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오승환(44)이 소셜미디어(SNS)에 상의를 탈의한 사진을 올려 나이가 무색한 신체 상태를 공개했다. 사진은 곧 삭제됐지만, 철저한 자기 관리로 ‘끝판대장’의 면모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음을 증명했다.
오승환이 은퇴 후에도 몸을 만드는 이유는 명확하다. 프로 무대는 떠났지만, 야구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마운드에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시속 140km대 중반의 강속구를 던지며 여전한 기량을 과시 중이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자신이 운영하는 트레이닝 센터 선수들에게 확실한 동기부여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그는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몸으로 보여주는 것이 가장 확실한 지도 방식"이라며 "44세인 나도 해내는 것을 보면 어린 선수들이 느끼는 바가 클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1일 대구에 개관한 '오승환 퍼포먼스 랩'은 그가 한·미·일 프로 야구(KBO, MLB, NPB)에서 축적한 경험과 최신 스포츠 과학 시스템을 접목한 전문 트레이닝 센터다. 삼성 라이온즈 출신 김대우 총괄 코치를 필두로 박정준 투수·동작 분석 코치, 김성표 유소년·수비 코치, 황승현 트레이닝 코치와 KBO 에이전트 구기환 팀장과 함께 퍼포먼스 랩을 운영하고 있다.
대학야구 선수 앞에서 직접 시범을 보이는 오승환 대표. 사진=윤승재 기자VALD 측정 시스템. 대구=윤승재 기자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트레이닝 센터 설립은 그가 현역 시절부터 구상해 온 숙원 사업이었다. NPB와 MLB에서 축적한 경험을 바탕으로, 최신 스포츠 과학 시스템을 접목한 맞춤형 센터를 만들고자 했다. 각 분야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고 치밀하게 프로그램을 기획한 끝에 지금의 퍼포먼스 랩을 완성했다.
센터 공간은 크게 두 파트로 나뉜다. 선수들의 신체 능력을 극대화하는 트레이닝 존과 투구 훈련 및 유소년 선수들이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필드 존이다.
두 공간 모두 최첨단 장비를 완비했다. 글로벌 스포츠 현장에서 널리 쓰이는 'VALD 측정 시스템'을 통해 선수의 근력, 유연성, 균형 능력을 정밀 측정하고, 동 연령대 글로벌 데이터와 비교·분석한다. 필드 존의 마운드에선 초고속 촬영이 가능한 엣저트로닉(Edgertronic) 카메라로 투구 동작과 회전 메커니즘을 쪼개어 분석해 개인별 최적화된 폼을 제시한다. 선수들은 감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신체 상태와 보완점을 객관적 지표로 확인할 수 있다.
오승환이 막대한 투자를 통해 인프라를 구축한 배경에는 야구 선배로서의 책임감이 자리하고 있다. 그는 최근 국내 투수들이 투구 폼 교정이나 데이터 분석을 위해 드라이브라인(미국) 넥스트레벨(일본)로 단기 연수를 떠나는 현상을 안타깝게 여겼다. 한국 선수들이 굳이 해외로 나가지 않아도 세계적 수준의 훈련을 받을 수 있는 거점을 국내에 마련하겠다는 의지다.
대구=윤승재 기자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 흙으로 조성한 마운드. 대구=윤승재 기자
그는 "우리도 국내에서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고 역설했다. 규모나 장비의 절대적인 수량은 해외 대형 센터에 미치지 못할 수 있지만, 선수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해법을 제시하는 시스템의 질은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 오히려 해외 연수 시 겪는 시간적·물리적 제약에서 벗어나, 매일 측정하고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훈련의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이곳의 최대 강점이다.
신체 능력 강화 못지않게 강인한 멘탈의 '설계' 역시 퍼포먼스 랩의 핵심 목표다. 센터 내벽 곳곳에 그려진 야구장, 야구공, 글러브 등의 설계도 이미지는 선수들에게 ‘스스로를 체계적으로 설계하라’는 묵시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필드 존 입구에는 오승환이 한·미·일 무대에서 수집한 트로피들이 진열되어 있어 유소년 선수들의 동기를 자극한다. 더그아웃 형태로 제작된 학부모 대기석은 학생들에게 실제 경기장에 선 듯한 현장감을 부여한다.
무엇보다 가장 강력한 동기부여 요소는 '살아있는 전설' 오승환의 직접적인 '등판'이다. 외부 일정이 없는 한 그는 센터로 출근해 선수들과 땀방울을 나눈다.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캐치볼 파트너로 나서고 고강도 웨이트 트레이닝도 함께 소화한다. "하체 운동을 열심히 했다"며 자신감을 보이는 고교 선수에게 "그럼 같이 해보자"며 승부욕을 자극하기도 한다. 다음 날 근육통을 호소하면서도 웨이트 훈련에 흠뻑 빠져드는 선수들의 변화는 오승환이 느끼는 가장 큰 보람이다.
오승환은 “성장의 설계는 결국 선수 본인의 몫이지만,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지도자의 역할”이라고 강조한다. “일방적으로 지시하기보다 대화를 통해 신뢰를 쌓아야 한다. 선수의 마음이 열려야 비로소 몸도 훈련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그의 굳건한 철학이다.
대구=윤승재 기자대구=윤승재 기자
"메이저리거 배출" 오승환 대표의 청사진
오승환 대표는 현재의 시스템에 안주할 생각은 없다. 일본의 트레이닝 전문가들과 협업을 논의 중이며, 대학교 영양학 교수진과 연계해 선수 맞춤형 식단 프로그램도 기획하고 있다. 투구 폼을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교정할 수 있는 전용 애플리케이션 역시 자체 개발 중이다. 학부모가 자녀의 훈련 데이터와 성장 과정을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도 곧 도입될 예정이다.
타격 훈련 시설의 부재로 현재는 투수 특화 공간이라는 인식이 짙다. 이에 대해 오승환은 "마음 같아선 주변 일대를 모두 쓰고 싶다"는 솔직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그는 "현재 보유한 측정 장비와 트레이닝 프로그램은 타자들에게도 100% 적용 가능하다. 향후 타격 파트까지 영역을 넓히고 전문 코치진을 추가 영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소년 선수들을 지도하는 오승환 대표. 대구=윤승재 기자유소년 선수들을 지도하는 오승환 대표. 대구=윤승재 기자
이어 경제적으로 어려운 선수들에게 무료 레슨과 용품을 지원하는 등 사회 환원의 범위를 넓힐 계획이다. 나아가 자신의 이름을 건 지역 아마추어 야구 대회를 직접 주최해 성적 중심이 아닌 참가자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축제의 장을 만들겠다는 포부도 품고 있다.
이 모든 구상의 종착지는 명확하다. 바로 이곳 대구 랩에서 훈련받은 선수를 메이저리그에 진출시키는 것이다.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아닐 거면 애초에 시작하지도 않았다.”
경기의 마지막을 책임지던 ‘끝판대장’은 이제 후배 선수들의 가장 견고하고 과학적인 출발점을 새롭게 설계하고 있다.