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비스터스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하영이 100여 년 전 증조부를 둘러싼 논란을 한몸에 받고 있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시작된 가족의 이야기는 어느새 증조부의 친일 행적과 관련한 역사 논쟁으로 번졌고, 급기야 하영에게 ‘친일파 후손’이라는 비난까지 쏟아졌다.
친일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한 역사 속의 인물을 ‘친일파’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 그리고 대중은 충분한 역사 검토를 거치고 누군가를 ‘친일파’로 낙인을 찍고 있는지는 의문이 생긴다.
논란은 SNS에서 시작됐다. 지난 8일 X(구 트위터)에 정은채, 류진, 한소희, 나나의 사진이 함께 올라온 게시물에 한 네티즌이 “여기에 하영을 넣을 것을 제안한다”며 “특이한 점은 대대로 의사 집안인데 증조할아버지가 한양 최초 서양식 병원 개원해서 고종 황제를 진료했다”는 내용의 인용글을 올렸고 화제가 됐다.
하영이 전날 방송된 KBS2 예능 ‘옥탑방의 문제아들’에서 집안이 4대째 의료계에 종사하고 있다고 설명하며 “증조할아버지는 양의학을 일본에 가서 배워오셨다. 한양에 개원을 하신 첫 의사라고 들었다”고 밝힌 것을 SNS에서 다시 인용한 것이다.
해당 SNS 게시물이 확산되면서 분위기는 반전됐다. 일부 네티즌들은 하영의 집안 이야기가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것에 반감을 표출했다. “집안 바이럴 좀 그만해라”, “의사 집안인 것 잘 알겠다” 등의 비꼼을 통해서다. 자신의 집안과 배경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하영에 대한 비호감이 곧 그를 깎아내릴 만한 무언가를 찾아내는 행위로 번졌고, 그 과정에서 증조부의 과거 행적이 ‘파묘’ 되기 시작했다.
여기서 의문점이 생긴다. 과연 이번 하영 증조부 논란은 정말 친일의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된걸까, 아니면 자신의 배경을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는 여자 연예인에 대한 거부감에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온라인상에서 ‘파묘’가 이어진 끝에 하영 측은 증조부가 안상호였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SNS와 커뮤니티에서 하영 증조부가 안상호라는 추측이 이어지자 지난 10일 한 언론 매체가 소속사에 “하영의 증조부가 안상호가 맞냐“고 물었고, 소속사가 이를 인정하면서 본격적으로 친일 논란은 이어졌고 수면 위로 완전히 올라왔다.
소속사 측은 초기 부실한 대응도 도마에 올랐다. 논란이 불거지자 소속사 측에서 하영의 증조부가 안상호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친일 의혹에 대해서는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이후 각종 역사 자료들이 온라인상에서 계속 파묘되자 소속사 측은 하루 뒤 “충분한 검증 없이 ‘사실무근’이라고 성급히 답변해 혼란을 드렸다”고 정정했다. 안상호가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린 기록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인정했다.
현재 확인된 안상호의 과거 행적 가운데 ‘친일 행적’으로 비판받을 부분은 분명히 있다. 안상호가 1916년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이름이 올라가 있다는 점, 1918년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실린 인터뷰는 충분히 비판적으로 살펴볼 만하다.
그렇다고 안상호라는 한 인물의 생애를 전부 ‘친일 행적’으로만 규정할 수는 없다. 안상호가 한국 근대 의료사에 굵직한 성과를 남긴 인물이라는 점에서다. 한국 최초의 근대 개업의로 알려진 안상호는 1908년 한국 최초 의사단체인 의사연구회와 1915년 한성의사회에서 활동했다. 한국 내 의사 조직화, 근대 위생 관리 등에 힘쓰고, 한국 근대 의료 체계의 기반을 다지는 데 영향을 줬다는 평가 또한 존재한다.
대한민국 정부가 ‘친일파’를 공식적으로 부르는 명칭은 ‘친일반민족행위자’다.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은 친일반민족행위를 총 20가지 유형으로 정의하고 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이를 근거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를 발간하고 총 1006명의 친일반민족행위자를 발표했다. 해당 명단에는 안상호의 이름이 포함돼 있지 않다. 민족문제연구소가 간행한 ‘친일인명사전’에도 4776명이 수록돼있지만 여기에도 안상호의 이름은 없다.
안상호가 공식적인 ‘친일반민족행위자’나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과, 그에게 친일 행적이 있다는 사실, 한국 근대 의료사에 의미 있는 족적을 남겼다는 사실은 동시에 존재한다.
그렇지만 온라인에선 이미 한 인물의 삶을 하나의 프레임으로 낙인 찍었다. 하나의 ‘의혹’은 어느 순간 ‘논란’이 되고, ‘논란’은 몇 개의 SNS 게시물을 거치면 ‘사실’처럼 굳어진다. 한 전문가의 견해는 ‘전문가들의 판단’이 되고, ‘학계 자체의 판단’으로까지 몸집을 키운다. 한 사람의 생애는 몇 개의 단어로 압축되고, 그에게 붙은 수식어는 다시 수십 개의 기사와 온라인 게시물을 타고 확산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이번 논란의 출발점에는 하영의 ‘태도’를 향한 반감이 있었다. 자신이 가진 배경을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는 여자 연예인을 향해 ‘집안 자랑’, ‘잘난 척’이라고 보는 시선에서 출발했다. 이를 하영의 경솔함 때문이라고 지적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일제 강점기에 부를 쌓기 시작한 재벌가나 군사 독재 정권과 정경유착으로 성장한 기업의 총수에 대해 하영에게처럼 대중이 비난을 쏟아내는가.
분명히 이번 하영의 가족 친일 논란 기저에는, 집안 자랑하며 잘난 척 하는 잘 나가는 여자 연예인에 대한 반감이 짙게 깔려 있다.
그런 점에서 이제 주목해야 될 것은 안상호의 증손녀인 하영이 논란을 마주하고 나서 보이는 태도다. 대대로 의사인 집안과 증조부부터 내려오는 업적이 그에게 있어 ‘자랑’이었다면, 뒤늦게 드러난 증조부의 친일 행적 또한 그의 ‘몫’이다.
하영은 12일 자필 편지를 통해 “과오를 무겁게 받아들이며 후손으로서 진심으로 사죄드린다. 광복절을 앞둔 시기에 저의 부족함으로 물의를 일으켜 더욱 송구스러운 마음”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그는 관련 자료를 직접 찾아보며 증조부의 친일 행적을 알게 됐다고 인정했고, 자신의 무지를 반성했다. 이어 “우리의 역사를 깊이 있게 공부해 나가며 독립유공자와 우리나라의 광복과 안녕에 힘써 주신 모든 분들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섬기는 데에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잘못 알고 말한 부분은 바로잡고 사과했고, 앞으로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도 약속했다. 지금 대중이 하영에게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선택할 수도, 또 바꿀 수도 없는 증조부가 아니라, 그 역사를 알게 된 후 행할 태도와 그에 대한 책임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하영이 약속한 신중함과 역사에 대한 존중을 어떻게 실천해 나갈지, 또 어떤 태도와 행동으로 증명할지, 지켜보면 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