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짱 축구 선수’로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덧 한국 여자축구의 대들보로 자라났다. 2013 동아시안컵 여자축구 대표팀 주장 심서연(24·고양대교) 얘기다.
지난 17일 대표팀 숙소인 서울 상암동 스탠포드 호텔 로비에서 심서연과 만났다. 긴 머리와 하얀 피부, 투명하고 큰 눈. 파란색 옥스퍼드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은 그는 꾸미지 않은 듯 풋풋한 미모가 더 빛났다.
사진 촬영을 위해 대표팀 유니폼으로 갈아 입자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태극 여전사들을 이끄는 카리스마가 눈빛에서 어른거렸다. 심서연은 “동아시안컵의 목표는 우승”이라고 다부지게 말했다.
“우리도 A대표팀이라고요”
여자 대표팀은 동아시안컵에 대비해 지난 10일 파주NFC(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에 들어갔다. 그러나 여자 대표팀은 일주일 뒤인 17일 서울 상암동의 스탠포드 호텔로 옮겨왔다. 남자 대표팀이 파주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심서연은 “같은 A대표팀인데…”라며 한숨을 푹 쉬었다.
-남자팀과 대우가 다를 때는 속상하겠다.
“남자도 A대표팀, 여자도 A대표팀이다. 솔직히 차도 버스도, 숙소도 남자팀이 오면 항상 비워줘야 하니 속상한 마음이 든다. 그렇지만 우리가 성적을 못 내니 뭐라고 말도 못하고…. 선수들끼리 성적을 내고 당당하게 요구하자고 얘기한다. 특히 이번 대회는 한국에서 하는 만큼 꼭 (우리의 실력을) 보여주고 싶다.”
-홍명보 남자대표팀 감독이 “미안하다”고 했다는데.
“파주에서 짐을 싸서 나오는데 홍 감독님과 마주쳤다. ‘나가는 길이냐’고 물어보셔서 그렇다고 했더니 ‘우리 때문에 나가는 거지. 미안해서 어떡해’라고 하시더라. 그래서 ‘잘하세요’하고 나왔다.(웃음) 홍 감독님과는 2011년 감독님 자선축구에 참가하면서 알게 됐다."
“하의 실종 패션이요?”
심서연은 여자축구를 대표하는 ‘얼짱’이다. 그는 다른 여자축구 선수들이 모두 짧은 머리를 하고 있던 고등학교 때부터 긴 머리를 고집했다고 한다.
-왜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나.
“나도 예전엔 머리가 짧았다. 초등학교때부터 남자애들과 같이 축구 대회도 나가고 그들과 똑같이 뛰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가니 축구를 하지 않은 친구들은 예쁘게 꾸미고 남자친구도 만나더라. 어린 마음에 그게 부러웠다. 그래서 나도 예뻐지고 싶은 마음에 머리를 길렀다.”
-운동할 때는 긴 머리가 불편할 텐데.
“수비수라는 포지션 상 헤딩을 할 일이 많다. 그때마다 꽁지 머리가 공에 부딪혀 풀어지곤 한다. 다시 묶으려면 짜증나기도 하고, 머리 감거나 말릴 때도 시간이 더 걸린다. ‘확 잘라버려?’ 생각도 하지만 그 때마다 ‘아니야. 나 긴 머리 없으면 팬들이 다 달아날지 몰라’ 생각하며 참는다.(웃음)”
-대표팀 후배 전은하가 과거 인터뷰에서 “우리도 축구 끝나면 여자”라고 했다.
“나도 그 기사를 봤다. 예전에 안익수 감독님(현 성남 일화 감독)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 나더라. 대학교 1학년 때 대표팀에 처음 들어갔는데 사령탑이 안익수 감독님이셨다. 그때 감독님께서 ‘너희는 축구 선수 이전에 여자’라고 말씀해 주셨다. 파주에 들어올 때 트레이닝복 입고 오면 무척 싫어하셨고, 머리 자르면 벌금을 물리기도 하셨다. 물론 지금도 머리 짧고 보이시한 스타일의 선수들도 많다. 각자 개성이다."
-그래서 이번에 소집될 땐 뭘 입었나.
“트레이닝복 느낌 나는 원피스를 입었다. 치마가 무릎 위로 올라왔는데, 다들 놀라셨다. 윤덕여 감독님은 ‘너 치마 입은거냐’고 하셨고, 어떤 분은 ‘하의 실종’이라고 하시더라. 무릎 위 10㎝ 정도였는데.(웃음)”
“경기 빨리 끝내고 싶었죠”
한국은 지난 6월 세계 최강 미국과 2차례 평가전을 치렀다. 1차전에서 1-4, 닷새 뒤 열린 2차전에선 0-5로 참패했다.
-미국과 경기해 본 소감은 어땠나.
“막상 가서 뛰어 보니 미국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자라는 게 없었다. 특히 애비 웜바크는 내 롤모델인데, 정말 노련했다. 많이 뛰지도 않고 지능적인 플레이를 하더라. 경기에 지고 나서 감독님께서 ‘이게 우리 현주소’라고 하시는데, 그 말씀이 무겁게 다가왔다.”
-관중도 많았다.
“2차전 때 돔 구장에서 했는데, 관중이 어마어마했다. 그라운드에서 우리끼리 말 하는 소리가 하나도 안 들렸고 집중이 안됐다. 그런 분위기에서 경기를 해 본 적이 없어 모두 당황했다. 주장으로서 선수들을 이끌어야 하는데, 자꾸 실점을 하니 경기를 빨리 끝내고픈 마음 뿐이었다. 그 경험이 약이 됐다고 생각한다.”
-어린 나이에 주장을 맡았다.
“20세 이하, 17세 이하 월드컵을 겪었던 선수들이 대표팀에 들어오면서 기존 선수들과 나이 차가 많이 벌어졌다. 언니들과 동생들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아기자기한 패스플레이 만큼은 남자 대표팀보다 자신있다. 우리 플레이를 기대해 달라.”
손애성 기자 iveria@joongang.co.kr 사진=김민규 기자 mgk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