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넷플릭스 제공 “내 연기에 만족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경력 30년 차 베테랑 배우 김희선은 아직도 목 마르다. 지난 15일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블랙의 신부’로 OTT에 첫발을 내디딘 김희선은 복수를 위해 욕망의 레이스에 뛰어든 서혜승 역으로 활약했다. 서혜승은 남편을 죽음으로 내몰고 자신과 딸의 인생까지 송두리째 망가뜨린 진유희(정유진 분)에게 복수하기 위해 결혼정보회사 렉스가 만들어둔 결혼 비즈니스에 동참하는 인물이다. 김희선은 여자, 아내, 엄마로서 맞닥뜨리는 혜승의 다채로운 감정을 완벽에 가깝게 표현했다.
‘블랙의 신부’는 상류층 결혼정보회사 렉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복수와 욕망의 스캔들을 그린 현실 풍자극. 렉스의 최고 등급인 ‘블랙’과의 결혼을 꿈꾸며 각자의 욕망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며 다양한 인간군상을 담아낸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첫 넷플릭스 시리즈 입성인데 기억에 남는 반응이 있나. “지인들이 ‘1편만 보려고 했는데 8편까지 보느라 새벽에 잤다’는 반응을 보였다. 마침 생일이어서 팬들이 사무실에 파티처럼 큰 풍선도 달아줬다. 하루에도 만 명 넘게 인스타 팔로어가 늘고 있다. 팔로어 수에 집착하지 않는 편인데도 감사하고 좋다.”
-OTT 시리즈 출연은 처음인데. “방영 시간을 맞춰 촬영하다 보면 배우가 고민할 시간이 많이 부족하다. (OTT 촬영은) 시간적 여유가 있어 배우들과 상의를 많이 할 수 있어 좋았다.”
-출연을 결심한 이유가 있나. “결혼정보회사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문화다. 신선한 소재여서 출연을 결정했다. 또 인간의 욕망을 다룬다. 나라, 인종을 불문하고 인간의 욕망은 똑같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공감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동안 수동적인 캐릭터를 많이 맡았다. 스스로 주체가 되어 복수하는 캐릭터가 통쾌해 선택했다.”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을 꼽는다면. “극 후반에 고애란(김선경 분)과 거래를 하며 진유희를 향한 복수를 하는 부분이 가장 통쾌한 장면이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신경을 많이 쓴 장면은 어디인가. “극 초반 서혜승이 진유희를 만났을 때 답답한 부분이 있다. ‘시청자가 답답해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후반부 혜승의 사이다 복수를 위해 앞에서 그렇게 참은 것 같다. 그래서 더 통쾌하지 않았나 싶다.”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죽었는데도 혜승이 복수를 감행하는데. “당연히 남편이 미울 것이다. 그러나 진유희의 본모습을 보고 남편을 불쌍히 여긴다. 진유희의 본성을 알고 난 이후 남편도 희생양이었다는 생각에 남편의 복수를 다짐하지 않았을까 싶다.”
-인간 김희선이라면 실제로 어떻게 복수했을 것 같나. “렉스에서 오랜만에 진유희를 만나는 장면이 있다. 청자를 깨뜨린 것에 혼자 당황하고 눈앞에서 진유희를 놓친다. 실제 나였으면 진유희의 뒷덜미를 잡은 채 청자를 들고 찌를 것이다.”
-의상, 메이크업 등 스타일링에 의견을 낸 부분이 있나. “서혜승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지만 대치동 학원 강사다. 영하게 보이기 위해 청바지, 재킷, 면티를 많이 입었다. 말투나 행동도 아이들 수준에 맞춰 친구처럼 지낼 수 있는 선생님으로 표현했다.”
-작품 속 본인 의견이 반영된 부분이 있나. “현장에서 배우들끼리 대화를 많이 했다. 대사도 함께 수정했다. 김정민 감독이 배우의 의견을 100% 수긍하고 따라줬다. 대본 리딩 이후부터 감독이 ‘내 손을 떠났다’며 전적으로 나에게 역할을 맡겼다.” 사진=넷플릭스 제공-서혜승 캐릭터를 관통할 수 있는 장면이 있나. “진유희를 만났을 때 ‘잃을 게 없는 사람이 가장 무섭다’는 내레이션과 ‘이제는 네 목숨줄 내가 쥐고 있는 거야’라는 대사를 내뿜는다. 잔잔하게 팩트 폭격을 하는 강한 대사들이 포인트다.”
-혜승 역 말고 탐나는 역할이 있나. “차석진, 이형주도 탐난다. 사실 최유선 캐릭터가 가장 탐난다. 자신의 감정을 속이고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는 역할이 재미있을 것 같다.”
-서혜승과 이형주의 서사를 어떻게 생각하나. “이형주와의 감정은 감독의 뜻이었다. 서로 시간을 두고 차츰차츰 알아가는 관계다. 극 중 형주가 요트에서 준호와 혜승을 바라보는 시선이 담긴다. 트로피 같은 와이프가 아니라 아들을 위해 진정으로 애정을 쏟는, 자신이 진짜 원하는 와이프의 면을 보지 않았을까 싶다. 오히려 서사가 더 많았다면 너무 설명적이고 재미없었을 것이다.”
-극 중 최유선과의 심리전이 많은데. “렉스의 대표 최유선은 게임을 재미있게 할 줄 한다. 혜승과 유희, 두 여자를 놓고 심리전을 잘한다. 세 여자의 연기가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다. 최유선 역을 맡은 차지연이 카메라를 어색해했다. 슛만 돌아가면 무대에 서는 카리스마가 나왔다. 넋 놓고 봤다. ” 사진=넷플릭스 제공 -정유진과 호흡은 어땠나. “모델 출신이라 그런지 너무 예쁘고 어려서 ‘내가 저 친구와 함께할 수 있을까’ 싶었다. 성격이 너무 좋았고 웃음 코드가 맞았다. 서로 눈만 보면 웃었다. 하도 웃어서 선배들에게 혼나기도 했다. 착한 후배를 얻어 좋다. 의지를 많이 했다.”
-연령과 데뷔 연차가 다양한 이들이 작품에서 모였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촬영하지 못했던 적이 있다. 당시 맥주 한 캔씩 들고 그룹 영상 통화를 했다. 한 달 동안 그 안에서 작품 얘기도 하고 오늘 하루 어떻게 보냈는지 서로 이야기를 나눴다. 소중한 시간이었다. 실제로 촬영장에서 만났을 때는 너무 신났다. 밖에 나가서 함께 촬영하는 것 자체가 좋았다.”
-제작발표회 당시 후배들이 유난히 따르는 느낌이었는데. “예전에는 어디서든 막내였다. 후배로서 편하게 대해준 사람이 안재욱 선배였다. 촬영 현장에서 제일 닮고 싶은 사람이다. 먼저 다가오는 선배가 좋았다. 선배가 오히려 푼수같이 떠들고 후배에게 다가가니 좋게 받아들여 주는 것 같다. 철이 없는 선배로 영원히 남고 싶다.”
-‘블랙의 신부’만의 무기는 무엇인가. “사람의 등급을 매겨서 결혼을 맺어주는 문화가 한국에만 있다는 게 하나의 무기일 수도 있다. (작품을 통해) 외국에도 이런 회사가 어쩌면 생겨나지 않을까 싶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앨리스’와 ‘내일’ 등 생소한 설정의 작품에 도전을 일삼는 원동력은 어디서 오나. “30년 넘게 연기를 하다 보니 이 정도 되면 비슷한 작품을 하고 싶지 않다. 다른 역할이 탐난다. 새로운 역할을 도전하고 싶다. 액션도 해 보고 싶었다. ‘내일’ 때 액션을 해보니 너무 재미있었다. 칼 갈았다가 한 방을 날리는 혜승 역할도 좋았다. 스스로 재미있게 느끼는 역할이어야 연기할 수 있다.”
-K콘텐츠의 변화를 실감하나. “다양한 작품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선택할 수 있는 게 과거와 큰 차이점이다. 예전에는 남에게 해를 가하지 않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다. 이제는 선택할 수 있다. 1990년대 활동했을 당시에는 악역이 할 수 있는 영역이 배우마다 정해져 있었다. 요즘에는 악역마다 서사가 있고 작품이 좋으면 악역도 할 수 있다. 40대 중반이 할 수 있는 역할도 많아졌다.”
-20대 때 착용한 액세서리나 옷이 완판되곤 했는데. “최근 블랙핑크 제니를 눈여겨보고 있다. 제니가 곱창 밴드를 하고 나왔을 때 유행이 돌고 돈다는 느낌을 받았다. 요즘엔 개성이 강한 친구들이 많다. 트렌드에 민감한 편은 아니다. 결점을 보완하는 게 최고의 스타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날 기분에 맞게 옷을 입는다.”
-199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모든 시대의 현장을 경험했는데. “1990년대는 테이프 시대였다. 요즘에는 데이터 매니저도 있다. 사전 제작도 생기고 쪽대본 문화도 바뀌었다. 조명기구, 카메라, 환경 등 모든 것이 바뀌었다. (과거는) 말도 못 한다.”
-작품에 만족하는 편인가. “만족한 적이 없다. 모니터링하면 잘못한 것만 보일 때가 있다. (내 연기가) 객관적으로 바라봐지지도 않는다.”
-차기작 계획이 있나.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 차기작으로 유해진 선배와 로맨스 코미디, 멜로를 찍을 예정이다. 그때도 많은 사랑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