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동 포항 스틸러스 감독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강원FC전을 앞둔 지난 21일 춘천 송암스포츠타운 주경기장 잔디를 확인한 뒤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다. 그는 “선수들의 부상 우려가 크다. 잔디 상태 탓에 좋은 퀄리티의 경기가 나올 수도 없다. 팬들도 아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원정팀 입장에서 상대팀 홈 경기장에 대한 언급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지만, 그 정도로 잔디 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의미다.
가까이에서 직접 확인한 경기장 잔디는 여전히 심각했다. 정상적인 잔디와 훼손된 부위 사이에 계단처럼 층이 만들어졌을 정도였다. 잔디를 거의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훼손된 부위도 있었다. 일주일 전 수원 삼성전 직후 이른바 ‘논두렁 잔디’ 논란이 인 뒤 보식이 진행됐지만, 정상적으로 경기를 치를 조건이 아니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고영준(포항)이 골키퍼와 일대일 기회를 놓친 뒤 잔디를 바라보며 헛웃음을 지은 장면이 나왔다. 잔디가 훼손된 부위에서 볼 경합이 이뤄질 때마다 모래가 사방으로 튀었다. 일반적인 횡패스조차 잔디가 없는 부위에선 실수로 이어졌다. 불규칙 바운드 등으로 인해 선수들이 애를 먹는 장면들도 많이 나왔다.
프로축구 최상위리그에서 경기잔 잔디 탓에 선수들의 플레이가 쉽지 않은 건 아쉬움이 컸다. 경기 후 김기동 감독은 “잔디 탓에 바운드의 불규칙이 있었고, 공이 튀거나 (속도가) 많이 죽어버렸다. 선수들도 불편함을 겪지 않았을까 싶다”고 했다. 이날 경기장을 찾은 김진태 강원도지사 겸 구단주도 이를 고스란히 지켜봤다.
현재로선 잔디 논란에 대한 뚜렷한 해법이 없다는 게 문제다. 경기장 잔디를 관리하는 춘천도시공사도 전문가들에 의뢰까지 했지만 아직 정확한 원인조차 찾지 못해 애가 타고 있다. 보식이 사실상 유일한 방법이지만 이날 경기장 상태 역시 지난 수원전 이후 보식을 한 상태였다.
결국 프로축구연맹도 칼을 빼들었다. 지난 수원전을 마친 뒤 다음 춘천 홈경기 개최 불허 가능성까지 열어두고 강원 구단으로부터 잔디 개선에 대한 세부 계획을 받았다. 강원의 다음 홈경기는 6월 7일 대전하나시티즌전이다.
연맹은 대전 구단이 제출한 계획을 토대로 잔디 상태를 확인할 예정이다. 만약 그래도 상태가 좋지 못하면 올 시즌 춘천에서 예정된 남은 2경기 개최지를 강릉으로 바꾸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강원은 원래 7월부터 강릉에서 홈경기를 개최할 예정이었는데, 그 시기를 앞당기겠다는 것이다.
연맹 관계자는 “잔디 개선 작업이 완료되는 시점 다시 확인한 뒤 정상적인 개최가 힘들다고 판단되면 강릉 개최를 검토 중이다. 강릉에서 진행 중인 도민체전 일정 등에 대해서는 협의를 해봐야 한다. 원주는 조명시설 때문에 개최가 불가능하고, 홈·원정을 바꾸는 건 세 번째 라운드 로빈도 홈팀이 강원이라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구단에 따르면 춘천도시공사는 경기 다음날인 22일부터 연맹에 보고한 계획에 따라 잔디 보식 작업을 시작했다. 문제는 이번 작업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이 경기장 잔디가 논란이 된 건 비단 최근의 일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식을 통해 잠깐이나마 이뤄지더라도 당장 6월 홈경기는 치르더라도 앞으로 계속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가장 답답한 건 이 경기장을 홈으로 사용하는 강원 구단이다. 잔디를 직접 관리할 수 없는 가운데 반가운 일이 아닌 일로 이슈가 되니, 관리 주체인 춘천도시공사만큼이나 애가 탈 수밖에 없다. 경기장을 찾는 팬들과 그라운드를 누비는 선수들에게 좋은 컨디션을 마련해주고 싶은 마음뿐인데 쉽지가 않다. 구단 관계자는 “잔디 상황이 좋아질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