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 SK 와이번스의 2009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7차전. 5-5 동점인 9회 말 1아웃 상황에서 KIA 거포 나지완이 끝내기 홈런을 때린 뒤 환호하고 있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나온 가장 극적인 상황 중 하나다. 일간스포츠 DB휴일 맞아 만원 관중 이룬 잠실야구장. 잠실=정시종 기자 capa@edaily.co.kr<편집자 주> 본 기사는 일간스포츠 대학생 서포터즈가 기획부터 기사 작성까지 전 과정에 참여해 완성한 텍스트 콘텐츠입니다. 대학생 청년의 시선으로 스포츠 현장을 바라보았으며, 편집 과정을 거쳐 게재됐습니다. 이 외에도 일간스포츠 서포터즈가 기획 및 제작한 카드뉴스와 영상 콘텐츠는 일간스포츠 공식 SNS(소셜미디어)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3년 연속 단일 시즌 1000만 관중을 돌파한 뒤 사상 첫 1300만 관중 동원을 향해 달려가는 KBO리그. 이러한 상황에서 본질적인 의문이 생긴다. 왜 이토록 야구에 열광하는 걸까. 야구는 공을 치고 달리는 단순한 스포츠처럼 보인다. 하지만 수많은 팬이 반복해서 야구장을 찾는 현상에는 인간의 다양한 심리 현상이 존재한다. 야구의 매력에는 인간의 심리를 자극하는 본능이 있기 때문이다.
■ 홈런·호수비·역전타를 기다리는 재미…'간헐적 강화'의 심리
야구팬들이 열광하는 순간은 다양하다. 하지만 짜릿한 장면은 매 이닝, 매 경기 반복되지 않는다. 오히려 수많은 아웃과 평범한 타석 사이에서 예측하기 어려운 순간에 찾아온다. 행동심리학에서는 보상이 일정한 간격이 아니라 예측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주어질 때 행동이 지속되는 현상을 '간헐적 강화(Intermittent Reinforcement)'로 설명한다.
야구의 재미 역시 불확실성과 연결된다. 언제 결정적인 안타가 터질지, 어느 순간 수비에서 명장면이 나올지 미리 알 수 없어서 팬들은 다음 순간을 계속 기다리게 된다. 특히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극적인 플레이가 발생하면, 그 순간의 강렬한 감정과 보상(도파민)에 대한 기억이 다음 경기를 기다리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타석마다 홈런이 나오고 매 경기 일방적인 승리가 이어진다면 오히려 극적인 순간의 희소성은 떨어진다. 수많은 평범한 장면 사이에 드물게 등장하는 결정적인 순간. 야구의 짜릿함은 바로 이 '예측할 수 없음'에서 더 커진다.
많은 야구팬들이 잠실야구장 관중석을 가득 메우고 있다. 잠실=정시종 기자 capa@edaily.co.kr
■ "우리가 이겼다"…팀의 성공을 나의 성공처럼 느끼는 'BIRGing'
팬들은 직접 경기를 뛰지 않는다. 그런데도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승리하면 "우리가 이겼다"고 말한다. 야구가 단순히 '선수가 경기하고, 팬이 지켜보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 이유다. 이는 사회심리학에서 '반사된 영광 누리기(BIRGing·Basking in Reflected Glory)'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반사된 영광 누리기' 효과는 다른 사람이나 자신이 속한 집단의 성공을 긍정적인 자기평가와 연결하는 현상이다. 이는 '사회 정체성 이론(Social Identity Theory)'과도 관련이 있다. 인간은 자신이 속한 집단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자신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집단과 자신을 연결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팬들이 팀의 승리에 "우리 승리"라고 표현하는 것도 이러한 집단 동일시의 사례다. 팀의 순위와 선수들의 기록을 자신의 내면으로 동일화한다. 이 과정에서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성공과 선수의 맹활약을 자신의 긍정적인 경험으로 받아들이며 함께 기뻐하는 거다.
2005년 신인 시절의 삼성 오승환. 한국 프로야구사 최고의 마무리 투수인 오승환이 9회에 등판하면, 상대팀과 팬들은 승리 기대감을 많이 낮췄다. 일간스포츠 DB
■ "아직 끝나지 않았다"…야구의 미완결성이 만드는 긴장감
인간은 해결되지 않은 문제나 끝나지 않은 과제에 주의를 기울이는 경향이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제이가르닉 효과(Zeigarnik Effect)'로 설명한다. 제이가르닉 효과가 경기의 긴장감을 직접 만들어낸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이 사람의 주의를 붙잡는다는 심리적 특성은 야구의 구조와 맞닿아 있다.
경기 시간이 정해진 축구나 농구와 다르게, 야구에서는 마지막 아웃이 잡히기 전까지 경기 결말이 완전히 닫히지 않는다. 9회 말 2아웃에서도, 팬들은 '혹시 모른다'는 생각으로 경기를 지켜본다. 바로 이 불확실성과 미완결성이 팬들의 시선을 마지막 순간까지 붙잡는 야구만의 독특한 매력이다.
결국 야구의 매력은 공을 치고 달리는 행위 그 자체에만 있지 않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결정적인 순간을 기다리는 기대감, 응원팀의 성공을 자기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집단 정체성,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결과를 확신할 수 없는 불확실성에 있는 거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요기 베라·뉴욕 양키스)"라는 말이 야구계 격언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