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배우 신민아가 신작 ‘눈동자’로 극장가를 서늘하게 잠식한다. 사랑 뒤에 숨겨진 집착과 인간 내면의 균열을 정교하게 조각하며 관객을 위태로운 심리전 한복판으로 밀어 넣는다.
이야기는 시력을 잃어가는 사진작가 서진(신민아)이 시각장애인 쌍둥이 동생 서인(신민아)의 사망 현장을 목격하면서 시작된다. 모두가 서인의 극단적인 선택이라고 말하지만, 서진은 타살임을 직감하고, 직접 진실을 좇는다. 흐려지는 시야 속 본인 역시 범인의 표적이 된 가운데, 서진은 유일하게 자신을 믿어주는 형사 도혁(김남희)과 함께 죽음의 실체를 파헤친다.
‘눈동자’는 고전 스릴러의 서사 문법을 충실히 계승한 작품이다. 염지호 감독은 사건의 발생, 추적, 해결이라는 큰 틀 위에 주인공을 스토킹하는 남자, 불청객 이웃, 동생의 가정부 등 의뭉스러운 인물들을 배치하고 혼선을 일으킨다. 이러한 장르적 규칙은 후반부 사건의 전말이 드러날 때까지 이어지고, 관객은 염 감독이 설계한 미로 속에서 사건의 인과관계를 맞춰가며 끊임없이 범인을 유추하게 된다.
다만 ‘눈동자’는 진범이 밝혀지는 순간의 쾌감에 의존하는 작품이 아니다. 오히려 범인이 공개되고 비극적 서사가 드러나는 순간, 커다란 감정적 파동이 밀려온다. 염 감독은 사랑과 헌신이란 가면에 은폐된 가학적 소유욕을 해부하고, 상대를 지배하려는 욕망이 과연 사랑의 범주인지, 혹은 집착의 발로인지 질문한다. 영화의 원초적 공포 역시 살인과 같은 가시적인 위협이 아닌, 무언가에 서서히 잠식당하는 인간의 어두운 심연에서 비롯된다.
‘눈동자’ 스틸 / 사진=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보이지 않는’ 주인공의 실존적 불안은 공포심을 극대화하는 요소다. 그리고 이는 신민아의 연기로 전달된다. 신민아는 서진이 느끼는 두려움을 밀도 있게 구현하며, 어떤 순간에도 쉽게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스릴러의 매력을 살려낸다. 동시에 서인 역까지 매끄럽게 오가며 비극으로 얽힌 자매의 서사를 한층 입체적으로 완성한다.
신민아가 극을 견인한다면, 범인 공개 후 무너지는 리듬을 회복시키는 건 김남희다. 스포일러 상 자세한 설명은 어렵지만, 김남희는 범인 찾기에 매몰됐던 관객이 서사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새로운 긴장감을 공급한다. 그 방식은 캐릭터의 결핍을 드러내는 내외적인 표현인데, 특히 독특한 비주얼이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김남희는 특유의 표현력으로, ‘눈동자’의 색을 만들고 서사의 완결성을 보완한다.
덧붙이자면, 극 중간중간 등장하는 클리셰는 상투적인 장치라기보다 염 감독이 의도한 오마주다. 염 감독은 앨프리드 히치콕과 스탠리 큐브릭 등 거장들의 영화적 유산을 가져와 자신만의 방식으로 흥미롭게 변주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