은 2010년 말에는 13조7000억원 규모였는데 시총 규모가 82% 가량 급감했다.
지난 9일 CEO스코어가 2021년 3분기 결산기준을 합계해 조사한 대기업집단 순위에서 롯데는 삼성, SK, 현대차, LG에 이어 5위를 유지했다. 공정자산 면에서 시총 5, 6위인 카카오와 네이버를 압도한다. 카카오는 공정자산 규모 기준으로 22위, 네이버는 34위에 불과하다.
국내 4대 그룹의 경우 시총과 공정자산 기준 사이의 괴리감이 크지 않다. 그러나 롯데의 경우 재계 5위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미래 가치와 잠재력에 대한 평가가 높지 않다. 신동빈 롯데 회장은 이런 위기감에 ‘순혈주의’마저 버리며 미래를 대비한 과감한 혁신을 주문하고 있다.
그는 상반기 사장단 회의에서 “과거의 방식으로 일하는 것으로 우리가 꿈꾸는 미래를 만들 수 없다. 새로운 방식으로 일하고 혁신의 롯데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장은 “신세계의 경우 이베이코리아를 인수하는 등 구조적인 개선 속도가 한 발짝 빨리 이뤄지고 있지만 롯데는 온·오프라인 모두에서 고전하고 있어 신동빈 회장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업계 관계자는 “롯데가 한샘과 미니스톱 등을 인수하고 외부인사를 수혈하는 등 쇄신을 진행하고 있지만 턴 라운드를 위한 확실한 흐름을 잡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