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양키스 타자들이 시즌 초 히트시킨 어뢰 배트. 양키스에서 데이터 분석 코치를 지낸 물리학 박사 출신의 애런 린하르트가 개발했다. 큰 주목을 받았지만 그는 “제대로 공을 맞힌 선수들이 잘한 덕분”이라고 말했다. [UPI=연합뉴스] 홈런왕 000은 누가 키웠을까요. 야구 기자를 할 때, 야구팀 프런트를 할 때 종종 딜레마에 빠질 때가 있었습니다. 특정 선수의 성장, 발전을 도운 지도자를 언급하면서 누구를 만든 사람이다는 식으로 정리할 때가 그랬습니다. 누군가의 코칭 능력을 설명할 때 가장 쉽고 단순하게 성과를 연결시켜 주기 때문이었습니다. 대단하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찜찜했습니다. 과연 그럴까 하는 의심도 있었습니다. 과거 어느 홈런 타자의 스승을 자처하는 분들이 여럿 계셔서 어리둥절하곤 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서도 몇몇 분들이 떠오르실 겁니다. 야구나 다른 스포츠 종목뿐만 아니라 일반 사회에서도 비슷합니다. “내가 키웠다"라고 말하는 분들이 꼭 있죠.
프런트를 할 때 제 앞에서 정말 그렇게 말하는 코치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연봉 협상 등 계약 이슈가 있을 때 그런 식으로 자신의 공을 부각하는 경우입니다. 협상 테이블에서 자기의 생각과 주장을 펼치는 것은 권리입니다. 그 자체가 협상 과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투수나 타격같이 특정 파트의 결괏값이 좋다고 해당 파트만 인상하면 다양한 파트로 구성된 코칭스태프 사이에서도 불만이 생깁니다. 팀워크가 흔들리는 상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초보 프런트 시절에는 인연이 있는 다른 구단의 베테랑 코치나 프런트 분들께 조언을 구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코치분들의 역량과 성과를 충실하게 반영해 평가하기가 많이 어렵습니다. 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지표와 사례를 놓고 이야기를 나누지만 규격화하기 힘들고, 반론의 여지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선수의 투구 폼이나 타격 자세를 구단과 현장의 판단과 필요에 의해 수정 중이라면 해당 선수들의 일정 기간 부진을 코치의 실력으로 따지긴 곤란합니다. 육성 대상인 선수를 지도한다면 다양한 시도를 장려하고 실패를 맛보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해 단기적인 성적, 실적에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소통이나 공감 능력 같은 코칭 방식이 상대적으로 평가 대상으로 더 부각되기도 합니다. 여기에도 반론이 나옵니다. 코칭 스타일은 사람마다 개성처럼 차이가 나기에 일률적으로 바라봐선 안된다는 의견입니다. 최적의 시나리오는 시즌 전 구단과 현장 코칭스태프가 함께 선수별 목표치를 정리하고 합의하는 것입니다. 중간중간 점검하면서 평가 요소를 조정해 나가는 것이 이상적입니다. 존중이고 원활한 의사소통이 중요합니다.
프로야구 코치의 처우를 개선하자는 의견이 여러 곳에서 나오는 것을 봤습니다. 동의합니다. 코치진 연봉 협상이나 평가가 어렵고, 협상의 소통 과정이 충분하지 않아 구단 위주의 결정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부는 불안감과 피해의식으로 작은 성과를 과대 포장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결국 태도의 이슈로 전환돼 버립니다. 자칫 감정 소모와 다툼으로 이어집니다.
최근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핫 아이템’으로 떠오른 ‘어뢰 배트’의 발명가의 기사를 보다가 자신의 공을 앞세우는 지도자(또는 사회의 선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내용을 찾았습니다. 세계 최고로 꼽히는 MIT대학 물리학 박사와 미 항공우주국(NASA) 출신 애런 린하르트(Aaron Leanhardt)의 말입니다. 현재 플로리다 말린스의 필드 코디네이터입니다. 그는 기존 배트보다 공이 맞는 부분을 키우고 힘을 집중시킨 형태의 신형 방망이를 개발했습니다. 뉴욕 양키스의 여러 타자들이 개막 3연전에서 15개 홈런을 몰아치자 미디어는 그를 찾아내 집중 인터뷰했습니다.
린하르트는 “저를 포함해 누구도 기존 배트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냥 휘두르며 지냈죠…일상에 익숙하다 보면 우리가 하는 걸 의심하는 데 시간이 걸려요. 몇몇 타자들이 '지금 이 배트가 정말 최선인가'라고 고민했고 저는 그 질문에 반응했을 뿐이에요. 중요한 건 배트가 아니라 타자들이죠. 제대로 공을 맞히는 건 선수의 몫이에요."
그는 선수의 노력에 공을 돌리고 자신을 낮춥니다. 수년 동안 개발 과정에서 힌트를 준선수들의 역발상과 질문에 경의를 표합니다. 바꾸고 다듬고 결과를 만드는 피드백 루프(loop·순환 고리)는 일종의 협업이며 과학 실험실에만 있지 않습니다.
한국코치협회 인증코치 김종문 coachjmoon@지메일닷컴
김종문은 중앙일보 기자 출신으로, 2011~2021년 NC 다이노스 야구단 프런트로 활동했다. 2018년 말 '꼴찌'팀 단장을 맡아 2년 뒤 창단 첫 우승팀으로 이끌었다. 현재 한국코치협회 인증코치(KPC)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