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라이온즈 마운드에 난데없는 피자 대결이 펼쳐졌다. 선발 등판 전날 어떤 피자를 먹어야 경기력에 더 도움이 되느냐는 토론이었다. 주인공은 외국인 투수 크리스 페덱과 토종 에이스 원태인이다. 페덱은 등판 전날 주로 페퍼로니 피자를 먹고, 원태인은 최근 포테이토 피자를 먹고 마운드에 오르기 시작했다. "포테이토 피자가 더 기운이 좋은 것 같아", "아냐, 피자는 페퍼로니지." 두 선수는 서로의 다음 날 성적을 두고 유쾌한 설전을 이어갔다.
원태인은 원래 등판 전날 피자를 먹지 않았다. 등판 당일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 전날 고기를 절대 먹지 않는다는 그는 물회나 갈치 등 다양한 음식을 섭취해 왔으나, 후반기 팀에 합류해 좋은 성적을 내는 페덱의 루틴을 따라 피자를 먹기 시작했다. 처음엔 페덱처럼 페퍼로니 피자를 먹으려다가 하필 당일에 해당 메뉴를 주문할 수 없어 포테이토 피자를 선택했다. 이후 포테이토 피자는 원태인의 등판 루틴이 됐다. 원태인은 "피자 맛도 있었고 경기 결과도 좋았다. 좋은 흐름이 끊기기 전까진 피자를 계속 먹어볼 것"이라며 웃었다. 첫 피자 후 그는 7월 25일 잠실 두산 베어스전에서 6이닝 1실점으로 호투하며 승리 투수가 됐다.
페덱은 "선발 등판일엔 너무 흥분하고 긴장해서 식욕이 떨어져 식사를 많이 하지 못한다. 그래서 마운드에서 에너지를 낼 수 있도록 탄수화물이 많은 파스타나 피자 같은 음식을 섭취해 두는 편이 좋다"며 "(원)태인이는 내가 한국에 왔을 때 가장 먼저 다가와 말을 걸어준 친구다. 내가 피자를 먹을 때도 와서 호기심을 보이며 묻길래 이유를 말해줬더니 따라 먹더라. '너는 처음 시작하는 거니까 처음부터 너무 큰 피자를 먹으면 안 된다. 그러면 다음 날 오히려 속이 불편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고 전했다.
페덱의 불펜 피칭을 지켜보는 원태인(왼쪽). 삼성 제공
피자의 효과일까. 페덱은 KBO리그 6경기에서 3승 2패 평균자책점(ERA) 2.61을 기록하며 팀의 에이스로 자리 잡았다. 퀄리티스타트(QS·선발 6이닝 이상 3자책 이하)도 5차례 기록하며 제 역할을 다했다. 원태인도 피자 섭취 이후 반등의 발판을 마련했다. 겉으로 보이는 성적은 4경기 2승 1패 ERA 5.68로 다소 아쉽지만, 이전 한 달간 매 경기 5이닝 소화에 그쳤던 이닝 소화 능력이 개선되면서 두 번의 QS를 따냈다. 지난 21일 창원 NC 다이노스전에선 7이닝 3실점으로 약 네 달 만에 QS+(선발 7이닝 이상 3자책 이하)를 기록하기도 했다.
장난기 넘치는 언쟁이었지만, 어떤 피자가 더 도움이 되느냐는 질문의 답은 중요하지 않다. 선수 본인에게 맞는 루틴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페덱은 "야구 선수라면 흔히 갖게 되는 루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효과가 있다면 굳이 바꿀 필요는 없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나는 완벽하지 않고 모든 정답을 알지도 못한다. 하지만 내게도 길잡이가 돼준 팀 동료들과 멘토들이 있었다. KBO 소속이든 마이너리거이든 관심 있는 팀 동료들에게 내 경험담과 효과가 있었던 방법을 공유하며 조금이나마 돌려줄 수 있어 기쁘다"라며 씩 웃었다.
페덱의 '최애' 피자는 역시 페퍼로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베이컨의 식감이다. 페덱은 "미국에서부터 페퍼로니와 베이컨이 들어간 피자를 좋아했다. 한국 피자도 맛있지만, 미국처럼 베이컨을 바삭하게 굽는 곳이 많지 않아 한국에선 페퍼로니 피자만 먹는다"라고 전했다. 이 기사를 읽고 '바싹 구운' 베이컨 페퍼로니 피자를 파는 곳이 대구에 생겼으면 좋겠다는 기자의 말에, 페덱은 크게 웃으며 "태인이와 나에게 피자를 스폰서해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다"라고 유쾌하게 화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