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하남 선동야구장에서 하남시리틀야구단과 여자야구단의 연습 경기 겸 김라경(27·뉴욕) 코치의 고별전이 열렸다. 코치로서의 마지막 날, 자신의 첫 제자들에게 의미 있는 추억을 선사하고자 김라경이 직접 주선한 경기였다. 경기 후 선수들 앞에 선 그는 "그동안 수고했다"는 인사와 함께 두 달 반 동안의 지도자 여정을 마무리했다.
선수들과 깊은 정이 든 그는 집으로 향하는 차에 타자마자 눈물을 쏟았다고 털어놓았다. 선수들이 건넨 손편지를 하나하나 읽으며 감정이 북받쳤기 때문이다. "미국 가서 잘하실 거라고 믿어요. 결과가 안 좋아도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우리 생각하시면서 이겨내셨으면 좋겠어요." 자신보다 열 살 어린 제자들의 진심 어린 응원에 김라경 코치는, 아니 다시 투수로 돌아온 김라경은 마음을 다잡았다.
오는 8월 미국여자프로야구리그(WPBL) 뉴욕 팀 입단을 앞둔 김라경은 출국 전까지 하남시리틀야구단에서 두 달 반 동안 코치직을 수행했다. 지난해 11월 WPBL 드래프트 지명 이후, 그는 류현진(한화 이글스)의 트레이너로 잘 알려진 김병곤 박사의 트레이닝 센터에서 몸을 만들던 중 하남시리틀야구단과 인연을 맺었다. 친오빠(김병근, 전 한화)의 옛 스승인 현남수 하남시리틀야구단 감독의 배려로 훈련과 코칭을 병행하며 비시즌을 보낼 수 있었다.
"사실 그동안 어려움이 많았어요. 몸을 만들던 중 어깨 부상이 발생해 여자야구 대표팀에서 하차하게 됐죠. 태극마크에 대한 자부심도 컸고, 국가대표 외에는 체계적으로 운동할 곳이 마땅치 않아 어떻게든 함께하고 싶었지만 결국 재활 훈련에 전념해야 했습니다. 게다가 수입도 없어 고민이 많았는데, 김병곤 박사님과 상담하며 훈련과 수입을 병행할 방법을 찾았습니다. 이후 현남수 감독님께 연락을 드렸고, 코치직을 제안받게 됐습니다."
하남시리틀야구단 선수들을 가르치는 김라경. 선수 본인 제공
단순히 인맥으로 코치가 된 것은 아니었다. 정식으로 학부모 회의를 거친 뒤에 코치로 합류할 수 있었다. 프로 경력이 없는 현역 여자 선수라는 점에서 우려의 시선이 있을 법도 했지만, 학부모들은 김라경이 걸어온 길을 신뢰했다. 김라경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본격적으로 야구를 시작해 여자 선수 최초로 리틀야구에서 홈런을 기록하고, 특출한 재능에 리틀야구 연령 제한을 중학교 1학년에서 3학년으로 연장하는 이른바 ‘김라경 특별법’을 이끌어낸 장본인이다. 여자야구의 선구자로서 길을 개척해 온 과정과 잦은 부상에도 포기하지 않고 미국 프로리그 입단을 이뤄낸 노력 등을 학부모들은 높이 평가했다. 여느 코치 못지않게 풍부한 경험과 공부를 했을 거라는 기대감에 그를 코치로 선택한 것이다.
학부모들의 지지에 화답하듯, 김라경은 훈련을 병행하면서도 선수 지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첫 2주간은 수면 부족에 시달릴 정도로 지도 방식에 대한 고민이 깊었으나, 자신이 리틀야구 선수 시절 겪었던 어려움을 떠올리며 조금씩 다가갔다. 그동안 야구 선수로서 쌓아온 데이터를 바탕으로 선수 개개인의 루틴을 설정하는 데도 도움을 줬고, 오후 6시 30분 이후 진행된 특훈조에서는 선수들과 직접 뛰며 자신만의 노하우와 훈련 드릴을 공유했다.
김라경 '코치'가 하남시리틀야구단 선수들을 위해 만든 자료들. 선수 제공
"아이들을 가르치며 저 역시 많이 배웠죠. 누군가를 가르친다고 생각하고 공부하면 학습 효과가 더 크다고 하잖아요? 선수들을 지도하며 제 야구관도 정립되고, 평소 놓치고 있던 부분들을 되짚어볼 수 있어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선수 개개인에게 만들어준 루틴을 감독님께서 긍정적으로 평가하셨는지, 제가 미국에 가 있는 동안 참고할 수 있게끔 자료로 정리해두고 가라고 하시더군요. 포켓몬 도감을 만들듯 선수 개개인의 프로필과 장점, 앞으로의 과제 등을 AI 이미지를 활용해 정리했는데 무척 뿌듯했습니다. 다들 잘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다시 '선수'로 돌아온 김라경은 미국 출국을 앞두고 있다. 당면한 목표는 8월 1일 열리는 개막전 선발 등판이다.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11순위로 뉴욕 팀의 지명을 받은 그는 팀의 1선발 투수로서 개막전 선발이 유력하다. 리그 개막전이 뉴욕과 LA의 맞대결로 뉴욕의 홈구장에서 열리는 만큼, 김라경이 선발로 낙점될 경우 72년 만에 부활하는 WPBL의 첫 공을 던지는 영예를 안게 된다.
국가대표 김라경. 사진=본인 제공WPBL 드래프트에 참가한 김라경. 사진=본인 제공.
"개막전 선발에 대한 욕심과 기대감이 큽니다. 개막전 선발로 나선다면 정말 영광스러울 것 같습니다. 7월 말에 팀 합류 후 두 차례 정도 연습 경기를 치르고 리그에 돌입할 텐데, 그때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간절히 바라왔던 프로 무대인 만큼, 원 없이 후회 없는 야구를 하고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