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라이온즈 구자욱의 가을 바람이 현실이 됐다. 왕조의 끝자락에서 처음 한국시리즈(KS)를 경험했던 막내가, 11년 뒤 우승 주장으로 우뚝 섰다. 부상으로 동료들의 승부를 지켜봐야 했던 아쉬움도, 다시 다친 다리를 추스르며 복귀를 준비했던 마음고생도 우승으로 보상받았다. 삼성의 12년 만의 정상 복귀, 그 중심에 ‘캡틴’ 구자욱이 있었다.
삼성은 8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2026 신한 SOL 뱅크 KBO 포스트시즌(PS) 한국시리즈(KS·7전 4선승제) 5차전에서 KT 위즈에 12-1로 승리, 시리즈 전적 4승 1패를 만들며 KS 우승에 성공했다. 2014년 통합우승 이후 12년 만에 맛본 KS 우승이자, 통산 9번째 우승이다. 정규시즌 1위 KT를 꺾고 거둔 '업셋' 우승이기도 하다. 삼성은 안방을 가득 메운 팬들 앞에서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구자욱에게는 11년을 기다린 결실이었다. 2012년 삼성 유니폼을 입었지만 2군과 군 복무에 집중했고, 1군에 데뷔했던 2015년 처음 KS 무대를 밟았을 땐 팀이 준우승에 머물렀다. 구자욱이 다시 KS 경기에 나서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9년 만인 2024년 팀이 KS에 올랐지만 앞선 플레이오프에서 부상을 당했다. 팀은 KS에 올랐지만 정작 자신은 뛰지 못한 채 준우승을 지켜봐야 했다.
삼성 구자욱. 삼성 제공
이번 가을에도 시련이 찾아왔다. 지난 9월 30일 경기 도중 왼쪽 햄스트링을 다쳤다. 재활을 거쳐 돌아왔지만 정상적인 외야 수비와 주루에는 제약이 있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그라운드에서 동료들과 함께하고 싶었다. 플레이오프(PO) 5차전 승리 후 ‘우승 주장’이 되고 싶지 않으냐는 질문에 곧바로 “그럼요”라고 답했던 구자욱. 그는 “이제 우승할 때가 된 것 같다”라며 마지막 승부를 향한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그 마음은 시즌이 시작되기 전부터 간절했다. 구자욱은 지난해 이종열 단장을 찾아가 “최형우 선배님이 우리 팀에 꼭 필요하다”라며 영입을 건의했다. 젊은 선수들에게는 배울 선배가, 자신을 비롯한 중고참들에게는 우승을 향한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다. 왕조 시절 함께했던 선배와 다시 정상에 도전하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최형우가 돌아오자 팀의 목표도 선명해졌다. 구자욱은 스프링캠프에서 “형우 형이 없었더라면, 예전처럼 우승보다 가을야구를 목표로 캠프에 임했을지도 모른다”라며 “형우 형이 평소에 ‘우승하자’라는 말을 진짜 많이 하고 다니신다. 선수들의 마음가짐도 더 단단해졌다”라고 말했다. 최형우도 “자욱이가 나를 믿고 불러준 만큼, 그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 선배로서의 도리”라고 화답했다. 가을에는 최형우가 좌익수를 맡으면서 부상당한 구자욱이 지명타자로 나설 자리를 만들어줬다.
삼성 구자욱. 삼성 제공삼성 구자욱. 삼성 제공
선배의 도움을 받은 주장은 타석과 더그아웃에서 팀을 이끌었다. PO 4차전 패배로 벼랑 끝에 몰렸을 때도 흔들리지 않았다. 구자욱은 5차전을 앞두고 동료들과 “즐기자”, “KS 꼭 가자” 등의 말을 나눴다. 수원 원정에 필요한 짐도 모두 챙겨 버스에 뒀다. 그는 KS 진출을 확정한 뒤 “수원에 갈 수 있다는 자신감, 선수들이 하나로 똘똘 뭉친 힘 덕분”이라고 돌아봤다.
KS에서는 몸으로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3차전에서 2타점 3루타를 때린 구자욱은 부상을 안은 다리로 3루까지 달린 뒤 팬들의 함성을 이끌어냈다. 세리머니에도 주장의 고민이 담겨 있었다. 그는 “팬분들이 조금 더 크게 열광하는 모습을 보고 싶고, 함성도 듣고 싶었다”라며 “분위기를 올리기 위해 혼자 연구했던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더 큰 응원이 동료들의 힘이 되기를 바랐고, 팬들은 뜨거운 환호로 답했다. 구자욱도 “뭉클하고 감동적이고 감사했다”라고 했다.
선배들에게 배우던 막내는 어느덧 선배를 다시 불러들이고, 후배들을 독려하며 팀의 우승을 이끄는 주장이 됐다. “우리는 무서울 것도 없다. 하던 대로 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이라던 자신감도 증명했다. 11년 전 이루지 못했던 꿈을, 구자욱은 이제 자신의 이름 앞에 ‘우승 주장’이라는 수식어를 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