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넷플릭스 제공 긴 러닝타임은 부담스럽다. 엉덩이가 아프고 어깨가 뻐근해질 즈음에야 끝이 보인다. 극장을 나선 뒤까지 기억을 헤집을 만큼 무겁게 달라붙는 이야기도 아니다. 그럼에도 깔끔하게 회수되는 비유와 상징, 무엇보다 배우들의 열연이 164분을 붙잡는, ‘가능한 사랑’이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영화는 해고 노동자인 호석(설경구)이 아내 미옥(전도연)과 함께 스스로 세상을 떠난 전 직장 동료의 장례식장에 찾으면서 시작한다. 그곳에는 해고 노동자들을 취재하는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조여정)가 있다. 열정 넘치는 감독인 예지의 곁에는 그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는 남편 상우(조인성)가 있다.
예지는 호석과 미옥 부부에게 인터뷰를 제안하고 미옥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두 부부의 인연은 시작된다. 촬영이 이어질수록 한 살 차이인 미옥과 예지의 관계는 가까워진다. 반면 부당해고 시위 당시 폭력적인 진압으로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호석은 심리치료도, 예지의 인터뷰도 거부한다.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는 호석에게 다가가기 위해 예지는 상우의 별장에서 함께 여름 휴가를 보내자고 제안한다. 그렇게 한 공간에 모인 네 사람의 관계 사이로 각자의 욕망이 서서히 고개를 든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164분의 러닝타임은 확실히 부담이다. 대신 영화 곳곳에 감독이 심어둔 상징들은 깔끔하다. 반복해서 등장하는 호루라기와 달 같은 소재가 이야기에서 흩어지지 않고 차곡차곡 쌓였다가 마지막에 제자리를 찾아간다. 처음에는 별 의미 없이 지나쳤던 이미지가 인물의 감정과 관계를 설명하는 장치였음을 알아차리는 재미가 있다. 긴 이야기를 보고 난 후 한 번 더 곱씹게 만드는 것도 이런 상징들이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무엇보다 164분을 버티게 하는 건 배우들이다. 전도연은 이야기의 화자로서 관객을 영화 안으로 끌고 들어간다. 미옥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네 사람의 관계와 그 안에서 꿈틀거리는 감정이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오게 된다. 전도연 특유의 섬세한 표정 변화는 설명하지 않은 감정까지 읽게 만든다.
설경구는 정반대의 방식으로 영화에 힘을 보탠다. 말보다 침묵과 표정으로 호석의 감정을 쌓는다. 쉽게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며, 그 침묵이 차곡차곡 축적된 덕분에 후반부 감정이 폭발하는 순간 강력한 힘이 생긴다. 오랜 시간 눌러왔던 감정이 한꺼번에 터질 때 비로소 앞선 절제의 의미가 선명해진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조여정과 조인성 역시 모호한 경계에선 인물들을 섬세하게 표현해낸다. 다정한 얼굴로 호석과 미옥 부부에게 다가가지만, 때로는 이들의 관계에서 안타고니스트처럼 보이기도 한다. 선을 넘는 듯 하다가도 아닌 뜻한, 예지와 상우의 미묘한 태도는 두 배우의 연기 덕분에 더욱 아슬아슬하게 다가온다. 선과 악, 어느 한쪽으로 쉽게 규정될 수 없는 두 사람의 존재가 네 인물 사이의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한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형식적인 완성도 역시 눈에 띈다. 중간 중간 흘러나오는 음악은 영화 특유의 묘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자주 활용되는 원테이크도 마찬가지다. 긴 호흡을 고스란히 보여주면서도 장면 자체를 지루하게 늘어뜨리지 않는다.
극중 다큐멘터리 감독인 예지가 미옥을 촬영한 영상이 실제 영화 안에 계속 삽입되는 방식도 흥미롭다. 미옥이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는 순간들은 본편과 이질적으로 분리되기보단 영화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긴 호흡과 다소 느슨한 이야기는 호불호가 갈릴 지점이다. 그럼에도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와 깔끔하게 회수되는 상징, 자연스럽게 녹아든 영상과 음악이 164분의 긴 러닝타임을 끝까지 지탱한다.
오는 23일 일부 극장 개봉. 11월 6일 넷플릭스 공개. 러닝타임 164분.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