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에서 한국의 4강 진출을 이끌었던 김은중 전감독이 일간스포츠와 인터뷰하며 포토타임을 갖고있다. 정시종 기자 capa@edaily.co.kr
축구 철학과 성품, 그리고 소통 능력까지. 지난 2021년 12월 김판곤 당시 대한축구협회(KFA)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장이 김은중 감독의 U-20 대표팀 새 사령탑 선임을 설명하며 언급한 키워드들이었다. 김판곤 위원장은 “빠른 공격 전개·전방에서부터 상대를 제압하는 적극적인 수비 전술은 KFA가 추구하는 능동적인 축구 철학과 부합한다. 바르고 합리적인 성품, 참신한 이미지, 젊은 선수들과의 원만한 소통 능력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김은중 감독은 지난해 1월부터 U-20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24살 이상 차이가 나는 선수들을 이끌고 1년 6개월 간 동행을 이어갔다. 결과적으로 김판곤 위원장이 언급한 키워드들은 김은중호의 성공과 맞닿아 있었다. 김은중 감독의 축구 철학은 대표팀의 ‘4강 신화’로 이어졌고, 스승보단 ‘축구 선배’로 다가간 진심은 어린 선수들과 원팀을 꾸릴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김은중 감독은 “처음 대표팀을 맡았을 때 성적과 성장, 두 가지 목표를 두고 하겠다고 했는데, 대회가 끝나고 나니 그 약속을 어느 정도 지킨 것 같아 다행”이라며 웃어 보였다.
진심으로, 축구 선배로 다가갔던 김은중 감독
김은중 감독은 1979년생, U-20 대표팀 선수들은 2003년 이후 출생 선수들이었다. 띠동갑에 띠동갑, 무려 24살 이상 차. 더구나 요즘 선수들은 이른바 MZ 세대들이라 소통에도 변화가 불가피했다. 김은중 감독이 택한 건 ‘진심’이었다. 무조건적인 지시보다 선수들이 먼저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고, 선수들 위에 군림하는 감독보다는 축구 선배로서 다가갔다.
김은중 감독은 “요즘 선수들은 훈련장에서 뭔가를 시키면 배경을 궁금해한다. 이 훈련은 왜 하고, 저 훈련은 왜 하는지에 대해서 궁금해한다. 우리 때는 뭔가 지시를 하면 ‘이건 아닌 것 같은데’ 하면서도 그냥 했다. 그런데 요즘 선수들은 반문을 한다”며 “그래서 선수들에게 이 훈련은 왜 하는 거고 무슨 목적이 있는지, 이 전술은 왜 쓰는 거고 어떤 목적이 있는지를 이해시켜 줬다”고 했다.
감독으로서 해야 할 일은 더 많아졌지만, 이해가 밑바탕에 깔리니 효과는 컸다. 김 감독은 “이해를 시켜줘야 선수들이 따라온다. 감독으로서 할 게 너무 많아진 거다. 처음에는 물론 더디다. 그런데 반복적으로 하다 보면 목적이 뚜렷한 걸 선수들도 아니까, 나중에는 확실하게 힘이 된다”고 덧붙였다.
올해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에서 한국의 4강 진출을 이끌었던 김은중 전감독이 일간스포츠와 인터뷰 하고있다. 정시종 기자 capa@edaily.co.kr
사실 김은중 감독에겐 큰 자녀와 2~3살밖에 차이가 안 나는 자식뻘 선수들이기도 했다. 더욱 진심으로 대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김은중 감독은 “저희 딸이 고등학교 2학년이니까, 어떻게 보면 선수들도 자식 같았다. 저뿐만 아니고 우리 코칭스태프들도 마찬가지였다. 가르칠 때도 더 진심으로, 자식을 대하듯이 했다.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려고 했던 걸 선수들도 잘 받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비단 U-20 월드컵 성적만을 위한 건 아니었다. 선수들이 앞으로도 더 좋은 선수로 성장할 수 있도록 축구 선배로서 방향성도 제시해 줬다. 팀 미팅 시간, 황희찬이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울버햄프턴에서의 일과가 담긴 영상을 틀어준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팀적으로 전술, 전략 이런 것도 중요하겠지만, 선수들이 앞으로 축구선수로서 목표나 가야 하는 방향을 제대로 설정하는 것도 중요한 시기라고 봤어요. 그래서 (황)희찬이의 예능 영상도 미팅 때 틀어줬죠. 하루일과가 보면 모든 게 맞춰져 있잖아요. 세계적인 리그에서 뛰는 선수조차도 하루에 모든 걸 맞춰서 하는데, 과연 여러분들이 저 선수만큼 훈련에 시간을 투자하느냐는 걸 보여줬죠. 어린 선수들 같은 경우는 저 선수들보다 사실 몇 배를 더 해야 하잖아요. 선수들이 사회초년생이니까, 축구 선배로서 방향성을 잡아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올해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에서 한국의 4강 진출을 이끌었던 김은중 전감독이 일간스포츠와 인터뷰 하고있다. 정시종 기자 capa@edaily.co.kr 4강 성적만큼 값졌던 김은중호 유산
김은중호의 FIFA U-20 월드컵 4강 신화가 더욱 값졌던 건, 값진 결실들이 곧바로 나타났다는 점에 있다. 한국축구의 미래를 이끌 스타들이 탄생한 걸 넘어 해외 진출이나 K리그 주전 도약 등의 발판이 됐다. 실제 배준호는 잉글랜드 스토크 시티, 김지수는 브렌트퍼드로 각각 이적했고 황인택도 포르투갈 이스토릴 프라이아 부름을 받았다. ‘브론즈볼’ 이승원 등은 곧바로 강원FC 주전으로 도약했고, 김준홍(김천 상무)은 최근 A대표팀까지 부름을 받았다. 대회 전만 하더라도 꾸준하게 출전 기회조차 받지 못하던 선수들이 대부분이었다는 점을 돌아보면 눈부신 반등이다.
김은중 감독은 “처음 U-20 대표팀 감독을 맡았을 때 ‘성적과 성장, 두 가지 목표를 두고 하겠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대회가 끝나고 나서 돌아보니, 그 약속을 어느 정도 지킨 것 같아 다행”이라며 “무엇보다 대회가 끝나고 나서 우리 아이들이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점이 가장 뿌듯하다”고 했다. 그에게 4강 신화라는 팀 성적보다 더 값진 건, 자신과 함께했던 아이들이 저마다 더 큰 무대로 향하는 등 뚜렷한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었다.
“(배)준호가 스토크 시티 데뷔전을 할 땐, 새벽에 라이브로 다 챙겨봤어요. 대전 유니폼을 입고 뛰었던 선수가 TV에서 영국에서 뛰는 걸 보니까 새롭더군요. 또 너무 잘하고 있으니 이제는 팬의 입장처럼 더 관심 있게 보게 되더라고요. K리그 경기를 할 때도 스타팅 멤버가 나오면 사실 우리 애들의 이름부터 먼저 찾아봅니다. 누가 선발에 들었는지 등을 체크하고 아이들이 뛰면 그 경기 위주로 모니터링하죠. 아이들이 그래도 잘하고 있나 이렇게도 보고. 저번엔 (이)영준이한테 전화해서 뭐라고 했던 적도 있어요(웃음).”
올해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에서 한국의 4강 진출을 이끌었던 김은중 전감독이 일간스포츠와 인터뷰 하고있다. 정시종 기자 capa@edaily.co.kr 김은중 감독은 “대회가 끝난 뒤 소속팀에 돌아와서 기회가 왔을 때, 선수들 본인이 그 기회를 어떻게 잡느냐가 중요했다. 다행히 선수들도 그런 기회를 잘 잡은 것 같다”며 웃었다. 이어 “선수들이 소속팀에서 주전으로 자리 잡고, 나아가 A대표팀까지 선발되는 등 성장하는 걸 보면 감독으로서 되게 기분이 좋다”고 덧붙였다.
물론 모든 선수가 U-20 월드컵 이후 상승곡선을 그리는 건 아니다. 월드컵 4강 멤버 중에서도 아직 소속팀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 선수들도 있다. 김 감독은 “가능성이 있는데도 아직까지 선택을 못 받고 있는 선수들도 있다. 다만 이 선수들 또한 포기하지 말고 더 노력하면서 준비를 잘하고 있으면 분명히 기회는 오는 거다. 그 기회가 왔을 때 어떻게 잡느냐가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비단 선수들을 멀리서 지켜보는 것만은 아니다. U-20 월드컵이 끝난 뒤에도 김은중 감독과 선수들의 연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만큼 지난 1년 6개월의 여정이 김 감독에게도, 선수들에게도 의미가 컸다는 뜻이었다. 특히 김 감독은 대표팀 감독 시절에도 그랬듯 대회가 끝난 뒤에도 축구 선배로서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선수들에게 이따금씩 문자 메시지를 보내 응원을 더해주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제가 궁금한 부분이 있다거나, 약간 힘들어 보이는 친구들한테는 한 번씩 메시지를 보내기도 합니다. 선수들이 아직은 어리기 때문에, 소속팀에 가서 자리를 못 잡게 되면 흔들리기도 하거든요. 그때마다 별건 아닐 수도 있지만 그래도 메시지라도 보내주면, 아이들도 다시 한번 생각을 깊게 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축구 선배로서 우리 아이들이 더 잘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크죠.”
올해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에서 한국의 4강 진출을 이끌었던 김은중 전감독이 일간스포츠와 인터뷰하며 포토타임을 갖고있다. 정시종 기자 capa@edaily.co.kr “편안한 상태라면, 이미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는 것”
김은중 감독이 부임 기간 내내 선수들에게 강조했던 메시지 중 하나는 도전과 욕심이었다.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더 좋은 선수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달라는 당부였다. 앞서 미팅 때 황희찬의 영상을 보여줬던 것 역시 비슷한 맥락이었다. 지금 세계적인 무대에서 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것처럼 선수들 역시도 그 길을 따르기를 바랐다.
가장 핵심적인 가치는 결국 마음가짐이었다. 김은중 감독은 비슷한 나이대 일본 선수들의 남다른 마음가짐을 예로 들었다. 그는 “일본 선수들은 프로에 온 걸로 만족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루하루 어떻게 해야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을까라는 인식이 무척 강하다. 본인 스스로 동기부여를 자꾸 하는 거다. 어떻게 해야 더 완벽한 선수가 될 수 있을까, 팀과 감독이 원하는 걸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한다. 축구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욕심이 많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반면 한국 선수들은 이러한 마음가짐이 다소 부족하다는 게 김 감독의 시선이다. 여러 매체를 통해 세계적인 무대를 접할 기회가 더 많아졌지만, 그 무대를 동경하는 것 이상의 노력까진 이어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손흥민(토트넘)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등 세계적인 선수들이 피나는 노력을 했던 것만큼 한국 선수들도 그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당부다.
올해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에서 한국의 4강 진출을 이끌었던 김은중 전감독이 일간스포츠와 인터뷰 하고있다. 정시종 기자 capa@edaily.co.kr 김은중 감독은 “선수들이 하루 일과 중 훈련에 더 많은 투자를 했으면 좋겠고, 지금보다 축구에 더 열정과 욕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어떻게 하면 선배들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라는 마음가짐으로 도전하고 열정을 가져야 한다. 요즘엔 그런 게 약간 부족하지 않나 싶어서, 우리 선수들에게는 그런 얘기들을 항상 많이 했었다”며 “생존하기 위해, 더 잘하기 위해선 세계적인 선수들보다 몇 배는 더 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것보다 더 안 한다. 세계적인 선수들을 보면서 ‘멋있다’, ‘잘한다’ 이것만 느끼는 게 아니라 더 노력해야 한다는 걸 지도자들이 깨워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김은중 감독은 선수들이 지금에 안주하지 말고 새로운 무대, 더 큰 무대를 향해 ‘도전’을 이어가기를 바랐다. 그래야 새로운 동기부여와 목표가 생기고, 그만큼 선수들이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은퇴할 때까지는 머무르지 마라”. 김 감독이 선수들에게 늘 강조했던 메시지였다. 비단 U-20 월드컵 제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축구 후배들에게도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메시지이기도 했다.
“선수들에게 얘기했던 것 중 하나는 ‘편안한 상태라면 이미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라는 말이었습니다. 항상 노력하면서 오르막길을 걷는다는 심정으로 계속 노력하고 도전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사람이 편안해지면 계속 편안함을 찾는데, 결국 내리막을 걷고 있으니 편한 겁니다. 가던 길은 대충 가도 되지만, 새로운 길을 가게 되면 계속 집중할 수밖에 없어요. 선수들도 계속 도전을 하면서 스스로 새로운 동기부여를 만들고 목표도 삼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