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전지현은 30년 차에 접어든 지금도 여전히 한국의 ‘톱스타’다. 하지만 그는 안주하지 않는다. 1997년에 데뷔했지만 지금도 매 작품 배우고 성장한다고 말한다.
최근 영화 ‘군체’ 무대인사 현장에서 넘어진 관객을 가장 먼저 발견하고 달려가 손을 내민 순간 역시 그런 변화의 연장선이다. 전지현은 작품 속 권세정이라는 인물을 통해 ‘의로움’을 배웠다고 털어놨다. 그는 “누군가를 도와주는 것도 결국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는 걸 느꼈다”며 “‘군체’를 하면서 그런 마음들을 많이 배우게 됐고, 그래서 예전보다 조금 더 먼저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군체’에 출연한 전지현을 만났다. 지난 21일 개봉한 ‘군체’는 정체불명의 감염사태로 봉쇄된 건물 안, 고립된 생존자들이 예측할 수 없는 형태로 진화하는 감염자들에 맞서는 이야기를 그린다. 전지현은 극중 생명공학과 박사이자 생존자들의 리더 권세정 역을 맡았다.
‘군체’는 개봉 5일 만에 누적관객수 200만 명을 돌파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이어가고 있다. ‘암살’ 이후 스크린 복귀가 11년 만인 전지현은 “너무 기분이 좋다”며 웃었다.
“아직 손익분기점을 넘긴 건 아니지만, 많은 분들이 찾아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에요. 사람 욕심이 끝이 없다고는 하지만 손익분기점만 넘어도 정말 감사할 것 같아요. 무엇보다 요즘 한국 영화 분위기가 좋은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요. 여러 장르 영화들이 함께 잘됐으면 좋겠어요.”
사진출처=포토그래퍼 김신애 11년 만의 영화 복귀 이유에 대해서는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영화 산업 자체가 많이 주춤했고, 시나리오를 검토할 기회도 줄어들었어요. 자연스럽게 드라마나 시리즈물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됐죠. 그러던 중 ‘군체’ 시나리오를 받게 됐는데, 사실은 읽기도 전에 마음속으로는 이미 하기로 결정했어요. 연상호 감독님 작품을 워낙 좋아했거든요.”
전지현은 오래전부터 연상호 감독과 꼭 작업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다만 작품 속 인간 군상과 특별한 세계관 탓에 감독에 대해 막연한 선입견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감독님 작품에는 특유의 색깔이 있잖아요. 그래서 어려운 분일 줄 알았어요. 실제로 만나보니까 너무 편안하고 인간적인 분이더라고요. 현장 분위기도 감독님 덕분에 굉장히 밝았어요. 왜 한 번 작업한 배우들이 계속 감독님과 작품을 하고 싶어 하는지 깨달았죠.”
사진제공=쇼박스 ‘군체’에서 전지현은 생존자들을 이끄는 권세정을 연기하며 화려한 액션보다는 현실감 있는 움직임에 집중했다. “할 건 다 했는데 너무 화려한 액션은 자제하자는 마음이 있었어요. 권세정은 최현석(지창욱)처럼 좀비를 때려 잡는 캐릭터는 아니거든요. 권세정이라는 인물이 할 수 있는 선 안에서 표현하려고 했어요.”
전지현은 넷플릭스 ‘킹덤: 아신전’ 이후 약 5년 만에 다시 좀비 장르에 도전한 이유도 밝혔다. 그는 “배우라면 여러 장르에 도전하는 게 자연스러운 것”이라며 “한 장르에만 국한되기보다는 어떤 옷을 입어도 어색하지 않은 배우가 되는 게 가장 좋다”고 말했다.
“배우는 시장이 넓어야 한다고 생각해왔어요. 한국에만 국한된 배우가 아니라 더 넓은 시장에서도 활동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었죠. 액션은 언어가 달라도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장르잖아요. 대사로 설명하지 않아도 공감할 수 있는 힘이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계속 도전하게 된 것 같아요.”
사진제공=쇼박스 ‘군체’는 제79회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공식 초청되며 화제를 모았다. 전지현 역시 영화와 함께 칸을 찾았다.
“칸에 간 건 이번이 세 번째였는데, 제 작품으로 공식적으로 선 건 사실상 처음이었어요. 이전에는 레드카펫 자체를 제대로 즐기지 못했던 기억이 더 컸거든요. 이번에는 정말 ‘군체’만의 레드카펫이라는 느낌이 강해서 더 특별했어요. 영화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영화제에서 우리 작품을 처음 선보인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뭉클했죠.”
전지현은 오랜 시간 ‘톱스타’라는 위치에 있었지만, 이제는 그 무게를 의식하기보다 조금 더 자연스럽고 편안한 모습으로 대중과 가까워지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제는 ‘부끄러우니까 누가 대신해줬으면 좋겠다’거나 낯을 가리는 마음들이 점점 사라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오래 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변한 것 같아요. 저는 어릴 때부터 사회생활을 작품 안에서 배운 사람이거든요. 캐릭터를 통해 성장했고, 그 안에서 사람을 배우게 됐어요.”
사진제공=쇼박스 그는 긴 시간 대중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스타’로 살아간다는 의미와 그에 따른 책임감에 대해서도 솔직한 생각을 전했다.
“제가 좋아했던 가수나 배우들이 나이가 들어서도 잘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 사람들이 무너지면 제 시절도 같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저 역시 누군가의 시간을 담고 있는 사람일 수 있잖아요. 그래서 저 또한 더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전지현은 여배우로서 시간이 흐를수록 좁아지는 현실 속에서도 자신만의 속도로 길을 걸어가고 싶다고 밝혔다.
“나이가 들수록 배우로서 기회가 줄어드는 건 현실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제가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감정과 캐릭터를 만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과거에 머무르지도 않고, 너무 앞서가려고 조급해하지도 않으면서 지금의 저를 가장 잘 담아낼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