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호(27)가 전북 현대를 떠나 다시 유럽 무대로 진출했다. 행선지는 잉글랜드 2부 버밍엄 시티다. 백승호가 선수 생활을 시작한 이래 잉글랜드 무대를 누비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정든 전북을 떠나는 백승호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완전한 작별이 아닌 ‘잠시만 안녕’이라는 메시지도 더했다.
백승호의 버밍엄 시티 입단은 30일(한국시간) 버밍엄 시티 구단의 발표로 공식화됐다. 계약 기간은 오는 2026년 6월까지 2년 반이다. 이로써 백승호는 독일 2.분데스리가(2부) 다름슈타트98에서 뛰던 시절 이후 3년 만에 다시 유럽 무대로 향하게 됐다.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자축구에 와일드카드로 출전해 금메달을 이끌며 병역 문제도 해결한 상태다.
3년 간 뛰었던 전북 구단과 팬들에게도 작별 인사를 빼놓지 않았다. 그는 버밍엄 시티 이적 공식 발표가 되기 전 개인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작별 인사를 건넸다. 그는 “3년 전 전북 현대와 계약하던 날이 가장 생각나는 것 같다. 차 안에서 전주성(전주월드컵경기장)이 보이기 시작할 때 계속 눈물이 났다. 제 감사함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기에 이 구단, 팬분들 그리고 동료들을 위해 내 모든 걸 쏟아부을 거란 결심을 했다. 그리고 매 훈련, 매 경기 최선을 다해 뛰었다”고 적었다.
이어 그는 “3년 동안 한 번의 리그 우승, FA컵 우승을 했지만 더 많은 걸 이루지 못해 아쉬운 건 저뿐만 아닌 팬분들이 더 클 거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전북 현대는 대단한 구단이기 때문”이라며 “전북 현대에서 보낸 3년이란 시간은 지금까지 제 축구 인생 중 가장 행복했고 보람찼다. 대한민국 최고 구단에서 최고의 선수들과 스태프들 그리고 대한민국 최고 팬분들과의 사긴은 꿈만 같았고 행복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백승호는 “아직 부족한 제게 정말 많은 사랑을 주신 모든 팬분들께 너무 감사했고 너무 든든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이 글이 ‘잘 있어요’가 아닌 ‘우리 또 만나요’였으면 좋겠다. 멀리서도 항상 전북 현대를 마음속에 품고 응원하고 있겠다”고 덧붙였다.
자신을 둘러싼 오해에 대해서도 SNS를 통해 직접 설명했다. 백승호는 “많은 분들이 제가 병역 문제 때문에 전북 현대에 왔다 등 여러 이야기들이 있었다. 사실이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다”며 “전북 현대로 온 이유는 그 당시 저에게 가장 필요하고 제가 목표로 하는 대표팀 등 선수로서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는 구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쉽게 올림픽은 실패했지만 감사하게도 다시 대표팀에도 가고 꿈꾸던 월드컵, 아시안게임도 갈 수 있었다. 이 모든 게 저는 전북 현대로 왔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SNS뿐만 아니라 그는 전북 구단과 영상 인터뷰를 통해서도 팬들에게 비슷한 작별 인사를 건넸다. 특히 백승호는 구단과 인터뷰하기 전부터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인터뷰 초반엔 연신 눈물을 흘리며 전북을 떠나는 아쉬운 감정을 전했다. 전북 팬들은 물론 함께 뛰었던 전·현 동료들도 댓글 등을 통해 백승호와 작별에 아쉬운 감정과 유럽 재진출을 축하하는 뜻을 전하고 있는 중이다.
전북과 3년 간 인연을 뒤로한 채 백승호는 다시 유럽 무대에서 경쟁을 펼치게 됐다. 스페인 FC바르셀로나 유스 출신인 백승호는 스페인 지로나에서 프로에 데뷔한 뒤 2군 팀인 페랄라다를 거쳤다. 프로 데뷔 초반 스페인 3부리그에서 뛰던 그는 지난 2018~19시즌엔 지로나 유니폼을 입고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데뷔전을 치르기도 했다.
이후 독일 2부 다름슈타트로 이적하며 새로운 무대 도전에 나선 뒤, 지난 2021년 3월 전북으로 이적하며 데뷔 처음으로 K리그 무대를 누볐다. 전북 소속으로는 세 시즌 동안 K리그1 82경기를 포함해 총 106경기에 뛰었고, 전북의 2021 K리그1 우승과 2022년 대한축구협회(FA)컵 우승 등을 기록했다.
2019년부터 성인 국가대표팀에 발탁돼 활약하는 등 꾸준히 연령별 대표팀도 거쳤다. 특히 파울루 벤투(포르투갈) 감독이 이끌던 지난 2022년엔 카타르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 무대도 누볐다. 브라질과의 16강전에서 강력한 중거리 슈팅으로 상대 골망을 흔들어 화제가 됐다. 지난해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땐 와일드카드이자 팀의 주장으로서 금메달을 이끌기도 했다.
버밍엄 시티에서는 등번호 13번을 달고 무대를 누빈다. 데뷔 후 스페인, 독일에서 뛰었던 그에게도 잉글랜드 무대는 새로운 도전 무대다. 새 소속팀 버밍엄 시티가 24개 팀 가운데 20위에 처져 있어 팀의 2부 잔류를 이끄는 게 첫 시즌 가장 큰 목표가 될 전망이다.
스페인, 독일을 거쳐 K리그로 향했던 백승호는 늘 유럽 재도전에 대한 의지가 컸던 선수다. 실제 꾸준하게 이적설이 돌았고, 선덜랜드 등 이적 협상이 이뤄진 구단들도 있었다. 다만 앞선 이적들은 번번이 무산돼 아쉬움만 삼키다 이번 버밍엄 시티 이적을 통해 마침내 유럽 커리어의 새로운 막을 올렸다.
백승호의 버밍엄 시티 이적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은 단연 토니 모브레이 감독이었다. 모브레이 감독은 앞서 선덜랜드 감독 시절에도 백승호 영입을 추진하다 경질되는 바람에 백승호의 선덜랜드 이적도 없던 일이 됐다. 그러나 모브레이 감독은 최근 웨인 루니 감독이 성적 부진을 이유로 경질되면서 버밍엄 시티 지휘봉을 잡았고, 다시 백승호 영입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모브레이 감독은 직접 화상 미팅을 통해서까지 백승호 영입에 ‘진심’을 보인 것으로도 전해졌다.
마침 전북과 계약이 끝난 백승호는 자유계약 신분으로 새로운 팀들과 협상 테이블을 차릴 수 있었다. 계약 만료와 무관하게 전북 구단도 워크퍼밋 발급 등을 도우며 그의 유럽 진출을 도왔다. 무엇보다 자신을 가장 원하는 감독이 팀을 이끌고 있고, 백승호 스스로도 어린 시절부터 꿈꿨던 잉글랜드 무대라는 점등이 맞물려 이적도 빠르게 이뤄졌다. 모브레이 감독은 앞서 기성용, 김두현 등을 지휘했던 경험이 있는 감독이기도 하다.
이제 버밍엄 시티 일원이 된 백승호는 당찬 각오로 새 도전을 시작했다. 그는 “이 팀의 일원이 돼 정말 행복하다. 무척 기대되고, 빨리 시작하고 싶다”며 “어린 시절 축구를 보기 시작했을 때부터 영국에 오는 게 내 꿈 중 하나였다. 버밍엄 시티 구단이 내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기뻤다.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아주 편안했다. 버밍엄 시티로 이적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됐다”고 덧붙였다.
이미 버밍엄 시티 유니폼을 입고 훈련까지 시작한 백승호는 이르면 내달 4일 오전 0시 영국 웨스트 브로미치에서 열리는 웨스트 브로미치 앨비언(WBA)과 잉글랜드 챔피언십 30라운드 원정 경기를 통해 데뷔전을 치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