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믿기지 않는 3연속 1라운드 탈락을 맛본 후, 한국 야구계에서는 아마추어 야구에서 알루미늄 배트 사용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연일 나오고 있다. 과연 그게 답일까? 만약 답이라면 금속 배트를 사용할 준비는 되었을까?
알루미늄 배트 규정, 핵심은 안전성
한국 야구에서 알루미늄 배트가 주목받는 건 더 강한 타구를 만들 수 있어서다. 마침 야구 종주국인 미국은 학생 야구에서 알루미늄 배트를 사용한다고 한다. 그럼 알루미늄 배트가 미국의 강타자들을 키워낸걸까?
아니다. 미국은 알루미늄 배트의 반발력을 경계한다. 지난 2022년 8월 미국 고교와 대학 야구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던 알루미늄 배트 중 하나였던 배트 스팅어 미사일 2의 33/30 버전이 미국 고교와 대학 야구에서 퇴출당했다. NCAA(전미대학체육협회)는 스팅어 미사일 2 33/30에 대한 임의 성능 검사를 진행한 결과 규정 위반을 발견했고, 이에 따라 이 배트의 사용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NFHS(미국고등학교체육연맹) 역시 곧바로 이 배트의 사용을 금지했다. 이 배트의 인기를 고려할 때, 두 단체는 상당히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다. 대체 왜 미국 아마추어 야구계는 이 배트를 사용할 수 없도록 만들었을까.
NFHS 규정 [1-3 배트, 공, 글러브] 2조의 d는 “하나의 목재로 만들어지지 않은 배트는 BBCOR(반발계수)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즉, 알루미늄 배트나 알루미늄에 카본을 합성한 컴포짓 배트는 BBCOR 규정을 통과해야 사용할 수 있다.
BBCOR이란 무엇일까. BBCOR은 NCAA가 고안한 배트 반발력 계수다. 날아오는 공이 배트에 맞고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상실하는지 측정한 수치다. 2010년대 초반, NCAA와 NHFS는 선수들이 BBCOR 인증을 통과한 배트만 사용할 수 있도록 규칙을 개정했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BBCOR이라는 제도를 도입했을까? 목적은 단 하나, 선수들의 안전을 위해서다. 미국에 배트 규제가 도입되기 전, 배트 제조사들은 다각도로 금속을 연구해 세계 최강의 배트들을 만들어냈다. 이는 당연히 타고투저 현상으로 이어졌으며, 동시에 타구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다치는 선수들도 늘어났다. 이에 비목재 배트 규제에 대한 목소리가 커졌고, 그 결과 2000년대 초반 타구 속도를 기반으로 배트를 규제하는 BESR(Ball Exit Speed Ratio)이 등장했다.
그러나 BESR은 10년도 채 버티지 못했다. 오로지 타구 속도만 계산한 BESR 인증 배트는 미규제 배트만큼 강하진 않았지만, 여전히 힘이 실린 타구를 계속 생산했다. 특히 배트 끝에 맞아도 힘이 실렸기에 여전히 나무 배트와 다른 차원의 타구를 만들어냈다.
여기에 2000년대 초반 자리 잡기 시작한 컴포짓 배트의 특성이 문제를 더했다. 컴포짓 배트의 주 재료인 카본 섬유는 충격을 받을수록 강해지는 성질이 있다. 그로 인해 신상품 배트를 가지고 검사를 받을 때와 사용을 통해 ‘길들여진’ 배트와의 성능 차이가 크게 났다. NCAA와 NFHS는 결국 2010년 BESR 인증을 받은 컴포짓 배트를 모두 금지했고, 미국 아마추어 야구계에서 나무 배트에 근접한 비목재 배트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나왔다.
그 결과 만들어진 게 BBCOR이다. BBCOR의 핵심은 ‘비목재 배트가 프로 선수들이 사용하는 나무 배트와 비슷한 성능을 갖도록 규정하는 것’이다. 실제로 BBCOR 인증 배트로 만든 타구는 BESR 인증 배트로 만든 타구보다 속도가 5% 느렸다. 또 BBCOR 인증 배트의 스위트 스폿 크기도 BESR 인증 배트보다 2인치가량 작았다. 이처럼 BBCOR 규제는 지난 20년 동안 미국 아마추어 야구계가 학생 선수들이 안전하게 공놀이를 할 수 있도록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만들어 낸 결과다.
한국도 알루미늄 배트가 필요하다
한국도 배트 규제가 있다. 미국의 또 다른 배트 규제인 USSSA의 BPF(Bat Performance Factor) 방식에 기반한 KBN 1.21이다. 16세 이하 및 동호인부 배트 규제로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가 직접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BBCOR 규제 배트와 BPF 규제 배트를 비교했을 때, 후자가 전자보다 성능이 월등히 높다. 만약 이 규제를 고교야구에 곧바로 적용하는 것은 선수들에게 상당한 위험을 초래할 것이다.
우리나라 고교 야구가 미국처럼 금속 배트를 사용할 준비가 과연 되었을까? 필자는 아니라고 본다. 과연 우리나라 야구계가 임의 검사에서 탈락한 배트를 퇴출하는 과감한 결단을 내릴 수 있을까? 독립적인 배트 성능 시험 기관이 공정하면서 동시에 누구나 이용하기 쉬운 방식으로 배트를 인증할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을까? 만약 미국의 BBCOR 제도를 직수입하면, 우리나라 고교야구 시장은 계속 미국산 BBCOR 배트를 수입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아마야구계가 지속가능한 발전을 할 수 있을까? 모든 게 불확실하다.
미국 아마추어 스포츠계는 지난 수십 년간 학생 선수가 ‘안전하고 즐겁게 운동을 하면서 바람직한 가치관을 형성’할 수 있는 환경을 고민해 왔다. 우리나라 야구계도 선수들이 안전하게, 오랫동안, 그리고 즐겁게 뛸 수 있는 환경이라는 목적으로 알루미늄 배트 사용을 고민하고 있을까?
필자는 궁극적으로는 고교 선수가 금속 배트를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경제성’ 때문이다. 물론 금속 배트도 오래 사용하다 보면 깨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하나의 목재로 만들어진 배트보다는 내구성이 좋기 때문에 오래 사용할 수 있다. 현재 미국 아마추어 야구에서 인기 있는 금속 배트의 가격은 약 400달러 안팎으로 형성돼 있고 나무 배트의 경우 150달러 안팎이다.
사용하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무 배트가 한 달에 한 번꼴로 부러진다고 치면 석 달이면 금속 배트 한 자루 이상의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학생 선수에게나 학부모에게나 지속적인 지출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부담이 쌓이다 보면 나무 배트를 망가트리지 않기 위한 소극적인 움직임이 나올 수밖에 없다. 마음 속 한 켠에 배트를 부러뜨리면 안 된다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는 타자는 거침없는 스윙을 보여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