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콘텐츠 신드롬으로 연예인의 이름, 얼굴 등 ‘인적 식별표지’가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면서, 유명인의 명성에 편승해 부당 이익을 취하는 퍼블리시티권 침해 사례도 급증하고 있다. 과거 대한민국 법조계는 퍼블리시티권에 대한 명문 규정이 없어, 식별표지를 무단 도용당해도 고작 수백만 원의 위자료를 받는 데 그쳤다. 가해자에게는 불법행위가 이른바 ‘남는 장사’였던 셈이다.
퍼블리시티권이란 이름, 얼굴, 목소리 등 개인의 고유한 인적 속성을 상업적으로 이용해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국내에서는 2021년 부정경쟁방지법이 개정되면서 타인의 성명, 초상, 음성 도용을 금지하는 명문 규정이 신설되어 비로소 법적 보호의 틀이 마련되었다.
최근 퍼블리시티권의 가장 뜨거운 격전지는 단연 AI와 디지털 초상권 분야다. 인공지능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달하면서 연예인의 얼굴이나 목소리를 합성한 신종 침해 사례가 급증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즉각적인 법적 조치들도 이루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AI 권리 침해 사례로는 배우 염혜란의 딥페이크 도용 사건과 유명 가수들의 AI 커버곡 논란이 있다. 먼저 영화 ‘검침원’ 측은 염혜란 배우의 초상권 사용 허락을 받지 않고, 그의 얼굴을 AI 딥페이크로 구현하여 영화를 제작하고 홍보해 문제가 됐다. 이에 소속사 측이 초상권 무단 사용에 대해 즉각적인 삭제 조치를 요구하는 등 강력히 대응하면서 해당 영상은 결국 비공개 및 삭제 처리됐다.
이와 더불어 음원 시장에서도 가수 비비의 곡 ‘밤양갱’을 아이유, 백예린, 박명수 등의 목소리로 똑같이 모방해 부른 AI 커버 영상들이 유튜브에서 수십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무단 도용 논란을 빚은 바 있다. 대중은 얼굴 도용에 비해 ‘목소리’나 ‘이름’의 무단 사용에는 상대적으로 둔감한 경향이 있다. 가수의 특유의 음색이나 창법 자체는 현행 저작권법상 명확한 보호 대상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개정된 부정경쟁방지법은 ‘음성’과 ‘성명’ 역시 명백한 법적 보호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타인의 동의 없이 목소리를 AI로 무단 학습시키고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행위는 가수의 퍼블리시티권을 침해하는 명백한 부정경쟁행위로서 손해배상의 대상이 된다.
현재의 부정경쟁방지법은 ‘널리 인식된 유명인’만 보호하므로, 누구나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는 시대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이에 정부는 대중적 유명세와 관계없이 모든 개인이 자신의 성명, 초상, 음성의 영리적 이용을 통제하고 사후 30년까지 상속할 수 있는 ‘인격표지영리권’을 민법에 신설 추진 중이다. 특정인의 권리에서 전 국민의 ‘보편적 권리’로 진화하는 것이다.
K-콘텐츠 산업의 지속적인 성장은 창작자와 아티스트의 투자가 부당하게 도둑맞지 않는 토양 위에서만 가능하다. 현재 추진 중인 민법 개정안이 조속히 통과돼, 고도화되는 AI 및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걸맞은 견고한 권리 보호 시스템이 완성되기를 기대한다.
노종언 변호사 (법무법인 존재)
노종언 변호사 ▶저자 소개=노종언 변호사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사법시험 합격 후 현재 법무법인 존재의 대표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구하라,박수홍, 오메가엑스, 선우은숙 사건 등 굵직한 연예계 분쟁을 수행한 엔터테인먼트 분쟁 전문가입니다. 다수의 사건을 수행하며 얻은 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엔터테인먼트 법률 이슈에 대한 심도 있는 통찰을 제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