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마지막 주, 대중음악계에 수많은 명곡을 남긴 장경수 작사가의 안타까운 별세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고인은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이 영화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 OST로 리메이크하며 세대를 초월한 명곡으로 자리 잡은 함중아와 양키스의 ‘풍문으로 들었소’, 가수 전유진이 MBN ‘현역가왕’ 초대 우승을 차지하는 발판이 된 최진희의 ‘꼬마인형’을 비롯해 조용필의 ‘상처’, 박정식의 ‘천년바위’, 유미리의 ‘젊음의 노트’ 등 수많은 명곡을 만들었습니다. 사랑과 이별, 삶의 애환 등 다양한 인생사를 가사에 담아 대중의 깊은 공감을 이끌어 낸 거장이었습니다.
필자는 장경수 작사가의 별세 소식에 놀라움과 먹먹함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불과 몇 달 전, 그가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작품의 저작자 정보를 되찾는 과정에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당시에는 이토록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실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결과적으로 생전에 자신의 작품 속 이름을 온전히 되찾은 순간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탤 수 있었다는 사실이 다행스럽게 느껴집니다.
◇ 같은 노래, 다른 저작자… 50년 전 기록에서 시작된 오류
지난해 12월 23일 첫 방송을 시작했던 MBN ‘현역가왕’ 시즌3 제작 당시의 일입니다. 방송을 세상에 내놓기 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출연진이 희망하는 경연곡의 권리관계를 정리하고 이용 허락을 협의하는 일입니다. 발표 연도나 원 가창자 같은 크레딧 정보가 잘못되면 시청자에게 혼선을 줄 뿐만 아니라 저작자에게도 지울 수 없는 큰 상처가 될 수 있기에, 한국음악저작권협회(이하 음저협) 등록 정보부터 음반과 언론 보도까지 꼼꼼하게 검증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당시 출연자인 홍지윤은 첫 경연곡으로 ‘뜬소문’을 희망했습니다. 음저협 등록 정보에 의하면, 1976년 가수 희자매가 처음 발표한 곡(정귀문 작사, 고봉산 작곡)으로 등록돼 있었고, 음원 사이트에서도 희자매의 1979년 발매 앨범 ‘Hee Sisters Vol. 3’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LP자료와 음원 사이트를 통해 가수 방미가 1980년도에 발표한 버전도 확인했지만, 당시 음저협에는 등록돼 있지 않았습니다. 별도로 1992년 가수 임종임의 버전(장경수 작사, 함정필 작곡)도 확인했으나 발표 시점과 저작자가 달라 동명이곡으로 판단했습니다.
결국 당시 등록 정보에 따라 ‘뜬소문’은 1976년 가수 희자매가 발표한 작품으로 최종 확인을 거쳐 이용 허락을 받았습니다. 원작자 두 분이 모두 작고해 권리 승계자인 자녀들과 협의를 진행했습니다.
이후, 홍지윤은 “근거 없는 뜬소문이 많아 억울함을 풀고 싶다”는 선곡 이유와 함께 무대에 올랐습니다. 기존과 다른 펑키한 편곡과 파격적인 무대로 뜨거운 호평을 받으며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그때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줄 알았습니다.
◇ 50년 만에 되찾은 이름, 그리고 잊지 못할 감사 인사
새해가 되자 장경수 작사가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방송에 표기된 원가수와 저작자 정보가 잘못됐다는 것이었습니다. 장경수 작사가는 통화에서 ‘뜬소문’은 1980년 방미가 처음으로 발표한 곡이 맞으며, 자신은 1979년도에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차분하게 설명했습니다. 더욱이 1976년은 자신이 작사가로 데뷔하기도 전이고, 아마도 당시 가수 봉은주가 발표한 ‘동네방네 뜬소문’ 악곡과 정보가 뒤섞이면서 이런 일이 발생한 것 같다는 의견도 전했습니다.
필자는 곧바로 음저협 담당자에게 가수 방미 버전의 ‘뜬소문’은 왜 등록되지 않았는지, 희자매·방미·임종임의 ‘뜬소문’이 모두 같은 곡임에도 저작자 정보가 왜 다른지 명확히 확인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이는 저작자의 억울함과 동시에 실무를 담당하는 필자의 입장에서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였습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콘텐츠의 ‘고증·검증 실패’를 탓하는 목소리가 빈번한 현실에서 정확한 사실관계 확인은 더욱 절실했습니다.
음저협 담당자 또한 근 50년도 더 된 일이다 보니 당시의 등록 경위를 파악하기는 어렵다고 답했습니다. 데이터베이스 기록을 정정하려면 당시 음반 발매 기록과 사실관계를 검증하고, 장경수 작사가를 포함한 네 명의 저작자 모두의 동의가 필요해 그야말로 긴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다행히 3개월에 걸친 확인 끝에 희자매, 방미, 임종임의 ‘뜬소문’은 동일한 작품으로 정리됐고, 저작자 정보 또한 장경수 작사가의 이름으로 바로잡혔습니다. 이미 송출된 방송 자막과 유튜브 클립 등은 수정이 불가능해 양해를 구했지만, 홍지윤의 ‘뜬소문’이 공개된 음원 사이트의 정보는 정정된 내용에 맞춰 수정했습니다. 홍지윤 버전의 ‘뜬소문’ 역시 음저협에 등록을 완료했습니다. 이후 MBN ‘전설의 사내’에서 펼쳐진 가수 성리의 무대를 준비하면서 ‘뜬소문’의 크레딧에 장경수 작사가의 이름이 정확히 표기되도록 당부했고, 바로잡힌 기록이 실제 방송에도 온전히 반영될 수 있었습니다.
음악 저작권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공신력 있는 자료가 음저협 데이터베이스인 현실에서 이번 과정이 지니는 의미는 남다릅니다. 한 번 등록된 정보는 공식 기록이 돼 후대에 사실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기록을 방치하면 한 창작자의 노고와 이름이 역사 속에서 지워질 수도 있습니다.
저작권 정보 정정과 홍지윤의 ‘뜬소문’ 저작권 등록 마무리에 이어, 성리의 ‘뜬소문’ 무대에서도 자신의 이름이 온전히 표기됐다는 소식에 거듭 감사 인사를 전하던 고인.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던 그 감격스러운 목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생생합니다.
그때는 몇 달 뒤 이렇게 갑작스러운 이별 소식을 접하게 될 줄 몰랐습니다. 이제는 그분이 남긴 노래와 함께,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그의 이름이 ‘뜬소문’이 아닌 온전한 기록으로 새겨졌습니다. 세상을 떠난 이의 빈자리가 유독 크게 다가오는 오늘, 음악 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쉴 그의 이름 석 자를 조용히 품어봅니다.
김지욱 ㈜메이저세븐이엔엠 대표
▶저자소개=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 석사. 현재 (주)메이저세븐이엔엠의 대표로 음악 저작권과 콘텐츠 현장에서의 음악 저작권 관련 업무 및 자문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JTBC ‘싱어게인’,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 tvN ‘태풍상사’, ‘폭군의 셰프’, SBS ‘우리들의 발라드’, Mnet ‘보이즈플래닛’ 등 다수 프로그램 및 콘텐츠의 음악 저작권 관리 업무를 맡아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