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블리'가 익숙해진 관객들에게 보란듯이 뒤통수를 친 공효진(36)이다. 러블리한 패션도, 메이크업도 영화 '미씽: 사라진 여자(이언희 감독)'에서는 일절 구경할 수 없다. 조선족이 아닌 100% 순수 중국인 캐릭터를 연기한 공효진은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채 변장에 가까운 분장으로 미모마저 감췄다.
브라운관에서는 여전히 상큼 발랄하고 톡톡 튀는 공블리 캐릭터로 지분율을 쌓는 공효진이지만 스크린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연기파 이미지로 180도 얼굴을 뒤바꾸는 팔색조다. 연기를 위해 버릴 것은 가차없이 버리는 배우. "관객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두렵다"는 공효진의 걱정은 사실상 사치다.
- 조선족이 아닌 100% 중국인 캐릭터를 연기했다.
"시나리오는 너무 좋았는데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처음에는 진짜 중국인이 중국인 역할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근데 여배우로서 탐나는 작품, 캐릭터였고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해보자. 할 수 있다'고 나 스스로를 먼저 믿었다. 필요없는 말들은 최대한 빼냈다."
- 여배우로서 비주얼 등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는데.
"분장을 넘어선 변장을 해야 했다. 하지만 외모보다 중국어 대사를 소화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냥 잘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중국인이 말하는 것처럼 익혀야 했다. 아무래도 중국어 선생님이 배우는 아니니까 한매의 감정은 내가 찾아내야 했다. 다른 나라 언어로 말하면서 연기까지 한다는게 쉽지는 않았다."
- 특별히 어려웠던 장면이 있나.
"중국말과 연기의 조화가 얼마나 자연스럽게 이뤄지냐가 관건이었다. 병원신을 봐도 한국말로 '꼭 지켜주세요'라고 말한는 것과 중국어 대사로 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간절한 억양의 투나 대사 톤이 다르니까 그 감정이 잘 전달되지 않는 것 같았다. 왜 외국인이 한국어 대사로 연기할 때 어쩔 수 없는 어색함이 묻어나지 않나. 그걸 우린 안다. 같은 이치다. 내 연기가 맞는지 안 맞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 시나리오를 보고 첫 눈에 반했다고.
"막 읽었을 때의 첫 감정은 많이 까먹었는데 너무 마음이 아프고 기분이 이상했다. 한매가 불쌍하기도 했다. 아마 캐릭터가 마음에 들어서 그 감정을 더 잘 전달 받았던 것 같다. 여운이 2~3일간 지속됐다. 내가 '인터스텔라'를 보고 비슷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다. 물론 아주 다른 영화지만 감정은 비슷했다. 울기도 많이 울었고 도대체 어디가 슬픈건지 딱 꼬집을 수는 없지만 눈물나게 하는 작품이었다. 안타까움이 컸다."
- 영화에 대한 만족감은 어떤가.
"감정선은 아쉽다. 하지만 내 선택에 후회는 없다. 그 점은 만족스럽다. 시나리오를 보면서 '전반적인 만듦새가 시나리오 만큼만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후 감독님이 '분량을 좀 늘리면 어떻겠냐'는 제안도 하셨는데 거절했다. 롤 크기가 중요한 작품은 아니었다. 한매는 이 정도가 딱 좋을 것 같았고 늘린다고 해서 무슨 이야기를 더 할 수 있을까 싶더라. 몸 상태가 100% 좋지도 못했다."
- 체력적인 문제였나.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때 다리가 부러졌는데 그 후유증이 꽤 오래갔다. 뛰고 도망다니는 촬영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영화를 보면 한매는 크게 움직이지 않는다. 그 이유도 한 목 했다."
- 어두운 골목에서 아기를 안고 우는 신이 인상깊었다.
"내가 있는 곳은 불빛 하나 없는데 바로 아래는 번화가라 번쩍번쩍 빛난다. 몇 m를 사이에 두고 전혀 다른 세상이 공존하는 것이다. 조명 감독님이 그 차이를 보여주고 싶어 아래쪽 빛에 더 신경을 썼다고 하시더라. 다시 말해 나는 라이트를 거의 못 받았다. 오히려 배우에게 조명을 더 많이 안 쓴 작품이다." - 그래도 여배우인데.
"그러니까. 그래도 여배우인데. 화장품 광고도 하는 여배우들인데!(웃음) 조명 감독님이 굉장히 현실적인 장면을 추구하시는 분이라 조명에 인색했다. 낯 신에서는 그냥 주무셨다. 현장에서 반사판은 구경도 못했다. 가끔 감독님께 '있는 얼굴을 왜곡 시킬 필요는 없지 않냐'고 투정 부리기도 했다. 자꾸 없는 팔자주름을 만들어 내니까. 아기 얼굴에도 팔자 주름이 보이니까 말 다 했지.'우리 본판 자체만이라도 제대로 보이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 아기들과의 촬영은 힘들지 않았나.
"당연히 힘들었다. 아기와 동물 촬영이 가장 힘들다고 하지 않나. 영화에 들어갈만한 판타지 장면들이 꽤 있었는데 아기들 때문에 포기했다. 발랄했으면 좋겠는 신에서는 졸려서 넘어지고, 정작 자는 장면을 찍으려고 할 땐 우니까 우리도 감정 조절이 힘들더라."
- 머리카락이 잘리는 신도 고민을 많이 했을 것 같다.
"겁에 질려 있지만 단순히 '무섭고 두렵다'는 감정만 내비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를 믹스해서 보여주고 싶었다. '좀 건조했나?' 싶기도 했는데 작품의 결결을 봐 주시는 관객 분들도 있을 것이라 믿는다. 요즘은 어떤 것을 딱 던져주는 것보다 이런 것 같기도 하고 저런 것 같기도 한 것이 사람들을 공감하게 하는 것 같다. 파악하기 어려운 연기를 시도해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