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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웅-장민호-김수찬-송가인, '가요무대' 스페셜 뜬다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의 인기에 가요무대도 출연자 무대를 스페셜로 편성했다. 23일 오후 10시 방송되는 KBS '가요무대-스페셜2' 방송에는 최근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주목 받은 참가자들이 라인업에 대거 올랐다. '미스터트롯' 진 임영웅은 손인호의 '나는 울었네'를 부르고 '미스트롯'의 우승자 송가인은 이해연의 '단장의 미아리고개'를 들려준다. 김수찬은 나훈아의 '찬찬한', 장민호는 나훈아의 '갈무리'를 선곡했다. 전체 라인업에는 방실이, 정재은, 성재희, 조용필, 김성원, 장미리, 지원이, 조명섭, 백남봉, 박경애, 최병걸, 정애리, 독고성, 정원, 최희준 등이 들었다. 황지영기자 hwang.jeeyoung@jtbc.co.kr 2020.03.23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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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남보원 오늘(23일) 발인, 웃음 남기고 떠난 '코미디 전설'

'코미디의 전설' 남보원(본명 김덕용)이 폐렴으로 별세했다. 향년 84세. 고인의 발인은 23일 엄수됐다. 유족으로는 매니저 겸 아내 주길자 여사와 두 딸이 있으며 장례식은 코미디협회장으로 진행돼 수많은 선후배 동료들이 찾아 그의 명복을 빌었다. 1960년 연극배우로 데뷔한 남보원은 1963년 영화인협회가 주최한 '스타탄생 코미디'에서 1위로 데뷔했다. 성대모사의 달인으로 유명세를 얻었으며 후배 코미디언 고(故) 백남봉과 함께 '투맨쇼'로 코미디 황금기를 열었다. 1997년에는 제4회 대한민국연예예술상 대상 화관문화훈장, 2016년에는 제7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코미디협회장 엄용수는 "원맨쇼에 특화된, 독창적인 무대의 소유자였다. 다양한 원맨쇼로 관객을 사로잡으셨는데 너무 아쉽다. 남보원 축구단을 만들어서 후배들의 건강도 챙겨주셨던 분이다. 자주 나와 격려해주셨는데 운명하셔서 마음이 아프다. 후배들이 정말 존경하는 선배였다. 명복을 빈다"고 추모했다. 고인의 장지는 경기도 남한산성에 가족묘로 안장된다. 황지영기자 hwang.jeeyoung@jtbc.co.kr 2020.01.23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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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보원 별세 소식에 애도물결…"진짜 코미디언" 엄용수→남희석 추모[종합]

남보원(본명 김덕용)의 별세 소식에 추모가 이어지고 있다. 코미디계를 대표하는 큰별이 졌음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코미디언 남보원은 21일 오후 4시께 폐렴으로 사망했다. 향년 84세. 폐의 기능이 떨어져 얼마 전 의식을 잃고 병원에 실려 갔다가 고압 산소호흡기 치료로 의식을 회복했으나 결국 의식을 잃고 운명했다. 남보원은 1960년 연극배우로 데뷔했다. 1963년 영화인협회 주최 '스타탄생 코미디'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연예계에 정식 진출했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한국 코미디계의 대표 주자로 활동했다. 2010년 고인이 된 코미디언 백남봉과 함께 '투맨쇼'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1997년 제4회 대한민국연예예술상 대상 화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남보원의 장례는 코미디협회장으로 치러진다. 선영이 있는 경기도 남한산성 자락의 가족묘에 안장된다. 대한민국방송코미디언협회 협회장 엄용수는 일간스포츠에 ""현존하는 코미디언 중 공연예술, 극장쇼, 악극단 무대에서 관객 웃기는 거로 대한민국 당대 최고였다. 모창도 잘하고 창도 잘하고 타령도 잘하고 뭐든지 다 잘했다. 전성기 시절 CF와 영화를 독식하던 분이다. 원맨쇼에 특화된, 독창적인 무대의 소유자였다. 후배들이 정말 존경하는 선배였다. 명복을 빈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개그맨 남희석은 자신의 SNS에 "진짜 코미디언. 선생님 뵙고 반성 많이 했습니다. 감사합니다"란 글과 사진을 올렸다. 남보원과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황소영 기자 hwang.soyoung@jtbc.co.kr 2020.01.22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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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봉 하늘서 만나자"고 했던 남보원, 폐렴으로 별세 [종합]

코미디언 남보원이 눈을 감았다. 고인은 21일 오후 4시께 눈을 감았다. 유족으로는 매니저 겸 아내 주길자 여사와 딸이 있다. 장례식은 코미디협회장으로 치러지고 빈소는 서울삼성병원에 마련된다. 엄용수 코미디협회장은 "현존하는 코미디언 중 공연예술, 극장쇼, 악극단 무대에서 관객 웃기는 걸로 대한민국 당대 최고였다. 모창도 잘하고 창도 잘하고 타령도 잘하고 뭐든지 다 잘했다. 전성기 시절 CF와 영화를 독식하던 분이다. 원맨쇼에 특화된, 독창적인 무대의 소유자였다"고 그를 기억했다. 1963년 영화인협회가 주최한 '스타탄생 코미디'에서 1위로 연예계 데뷔한 故남보원은 백남봉과 '투맨쇼'로 전성기를 누렸다. 2010년 후배인 백남봉이 먼저 눈을 감았을 때, 남보원은 사흘간 빈소를 찾아 "하늘에서 다시 만나 쇼를 하자"고 안타까워했다. 남보원의 타계에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엄용수는 "후배들이 존경하는 선배였다. 명복을 빈다"고 비통한 심경을 전했다. 김준호 등 후배 개그맨들도 소식을 접하고 빈소를 찾아간다는 계획이다. 네티즌들도 운명을 달리한 남보원을 애도했다. 고인은 전 예총예술문화상 연예부문(1996), 대한민국연예예술상 대상 화관문화훈장(2007), 대한민국 신창조인 대상 행복한사회만들기 부문(2015), 제7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2016)을 받았다. 황지영기자 2020.01.21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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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고 무적 3인방 "ACL 진출하고 다같이 세리머니 해 봐야죠"

2003년 10월 15일 부평고와 천안농고의 제84회 전국체전 남고부 축구 결승전이 벌어진 군산공설운동장. 경기장에 들어서는 이근호-김승용-백종환(이상 당시 부평고3년)은 이미 정상에 오른 것처럼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이들이 이토록 자신감을 보인 이유는 경기 시작과 동시에 드러났다. 전반 5분 만에 주장 이근호가 선제골을 뽑아냈고 전반 12분에는 공격수 김승용도 골을 넣었다. 질세라 수비수 백종환마저 전반 27분 골을 터뜨렸다.백운기와 대통령배에 이어 최고 권위의 전국체전(결승 5-1승)까지 3관왕을 달성한 '부평고 전설의 3인방'이 고교 무대를 평정하는 순간이었다.14일 부산 기장 동부산호텔에서 만난 김승용은 "고교 시절 우리는 무적이었다. 친구들끼리 '이번 대회는 우승하자'라고 얘기하면 실제로 그 대회 우승을 차지했을 정도였다"며 웃었다. 날카로운 킥이 주무기였던 김승용은 이근호와 함께 그 시절 최고의 투톱으로 이름을 날렸다. 둘은 유난히 잘 맞았다. 이근호는 "승용이는 내 플레이 스타일을 너무 잘 안다. 내가 공을 한 번 놓쳐도 어디로 움직일지 알고 있을 정도"라고 했다. 팔짱을 끼고 친구의 얘기를 듣던 김승용은 "근호는 첫 터치를 잘 못해도 다음 동작에서 반드시 볼을 받아낸다. 그러니 믿고 줄 수밖에 없다"고 했다.두 친구가 전방에서 '북 치고 장구 칠' 수 있었던 건 든든하게 후방을 지키는 백종환의 존재 덕분이었다. 백종환은 "뒤에 있으면 어디가 흔들리고 어디가 탄탄한지 훤히 보인다. 그럴 때마다 친구들에게 이런저런 쓴소리를 했다"고 말했다. 곰곰히 생각에 잠겨 있던 김승용은 "종환이는 마치 잔소리를 달고 사는 시어머니 같았다. 종환이한테 욕을 안 먹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뛰었다"고 했다.셋은 축구부 친구들 사이에서도 절친한 사이였다. 고교 시절 운동부에서 합숙생활을 하면 한 번쯤은 치고받을 법하지만 이들에게 싸움은 다른 세상 이야기였다. 이근호는 "이상하게 단 한 번도 다툰 적이 없다. 대신 셋이 모이면 늘 볼을 더 잘 찰 궁리만 했다"면서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꼭 이겨야 하는 상대, 중요한 대회를 앞두고는 우리끼리 숙소에 모여 상대팀 경기 영상이 담긴 비디오테이프를 수십 번씩 돌려보고는 했다"고 말했다. 김승용도 거들었다. 그는 "한 번은 근호가 축구에 집중하자고 대회 기간에는 자발적으로 휴대폰을 감독님게 반납하자고 했다. 지금 같으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난리쳤을텐데 이상하게 그때는 마음이 잘 맞았다"며 킥킥 웃었다. 부평고 시절 '코봉이(이근호)' '백남봉(백종환)' '와쌈(김승용)'이라는 별명으로 통했다는 이들은 '왜 그리 부르게 됐는 지는 까먹었다'면서도 여전히 별명으로 서로를 불렀다.그랬던 세 친구가 14년 만에 다시 뭉쳤다. 나란히 K리그 클래식(1부리그) 강원 FC 유니폼을 입은 것이다. '승격팀' 강원은 2017시즌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목표로 삼았다.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은 정규리그 3위 내 진입 혹은 FA컵 우승시 가능하다. 목표를 높게 잡은 만큼 그에 걸맞는 스쿼드가 필요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시즌 제주 유나이티드를 5년 만에 챔피언스리그로 이끈 이근호와 부리람 유나이티드(태국)에서 아시아 무대를 이미 경험한 김승용은 반드시 필요한 자원이었다.2010년부터 강원에서 뛴 백종환은 "근호와 승용이가 우리 팀으로 온다는 말을 듣고 너무 신기했다. 고교 친구 셋이 프로팀에서 함께 뛴 사례는 아직 보지 못했다"며 웃었다. 김승용은 "친구들 얼굴에 주름이 몇 개 더 생긴 것 빼고는 고등학교 시절 그대로다. 정말 재미있는 축구를 한 번 해보고 싶다"며 기대감을 보였다. 하지만 마냥 즐거워만 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올 시즌 주장 백종환, 부주장 이근호 그리고 김승용은 강원을 이끌고 2016년 챔피언스리그 우승팀 전북 현대, 정규리그 우승팀 FC 서울 등 클래식의 강호들과 싸워야 한다.이근호는 친구들과 함께라면 해볼만 하다고 했다.그는 "챔피언스리그 진출이 지금은 말도 안 되는 목표처럼 들릴 지 모르지만 고교 시절에 그랬듯 높은 목표를 잡아야 결과도 비슷한 수준에서 이뤄진다"면서 "무모한 도전이지만 충분히 해볼만 하다. 그래서 시즌 막판에는 승용이 종환이와 진짜 멋진 세리머니 한 번 해보고 싶다"고 했다. 기장=피주영 기자 2017.02.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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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송창의, OCN '닥터 프로스트' 주인공 확정

배우 송창의(35)가 드라마 '닥터 프로스트' 타이틀롤을 맡는다.한 드라마 관계자는 1일 일간스포츠에 "송창의가 오는 11월 방송되는 드라마 '닥터 프로스트' 주인공으로 낙점됐다"고 밝혔다. CJ E&M 관계자도 이날 "'닥터 프로스트'는 '리셋' 후속으로 오는 11월 방송 예정으로 일요일 오후 편성이다"고 말했다.송창의는 극중 '닥터 프로스트'라 불리는 백남봉을 맡는다. 인지와 실험 심리가 주 전공인 교수로 놀라울 정도로 천재. 어릴 적, 심리적 외상과 물리적 외상으로 인한 전두엽 손상을 겪어 정서의 부분적인 마비 상태를 겪고 있지만 논리추론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키 184cm·34세로 6개 언어를 할 수 있다.낮에는 대학교 심리학과 학내 심리 상담소에서 상담교수를 하고 밤에는 바 미러에서 바텐더 일을 한다.'닥터 프로스트'는 2011년 2월 2일 네이버에서 첫 연재를 시작했다. 천재 심리학자 닥터 프로스트(일명 백 교수)가 의뢰인의 트라우마나 성격장애로 인해 일어나는 사건을 해결해 주는 심리학 전문 웹툰. 2011년 독자만화대상 온라인만화상 등을 수상한 유명 작이다.재미있는 점은 원작 만화의 작가 이종범이 곧 방송될 tvN '더 지니어스 : 블랙가넷'에 출연한다는 점. 방송은 오는 11월이다.김진석 기자 superjs@joongang.co.kr 2014.09.01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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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재테크 ①] 백남봉 “노후 대비, 집 한 채·보험 필수”

그는 천상 코미디언이었다. 한국적 ‘원맨쇼의 달인’ 백남봉(70). 그는 지난 4월 늑막염 수술 중 왼쪽 폐 부근에 암종양이 발견, 10시간에 걸쳐 제거 수술을 받았다. 5월부터 꾸준히 항암 치료를 받고 있다. 이제는 주사도 끊고 많이 좋아져 무대에 서서 일도 한다. 대단한 건 아파도 웃는다는 것. 그리고 남을 웃긴다는 것. 지난 21일 KBS TV ‘가요무대’ 리허설 장. 무대에 선 그는 잠시 휴식 중에도 영화 ‘석양의 무법자’를 휘파람으로 불었다. 말발굽 소리와 “히이잉” 말 울음소리로 주변 사람을 즐겁게 했다. 그를 만나 무대 인생 42년 웃음재테크에 대해 들어봤다. 천의 얼굴 가진 한국적 웃음의 달인 그의 고향은 전국 팔도다. 특기도 팔도 사투리와 성대모사다. 전국 어디를 가나 구수한 팔도 사투리를 간이 맞게 버무려가며 거침없는 입담으로 가장 한국적 웃음을 선사한다. 뱃고동에서부터 기관총 소리, 탈곡기 소리까지, 전 소재를 본인이 연구 개발한 성대모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심형래·김병조·이홍렬·황기순·최양락 등이 그의 LP를 사서 연습해 개그맨이 되었다고 할 정도다. 그는 어렸을 때 전쟁과 피난을 경험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면서 가난과 싸워야만 했다. 고아원에 맡겨지기도 했고, 껌을 판 적도 있다. 잣대공장 사원·구두닦이·아이스케이크 장수·장돌뱅이 등 전국 팔도를 떠돌며 수십 가지의 일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나갔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한국적인 웃음을 제대로 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쓸데 없는 곳에 절대 돈 안 쓴다”. 몸에 밴 것은 알뜰한 생활이다.지금 살고 있는 서울 구의동 명성여고 뒤 2층 양옥 자택은 38년 전에 구입했다. 그는 자신에 재테크에 대해 “집 한 채 있고, 노후에 우리 부부 먹고 살만하면 되지, 하나도 내세울 게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주위에서는 그가 ‘소문없이 어려운 사람을 도와준다’고 전했다. 고아원 생활을 해선지 노인과 청소년 등을 물질적으로나 웃음으로나 지속적으로 후원하고 있다는 것. 최근 폐 종양을 잘라낸 그는 연예계 후배들에게 충고를 했다. “아파 보니 나이가 들수록 돈이 없으면 안 되더라. 과거 선배들은 화류계 등에서 탕진해 노후에 돈 한 푼 없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 기운 있을 때, 인기 있을 때 보험 등 미래에 대비해라.” 자전거 전도사의 실족, 고마운 아내 무대에 서면 사람들의 배꼽을 잡게 하는 포복절도 코미디의 대명사이지만 15년 전부터 자전거 타기에 푹 빠져 지금은 ‘자전거 전도사’가 됐다. 하루 4갑씩 피던 골초였던 그는 1년을 두고 금연에 성공했다. 그런데 몸이 20㎏가 불면서 당뇨라는 최악의 적과 마주쳤다. 그때 “수치가 450이 나오는 등 당이 더글더글”했다. 당뇨 약을 먹으니 좋아졌지만 아내가 “자전거가 좋다”고 권했다. 하루에 80㎞씩 꾸준히 자전거를 타면서 당뇨를 싹 고쳤다. 서울 주변의 웬만한 산도 다 섭렵했다. 바다 너머 제주 일주까지 했다. 하지만 3년 전 용문산에서 자전거를 타다 사고를 당했다. 71㎞로 내려가다 커브에서 미끄러져 옆구리 갈비뼈가 부러졌다. 뼈는 다 나았는데 2년 후 옆구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병원에 갔더니 피가 갈비와 유착, 돌덩어리가 돼 있었다. 피 제거 수술 중 폐에 종양이 발견돼 왼쪽 폐를 잘라내야 했다. 9월에야 주사를 끊었지만 항암치료의 고통이 말이 아니었다. 그는 “조금만 더 살게 해주세요. 대중 앞에서 50년만 더 설 수 있게 해주세요. 웃음 없는 각박한 세상에 내가 더 필요합니다”라고 기도했다. 기도가 통했는지 이제는 식사도 잘하고 조금씩 자전거도 탄다. “아파도 주둥이 놀리는 사람이 돼서 입술 근질근질해 잠 못잘 때가 많았다”며 유머를 던졌지만 지극정성 간호한 “마누라의 소중함도 처음 알았다”고 고백했다. 자전거 사고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모든 국민이 건강을 위해서 자전거를 타야 한다”고 강조했다.한쪽 폐를 잘라냈지만 “한쪽만으로도 20~30대처럼 워낙 폐활량이 좋아 괜찮다”는 그는 무대에 올라 ‘불효자는 웁니다’를 연습했다. “지휘관의 유머감각은 일개 사단병력과 맞먹는 파워를 가진다”라는 말이 있다. 백남봉은 KBS TV 장노년층 프로그램 ‘언제나 청춘’의 코너와 피겨스케이트 대표로 첫 메달을 딴 딸 박윤희씨와 함께 위성케이블 방송사인 실버TV ‘백남봉쇼’를 진행하기도 해 ‘노인들의 영원한 친구’로도 통한다. >> 2편에 계속박명기 기자 사진 양광삼 기자 >> 스타재테크 시리즈 더 보기 2009.09.25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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