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매년 겨울이 두려웠다.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 시즌을 마쳤고, 1군 기회가 찾아와도 부담감에 스스로 무너졌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오른손 투수 이건욱(31·SSG 랜더스)이 '오늘'만 바라보며 오랜 기다림 끝에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있다.
동산고를 졸업한 이건욱은 2014년 SK 와이번스(현 SSG)의 1차 지명을 받고 프로에 입단했다. 당시만 해도 팀의 미래를 책임질 대형 유망주로 기대를 모았다. 2020년에는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6승을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활약은 미미했다. 1군에 올라올 때마다 흔들렸고, 대부분의 시즌을 전력 외 자원으로 보내야 했다. 그 결과 매 시즌이 생존 경쟁이었다.
오른손 투수 이건욱의 투구 모습. SSG 제공
이건욱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올해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기회가 많이 남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어린 선수들에게 다섯 번 정도 기회가 간다면, 나에게는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라고 생각했다"며 "(어렵게 찾아온) 기회를 잡아야 했다. (정작) 기회가 오면 어떻게 던져야 할지, 또 예전처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많았다"고 돌아봤다.
불안감은 오히려 자신을 옥죄었다.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힘만 들어갔고, 결과도 따라오지 않았다. 이건욱은 "어떻게든 잘 던지고 싶은 마음에 세게만 던지려고 했다"며 "그런데 올해는 마음을 조금 편하게 먹고 들어가려고 한다. 마음을 내려놓으니까 오히려 잘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심리적인 변화는 경기력으로 이어졌다. 올 시즌 그는 18경기에 등판해 평균자책점 1.25(21과 3분의 2이닝 3실점)를 기록하고 있다. 이닝당 출루허용(WHIP)이 0.92, 피안타율도 0.162로 수준급. 공 들인 슬라이더의 위력이 커지면서 전체 구종의 안정감이 향상했다는 평가다.
SSG 운영팀 관계자는 "육성군에서 피지컬 훈련을 통해 구속을 끌어올리고, 슬라이더의 종적·횡적 움직임을 극대화하는 기술 훈련에 집중했다. 선수 본인의 꾸준한 노력과 코칭스태프의 적극적인 지원이 더해지며 지금의 퍼포먼스를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주로 추격조에서 등판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역할은 아니지만, 묵묵히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며 불펜에 힘을 보태고 있다. 달라진 모습을 느낀다. 그는 "예전에는 TV로 경기 영상을 보면 긴장한 모습이 많았는데, 지금은 비교적 여유가 있어 보이더라"며 "표정만 봐도 많이 발전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웃었다.
어렵게 잡은 1군 기회를 잘 살려가고 있는 오른손 투수 이건욱. SSG 제공
욕심도 내려놨다. 시즌 성적이나 개인 기록보다 눈앞의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 그의 새로운 야구다. 이건욱은 "목표를 따로 잡지 않는다"며 "오늘 경기, 오늘 상대하는 타자, 지금 이 순간에 보이는 것만 하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프로 입단 당시 큰 기대를 받았던 1차 지명 유망주. 긴 시간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이건욱은 이제 비로소 자신의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화려한 미래를 꿈꾸기보다 오늘 하루를 충실히 살아가는 자세가, 그를 가장 단단한 투수로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