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를 뛰어넘는 성과를 거뒀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한국 장애인 국가대표 선수단이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패러게임(APG)에서 선전하고도 종합 순위는 직전 대회보다 한 계단 떨어졌다. 기초종목인 육상·수영의 약세와 전통의 메달밭인 보치아·사격의 아쉬운 성적이 남긴 과제였다.
한국은 18일부터 24일까지 일본 아이치현과 나고야시 일원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APG에서 당초 목표였던 금메달 21개를 초과 달성하며 종합 5위를 기록했다. 직전 2022 항저우 대회보다 한 계단 떨어진 순위다. 탁구에서 역대 최다인 금메달 12개를 수확하고, 휠체어럭비와 펜싱에서 APG 사상 첫 금메달을 따내는 등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지만, 경쟁국의 성장 속도를 따라잡지는 못했다.
가장 큰 과제는 육상과 수영이다. 두 종목은 세부 종목과 스포츠등급이 다양하게 나뉘어 있어 장애인 국제종합대회에서 가장 많은 메달이 걸린 기초종목이다. 이번 대회에서도 육상에 금메달 159개, 수영에 114개가 걸렸다. 전체 489개의 금메달 중 절반 이상이 두 종목에서 나온다. 사실상 이 종목에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종합 순위 경쟁에서도 밀려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실제로 종합 1위 중국은 육상에서 금메달 54개, 수영에서 64개를 따냈다. 2위 일본도 육상 19개, 수영 24개로 두각을 드러냈고, 3위 우즈베키스탄은 육상 20개와 수영 11개, 4위 인도는 육상에서만 금메달 22개를 수확했다.
조기성. 사진공동취재단
반면 5위 한국은 육상에서 장민호(29·안양시청)가 100m 아시아신기록과 400m 세계신기록으로 2관왕에 오르고, 수영에서도 '전설' 조기성(31·용인특례시청)이 12년 만에 APG 금메달을 수확하는 성과를 냈지만, 두 종목에서 나온 금메달은 3개에 그쳤다.
정진완 대한장애인체육회 회장은 24일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한국 선수단 결산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기초종목에서 선수층이 부족하다"라며 "다른 종목에서 강세를 보이면서도 종합 순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시각장애인 선수들이 육상 트랙·필드와 수영 등 다양한 종목에 참가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골볼 등 특정 종목에 편중된 경향이 있다"라며 "이런 선수들을 다양한 종목으로 발굴하고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통적인 강세 종목인 보치아와 사격의 성적도 아쉬웠다. 한국 보치아는 패럴림픽에서 10회 연속 금메달을 수확한 효자종목이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강선희의 여자 개인전(BC3) 은메달과 최아영의 여자 개인전(BC2) 동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보치아 전설' 정호원(40·속초시장애인체육회)도 자신의 마지막 APG 개인전을 메달 없이 마무리했다.
정진완 대한장애인체육회장-장민호-박흥식 선수단장. 사진=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정 회장은 기존 기술과 전략의 노출을 부진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는 "지난 세계선수권을 보면서 이번 APG에서 보치아가 힘들겠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똑같은 선수들에게 졌다"라며 "상대 선수들이 영상 분석을 통해 우리 선수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작전을 구사하는지까지 예측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10회 연속 패럴림픽 금메달을 따는 동안 같은 전략과 기술을 너무 많이 사용했던 것 같다. 지도자들과 함께 새로운 전략과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격은 전체 메달 수가 늘었지만 금메달 경쟁에서는 아쉬움을 남겼다. 항저우 대회에서 금메달 3개와 은·동메달 각 3개 등 총 9개의 메달을 수확했던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 3개, 은메달 6개, 동메달 6개로 전체 메달 수를 15개까지 늘렸다. 하지만 당초 기대했던 금메달 7개에는 미치지 못했다.
정 회장은 "사격은 경기력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우리 선수들이 두세 명씩 결선에 진출할 정도로 경쟁력이 있다"라며 "마지막 결선에서의 경쟁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선주 총감독-정진완 대한장애인체육회장-장민호-박흥식 선수단장. 사진=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대표팀 내부의 경쟁 구도를 강화할 필요성도 제기됐다. 전선주 선수단 총감독은 "국가대표 중심의 체제로 운영하다 보니 내부 경쟁이 약한 것 같다"라며 "꿈나무와 신인, 후보선수를 단계적으로 육성해 국가대표들이 더욱 긴장감을 갖고 훈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대한장애인체육회는 올해부터 꿈나무·신인·후보 등 3단계 육성 체계를 도입했다. 꿈나무는 캠프를 통해 적성을 찾고, 신인은 7~8년의 장기적인 육성 과정을 거친다. 후보선수는 국가대표의 부상이나 공백에 즉시 대비할 수 있도록 준비한다는 계획이다.
스포츠과학 지원 시설 확대도 시급한 과제다. 정진완 대한장애인체육회 회장은 이천선수촌에 경기력향상을 위한 스포츠과학 시설 보강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특히 보치아 등 중증장애인 선수들은 근육의 긴장과 경련을 완화하기 위한 회복 운동이 중요한데도 수중 재활시설이 부족해 인근 복지관 등을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6일 경기도 이천 대한장애인체육회 이천선수촌에서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패러게임 육상 장민호가 훈련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 회장은 "스포츠과학 지원 시설을 만들기 위해 여러 선진국의 시설을 둘러보고 설계까지 마련했다"라며 "실내 80m 트랙에서 영상 분석을 통해 육상 선수들의 경기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시설까지 계획돼 있다. 예산만 반영된다면 세계적인 수준의 시설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는 한국 장애인체육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줬다. 새로운 스타들이 등장하고 메달 종목도 다양해졌지만, 기초종목의 선수층 부족과 기존 강세 종목의 경쟁력 유지라는 과제도 확인했다.
대한장애인체육회는 차세대 선수 발굴과 우수선수 집중 육성, 스포츠과학 지원을 강화해 이번 대회의 성과를 2028 로스앤젤레스(LA) 패럴림픽으로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역대급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부족한 부분을 얼마나 보완하느냐가 다음 국제무대의 성적을 가를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