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 달 사이, 한국 연예계를 든든히 지탱해 온 원로 배우들의 별세 소식이 잇따라 전해지며 대중에게 깊은 허탈감과 애도를 남기고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얼굴들이 차례로 무대를 떠나면서, 문화계 안팎에서는 “거대한 한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해 11월 25일 이순재의 별세를 시작으로 12월 7일 김지미, 12월 19일 윤석화가 세상을 떠난 데 이어, 새해 첫 달인 1월 5일에는 안성기마저 영면에 들었다.
현역 최고령 배우로 활동했던 이순재는 향년 91세로 생을 마감했다. 지난해 10월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 공연 도중 건강 문제로 하차한 뒤 치료와 재활에 전념했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1960년 KBS 1기 탤런트로 데뷔한 그는 평생 무대와 안방극장을 오가며 연기 외길을 걸었다. 유작이 된 KBS2 드라마 ‘개소리’로 ‘2024 KBS 연기대상’에서 생애 첫 대상을 거머쥔 것이 그의 마지막 공식 석상이 되었으며, 이후 열린 시상식에서는 후배 배우들이 대리 수상하며 고인을 향한 존경과 감사를 전했다.
‘한국의 리즈 테일러’ 김지미는 지난해 12월 7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향년 85세로 별세했다. 1957년 영화 ‘황혼열차’로 데뷔해 700여 편의 작품에 출연하며 1960~70년대 한국 영화 중흥기를 이끈 상징적 존재였다. ‘토지’, ‘길소뜸’ 등으로 국내외 영화제를 휩쓸었던 그는 떠난 뒤에도 서울영화센터에 마련된 추모 공간을 통해 수많은 시민과 영화인들의 애도를 받았다.
연극계의 대모 윤석화는 악성 뇌종양 투병 끝에 12월 19일 향년 69세로 세상을 떠났다. 연극 ‘꿀맛’으로 데뷔해 ‘사의 찬미’, ‘신의 아그네스’, ‘마스터 클래스’ 등을 통해 대학로의 전설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배우에 머물지 않고 돌꽃컴퍼니 설립, 월간지 ‘객석’ 운영 등 공연 예술의 저변을 넓히는 데 평생을 바쳤다.
‘국민 배우’ 안성기는 1월 5일 오전 9시, 향년 74세로 영면했다. 다섯 살에 데뷔해 60여 년간 약 140편의 작품을 남긴 그는 한국 영화사의 산증인이었다. 혈액암 투병과 재발을 이겨내며 복귀 의지를 다져왔으나, 지난달 30일 자택 식사 중 발생한 기도 폐쇄 사고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장례는 신영균예술문화재단과 한국영화배우협회 주관의 ‘영화인장’으로 치러지며, 발인은 오는 9일 오전 6시다.
연이은 비보에 팬들과 동료들은 “어린 시절을 함께한 별들이 하나둘 사라지는 것 같다”, “그분들의 연기는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며 애도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스크린과 무대 위에서 시대를 비췄던 거장들의 이름은 이제 그들이 남긴 작품 속에 영원한 유산으로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