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척부터 김혜성 지켜본 MLB 기자 시선→냉철? 믿음? "MLB엔 자리 없어, 부진해서 보낸 게 아닌 KIM 위한 길"
"김혜성(26·LA 다저스)은 마이너리그로 내려가 더 많은 타석에 서고, 메이저리그(MLB) 투수에 더 익숙해지는 게 낫다. 적어도 애리조나에 남아서 투구를 경험할 수 있다."
김혜성이 도쿄행 비행기에 타지 못했다. 꼭 비관적인 일만은 아니다.
다저스 선수단은 12일(한국시간) 오전 도쿄행 비행기를 타고 애리조나 스프링캠프를 떠났다. 오는 18일과 19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리는 도쿄 시리즈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오타니 쇼헤이를 필두로 무키 베츠, 프레디 프리먼, 야마모토 요시노부, 블레이크 스넬 등 팀을 대표하는 선수들 대부분 일본으로 향했다. 심지어 재활 중인 클레이턴 커쇼까지 가족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떠났다. 그만큼 구단에 중요한 '빅 이벤트'다.
하지만 그곳에 김혜성의 자리는 없었다. 데이브 로버츠 다저스 감독은 앞서 12일 시범경기 일정을 모두 마친 뒤 "김혜성은 마이너리그 트리플A 오클라호마 코메츠에서 시즌을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지난 1월 다저스와 계약한 김혜성은 시범경기 동안 타율 0.207 부진하며 경쟁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다저스의 제안에 따라 급하게 타격폼을 바꾼 게 단기적으로는 개막 로스터에 오르는 데 어려움으로 작용했다.
좌절하긴 이르다. 타격폼을 바꾸기로 결정했다면 시범경기 내 결과를 얻기 어려운 게 당연했다. 구단의 기대치도 단기간에 성과를 내는 게 아니라 김혜성이라는 타자의 유형이 중장기적으로 완전히 달라지는 쪽에 가깝다.
그러려면 필요한 게 타석이다. 최대한 많은 공을 상대하면서 타격폼을 더 몸에 익혀야 한다. 만약 몸에 맞지 않아 변화를 주려 해도 일단 타석이 필요하다.
다저스는 빅리그에서 김혜성에 나눠줄 타석이 많지 않다. 김혜성에 가장 애정을 가지고 지켜봤던 현지 기자가 봐도 그렇다. MLB 네트워크의 존 모로시 기자는 13일 "김혜성은 마이너리그로 내려가 더 많은 타석에 서고, 메이저리그(MLB) 투수에 더 익숙해지는 게 낫다. 적어도 애리조나에 남아서 투구를 경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모로시는 아시아 유망주에 깊은 관심을 드러내는 현지 언론인 중 한 명이다. 지난 2023년 오타니의 이적을 두고 오보를 날려 체면을 구긴 일도 있지만, 지난해 서울 시리즈와 프리미어12 현장을 모두 찾은 몇 안 되는 미국 기자다.
모로시는 프리미어12에서는 김도영의 활약을 조명했고, 서울 시리즈에선 앞장 서서 '예비 빅리거' 김혜성에 대해 취재했다. 그는 서울 시리즈에 앞서 열린 팀 코리아와 다저스의 경기 후 류중일 당시 팀 코리아 감독과 김혜성, 로버츠 감독에게 여러 질문을 날렸다. 김혜성에겐 바비 밀러의 시속 98마일 강속구를 친 비결을 묻기도 했다. 김혜성이 포스팅시스템(비공개 경쟁입찰)으로 나오기 전부터 "시애틀 매리너스행 가능성이 있다"며 관심을 이어갔다.
그런 모로시가 김혜성에게 "마이너리그가 낫다"고 말한 건 그를 낮춰봤기 때문이 아니다. 이는 지나칠 정도로 두터운 뎁스(선수층) 속에서 '루키'가 적응기를 보내기 어렵다는 의미였다. 모로시는 "다저스의 로스터 구성 방식을 기억하라. 주전 선수 중에 2루수로 토미 에드먼도 있고, 맥스 먼시까지 소화가 가능하다"고 짚었다.
모로시는 "벤치에는 키케 에르난데스, 미겔 로하스, 크리스 테일러 등 슈퍼 유틸리티들이 있다"며 "다저스엔 베테랑 슈퍼 유틸리티 선수들이 너무 많다. 김혜성이 빅리그에서 (주전으로) 출전하는 게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에드먼이 2루수를 보고, 베츠가 유격수를 본다면 중견수로 뛰어야 한다. 외야진엔 마이클 콘포토가 보강돼 있다"며 자리가 많지 않은 현실을 전했다.
김혜성은 바꾼 타격폼을 몸에 익혀야 하는데, 이 상황에선 빅리그에 붙어있더라도 실전을 소화하기 쉽지 않다. 모로시 기자는 "이러면 김혜성을 위한 타석이 어딨겠나"라며 "김혜성을 위한 방안이지, 김혜성이 부진해서 책임을 묻는 게 아니다. 그저 다저스의 베테랑 뎁스가 너무 깊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향후 콜업 가능성도 충분하다. 다저스는 매년 부상자가 발생할 때 마이너리그에서 선수를 적극 콜업한다. 테일러, 먼시, 에르난데스 등 다저스의 유틸리티 선수들도 그렇게 기회를 받고 성장한 이들이다. 모로시는 "그러니 김혜성은 마이너리그로 가서 타석을 소화하면서 향후 콜업을 준비하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차승윤 기자 chasy99@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