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장애인육상의 간판 장민호(29·안양시청)가 활짝 웃었다. 여자친구와 예비 장인어른이 지켜보는 앞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웠다. 무려 16년 만에 한국 장애인육상에서 나온 세계신기록이었다. 하지만 정작 장민호는 목표로 했던 45초대 진입에 실패했다며 아쉬워했다.
장민호는 23일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 미즈호공원 육상경기장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패러게임(APG) 육상 남자 400m(스포츠등급 T13) 결선에서 46초24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2024년 고베 세계장애인육상선수권에서 스칸데르 자밀 아트마니(알제리)가 세운 종전 세계기록(46초44)을 0.20초 단축한 대기록이다. 한국 장애인육상에서 세계신기록이 나온 것은 2010년 6월 스위스 아르본 월드시리즈 남자 800m의 홍석만 이후 16년 만이다.
장민호. 사진=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장민호는 지난 20일 남자 100m(T13)에서도 10초48의 아시아신기록으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생애 첫 APG에서 두 종목을 제패하며 대회 2관왕에 올랐다.
지난달 같은 장소에서 열린 비장애인 아시안게임에서도 태극마크를 달고 1600m 계주(혼성·남자)에 출전했던 장민호다. 한 달 만에 다시 찾은 나고야에서 이번에는 장애인육상 세계신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경기 후 만난 장민호는 "오늘 세계신기록을 세웠는데, 사실 원하는 목표는 45초대를 뛰는 것이었다. 기록에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라면서도 "그래도 최고 기록을 세웠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이렇게 큰 대회에서 2관왕을 했다는 것 자체도 너무 영광"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사실 세계신기록은 어느 정도 기대하고 있었다. 장민호의 종전 개인 최고기록은 46초47로, 종전 세계기록과 불과 0.03초 차이였다. 올 시즌 400m에 집중하며 기록 단축을 노렸다.
장민호. 사진=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장민호는 "400m는 올 시즌 정말 열심히, 더는 못 할 정도로 노력했다. 좋은 기록이 나올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라면서도 "아시안게임을 뛰고 APG를 준비하는 동안에는 훈련보다 회복에 집중했다. 400m는 훈련량이 부족하면 기록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살짝 두려움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오전 예선에서 50초92로 전체 2위에 그친 것도 체력 안배를 위한 전략이었다. 그는 "아직 400m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하루에 두 번 뛰면 기록이 잘 나오지 않는다. 결선에서 잘 뛰기 위해 체력을 아꼈다"고 설명했다.
400m는 장민호에게 특별한 종목이다. 가장 자신 있는 종목이면서도 가장 두려운 종목이기도 하다. 장민호는 과거 400m를 뛴 뒤 눈에 문제가 생기는 어려움을 겪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400m는 정말 애증의 종목이다. 제가 제일 잘하는 종목이기도 하면서 제일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종목이기도 하다"라며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지만 장담은 못 하겠다. 훈련하면 최선을 다하겠지만 너무 힘들 것 같다"며 웃었다.
장민호. 사진=공동취재단
그럼에도 도전을 멈출 생각은 없다. '한국의 우사인 볼트'라는 수식어에 대해서도 장민호는 "너무 영광이지만 저는 장애인 선수로도 뛰고 비장애인 선수로도 함께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 이 정도 기록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날 세계신기록은 특별한 사람들 앞에서 작성해 더욱 의미가 컸다. 장민호의 여자친구와 여자친구의 아버지가 경기장을 찾은 것이다.
장민호는 "사실 오늘 여자친구를 보러 왔다. 아버님이랑 같이 보러 오셨다"라며 "여자친구가 보러 온 경기에서 최고 기록도 세우고 세계신기록도 세웠기 때문에 예비 장인어른한테도 좋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웃었다.
다만 시각장애가 있는 장민호는 관중석의 여자친구를 직접 보지는 못했다. 그는 "눈이 안 좋아 어디에 있는지는 안 보였다"라고 덧붙였다.
장민호. 사진=공동취재단
16년 만의 세계신기록과 대회 2관왕. 역사적인 성과를 거둔 장민호는 자신을 응원해 준 이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는 "요즘 항상 응원해 주시고 연락도 정말 많이 주신다.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라며 "항상 열심히 해서 희망이 되는 좋은 선수가 되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