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공을 가운데 두고 종종걸음 치던 여학생들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빠르게 굴러가는 공만 좇느라 미처 동료들을 바라보지 못했던 시간. 아이들은 발끝으로 공을 멈춰 세운 뒤 재빨리 그라운드 곳곳에 흩어진 팀원들의 위치를 확인했다. 그리곤 골로 연결하기에 가장 좋은 위치에 있는 친구를 향해 패스를 연결했다.
훈련 모습을 지켜보던 여성 코치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 그렇지!”
어쩌면 이날 아이들이 배운 것은 단순한 축구 기술이 아니었는지 모른다. 모두가 앞만 보고 전력질주해야 하는 빡빡한 삶 속에서, 주변을 살피는 방법을 익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63빌딩 옥상에는 아주 특별한 작은 축구장이 마련됐다.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가 피스마이너스원, 대한축구협회와 함께한 글로벌 프로젝트 'X2: Korea x PEACEMINUSONE(엑스 투: 코리아 x 피스마이너스원)'을 공개하는 자리에 어깨를 나란히 한 '위밋업 스포츠(위밋업)'와 축구를 사랑하는 여중·고등학생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위밋업은 은퇴한 여성 선수들이 설립한 사회적 기업이다. 한국은 여성 스포츠인들이 현역에서 물러난 뒤 관련 일자리를 찾기 쉽지 않은 나라로 꼽힌다. 프로 축구 선수 출신임에도 은퇴 후 고깃집에서 서빙을 하거나 일용직을 전전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위밋업은 2021년 사단법인으로 등록한 뒤 여성 스포츠 강사를 영입해 축구, 농구, 야구를 비롯해 스노보드와 주짓수 등 익스트림 스포츠까지 10여 개 종목의 수업과 경기를 운영하고 있다. 여성 지도자를 통해 학교 현장에서 소외되기 쉬운 여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운동을 즐기고 배울 수 있도록 돕는다.
나이키는 6년 전부터 전문 코치를 양성해 여성 코칭의 다양성을 확대하고, 더 많은 소녀들이 스포츠를 통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위밋업을 지원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아동·청소년 스포츠 참여 확대 프로그램인 '액티브 모두(Active Modoo)'다. 나이키코리아는 초록우산, 위밋업과 함께 7~12세 초등학생과 7~17세 여자 아이들에게 안전하고 즐거운 놀이·스포츠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학교에서 소외되기 쉬운 여자 아이들을 위한 스포츠 클럽에는 10~12세 초등학생 320명이 참여하고 있다.
나이키코리아 관계자는 "현재 14개 축구 클럽과 4개 농구 클럽이 운영 중"이라며 "단순한 체육 활동을 넘어 여자 아이들이 스포츠를 통해 자신감과 소속감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이날 하늘 위 운동장에는 서울 양천구 목동 일대에 거주하는 여중·고등학생들이 모였다. 위밋업이 운영하는 여자 청소년 축구 프로그램 '킥키타카(Kicki-Taka)'의 일환이다. 월촌중, 목동중, 신목고 등 서로 다른 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훈련 분위기는 오랜 친구들처럼 자연스러웠다.
목동은 강남구 대치동과 함께 국내 대표 학군지로 꼽힌다. 평소라면 학원과 학교를 오가며 치열한 경쟁 속에서 하루를 보냈겠지만 이날만큼은 영어 단어장과 수학 문제집 대신 축구공을 들었다. 여학생들은 푸른 하늘 아래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친구에게 패스를 건네고, 실수에 함께 웃었다.
훈련은 체계적이었다. 코치들은 기술보다 먼저 시야를 강조했다. 공을 잡은 뒤 어디로 패스할지 고민하면 이미 늦다는 것이다. 공이 오기 전에 주변을 살피고 공간을 읽고 동료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습관을 반복해서 가르쳤다. 수업 초반에는 워밍업과 기본기 훈련을 진행했고 이후에는 직접 경기를 하며 배운 내용을 몸으로 익히도록 했다.
이날 학생들이 참여한 프로그램은 위밋업이 운영하는 여자 청소년 축구 프로그램 '킥키타카'다. 선수 생활을 마친 여성들이 직접 코치로 참여해 학교와 지역 커뮤니티를 찾아가 축구를 가르친다.
축구 기술을 익히는 것만이 목표는 아니다. 스포츠를 통해 자신감과 협력, 소통의 가치를 경험하도록 돕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신목고 1학년 이소윤 양은 "처음에는 운동이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친구들과 함께 뛰다 보니 오히려 기다려지는 시간이 됐다"며 "운동을 하고 나면 스트레스도 풀리고 기분도 좋아진다"고 말했다.
월촌중 3학년 박은호 양은 공격형 미드필더로 팀의 핵심 선수 중 한 명이다. 박 양은 "토요일 오전마다 2시간씩 훈련에 참여한다"며 "연습했던 것이 실제 경기에서 성공했을 때 가장 기쁘다"고 웃었다. 이어 "엄마가 공부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축구를 즐기도록 허락해 주신다"며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나이키가 지역 사회 파트너들과 함께 아이들의 놀이와 스포츠 참여 기회를 넓히는 프로그램 ‘액티브 모두(Active Modoo)’. [사진 나이키 코리아] 한국 사회에서는 무척 보기 드문 풍경이다.
질병관리청의 2025년 청소년건강행태조사에 따르면 주 5일 이상 하루 60분 이상 신체활동을 실천하는 비율은 남학생이 24.5%, 여학생은 8.5%에 불과하다. 여학생 10명 가운데 9명 이상이 권장 수준의 운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한국 청소년의 신체활동 부족 문제를 지속적으로 지적해왔다. 공부 중심의 교육 환경과 입시 경쟁 속에서 운동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기 쉽다. 특히 여학생은 운동을 지속할 수 있는 환경과 기회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자 청소년 스포츠의 문턱은 여전히 높다.
운동을 좋아해도 함께할 팀을 찾기 어렵고, 학교 밖에서 체계적으로 배울 기회도 많지 않다. 접촉이 있는 종목에 대한 부담과 편견, 부족한 시설, 여성 지도자 부족 문제도 여전히 존재한다.
한국 여성 프로 선수들은 은퇴 뒤 전공을 살린 재취업이 무척 힘들다고 토로한다. [사진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나이키와 위밋업이 주목한 부분도 바로 이 지점이다.
현재 킥키타카 프로그램에는 전국 22개 거점에서 약 400명의 여자 중·고등학생이 참여하고 있다. 축구를 통해 또래와 관계를 맺고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동시에 은퇴 선수들에게는 새로운 커리어 기회를 제공하며 스포츠 생태계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
나이키는 2020년부터 초록우산, 위밋업 스포츠와 함께 여자 청소년 스포츠 참여 확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로 6년째다. 축구공과 유니폼 등 물품 지원을 넘어 운영비와 시설 대관료, 간식비 등 프로그램 운영 전반을 지원하며 참여 기회를 넓히고 있다.
나이키가 오랫동안 이어온 사회공헌 활동과도 맞닿아 있다. 나이키는 스포츠를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기본적인 경험으로 보고 신체활동 기회가 부족한 아동·청소년에게 운동 환경을 제공해왔다.
63빌딩 옥상 운동장에서 만난 학생들은 공을 차고, 웃고, 서로를 응원한 뒤 집으로 돌아갔다. 지드래곤의 피스마이너스원과 협업 프로젝트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날이었지만, 한편에서는 6년째 이어진 여자 청소년 스포츠 지원 프로그램이 조용한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축구는 단순한 운동일 수 있다. 그러나 이날 그라운드 위의 소녀들에게는 자신감을 배우고 서로를 바라보는 법을 익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