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잇' 이원형 CP가 27일 오후 서울 중구 KG타워에서 진행된 일간스포츠와의 인터뷰에 앞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서병수 기자 qudtn@edaily.co.kr /2026.07.27/
‘킬 잇(Kill it)’은 어떤 일을 ‘끝내주게 잘 해내다’, ‘대박을 터뜨리다’라는 뜻이다. 국내에서 흔히 쓰는 ‘올킬하다’와 비슷한 표현이다.
지난 5월 첫 방송해 3개월간 시청자와 만났던 tvN ‘킬잇 : 스타일 크리에이터 대전쟁’(이하 ‘킬잇’)은 이같은 의미에서 시작됐다. ‘도전! 수퍼모델 코리아’,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 등 레전드 패션 서바이벌을 탄생시킨 명가 CJ ENM이 10년 만에 내놓은 야심작이자, 내부에서 “명예회복 프로그램”이라고 평가할 만큼 제작진의 땀과 노력, 그리고 도전 정신이 빛나는 프로그램이다.
‘킬잇’의 제작과 연출을 총괄 책임진 이원형 CP는 지난 27일 일간스포츠와 만나 이 프로그램의 탄생 비화부터, 방송에는 차마 담지 못했던 이야기까지 가감 없이 이야기했다. 사진=tvN ‘킬잇’ 방송 캡처 “방송사도 결국 수익을 내야 하고 시청률을 신경 써야 하는 게 현실입니다. 종합편성채널이 트롯 예능에 집중하고, tvN이 연예인들의 식당 영업 예능을 꾸준히 선보여 온 이유기도 하죠. 하지만 ‘과연 이것이 미디어 트렌드를 선도하는 일일까?’ 하는 고민이 깊었습니다. 시청률과 매출에 매달리다 보니 정작 트렌드는 뒷전이 됐던 거죠. 솔직히 넷플릭스 ‘흑백요리사’나 쿠팡플레이 ‘저스트 메이크업’의 흥행을 보면서 위기감을 크게 느꼈습니다. 과거 tvN도 늘 트렌드를 앞서가던 곳이었으니까요.”
사실 이원형 CP의 말처럼 현시점 tvN의 이미지는 트렌드를 선도한다라기보다 친숙함에 더 가깝다. 나영석 PD 사단이 꾸준히 만들어내는 ‘콩콩팥팥’, ‘꽃보다 청춘’, ‘뿅뿅 지구오락실’을 비롯해 ‘언니네 산지직송’, ‘유 퀴즈 온 더 블럭’, ‘놀라운 토요일’처럼 가족들이 모여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물론 모든 콘텐츠가 꼭 트렌드를 선도해야 할 필요는 없다. 지금 방영되는 프로그램들 역시 이미 시청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으며 탄탄한 팬층을 유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tvN 실무자들과 현장 관계자들이 또 한 번 과감한 시도를 선택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킬잇' 이원형 CP /사진=서병수 기자 qudtn@edaily.co.kr 과거의 영예를 되찾고자 만들어진 ‘킬잇’이지만, 과거 ‘도전! 수퍼모델 코리아’(이하 ‘도수코’)와 같은 서바이벌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띤다. ‘도수코’가 모델에만 직업을 국한해 경쟁을 펼쳤다면 ‘킬잇’은 패션 브랜드 앰배서더를 비롯해 세계적인 모델과 인플루언서 등 SNS에서 영향력을 입증한 참가자들이 고루 모였다.
“10년 전과 지금은 패션계가 너무 다르더군요. 과거에는 디자이너, 모델분들이 트렌드를 이끌었죠. 하지만 요즘은 트렌드를 이끄는 사람이 입는 옷들이 완판이 되더군요. 직업은 중요하지 않죠. 젊은 친구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인스타그램이었어요. 여기에서 인정을 받고 있고, 팔로워 수가 높으며 브랜드들이 협찬을 얼마나 해주냐, 그런 사람들이 ‘핫’한 거죠. ‘킬잇’이 패션 프로그램이긴 하지만 슬로건이 ‘후즈 더 넥스트 스타일 아이콘’이에요. 즉 패션을 소재로 해서 누가 트렌드를 이끌어갈 것인가를 뽑기 위한 프로죠.”
차별화를 둔 건 100명의 참가자들뿐만이 아니다. 심사위원을 블랙 화이트 레드 총 3개의 레이블로 그룹화했고, 각 심사위원마다 쌓아온 필모그래피와 추구미를 바탕으로 팀을 꾸렸다. 블랙 레이블은 ‘아이코닉함’을, 화이트 레이블은 ‘참가자들이 가장 되고 싶어 하는 크리에이터’의 표본이었으며, 레드 레이블은 ‘프로그램에서 가장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실무진’의 역할을 지향했다.
이원형 CP는 “세 레이블 간 신경전이 촬영장에서 엄청났다”며 “각 팀마다 개성이 달랐기 때문에 경쟁이 더 치열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사진=서병수 기자 qudtn@edaily.co.kr /2026.07.27/ ‘킬잇’은 평균 시청률 0~1%대에 머무르며 시청률 지표에서는 아쉬운 성적을 남겼다. 하지만 프로그램 속 등장한 다채로운 미션들은 직업에 한계를 두지 않은 100명의 참가자들을 오직 ‘실력’과 ‘감각’만으로 평가하는 엄정한 잣대가 되었고,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서 제 역할을 다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표적인 예로 제한 시간 60분 안에 스타일링을 마친 뒤 선착순으로 스테이지에 올라 40인의 포토그래퍼에게 선택받아야 하는 ‘포토제닉 미션’, 대결 상대와 캐리어를 교환하는 ‘아이템 전쟁’, 특정 콘셉트의 공간에서 비주얼 콘텐츠를 기획·촬영해 SNS 피드에 올리는 ‘피드 전쟁’, 단 3시간 동안 제한된 예산 50만 원으로 전신 스타일링을 완결짓는 ‘로우코스트 미션’ 등이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단순 시청률이라는 프레임을 벗겨내면 ‘킬잇’이 거둔 실질적 성과는 고무적이다. 여의도 더현대 서울을 통째로 대관해 진행한 대형 미션을 비롯해 애플, 노스페이스 등 트렌디한 글로벌 브랜드들의 러브콜이 쏟아지며 tvN 예능 역사상 최고 협찬액이라는 기록을 썼다.
이 같은 열기는 출연진에게도 그대로 이어졌다. ‘킬잇’에 출연한 모델과 크리에이터들에게 방송 이후 각종 브랜드의 광고 및 협찬 제의가 쏟아지며 파급력을 입증하고 있다. 방송사 내부에서도 본방송 시청률이라는 전통적 지표를 넘어, 인스타그램 플랫폼을 전면 지배하며 1020 타깃층의 뜨거운 반응을 끌어낸 성공적 시도로 평가받는 이유다.
결국 “시청률도 중요하지만, 진짜 트렌드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콘텐츠를 내놓고 싶었다”는 이원형 CP의 말처럼, ‘킬잇’은 tvN이 잊고 있던 본래의 DNA ‘가장 핫하고 시대를 앞서가는 미디어’로서의 야성을 다시금 깨워낸 의미 있는 마중물이 되었다. 사진=tvN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