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형 항공사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합병을 선언한 지 1년 10개월째 매듭을 짓지 못하고 여전히 해외 경쟁 당국의 산을 넘지 못한 채 지지부진한 모습이다. 최근 영국과 미국이 기업결합 심사를 연장하면서 두 항공사의 합병은 2년을 넘길 가능성이 커졌다.
20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미국 법무부는 지난 16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 심사를 두고 좀 더 시간을 할애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법무부의 기업결합 심사는 절차 시작 후 75일 이내에 결과를 내게 돼 있지만, 이 시한을 넘기게 된 것이다. 대한항공은 8월 말에 자료를 제출하고 최근 임원 인터뷰 등을 진행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경쟁 당국에서 요구하는 자료 및 조사에 성실히 임해 왔으며, 향후 심사 과정에도 적극적으로 협조해 잘 마무리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앞서는 영국 경쟁시장청(CMA)이 지난 15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을 유예한다고 발표했다. CMA 측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합병이 런던과 서울을 오가는 승객들에게 더 높은 가격과 더 낮은 서비스 품질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CMA는 대한항공에 오는 21일까지 독과점 우려 해소 방안이 담긴 추가 자료를 제출할 것을 통보했다. 이를 바탕으로 오는 28일까지 양사의 합병을 승인하거나 심층적인 2차 조사에 들어갈지 결정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 관계자는 "영국 경쟁 당국의 발표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 심사의 중간 결과발표로, 최종 결정은 아니다"며 "세부적인 시정조치 관련 협의를 진행 중으로, 이른 시일 내에 시정조치를 확정해 제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영국이 최종적으로 합병에 대해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은 아니지만, 대한항공 입장에서는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됐다. 두 항공사의 합병은 모든 해외 경쟁 당국의 승인을 받아야만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전체 신고 대상은 한국을 포함해 14개국이다. 이중 터키(지난해 2월), 태국(지난해 5월), 대만(지난해 6월), 호주(올해 2월) 등 9개국의 경쟁 당국은 양사의 기업결합을 승인하거나, 심사·신고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심사를 종료했다.
한국의 경우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2월 뉴욕, 파리, 제주 등 일부 노선의 슬롯(시간당 가능한 비행기 이착륙 횟수)과 운수권(정부가 항공사에 배분한 운항 권리)을 다른 항공사에 이전하고 운임 인상을 제한하는 조건으로 결합을 승인했다.
이로써 현재 필수신고국인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중국과 임의신고국인 영국 등 5개국의 판단만 남은 상태다.
당초 업계는 미국과 영국으로부터 합병 승인을 받으면 나머지 EU, 일본, 중국 측의 기업결합 심사 통과도 무리 없이 진행돼 연내 합병 수순을 밟을 수 있을 것으로 관측했다. 특히 미국의 경우 세계 항공시장에서 미치는 영향이 가장 크고, 승인 문턱도 가장 높은 편으로 꼽히기 때문에 합병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분수령으로 꼽혀왔다.
하지만 미국·영국의 심사가 연장되면서 합병절차가 더 지연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우려가 나온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해외 경쟁 당국 입장에서는 자국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요목조목 따져보고 내걸 수 있는 조건을 고려하려는 분위기가 읽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