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전 UFC 헤비급 챔피언 안드레이 알롭스키(43·미국/벨라루스)와 온라인 화상인터뷰를 한다고 하니 지인이 한 말이다. 그런 반응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알롭스키는 20세기에 데뷔한 파이터이기 때문이다.
1979년생 알롭스키는 20세이던 1999년 러시아 격투기 단체 M-1에서 프로 선수로 데뷔했다. 어릴 적 불량배에게 괴롭힘을 당한 경험 때문에 18세에 격투기를 시작했다. 이후 경찰이 되기 위해 경찰 아카데미에 진학했는데 그때 컴뱃삼보를 본격적으로 접하면서 그의 인생이 바뀌었다.
알롭스키가 UFC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2000년 11월이었다. 초반 3경기에선 1승 2패로 다소 부진했지만 이후 6연속 KO승을 거뒀다. 2005년에는 당시 헤비급 최강자였던 팀 실비아(미국)를 1라운드 47초 만에 KO 시키고 새 UFC 헤비급 챔피언에 등극했다. 당시 그의 나이 26살이었다.
알롭스키는 20년 넘게 UFC에서 활약 중이다. 물론 UFC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08년부터 2014년까지는 UFC를 떠나 다른 단체에서 경기를 뛴 적도 있다. 하지만 2014년 UFC에 복귀한 이후에는 꾸준히 옥타곤을 지키고 있다. 2017년 1월에는 현 UFC 헤비급 챔피언 프란시스 은가누(카메룬)와도 경기를 치렀다. 결과는 1라운드 TKO 패였다.
20년 넘게 격투기 선수로 활동 중인 알롭스키의총 전적은 무려 56전(34승 20패 2노콘테스트)이다. 메이저 단체에서 뛰는 현역 파이터 가운데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 가운데 UFC에서 38번 경기를 치렀고, 23번 이겼다. 두 기록 모두 UFC 헤비급 역사상 단연 1위다. 모든 체급을 통틀어서도 23승은 UFC 최다승 역대 2위에 해당한다.
선수 인생이 순탄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 20번이나 되는 패배(UFC 15패)가 잘 말해준다. 2016년부터 2017년 사이에 5연패를 당했다. 타 단체에선 4연패를 기록한 적도 있다. 2009년에는 ‘격투 황제’ 예멜리아넨코 표도르(러시아)에게 1라운드 실신 KO패 당하기도 했다.
알롭스키는 ‘스치면 죽는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강력한 펀치가 일품이다. 삼보 선수 출신이지만 정작 격투기 선수가 된 뒤에는 복싱 위주 경기를 펼친다. 자신이 거둔 34전 가운데 17승이 KO승이었다.
하지만 알롭스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바로 ‘유리 턱’이다. 상대를 쓰러뜨리는 데 일가견이 있지만, 동시에 본인도 맞으면 쉽게 무너졌다. 20차례 패배 가운데 KO패가 11경기나 됐다. 압도적 승리를 눈앞에 두고 펀치 한 방에 실신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알롭스키가 놀라운 것은 수많은 패배에도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시 일어났고, 몸이 회복되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곧바로 훈련을 시작했다. 그것이 계속 쌓이면서 여전히 선수로 활동 중이다.
심지어 잘하기까지 한다. 최근 4연승을 달리고 있다. 물론 상대가 헤비급 랭킹에 있는 강자들은 아니다. UFC에서도 최근에는 알롭스키의 커리어를 배려해 무리한 상대를 붙이지 않는다. 알롭스키에게 물었다. 포기하고 싶었던 적이 없었는지. 그는 이렇게 말했다.
“경기에서 지고 나면 ‘너는 끝났다’, ‘은퇴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선 ‘너는 할 수 있어‘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격투기는 아직도 내가 가장 열정을 갖고 하는 일이다. 의학적으로 더는 싸울 수 없다는 판정이 내려지기 전까지 계속 싸울 것이다. 난 43세이지만 20대 초반에 해내지 못했던 양의 훈련을 소화하고 있다. 아직도 가족과 친구가 날 지지해주고 있다. 한 번 더 챔피언에 오르고 싶다.”
눈길이 가는 것은 최근 4연승이 모두 판정승이라는 것이다. 원래 그는 앞뒤 안 가리고 터프하게 주먹을 휘두르는 스타일로 유명했다. KO승과 KO패가 유난히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마흔 살이 넘어 경기 스타일을 180도 바꿨다. 무리하게 KO를 노리기보다 스피드를 활용해 치고 빠지면서 포인트를 차곡차곡 쌓는다. 달라진 현실을 인정하고 변화를 받아들였다. 그는 과거 자신이 패했던 경기를 “바보 같고 멍청한 짓”이라고 표현했다.
“2017년에 내가 헤비급 랭킹 1~2위까지 오른 적이 있었다. 타이틀이 눈앞에 있었는데 내가 바보처럼 멍청하게 싸웠다. 내가 상대에게 승리를 선물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덕분에 그들은 지금 더 큰 시합을 하고 있다. 다행히도 난 아직 UFC에서 싸우고 있다. 그 경험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고 지금 올바른 일을 하고 있다. 최소한 그러고 있다고 믿고 있다.”
‘20세기 파이터’ 알롭스키는 오는 10월 30일(한국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UFC 파이트나이트 213’ 대회에서 마르코스 호제리오 데 리마(브라질)라는 선수와 대결한다. 메인카드 경기가 아니지만 알롭스키는 경기 순서는 큰 의미가 없다고 담담히 말했다.
“내게 진짜 중요한 것은 계속 싸우는 것이다. 그동안 캠프에서 열심히 훈련하고 준비했던 것을 그대로 실천하는 것만 생각한다. 몇 년 더 싸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난 지금 전혀 문제가 없다. 이번 주말에도 상대를 이기기 위해 가능한 모든 것을 하겠다. 한국 팬들도 많이 응원해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