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기의 발인식이 24일 오전 8시 서울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발인식은 비공개로 치러진 가운데 설경구, 장현성, 박학기, 황정민, 방은진, 배성우, 김대명, 정승화 등 생전 고인과 막역했던 동료, 후배들이 유족과 함께 자리를 지켰다.
유족과 동료들의 오열 속 발인을 마친 김민기는 장지로 향하기 전 대학로 아르코꿈밭극장(구 학전) 앞에 들러 혼이 서린 장소와의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유족 등 일동은 영정과 위패를 모시고 묵념을 했고, 학전의 공간을 돌아본 뒤 고인을 배웅했다.
현장의 누군가 ‘아침이슬’을 부르기 시작하자 모두 함께 부르는 장면도 연출됐다. 운구차가 현장을 떠날 땐 후배들이 “사랑합니다 선배님”을 목 놓아 외치며 고인의 영면을 슬퍼했다.
고인은 천안공원묘지에서 영면에 든다.
김민기는 지난해부터 투병해 온 위암이 악화돼 21일 가족들 품에서 끝내 눈을 감았다. 학전 팀장이자 고인의 조카인 김성민 씨에 따르면 김민기는 지난해 가을 위암 4기 진단을 받은 뒤 간 전이를 거쳐 폐렴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생전 유언은 ‘그저 고맙다’였다.
빈소가 꾸려진 22일부터 고인의 동료, 후배, 각계 예술인들의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특히 예술계뿐 아니라 정치계에서도 고인이 생전에 쌓아온 업적을 높게 사며, 그를 추모했다.
1951년생으로 서울대 회화과 전공인 김민기는 학전 소극장의 산파이자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탄생시킨 연출가이면서 ‘아침이슬’, ‘가을 편지’, ‘꽃 피우는 아이’ 등 대표곡을 남긴 천재 음악가였다.
1971년 발표한 정규 앨범 ‘김민기’ 수록곡 중 양희은이 부른 ‘아침이슬’이 민주화 시위에서 시민들에 의해 널리 불리자 유신 정권은 이 곡을 금지곡으로 지정했고, 김민기를 집요하게 탄압했다.
군부독재의 탄압 속 군대에 다녀온 김민기는 전역 후 생계 유지를 위해 봉제 공장과 탄광에서 일하면서도 음악 작업의 끈을 놓지 않았고, 소위 ‘저항가요’로 외압에 맞서며 당시 시대정신을 노래로 남겼다.
이후 신군부 정권 막바지, 1987년 민주화 항쟁의 현장에서 광장에 모인 군중이 ‘아침이슬’을 부르며 저항했고 김민기는 ‘아침이슬’과 함께 그 자체로 민주화와 저항의 상징이 됐다.
1991년엔 ‘문화예술계 인재들의 못자리’를 만들겠다는 뜻을 갖고 서울 대학로에 학전 소극장을 열었다. 김민기는 ‘학전’을 30여년간 운영하며 후배 예술인들을 양성해 왔는데 가수 고 김광석, 윤도현·박학기 등이 이곳을 거쳤고 배우 설경구, 황정민, 안내상, 이정은, 조승우 등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 다수가 학전을 통해 배출됐다. 대표작은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이다.
학전은 대한민국 공연예술의 산실로 자리매김했으나 재정난 및 김민기의 투병으로 지난 3월 문을 닫았다가 지난 17일 어린이·청소년 중심 공연장 아르코꿈밭극장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