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마약청정국'이라 불리던 우리나라는 이제 10대 청소년들도 손쉽게 마약을 구매해 투약할 수 있는 '마약관리국'이 돼 버렸다. 청소년 마약범죄가 날로 급증하면서 수법 또한 대담해지고 있다. 마약 투약뿐 아니라 마약을 직접 운반·판매하다 적발된 중학생까지 등장했다. 이제는 청소년 마약범죄가 드라마의 소재로까지 활용되며 청소년 마약 남용은 현재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됐다. 반면에 관련 치료인력이나 시설이 부족해 당국의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마약하고 운반하고 직접 판매하기도
지난 6일 오후 6시 40분. 서울 한 아파트에서 "딸이 마약을 했다"는 신고가 112에 접수됐다. 출동한 경찰은 간이시약 검사에서 양성반응이 나온 14살 A 양을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 조사 결과, A 양은 지난 4일 오후 온라인 메신저 텔레그램을 통해 필로폰 0.05g을 구입하기로 하고 40만원을 송금한 것으로 파악됐다. 바로 당일 서울 광진구의 한 주택가에 판매자가 놓고 간 필로폰을 집으로 가져와 투약했다.
A 양은 하루 뒤 아파트 계단에 쓰러진 채 발견됐고, 엄마가 경찰에 신고했다. A 양은 경찰 조사에서 "호기심에 마약을 구매했다"고 진술했다.
심각성은 비단 마약 투약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해 2월. 10대인 B 군은 마약을 직접 운반하다 경찰에 붙잡혔다.
그는 텔레그램을 통해 고수익 아르바이트에 현혹됐다. B 군은 고수익 아르바이트라는 것이 바로 마약 판매 조직이 지시하는 곳에 마약을 숨겨두고 오는 일명 '던지기 수법'을 사용한 '드라퍼'(마약 운반책을 지칭하는 은어)라는 것을 알았지만, 범행에 가담했다.
마약 조직은 드라퍼인 B군의 신분증·등본 등을 건네받아 약 10일간 수습 기간을 거쳐 현장에 배치했다.
B 군은 던지기 수법으로 대량의 마약을 상선으로부터 전달받아 직접 소분, 일반에 유통했다. 서울·부산·대전·대구·광주 등 주택가의 가스 배관 보호 박스, 창문틀, 야산 땅속 같은 은밀한 장소에 마약을 숨겨두는 수법을 사용했다. 통상 마약 0.14~1g를 옮기면서 1건당 1만~3만원의 수수료를 받았다.
2021년 10월. 학원에서 만난 16세 고교생 셋은 텔레그램을 통해 마약을 도매가로 사들여 10배의 웃돈을 받고 되팔았다. 수사망을 피하려 중간판매책을 거쳐 거래하는 등 수법도 성인 뺨쳤다. 이들이 7개월 동안 마약 판매로 벌어들인 수익은 8100만원이나 됐다.
지난해 10대 마약사범 294명…8400명 달할 수도
이처럼 온라인 메신저 등을 통한 마약 유통이 활개를 치면서 청소년 마약 사범은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10대 마약류 사범은 2018년 104명에서 2022년 294명으로 4년 간 3배 가까이 늘었다. 2021년(309명)에는 처음 300명을 넘기기도 했다.
294명이라는 숫자 자체는 크다고 할 수 없지만 마약 범죄가 속성상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 암수범죄(暗數犯罪·수사기관이 인지하지 못했거나 수사 결과 증거 불충분으로 입증되지 못한 범죄)가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무게감이 달라진다.
박성수 세명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등이 쓴 '마약류 범죄의 암수율 측정에 관한 질적 연구'에 따르면 국내 마약류 범죄의 암수율은 28.57배로 예측됐다.
즉, 공식 통계상 청소년 마약 사범은 294명이지만 적발되지 않은 경우까지 포함한 실제 청소년 마약 사범은 여기에 28.57을 곱한 8399명으로 추정된다는 의미다.
10대 유혹하는 원흉, '온라인 거래'…예방 나서야
청소년 마약 관련 범죄가 증가하는 원인은 비대면 기반인 온라인 거래가 확산한 것과 무관치 않다.
인터넷과 추적이 어려운 텔레그램에 익숙하면 나이에 관계없이 마약을 접하는 건 어렵지 않다. 구매 절차나 투약법 정보도 SNS 등 도처에 널려 있다.
마약 수사에 정통한 한 현직 검사 역시 본지와의 통화에서 "마약사범의 수는 매년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지만, 10대 청소년 마약사범이 이처럼 두드러지게 폭증한 적은 없었다"며 "코로나19 이후 인터넷 거래가 활성화되면서 일반인들에게, 그 중 청소년에게 빠르게 흘러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실제 SNS에서는 불과 하루 만에 마약 구매가 가능하다. 경찰과 함께 마약 판매자에게 구입 의사를 밝혔더니 "0.5G35, 1G60"라는 의문의 문자를 날아왔다. 이는 필로폰 0.5g에 35만원, 1g에 60만원을 뜻하는 그들만의 은어다.
청소년 마약 범죄의 증가의 또 다른 이유는 '인식 부족'에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인천경찰청 광역수사대는 "마약이 심각한 범죄라는 사실을 청소년들이 잘 인식 못한 채 호기심으로 쉽게 접근하고 있다"며 "마약은 한번 손을 대고 나면 중독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특성이 있어 애초에 시작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청소년 마약 범죄의 경우 '구조적인 문제'가 큰 만큼 정부에서 심각한 인식을 가지고 철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범진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마약퇴치연구소장은 "마약류는 중추신경계에 작용해 생리학적 기능을 변화시키고 뇌에도 부정적 영향을 줘 성장기에 특히 해롭다"며 "당장 학교 현장에서도 예방-단속-중독 재활의 선순환 고리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약청정국이던 대한민국이 마약관리국으로 추락했다. 인터넷 메신저에서 ‘톡’ 서너 번으로 마약이 안방까지 배달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마약사범의 나이도 어려져 10대 청소년 범죄자가 4년 새 3배 증가했을 뿐 아니라 마약을 하는 것을 넘어 유통까지 하는 상황이다. 일간스포츠와 이데일리는 청소년 마약 퇴치 캠페인 ‘하지마!약’을 시작하면서 심각한 청소년의 마약 실태와 원인, 해법을 심층 취재해 연속 보도한다.<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