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총수들이 세계 재계의 ‘큰 손’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의 파트너로 떠오르고 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에 이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손정의 회장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예고하고 있다.
22일 블룸버그통신은 손정의 회장이 내달 한국을 방문해 삼성전자와 소프트뱅크 산하 반도체 설계기업 ARM 간 제휴 가능성을 논의할 것이라고 전했다. 전날 이재용 부회장이 귀국하면서 손정의 회장과 만날 것이라고 한 내용을 뒷받침한 셈이다.
3년 만에 한국을 방문하는 손 회장은 소프트뱅크 대변인을 통해 “이번 방문에 대한 기대가 크다. 삼성과 ARM 간 전략적 협력에 관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알렸다.
두 그룹의 총수가 ‘빅딜’과 관련해 공개적으로 얘기한 만큼 인수합병이 어느 정도 진척됐다는 평가다. 이제 과거 ‘규제 당국의 반대’로 무산되었던 빅딜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나갈지 관건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2주간의 해외 출장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ARM 인수 가능성에 대해 “다음 달에 손정의 회장께서 서울에 오실 것이다. 아마 그때 무슨 제안을 하실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이 부회장이 언급했듯이 어떤 방식의 제안일지가 빅딜 성사의 관전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앞서 소프트뱅크는 ARM을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에 400억 달러(약 56조원)에 매각하려 했지만 규제 당국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후 미국 나스닥 상장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고 지속적으로 밝혀왔다.
ARM은 독점 규제로 인해 인수합병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CPU),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등 IT 기기의 설계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다. 특히 모바일 칩 설계 분야에서 ARM의 점유율은 90%에 달한다. ARM을 인수하면 모바일 칩 설계 분야를 독점하는 꼴이라 규제 당국의 승인을 얻기가 힘든 실정이다.
소프트뱅크는 ARM의 75% 지분을 갖고 있는 대주주다. 나머지 25%는 사모펀드가 갖고 있다. 독점 규제 이슈를 피하기 위해 손 회장이 ‘현대차의 보스턴 다이내믹스 인수’ 모델을 제시할 수도 있다. 현대차는 2020년 말 소프트뱅크가 소유한 80%의 보스턴 다이내믹스 지분을 인수했다. 80% 중 현대차 30%, 현대모비스 10%, 현대글로비스 10%, 정 회장 20%로 지분을 나눴다. 나머지 20%는 소프트뱅크가 그대로 소유했다.
손 회장이 독점 규제를 피하기 위해 ARM 지분 75% 중 50% 정도만 삼성전자에 넘기고 나머지의 지분을 그대로 보유하는 방식을 제시할 수도 있다. 그러면 소프트뱅크는 지분 매각을 통해 당장 필요한 현금을 얻을 수 있고, 삼성전자는 설계 기술을 확보하면서 시스템 반도체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할 수 있다.
재계 관계자는 “ARM의 매각대금이 최대 70조원까지 전망되기에 삼성전자 단독이 아닌 SK하이닉스, 인텔, 구글 등과 컨소시엄을 통해 인수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