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라이온즈를 12년 만의 정상으로 이끈 박진만 감독의 가을은 달라져 있었다. 실패를 돌아본 사령탑은 더 과감하게 움직였고, 삼성은 업셋 우승을 완성했다.
삼성은 8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2026 KBO 한국시리즈(KS·7전 4선승제) 5차전에서 KT 위즈에 12-1로 승리, 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정상에 올랐다. 2014년 통합우승 이후 12년 만이자 통산 9번째 우승이다. 정규시즌 1위 KT를 꺾고 거둔 결실이다.
박진만 감독의 '독한 야구'가 빛을 발했다. 부임 기간 동안 야수진의 수비력을 강화하고 선수층을 두텁게 한 공로는 인정을 받았지만, 투수 운용에 있어선 아쉽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가을엔 과감한 승부수와 반박자 빠른 투수 교체 등 마운드 운영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이며 PS를 지배했다.
가장 큰 결단은 원태인의 불펜 전환이었다. 마무리 김재윤이 부상으로 빠지면서 경기 후반을 책임질 투수가 필요한 삼성은 에이스의 역할을 바꿔 뒷문을 보강했다. 잡을 수 있는 경기를 확실히 잡겠다는 선택이었다. 플레이오프(PO) 2차전 마지막 투수로 등판한 원태인은 3차전에서는 1과 3분의 2이닝을 책임지며 승리투수가 됐다. KS 2차전에서도 2이닝을 책임지며 연장 끝내기 위기를 넘겼다. 이후 사흘을 쉬고 5차전 선발로 나서 팀 승리를 이끌었다.
삼성 원태인. 삼성 제공삼성 장찬희. 삼성 제공
필승조 이승민을 플레이오프 5경기에 모두 출전시켜 뒷문을 막게 하기도 했고, KS 5차전에선 10점 차로 벌어진 상황에도 크리스 페덱을 올려 승부를 확정짓게 했다. 그야말로 '독한 야구'다.
KS 4차전에서는 불펜데이의 첫 주자로 신인 장찬희를 낙점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은 강민호 대신 김도환에게 선발 마스크를 맡겼다. 장찬희는 4이닝 1실점으로 버텼고, 김도환은 1회 3타점 2루타로 대량 득점을 이끌었다. 위기에서는 다시 움직였다. 이날 5회 초 1사 만루에서 이재희를 올리면서 포수도 강민호로 교체했다. 두 선수는 실점 없이 이닝을 끝냈다.
물론, 모든 선택이 적중한 것은 아니었다. KS 1차전에서는 최원태의 교체가 늦었다. 안현민에게 투런 홈런을 허용한 뒤 투수를 바꿨고, 삼성은 추격 끝에 한 점 차로 졌다. 박 감독은 “교체 타이밍을 한 발 더 빠르게 했어야 했다. 나에게도 후회가 남는 경기”라고 인정했다.
아쉬움을 인정한 벤치는 다음 승부에서 더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정해진 이닝과 점수 차에 따른 운용에서 벗어나 상대 타순과 투수 상태, 경기 흐름을 살폈다. 기존 계획을 지키는 것보다 당장 필요한 결정을 내리는 데 집중했다.
박진만 감독은 선수 시절 우승 반지를 6개나 모은 '왕조 유격수' 출신 사령탑이다. 현대 시절 4번(1998·2000·2003·2004년) 정상에 올랐고, 삼성 이적 후 2년 연속(2005·2006년)으로 우승을 경험했다.
사령탑 부임 후엔 우승 문턱에서 두 번이나 좌절을 맛봤다. 2024년 KS 준우승에 이어 지난해에는 정규시즌 4위로 와일드카드 결정전부터 PO 5차전까지 치렀다. 하지만 3년 연속 경험한 가을야구는 사령탑에게도 배움의 시간이었다. 박 감독은 “2년 전 아픔을 겪었다. 나도 많이 배우고 연구하고 성장했다”라고 말했다. 실패를 돌아보며 시야를 넓힌 사령탑이 삼성의 오랜 우승 기다림에 마침표를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